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 - 이강운 박사의 24절기 생물노트
이강운 지음 / 지오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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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생물노트-곤충도감 [붉은점모시나비와 곤충들의 시간]

 

 

곤충들의 시간을 눈여겨 본 적이 있었던가.

집 앞을 지나는 작은 천변에 물이 넘실넘실 흐르던 몇 해 전에는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해서 자주 나들이를 나갔었다.

계절의 변화를 나무들이며 꽃, 메뚜기 들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자라갔다.

지금은 기후의 변화 때문인지 자연 훼손 때문인지 그 작은 '천'조차도 흘러넘치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끊어진 만큼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져 보기에 좋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질 것 없이 우리 인간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쓰레기, 폐수들이 흐르고 흘러 당장 눈앞의 '천'의 환경 변화를 결과로 보여준다.

여름이면 눈 뜨자 뛰쳐나가 굵은 나무 둥치에 붙은 매미 허물을 똑똑 떼어 제 옷이며 어깨에 늘어놓곤 하던 아이도 이제는 매미 허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시무룩이다.

폴짝폴짝 수풀 사이를 뛰어다니던 메뚜기며 방아깨비 잡기에 열올리던 일도 이제는 몇 해 사이에 '옛날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이의 꿈은 '생물학자'이지만 풍성하던 자연이 곁을 내주지 않으니 그 꿈이 영 시든 모양새다.

대신 집 안에서 사슴벌레 몇 쌍을 키우며 갈증을 달래는 중이다.

 

곤충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달라 한 철 지나면 마감이다.

그들의 한살이는 짧고도 짧아 허무하기도 하지만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면 늘 새로울수도 있다.

여기, 이강운 박사의 24절기 생물노트는 보름마다 찾아오는 절기에 맞춰 곤충들의 생활을 관찰해 놓았다. 여실히 드러나는 자연의 황폐화 앞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아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주는 것밖에 없다.

저자 말마따나 자연 속의 바람, 하늘의 색깔과 생물의 소리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밖에...

 

이 책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에 게재했던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노트'를 근간으로 구성한 것이라 한다.

자연생태계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인 24절기를 기준으로 해서 곤충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목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여러 곤충들 중에서 주인공은 단연 '붉은점모시나비'이다.

내게는 이름도 생소하건만, 평소 생물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는 단박에 아는 척을 한다.

모양을 보고, 이름을 알아주는 것 말고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관찰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으면 해서 일독을 권했는데...

아이는 사진이 많아서인지 글은 대충 읽고 사진으로 눈요기만 하는 느낌이다.

 

붉은점모시나비는 전세계적인 멸종위기 곤충이라고 한다.

빙하기의 흔적을 몸에 지녀 한겨울에 발육, 성장을 하는 유일한 곤충으로 대단히 특별한 생리를 갖고 있다.

보통 겨울에 월동을 하고 봄여름에 깨어나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것이 나비 아니던가?

완전히 거꾸로 생체시계를 탑재하고 있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생태가 신비로웠다.

연구자의 눈으로 보면 더욱 궁금한 것이 많아지리라.

저자는 극한 조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리적 특성 때문에 오랜 기간 유전체 분석에 관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알을 모아 부화 상태를 보고, 매일 알을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등의 일들은 꾸준한 기다림 없이는 힘들었을 것 같다. 

 

 

다른 나비들과 달리 올록볼록하면서도 두꺼운 알의 형태를 가진 붉은점모시나비는 그 탄생과정부터 신기하다. 힘든 과정을 거쳐 산란한 뒤 애벌레 과정을 거치는데, 그 마저도 순탄치 않다. 시생벌은 붉은점모시나비 알에 기생하고, 번데기에서는 기생파리에 기생하며 영양분 덩어리인 알은 고마브로집게벌레가 포식한다. 가장 강력한 포식자인 말벌은 애벌레를 씹어 먹는다...

여름 아닌 겨울에 태어나니 멸종위기에 처했지...하던 연구자의 푸념은 뒤로하고라도, 참 살아남기 어렵다.

붉은점모시나비에 문외한이었던 나의 시선을 한 번에 꽉 붙들며 곤충의 시간과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유용하다.

작은 것 하나에 대한 관심이 커져 점점 넓은 곳으로 퍼져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철모르는 나비의 속사정을 알게 되자 다른 곤충들에 대한 설명도 받아들이게 된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대왕박각시, 동종포식까지 하는 난폭한 물장군, 여름잠 자고 깨어난 표범나비, 바다와 사막을 건너는 유럽의 작은멋쟁이나비, 차가운 계곡 속의 날도래와 강도래, 두엄 더미에서 발견한 장수풍뎅이 애벌레.

소똥구리를 기르다 소까지 키우게 된 이야기에 이르면 벌써 곤충들과 함께 했던 24절기가 훌쩍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바깥 나들이를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장마철 지나고 나면 다시 집 앞 '천'으로 나가 산책을 시작해야겠다.

여름이 되면 화사하게 달콤한 과일 향기 나는 분홍빛 꽃을 피우는 자귀나무. 자귀나무 꽃이 필 무렵이면 항상 장마가 진다고 했던 저자의 말이 딱 맞다. 바로 며칠 전에 불면증에 좋다며 자귀나무 꽃을 똑똑 따던 사람을 보고 왔었는데, 이렇게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24절기며 곤충들이며 자연에 관심을 자기면 모르던 것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자연을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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