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둔감력으로 감정의 가지치기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아들 녀석은 요즘 큐브 맞추기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에 그냥 큐브를 툭 던져 주었을 때는 대충 돌려보다가 끝까지 맞추기가 힘들다는 걸 알자 금세 흥미를 잃고 손을 놓았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한 살 아래인 사촌 동생이 '30초 안에 큐브를 맞춘다더라', 한 마디를 퉁겨주니 활활 타올라서는 유튜브를 보더니 공식을 찾아내더라.

한 달간의 기한을 줄 테니 너도~라며 적당히 자극을 주었더니 2주도 채 안 된 어느 날 아침, 환호성을 울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완성했다. 이제 어떤 큐브든 맞출 수 있다."라며 이불 위에서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아침부터 꽤 요란스레 야단법석을 떨기에 좀 조용히 시킬까 했지만 아들이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한소리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누나는 한 쪽에서 시끄럽다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는 손뼉을 쳐주며 "대단하다. 진짜 빨리 마스터했네? 그렇게 어려운 걸?"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녀석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이불 위에서 자축의 세레모니를 하고 신나서 소리를 지르다 큐브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는 결코 노력을 기울이는 일 없던 아이가 도전해 볼만한 일을 만나서 여가 시간에 TV만화를 보지 않고 큐브에 매달렸던 걸 알기에 그 과정에 대한 칭찬도 더해서 해주었더니 내 마음도 한결 가볍고 기뻤다.

"대단하다."

"진짜 장하다."는 한 마디에 우쭐우쭐해가지고 가는 모습이 좀 우습기도 했지만 아이의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 마디의 칭찬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엇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우쭐해 하며 자신감을 갖는 것은 경박하고 꼴사나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더 크게 날갯짓할 수 있는 멋진 둔감력을 가진 것이다.라는 책 속의 구절이 크게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의 자존감으로 꽉 채워져 있을 때 어떤 일이든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고 하루하루를 충만한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이나 커가면서의 사회적 환경 때문에 그 자존감이 튼튼한 나무뿌리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특히나 '예민함'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지면서 그 사람의 성격을 결정지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예민함과 둔감함 중에서 그래도 뭐가 나은지를 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둔감함을 선택하겠다.

자존감이 그렇게 깊이 뿌리내린 사람은 아니지만 원래 성격이 좀 무던하기도 한 것도 있어

둔감함 쪽이 더 내게 잘 맞는 옷인 것 같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누구에게 한 소리 들으면 오래오래 간직하는 면이 가끔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냥 잘 넘어가려고 하는 편이다.

주변에 꼭 있기 마련인 '예민함 갑'인 사람 옆에 있으면 부쩍 더 나의 둔감함이 장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에서는 '둔감력'을 얘기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 책 속에서의 둔감함도 절대적인 둔감함이 아니라 상대적인 둔감함을 말하는 것일 게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자존심 강한 소설가가 있었다. 원고를 퇴짜 맞는 일에 상처를 받았던 그는 금세 주눅이 들고 말아 새로운 소설을 쓸 기력이 없어졌다.새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계속해서 놓친 그는 마침내 문단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좋은 의미의 우직한 둔감력이 있었더라면 그는 분명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극도로 집중해야 하고 예민한 상태에 있는 후배 의사에게 구시렁구시렁 잔소리를 해대는 선배 의사가 있다. 어떤 이는 잔뜩 긴장하고 어떤 이는 "네~, 네."하고 쇠귀에 경 읽기 식으로 흘려들었다. 강인한 둔감력을 길렀던 의사는 꾸중을 듣는 중에도 챙길 건 챙겨서 수술 실력이 부쩍 늘었다. 어지간한 일은 태연히 넘길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진 그는 훗날 칠십이 넘어도 여유 있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둔감력은 남녀의 연애에도, 어렵기만 한 결혼생활에도, 암이라는 큰 병에 걸렸을 때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하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외톨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둔감력'이라는 말이다.

핑크색 바탕에 강렬한 꽃무늬가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이 옷 어때요?"하고 물을 수 있는 할머니는 이웃들의 겉치레나 비웃음 섞인 대답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주군가가 빈정대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는 태도록 씩씩하게 나가는 자세, 이런 둔감력이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일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이 어린 시절이나 주변 환경에 크게 좌우되듯이 둔감력을 기르는 첫걸음은 너그러운 부모에게서 칭찬받으며 자라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큐브를 맞추며 방방 뛰던 아이에게 잔소리 대신 칭찬을 날려 준 내 행동을 스스로 칭찬한다. ^^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실수하거나 실패해서 상사의 질책을 받을 경우가 생긴다. 이 때 실패나 실수는 빨리 머릿속에서 떨쳐내기. 그 대신 상사에게 칭찬받았던 일, 동료들에게 인정받았던 일을 기억에 저장해 놓아다가 필요할 때마다 떠올리기.

이런 좋은 의미의 낙천주의가 긍정적인 마음과 강인한 둔감력을 키워준다.

울 아들은 작은 성공에서 오는 기쁨 다음에 엄마의 적절한 지지를 받았으니 둔감력이 +1 상승하지 않았을까?

 

괜시리 서럽거나 우울한 날, 기분이 나쁘고 쓸데없이 예민해진 날, 평소 차곡차곡 쌓아둔 둔감력을 꺼내 불필요한 감정을 가지치기 해 보자.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봄날의 날씨 따위에 내 감정을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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