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가로세로그림책 4
니키 매클루어 글.그림, 강수돌 옮김 / 초록개구리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시장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재래시장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책.

 

부모님께서 나 어린 시절에 시장통에서 중국집을 하셨기 때문에 재래시장은 내게 무척 친숙하다. 아니, 삶의 터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학교 가려고 집을 나서면 새벽 희미한 빛을 깨고 가게 문을 열거나 자리를 펼 준비를 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나를 맞이한다.

물건을 박스째 들고 나르거나 줄맞춰서 진열하는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얼굴에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지만, 그래도 손님맞을 준비를 하는 그네들의 몸짓에는 희망이 묻어있다.

“학교 가냐?” 나는 부끄러워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시장통 상인들의 목소리는 걸걸하고 귀따갑고 화통하다.

손님들과 가격 흥정을 하고 가끔가다 드잡이도 하는 모습을 보아온 나는 그들의 상냥함이 도리어 어색하다.

아침에 나에게 건네는 상냥한 인사도 툭하면 손님에게 시비 거는 그들의 한낮 풍경과 겹쳐서 고개를 외로 꼬고 외면하게 만드는 거침이 있지만, 나는 안다. 그들의 속마음은 한없이 따스하다는 것을.

한창 일하느라 바쁜 엄마 대신 조개며 야채 따위의 장을 보러 심부름 가는 것은 하루 일과 중 하나였고, 중간중간 식혜며 얼음 동동 띄운 콩국은 심부름의 짜증을 잊게 해주는 재밋거리였다.

아~ 또 생각난다.

종종 들르는 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보리밥집은 나의 마음의 고향이다.

구수한 보리밥 냄새와 잘 익은 열무김치의 냄새. 밥 냄새 만큼이나 한없이 푸근했던 주인 아주머니의 미소와 느릿한 사투리.

다 먹고 나면 아주머니가 내주는 숭늉을 마시면서 나는 행복에 겨워했다.

‘보리밥 아줌마가 내 엄마였으며...’ 하는 생각도 가끔 했다. 우리 엄마 밥도 맛있었지만, 그래도 가마솥에서 보리밥을 한 주걱 퍼담아 주는 아주머니의 정에는 특벽함이 있었다. 지금은 그 보리밥 집 있으려나? 그 땐 내가 어려서 아주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미처 표현 못하고 이사 왔는데...

 

나는 재래시장하면 옛날의 추억과 보리밥이 떠오르는데, 이 작가는 재래시장의 수많은 먹을 거리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시장에 나오게 되는지 그 과정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 때 쓰는 도구, 작업 방식들도 자세히 살펴보고 그 분들의 지식, 기술, 끈기 같은 것들도 곁들인다. 농장에서 갓따온 마이클 아저씨의 사과, 콜린 아저씨와 제닌 아줌마의 달고 향긋한 케일, 싱싱한 여어랑 돌소금, 오리나무 연기로 만든 스티브 아저씨의 훈제 연어.

 

이 책은 그림책에서 보기 드문 기법인 ‘페이퍼 컷 아트’로 만든 책이다. 처음엔 선이 굵은 테두리로 그림들이 이루어져 있어서 ‘판화인가?’ 했는데, 선들의 이어짐이 부드럽고 뭔가 판화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앞을 뒤적여봤더니, 종이 오리기 기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빛깔이 아주 맑고 예쁜 벤자민 아저씨네 단풍꿀, 블루베리를 듬뿍 넣어 촉촉하고 맛있는 블루베리 파이, 천연염색 기법으로 쪽물을 들인 유키 누나네 냅킨,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

이 먹을거리들이 한 식탁에 차려지자 색깔들이 비로소 한자리에 모였다. 빨강, 초록, 주황, 파랑 등등.

 

우리에게 온갖 먹을거리를 준 시장 사람들과 농장 사람들, 땅과 나무, 꽃과 벌, 염소와 물고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모두모두 고마워요. 다음 장날에 또 만나요. 그때까지, 안녕!

 

마트에서 똑같은 모양의 비닐에 포장되어 나오는 심심하고 재미없는 먹을거리들 때문이에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편식을 했나? 상인들의 활기참에서 오는 밝은 기운과 싱싱한 먹을거리들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밥이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야기와 정이 넘쳐나는는 재래시장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보고 나면 아이들도 뭔가 깨닫겠지?

편리함과 위생 만을 생각해서 재래시장에 자주 들르지 않았는데, 날 좋은 5월, 아이들과 손잡고 재래시장 나들이를 한 번 가야겠다.

코를 막고 “생선냄새 싫어”,“국밥 냄새 싫어” 하더라도 삶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부딪쳐야 느끼는 게 많을 터.

얘들아, 재래시장으로 나들이 한 번,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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