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그림 하나 -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해
529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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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또 채우는 나날들 [하루 그림 하나]

 

 

 

지난 번 태풍에 집 앞 모과나무가 넘어졌다며 모과를 한가득 주워담으신 아버지.

노랗게 익은 모과는 과연 못생기긴 했지만 특유의 향기로움을 머금고 우리집에 왔다.

아무렇게나 굴려놓아도 모과가 가진 향기는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인기척 없는 집을 지키고 있다가도 스스로의 향으로 쓸쓸한 집에 묵직한 달큼함을 선사하는 모과.

덕분에  퇴근 후 조용한 우리 집에 생기가 돈다.

가만히 놓아두면 은은한 향이, 손으로 바닥에 조금만 굴리면 좀 더 진한 향이 배어나온다.

모과의 쓸모는 그 뿐이 아니어서 쓱쓱 썰어 말린 다음 끓는 물에 우려내면 향긋한 모과차가 된다.

감기 걸렸을 때나 목이 슬슬 아파올 때, 꿀을 듬뿍 넣은 모과차를 마시면 따뜻한 기운과 함께 피곤함이 쓱 사라지곤 한다.

 

매일매일의 삶이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재깍재깍 시곗바늘이 묵묵히 제 할 일 하는 데 발맞추어 그저 흘러가기 마련이다.

뜻밖에 우리 집을 찾아온 아버지와 모과처럼, 나른한 일상에 향기로움을 선사하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림을 그리는 생활자, 529 일러스트레이터의 [하루 그림 하나]가 백지 같은 내 삶에 점 하나를 찍었다.

어지간히 그림에는 재능이 없어서, 흔하디 흔한 패드에 쓱쓱 그리는 그림조차 시도해 보지 않았는데,

529 님은 '오늘을 그리며 내일을 생각'한다며, 그림을 그리고 짤막한 글을 곁들였다.

날짜와 글과 그림.

초등학생의 숙제 같은 그림 일기의 형식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에야 많이 봤고, 또 시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크자, 그림일기장은 이제 사뭇 유치한 것이 되어버려서 책장 속 어디엔가 박혀 있을 뿐.

꺼내서 쓱쓱 그리고 쓰는 데에는 소용이 없는 천덕꾸러기 노트가 되어 버렸다.

2권인가, 3권 정도 커다란 그림일기장이 남아 있지만 그걸 꺼내서 써야겠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데.

사실은,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또 굳이 곱씹을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좀 무뚝뚝한 어른이 생각이 일상을 지배해버린 셈이 되어서 굳이 그림일기장을 꺼내 쓸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오늘은 10월 28일 일요일.

나는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왔다.

좀 많이 먹은 탓인지, 속이 더부룩하다.

집에는 소화제, 콜라 등이 있지만 뭔가를 더 넣으면 진짜로 목구멍까지 꽉 찰 것 같아 소화제조차 입에 넣질 못하겠다.

 

오늘의 내 일기를 간단히 쓰자면 위와 같은 내용이 될 터이다.

이런 재미 없는 일상에 어떤 그림을 넣으랴.

 

생각난 김에 529 님의 10월 28일 일기를 들여다 봤다.

나와 마찬가지로 주말을 맞이한 529님은 "이불 속이 최고야."라는 명언을 남기며 이불 속 행복한 꼬물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아~

어떤 일이든 기록으로 남기면 추억이 되는 것이구나.

청춘들의 일상 속에서 그림일기는 '소확행'의 매개체가 될 수 있겠구나.

 

 

누군가의 시 한 줄이 내 하루를 반성하게 만드는 글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겠다.

날카로운 시간이라,

덕분에 멋진 표현 하나 가슴 속에 담아 둘 수 있었고,

나의 하루도 새삼 소중한 것이며 이 소중한 것을 어떤 형태로든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 없으면 어떠랴.

짧은 글로라도 내 하루를 담아 볼까.

일기 쓰기의 강제성,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 지금.

굳이 '일기' 형식을 거부할 이유는 뭐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뭔가를 끄적여보고 싶단 마음이 생긴다.

꼭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꽉 채우지 않더라도

나의 일 년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다.

 

외식을 하러 나가기 전, 둘째 녀석이 아파트 현관을 나서며 한 마디 했다.

"겨울 냄새가 나요."

이제 가을이 물러가려는 때인데, 녀석은 벌써 겨울 냄새를 감지한다.

이런 짤막한 순간도 잊지 않고 기록해 두면, 언젠가는 멋진 추억이 되려나.

겨울 냄새 나는 가을의 끝자락.

따끈한 코코아 한 잔 하며, 나만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

 

#529 #에세이 #공감 #청춘 #일기 #그림일기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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