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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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스럽지 않은, 담담한 위로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의 시대는 이제 사라졌는가.

청춘들을 어루만지는 문구의 대명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대놓고 아픈 청춘들에게 번잡스러운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던 그 문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대신 토닥토닥, 청춘들의 현실을 들어주는 기류가 흘러들어왔다.

사실, 위로라는 것은 나보다 앞선 선배들에게서 어쭙잖은 동정을 얻어듣는다거나 남들로부터 섣부른 결단을 해결책으로 제시받는대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그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한없이 낮고 비루한 사람이라 느껴질 때가 한 번씩은 다들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그 때의 해결책 또한 다르겠지만 나 혼자만의 고민으로 당장 이렇다할 해결책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이렇게 책 속에서 작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라는 제목은 다소  삐딱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경험을 정면으로 때림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다.

 

"나는 시시한 사람이지만 그럼 어때."

 

한 번 배를 툭 내밀고 내뱉고 싶어지는 말이다.

꼭 따라 해 보고 싶어지는 말이다.

하고 나면 왠지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말이다.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다양한 이직 경험이 실패담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이 한 마디 할 수 있는 배짱을 배울 수 있었던 작가가 부럽다.

 

 

 

어느 날, 우연히 어느 회사의 구인 공고를 봤다. 하고 싶은 일이었다. 잃을 것도 없는 마당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회사의 지원서에는 내 모든 실패 경험을 그대로 털어서 썼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닸다. 그리고 그 다음 주,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

입사 후 나를 뽑은 이유를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결핍과 실패를 아는 사람이.-45

 

실패를 겁내고 시작조차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들, 그리고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그저 그런 인생'이 가장 나쁜 것이란 어른들의 기대와 편견 속에서 특별한 나로 살기 위해,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쳤던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청춘들.

시시한 인생이면 어때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낼수록 나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텐데, 라는 말을 한 열 번씩은 따라해봤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이상 청춘이라기엔 열없어져버린 나이가 되었고, 아이를 둘이나 키우고 있기에 청춘들에게 던지는 자기계발서의 교훈은 쉽사리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내가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키우고 있는 내 아이들에게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겠다, 는 정도의 느낌으로 읽어가게 된다.

 

 

봄이라 예쁜 옷을 입은 친구에게 "옷 예쁘게 잘 입었다."며 말꼬를 트기 시작해 이어지던 말이 아줌마들의 수다로 이어졌다. 어디서 사느냐, 취향이 뭐냐...

그런데 옷에 대한 내 취향이 뭔가를 말하려다가 갑자기 내 취향이 뭐였더라를 생각하는 시간 때문에 수다의 흐름이 끊겼다.

그냥 가지고 있던 옷들에 어울리는 것들만 계속 사게 되고, 빠듯한 형편에 맞는 옷들로만 옷장을 채우다 보니 취향이랄 것까지는 없는 무채색의 옷장.

밝고 환하고 독특한 옷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조금은 슬픈 아줌마의 옷장.

어린 시절부터 확고한 고집으로 몸에 맞는 제 옷을 사고 누가 건드릴라 치면 불같이 화를 내던 내 동생과는 180도 다른 우유부단한 내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다양한 옷을 사고 금장 싫증내고 또 새로운 옷을 찾아 입어보고 도전하던 동생은 지금도 멋쟁이지만

옷 사는 일에도 소극적이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스스로를 꾸미는 일에 관심 없던 나는 지금 그냥, 소박하고 꾸밀 줄 모르는 아줌마다.

 

졸업 후 구한 계약직 일자리 월급 130만원도 별다르지 않았다.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딱 굶어 죽지만 않을 만큼이었다.

자연스레 내 모든 소비의 최대 목표는 '실패하지 않기'가 됐다. 옷을 살 때면 눈에 띄는 색이나 디자인의 상품을 찾기보다 지금 가진 옷과 최대한 비슷한, 돌려 입기 용이한 옷을 찾았다. 싸고 평범한 옷은 편안하고 막 입기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을 사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184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쩜 나랑 이렇게 똑같지. 라고 생각했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 따위는 없었던 시절 때문에 지금까지도 취향이란 걸 만들지 못한 걸까.

과감하지 못한 성격 탓이 가장 클 테지만 그래도 여유 없던 청춘 시절에 무조건 아끼려던 그 습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다.

괜시리 서글퍼지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참, 시시한 인생 살았구나.

그래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따뜻한 기운이 번져간다.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나와 같다면~

번잡스럽지 않은, 담담한 이 위로에 슬며시 미소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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