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서 영원으로 - 불필스님 회고록
불필 지음 / 김영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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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필스님의 회고록이다. 올해는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딸이지만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했다던 불필스님이 여러 차례 거절 끝에 정진수행 해온 바를 여러 대중들과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1937년 생이니, 불필스님 나이도 적지 않다. 올해로 일흔 일곱 되시는가. 희수로구나. (희수(喜壽): 77 - '희(喜)'자를 '칠'로도 썼기 때문에 喜壽는 77세)

불필 스님이 불필이라는 이름을 받고 “하필(何必) 왜 불필(不必)입니까?”하자, 큰스님께서는 “하필을 알면 불필의 뜻을 안다.”고 하셨다. 세상에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인가, 불필스님은 법명을 ‘아주 바보 등신처럼 공부만 하라’는 뜻으로 새기면서 살아오셨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애들은 봄방학을 맞았다. 그래서 주말에 뮤지컬 공연을 보여주려고 부산시민회관을 찾았더랬다. 그런데 소극장의 1,2층 한슬 갤러리에서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무교인지라 기독교니, 불교의 행사에 무관심하게 살아왔는데, 마침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책을 읽는 도중 만나게 된 성철스님인지라 퍼뜩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불필스님의 목소리로 성철큰스님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여 그 향기를 맡고 있을 뿐이었는데, 이런 기회를 맞닥뜨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도 다 인연의 힘이려니...(불교신자인 양^^)하며 전시회장 문을 밀고 들어섰다. 갤러리 전시 모습을 잠시 소개한다.

1층의 입구에 나를 마중하듯 정중하게 걸려 있는 스님의 누더기 두루마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말 그대로 누덕 누덕 기운 흔적이 역력하다. 두루마기 밑에는 검정 고무신. 이것 역시도 고무에 덧대어 뒤축을 댄 것이 보인다. 하다 못해 덧신과 양말마저도...

 

 

 

<성철스님 오도송>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희구름 속에 섰네

      성철스님 오도송-1940년

 이 날, 산도 울고 물도 울었다는 성철 큰스님의 다비식 장면이다.

 

 

 

 

 

다비 후에 남은 스님의 사리. 아이들에게 사리에 대해 설명해 주자, 아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본다. ‘진짜 저 스님 몸에서 나온 거야? 사람 몸에서 나온 거 맞아?’하는 듯이.

 

 

전시회장 한 구석에는 <금상산 마하연> 이야기가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불필스님 회고록에도 나오는 이야기인 터라 반가웠다. 아! 유명한 일화였구나-.

할머니는 때로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계절 따라 음식과 의복을 준비해서 큰스님이 공부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큰스님은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다. 한 번은 천 리 길을 물어물어 금강산 마하연까지 찾아갔는데 “이렇게 먼 길을 왜 오셨소!”하니, 할머니께서는 “아니, 난 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하도 금강산이 좋다고 해서 금강산 구경하러 왔제!”할머니로 인해 선방 전체 회의가 열렸고 다음 날부터 큰스님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할머니를 모셨다. “아들 등에 업히기도 하고 떠밀리기도 하고 험한 곳에서는 손과팔을 잡혀 이끌리기도 하믄서 보낸 일주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는기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제. 하도 좋아서 극락 세계가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했는기라.”

만폭동, 보덕암, 묘길상, 장안사, 삼불암, 표훈사, 정양사 등의 내금강과 신계사, 옥류동, 법기암,구룡폭포, 상팔담, 만물상 등의 외금강까지...고집스럽게 혈육을 멀리했던 출가한 아들과 잠시라도 함께할 수 있었던 어머니.

