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는 <붉은 손가락>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추리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붉은 손가락>을 읽는 내내, 가가 형사란 인물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를 <졸업>을 읽고서 알았다.

가가 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180의 키와 장대한 기골, 대학 검도부 전국대회 우승자.

이 설명만으로는 다가오는 임팩트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 졸업반일 때의 가가로부터 시작하는 <졸업>에는 가가의 근간이 되는 가족 배경에서부터 친구관계, 사랑했던 연인, 다도 선생님으로 나오는 은사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중요한 부분을 빼먹고 사건 해결 경찰로서의 가가로만 보았으니, 가가가(^^) 제대로 그려질 리 없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흔들림 없는 냉철함, 인간에 대한 따스한 마음까지. 이 <졸업>이라는 청춘 미스터리물이 그의 매력이 발산되는 시초였던 것이었다.

뒤늦게 첫번째 시리즈를 읽었지만, 늦게 알아서 더욱 느낌이 새로운 것도 있고, 아~하! 하면서 터져나오는 감탄사의 연발도 꽤 읽는 재미가 있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대학 졸업반 시절, 아직 형사가 되기 전의 가가는 교사를 꿈꾸고 있었다. 아버지는 경찰이었으나,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 가가는 ‘경찰이라는 직업은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교사와 경찰 중 진로를 고민하던 가가는 마사코라는 친구를 마음에 두고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까지 하면서는 ‘가족의 구성원’이 될지도 모를 마사코를 위해서 경찰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교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이 <졸업>이라는 작품을 계기로 그가 경찰이 되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지만, 어쨌든, 경찰 아버지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배어 있던 그의 습성이, 졸업을 앞둔 7친구 안에서 일어난 2건의 사건으로 발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뭉쳐 다닌 7명의 대학 졸업반 친구들.

 

“너를 좋아한다. 결혼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졸업>의 첫 구절. 가가마사코에게 고백을 한다.

 

“이건 프로포즈가 아니야. 그냥 내 의사 표시야. 네가 누구를 좋아하건 누구와 결혼을 하건 그건 너의 자유지만 내 마음은 이렇다는 걸 알아줬으면 했어.”

 

캬~ 쿨하고도 깔끔담백하다. 실제 이런 고백을 받는다면 충격, 그리고 싸한 후폭풍이 몰려오겠지만, 뭐, 내가 받은 것도 아니니, 3자의 입장에서 보는 이 고백 장면은 달콤쌉싸름한 연애 드라마의 주요 장면에 다름 아니다.

7명의 친구들 중, 와코와 하나에는 연인 사이. 도도와 쇼코도 연인 사이. 나미카는 검도를 중시하는 집안의 딸로 자유분방한 성격.

 

어느 날, 도도의 연인 쇼코가 백로장,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손목이 그어진 채 피투성이로 발견된 쇼코.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 그 와중에 같은 숙소(백로장), 쇼코의 방 맞은편에 머물던 나미카는 범인을 찾아내겠다며 동분서주 한다. 7명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이던 미나미사와 선생님의 생일을 맞아 ‘설월화 게임’을 하러 모여든 그들에게 또다시 나미코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다도 의식 도중 차를 마시던 나미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은 것. 단단한 우정으로 뭉쳐 있을 것 같던 친구들 사이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설월화 게임의 규칙상 가가의 연인인 마사코가 용의자 선상에 오르기도 한다.

쇼코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나미코가 살해되자, 가가와 마사코는 힘을 모아 추리를 시작하는데, 중간 중간 긴장감이 느껴지는 둘 사이의 애정전선의 묘사도 자못 흥미롭다.

가가의 추리로 밝혀지는 친구들 사이에 얽힌 진실. 어느 누구의 단독 범행도 아니었으나, 쇼코와 나미코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되었던 친구들은 죄의식을 덜어버리지 못하고 한 명을 죽음을, 그리고 한 연인은 이별을 택하게 된다. 7명의 친구 중 3명은 사망, 2명은 연인 사이에서 이별을 선택. 그리고 남겨진 가가와 마사코.

대학 4학년의 그들은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된다.

대학 시절의 졸업이기도 하고, 우정에 대한 졸업이기도 하고, 청춘의 한 페이지에 대한 졸업이기도 하다.

그릇이 가득 차면 비우고 나서야 새 것을 채울 수 있다.

졸업.

남은 친구들의 가슴 속에 하나씩 어두운 기억이 들어차겠지만, 그것을 밑바탕으로 해서 또다시 새로운 것을 일구어 나가면 된다.

졸업과 새로운 시작은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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