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개정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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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2권이 나온 지가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아직도 유효하며 잘 익은 막걸리마냥 마실수록 더욱 뒷 잔을 거푸 들게 하는 걸걸한 매력이 있다.

1권이 나왔을 때 친구들이 그 책 한 권에 의지해 남도의 땅끝 마을 답사를 대학 졸업여행으로 기획했을 만큼 그 책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하면서 좋은 길라잡이의 역할도 했었다. 1권의 여흥을 이어받아 지금은 7권까지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그 많은 답사 코스 중에서 2권을 골라 들었다.

2권의 답사 코스는 지리산 부근, 경주, 운문사 등 내가 사는 부산에서 가까운 곳도 있고 강원도 철원, 정선과 민통선 부근 철원 등 먼 곳도 있다. 그리고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아도 부산에서 접근하기 힘든 전라도 부안과 고부 등지도 2권 답사 코스에 실려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이 책은 책장을 넘겨보면 그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가 본 곳과 못 가본 곳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때론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여행 앞머리에 슬쩍 띄운 농 하나.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모두 즐길 권리가 있는 탁족. 작자 미상의 <삼복탁족도>를 잘 설명한 유홍준의 글에는 잔잔한, 아니 포복절도할 해학이 녹아 있다.

여기서는 고고한 기품 대신 질펀한 물놀이의 흥겨움이 강조되어 있다. 세 쌍둥이 솥에 끓이고 있는 것은 분명 보신탕일 것이며, 탁족의 경지는 발을 닦는 것을 넘어서 ‘기역받침을 지읒받침으로 바꾸는 차원’으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탁족은 체모와 격식과 규범으로부터 홀연히 벗어나는 감성적 해방의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16

 

시작부터 한바탕 껄껄 웃음을 선사하신다.

 

위치 설정에서부터 다소 드라마틱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영남의 정자들 중에서 ‘농월정’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곳이다. 나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정자. 월연암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너럭바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계곡 건너편 저쪽으로 바짝 밀어붙여 세워진 농월정은 유홍준의 호기로운 설명으로 내 기억에서 다시 끄집어내어졌다. 움푹한 바위 웅덩이에 안의마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를 쏟아부어 진달래 꽃잎이나 솔잎을 계절따라 띄우고 한바가지씩 퍼마셨다던 영남대 한문학과 학생들의 “풍류”를 나도 언젠가 한 번 실행해 보아야 할 텐데...

 

아쉬움을 뒤로 접고 호사스런 글솜씨로 나를 이끄는 유홍준 교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이번에 만난 곳은 영주의 부석사. 나는 부석사를 여러 번에 걸쳐 만났다. 호젓하게도 거닐어 봤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도 걸어봤고, 아이들과 떠들썩하게도 다녀봤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석사는 새벽녘 호젓하게 걸었던 부석사이다. 새벽 이슬 내려앉은 어둑신한 사과밭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경건한 마음을 담고 올라선 경내에서 저절로 우러러 보여지던 무량수전. 그리고 살짝쿵 걸쳐진 안양루에서 내려다 본 장대한 산맥의 너른 품. 내 짧은 글솜씨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었는데, 유홍준 교수도 그러했는지,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한 편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무치는 마음. 그도 느끼고 나도 느낀 바로 그 마음이다.

 

내가 분명히 보았으나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유홍준은 곳곳에서 잡아내고 있다.

운문사며 석굴암 등등.

가까운 곳이라 자주 찾았던 곳인데도 내가 본 것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일제 시대의 해체수리와 1963년의 보수공사로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게 하고 신라인의 과학에도 여러 발 못 미치는 행태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바보짓을 일깨우는 석굴암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했다.

석굴암이 아니라, 수굴암, 암굴암, 전굴암이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체험하고 싶다면 일독을 강추한다.

그리고 미학자의 안목으로 수려한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나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석불사 석굴의 조각을 보면서 그가 토해낸 감탄을 보라!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기품이 중심을 이루면서 10대제자상의 강렬한 리얼리즘이 포진하고 있는가 하면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의 문수·보현, 제석천·범천이 얇은 돋을새김으로 환상적·이상주의적 자태를 보여주며, 11면 관음보살은 여지없는 ‘미스 통일신라’로 석면을 뛰쳐나올 듯한 자세로 다가온다.....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내가 “보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아서 말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때의 경험이었다. -234

 

국토박물관에 지천으로 널린 볼거리, 느낄거리들을 맛깔나는 해설로 가득히 차려놓은 유홍준 교수의 책.

살아 있는 답사 안내서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터벅터벅 걸어... 멀고 긴 길을 걷게 되면 이 책 한 권을 (아니, 시리즈 모두를) 턱 하니 건네주고 잘 다녀오라고 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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