짧은 애니메이션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구구절절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 일제 강점기에 금강산 마하연에서 맞닥뜨린 출가승과 어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지고도 남는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출가를 꿈꾸었던 언니, 평생 화두를 여의지 않은 채 불교에 귀의하여 임종을 앞두고 삭발한 후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완고한 유학자였으나 돌아가실 때는 “이놈들아, 나는 성철스님에게로 간다”고 말씀하시면서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 오십 대 중반에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어머니. 이러니 ‘우리 집안은 전부 전생의 스님들이온 것 같다.는 내 생각을 누가 틀리다고 하겠는가. -85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에서 막내 손녀로 애지중지 키워진 ‘아만이 센’ 불필스님. 천진무구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 갑작스럽게 언니의 죽음을 맞았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화두를 가슴에 품고 살다가 진주 사범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천제굴로 아버지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천제는 ‘부처조차 될 수 없는 존재’, ‘불성을 갖지 못한 존재’라는 뜻으로 ,부처조차 될 수없는 천한 사람이되어야 도를 닦을 수있다는 철학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그래,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문답에서 일시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에 대한 말씀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출가 이후 자유로운 운수납자(雲水衲子)로 해인사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대원사, 오대산 지장암 등 제반 선원을 다니며 공부했고 1993년 성철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석남사 심검당에서수행 정진하고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라는 책에는 참선, 발우공양, 하근기, 도반, 하안거, 동안거 등 알아볼 수 있는 말도 있는 반면에 중근기, 상근기, 시봉, 상좌, 법전수좌, 가피, 회향, 장좌불와, 능엄주, 대참회, 용맹정진 등 불가에서만 쓰는 말들도 있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불자의 삶은 이만치도 일상인과 동떨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출가하여 공부를 업으로 삼고 이 절에서 저 절로 다니며 “만고의 진리를 향해 나홀로 걸어가노라!”하시며 살아 오신 불필스님.

나로서는 그 삶이 언뜻 짐작하기에도 어려웠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다.

요즘 생각 같아서는 진주 사범 학교 졸업하면 선생님이 되어서 별 걱정없이 살 수 있지 않나?

여자로서 최고의 직장, 최고의 신붓감이라 할 정도로 교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대우받을 것이고, 결혼도 무난하게 하여 재미있는 삶을 꾸려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어린 나이에 평생을 지고 갈 화두를 얻었고, 한 순간의 후회도 없이 용맹정진하며 한 길로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성철스님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에잇. 머리 깎고 중이나 되지. 이 더러운 세상. 왜 여기서 안달복달 하면서 사나.”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 중노릇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평생을 바쳐 전심전력 해야 겨우 법문의 한 귀퉁이에 겨우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큰스님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장좌불와 수행을 할 때도 머리에 열이 솟구쳐 상기가 날 정도가 되어야 겨우, ‘조금 노력했구나.’ 소리를 듣는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의 참선을 통해 수행을 이어나가는 불필스님의 수행과정과 가지산 호랑이라 불렸다는 스승 인홍스님의 이야기, 대중들을 감화싴시킨 큰스님들의 법거량까지를 읽고 나면 “중이나 되지”라는 말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가고 말 것이다.

나는 그저 드라마나 보면서 가끔 인생사의 도를 깨우치는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하고 마음을 비우게 된다.

일례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내 딸 서영이>를 들어보자.

서영이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살아 있는 아버지를 죽었다고 속이고 재벌가에 시집을 간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보다 미움이 더 컸던 것이다. 사업 실패로 엄마와 가족을 버리고 혼자만 살 길을 찾아 꼭꼭 숨어 나타나지 않았던 아빠로 인해 엄마는 돌아가시고 서영이와 동생 상우는 고생을 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과 성공을 손에 쥐었지만, 모든 게 다 들통나고 마음을 비우게 된 서영이는 아버지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싹트는데, 그 때 회상하는 장면이란, 어린시절 아버지와 등산 갔던 일, 초콜릿을 챙겨주던 아버지, 보물찾기로 지구력을 길러주려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좋은 일만 생각하면 좋은 쪽으로 일이 풀리고, 나쁜 일만 생각하면 나쁜 쪽으로 일이 풀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생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마음 내려놓기와 통하는 맥락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불가의 비의를 전수받은 듯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다고 자위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앞 부분에 성철스님이 두 번째로 딸을 만난 자리에서 거두절미하고 물으신 것.

“그래, 니는 무엇을 위해 사노?”

불필 스님은 단번에 “행복을 위해 삽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직 그 대답을 찾지도 못했다. 정답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당장에 내놓을 대답이 없는 것이다.

말문이 막혀 묵묵부답이겠지.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부터 생각해 보겠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나만의 화두를 심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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