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옛날 대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에는 멘토링이 따로 필요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얻어 듣는 말씀 속에 삶의 지혜가 다 들어 있었으니까.

요즘은 핵가족이니, 솔로니 하면서 점점 규모가 작은 가족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어서 고민 하나 살짜기 풀어 놓을 데가 없다.

가는 귀가 먹어도, 꿈꿈한 냄새가 나도 할머니 옆에 슬쩍 기대어 앉아 가만가만 속내를 풀고 싶을 때가 있는데 현실에선 그게 안되니, 책으로 대체할 수 밖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재난,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으신 할머니의 삶의 지혜라면 내공이 장난이 아니겠지 싶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보고자 <백년의 지혜>를 집어 들었다.

‘내 마음의 고민 적어도 한 가지는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란 기대를 품고서.

111세의 알리스 헤르츠좀머 할머니.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앳된 소녀 때의 미소와 나이 들어서의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는 어린 시절의 미소를 여전히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그대로 스미게 된다더니, 할머니의 얼굴에 무척 천진난만하고 여유로운 웃음이 녹아있다.

 

“할머니, 어떻게 살아 오셨어요?”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인 할머니를 앞에 두면 누구나 해보고 싶어 하는 질문.

장수의 비법을 묻고, 건강을 잃지 않는 비법을 묻는 인터뷰는 종종 보아왔다.

소식하기.

걷기.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기.

조금씩 꾸준히 움직이기.

그렇지만, 그냥 장수하는 노인들과 알리스 할머니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왜냐고? 그녀는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홀로코스트를 겪었다고 해서, 나는 독일에 살던 유대인이겠거니,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190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러면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살짝 비켜갔을 수도 있지 않았나?

어이쿠. 나의 무식이 여기서 탄로나는구나.

이 책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동유럽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그 시절, 지도자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로 보내지고, 희생당했는지, 내가 미처 몰랐던, 아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동유럽의 실상이 보고 되어 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접하게 된 알리스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1931년 레오폴트 좀머와 결혼해 아들 라파엘을 낳지만, 행복한 생활은 잠시, 1943년 알리스와 남편, 아들 라파엘은 체코에 들이닥친 나치에 의해 테레진 수용소에 보내진다. 테레진은 대규모의 수용소로, 예술가의 피난처로 홍보되었으나, 사실은 아우슈비츠 등 동유럽 전역의 나치 학살장으로 보내지는 환승역 역할을 한 곳이다. 이곳에서 2년을 보낸 알리스와 아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고, 아마도 한 병사의 희생이 있었으리라, 그녀는 짐작한다.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 감동을 받은 한 병사가 음악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부인이랑 아드님은 퇴출 명단에 오르지 않을 겁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테레진에서 지내실 겁니다. 염려 마세요. 안전하실 겁니다.” -55

 

1946년 아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재혼하지 않고 혼자 아들을 키운 그녀. 새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데 그녀와 함께했던 것은 첼로 교수로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과 음악에 대한 열정. 여든이 넘어서는 런던으로 옮기지만 아들의 돌연사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런던의 제 3기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철학자들(특히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바흐,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를 외워서 매일 세 시간씩 연주하며 예술가로서 의미를 찾는다.

 

111년을 살면, 한 권의 책으로 그 삶이 정리가 될까?

이 책에서는 그녀의 에너지를 담아, 많은 이들에게 긍정의 힘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지 싶다.

수많은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낙천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알리스는 쌍둥이였다고 했다. 쌍둥이 언니였던 마리안느는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알리스와 성격이 판이해서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홀로코스트를 극복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고...

그녀가 남긴 백년의 지혜를 엿보면서 나의 고민도 슬금슬금 물러가는 것을 느낀다.

기나긴 세월을 이겨내고 남긴 그녀의 말은 모두가 명언이다.

감명 받은 몇 구절을 남긴다.

 

“웃음은 근사해요. 나와 다른 모든 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거든요.”

 

“나는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음악이 내 목숨을 구해 줬어요. 음악은 신입니다.”

 

“누구도 당신의 정신을 훔치지는 못합니다. 내가 유대인들에게 감탄하는 것은 그들의 유별난 교육열 때문이에요. 어린이 교육은 가정의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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