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빤쓰 키다리 그림책 31
박종채 글.그림 / 키다리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빤쓰>

 

빤스와 난닝구~

어린 시절로 휘리릭 날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말이다.

일제 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는 말이라 금기시하고 의식적으로 피하면서 점점 사라진 말이지만, 그래도 옛날의 향수가 묻어나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은 한 집에 아이 하나 있기도 힘든 시절이지만, 예전에는 셋은 기본이고 더 많이도 줄줄이 낳았었다.

요즘은 9남매, 11남매 등. 아이 많이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참으로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제 먹을 건 제가 타고 난다고 “무조건 많이 낳아라~”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누구 신세 망치려고 작정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렸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는 고물거리는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동참해야 하니, 그런 말 안하신다.

 

아이들 교육상 순화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니, 빤쓰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은 “빤쓰가 뭐야?” 하고 물어본다. 정말 몰라서...

“으이구...그것도 몰라?” 하고 퉁박을 주고 싶었지만, 아주 세련된 세상이니 그 말을 모르고 9살, 6살 평생 그 말을 못 듣고 산 것은 지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하여, 퉁박 주려던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빤쓰와 난닝구가 나온 김에 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본다.

그 시절엔 그냥 보통 둘 혹은 셋인 집이 기본이었고 어쩌다 외동인 친구들이 한 둘 섞여 있었다. 나는 외동인 그 친구를 부러워했고, 그 친구는 동생이 많은 나를 부러워했었다. 여하튼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이었다. 딸만 셋인지라, 첫째인 나를 제외하고는 옷은 줄줄이 물려 입어야 했고, 둘째나 막내는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 아님 어린이날이 새 옷 사는 날인 줄 알고 있었다.

뭐 형편 넉넉지는 않았으니, 나도 계속 새 옷만 입을 수는 없었다. 왕래하는 친척집에서 언니들이 입던 코트나 겉옷 정도는 물려 입을 수 밖에.

그래도 나는 자주 새옷을 사니까 견딜만 했지만 둘째는 나와 한 살 터울이었기 때문에 새 옷 얻어입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거기다, 욕심이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외모에 엄청 공을 들이는 새침한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에게 날마다 떼를 쓰곤 했단다. 나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엄마 말로는 그렇다. 딸 셋이 놀때는 그렇게 사이좋고 재미있게 놀며서 옷 가지고 싸울 때는 또 엄청 싸웠다니...아들 키우는 엄마들이 힘들었다지만, 딸들의 눈치보기며 앙알거리는 싸움을 견디었던 엄마도 참...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옷 때문에 또는 물려 쓰는 물건 때문에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집이 우리 말고도 그 시절엔 흔했나 보다.

이렇게 책으로 나온 걸 보면.

이 책의 주인공은 아홉 살 박철수. 엄마 아빠 포함 모두 아홉 식구란다. 철수네 집도

“헌 옷이 싫다”, “새 옷 사달라”..조르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 때마다 아빠가 회초리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요녀석들 혼이 나야겠어.”하신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 아빠가 무서운 사람인가? 같이 노는 친구지..

신체검사 하는 날. 엄마가 만들어 놓은 빤쓰를 입고 간 철수.

빨간 나비 리본이 달린 빤쓰에 모두의 놀림거리가 되고 만다.

얼마나 창피했을까..

다음 날 엄마는 철수에 새 빤쓰를 만들어준다.

이번엔 무슨 모양의 빤쓰일까?

 

자꾸 빤쓰, 빤쓰 하니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신체검사한다고 다라이에 들어가 때를 벗기던 철수. 옷을 벗어야 하는 신체검사에서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던 철수. 집에서 드르륵 드르륵 하며 무엇이든 만들고 고쳐내던 엄마의 재봉틀. 교복 교모 가방 물려주기 등등. 나에게도 조금은 낯선 것들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면 필히, “엄마, 아빠 어렸을 때는 말이야”하는 어구가 들어갈 것만 같은 책.

나에게는 따뜻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책.

아이들에게는 “이게 뭐야? 하하하. 팬티만 입고 하늘을 날아가네. 그런데 빤쓰가 뭐야?” 하는 말이 툭 튀어나오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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