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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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화(globalization)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자본의 투자활동 등 여러 가지 경제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특히 금융 세계화가 초래한 모순이 198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위기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2008년 들어 그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초대형 금융공황으로 귀결되었다. 작년 가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發 금융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과연 정당한가를 재고하는 계기를 확실히 제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비판적 재고들조차도 우리의 일상과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는 데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하고, 또 그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금융 세계화나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는다고 해서 우리가 곧바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행위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제도나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정치적 선택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추상적 이슈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넘어 각자의 심리 속에서 구체적 느낌으로 전환되어 전달되어야만 한다. 결국 우리에겐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다시 말해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이슈들을 매개하는 삶의 기반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라고 하는 미국 출신 사회학자의 작업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세넷은 일찍부터 글로벌하고 변화무쌍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저작을 발표해왔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저작들,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 『살과 돌』(문화과학사, 1999),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에 이어 올해 2월에 번역 출간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풀어내면서 퇴출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잘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로 인해 불안할 때 이는 우리가 그 불안함의 대상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어떤 두려움을 유발하는 지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불안은 오히려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할 때, 왜 자신이 그것의 타깃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불안은 주체가 알지 못할 때, 즉 그가 믿고 있던 신념, 환상, 지식 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무언가가 불안을 일으킨다면 이는 무엇보다 그 무엇이 지식으로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넷이 말하고 싶은 바도 결국 그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 속에서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지식 속으로 통합할 수 없는 무엇, 지식에 저항하는 무엇, 그 수수께끼 앞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불안은 그 수수께끼가 단순히 주체의 무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겨냥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안의 제거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그 실재적인 대상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불안에 의해 지시되는 어떤 위험에 대한 방어기제가 우리의 삶을 사실상 더욱 피폐하고 힘겹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불안스러워 하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넷은 이 책에서 그 불안의 근원을 세 가지 주제의 측면에서 조사한다. 1장 “관료제의 변화”는 새로운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 제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관료제의 붕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금의 세계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논제를 통해 개인이 삶을 서사적으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녹아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정 부문의 유연한 조직들에서 예전 사회자본주의 하의 관료제의 제도적인 틀은 붕괴되고, 새로운 조직에서는 새로운 권력 지형이 생겨나고 있다. 조직의 중심부는 관료제의 중간층을 대폭 없애고 조직의 주변부를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한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은 제도적 권위를 회피하게 되고, 결국 사회적 자본도 낮아진다. 하여 새로운 조직과 제도의 노동은 근대적 부르주아 노동윤리의 두 요소, 즉 보상의 지연과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사고라는 틀을 해체해버렸다. 인생 설계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점에서 특권을 갖고 있는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서민 계층 간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2장 “능력주의와 퇴출의 공포”는 사회에서 퇴출되고 뒤처질 것에 대한 불안감이 ‘기능사회’에서 재능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관료제의 붕괴는 사회 시스템의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오늘날 현대 사회는 잠재능력 중심의 능력위주 무한 경쟁 소비 사회가 되었다. 그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과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근대적 장인정신(craftsmanship)은 현대 사회에서 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3장 “정치의 몰락”에서는 소비행태와 정치적 태도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서, 시민들이 진보 정치에서 점점 등을 돌리면서 스스로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되어가는 이유를 해명하고 있다. 대중들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 가운데서 소비자로 길들여지면서 정치적 실천마저도 소비행태와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4장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개인의 자질”에서는 개개인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닻’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넷은 변화의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대안적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해주는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 등 세 가지를 든다. 덧붙여,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연금 관리 및 의료보험 가입을 대행하는 등 노동자들의 경험이 서사적으로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병렬 조직’의 설립, 일자리 나누기,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자본의 제공 등을 제도적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대중적 염원을 포섭해 사로잡기보다는 끊임없이 대중을 배제하고 개체화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그 대중적 포섭의 토대가 취약하여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아 오면서도, 동시에 페리 엔더슨(Perry Anderson)의 지적처럼 “종교개혁 이후 최초로 세계 사상계 내에서 의미심장한 반대파를 갖지 않은” 이데올로기라 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폐해가 큰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저항은 대중조직 차원에서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나 부재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집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수많은 전향과 절충, 그리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넷의 이 책은 일상의 구체적인 지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를 제시해주는 훌륭한 지도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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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6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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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 우리시대의 새로운 지적 대안담론 프런티어21 20
자크 랑시에르 지음, 양창렬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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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분이 오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시 오셨다가 다시 돌아가셨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에는 그분이 한국을 방문 중이지만, 독자들께서 이 리뷰를 읽고 계실 때쯤에 그분은 이미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안 계실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 파리8대학 철학과 명예교수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 )가 지난 11월 30일에 입국하여 12월 2일부터 12월 5일까지 서울대,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차례로 강연을 하고 돌아갔다. 조중동과 같은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중앙일간지가 그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이번 강연 소식을 전했고, 그 가운데 한겨레와 경향신문 그리고 연합뉴스는 비교적 상세한 인터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시에르라고 하면 여전히 ‘듣보잡’이라고 말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하여 간단히 소개하자면, 그는 최근 한국의 인문학계에서 알랭 바디우, 에티엔느 발리바르, 조르지오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안토니오 네그리 등과 함께  포스트-푸코 혹은 포스트-들뢰즈의 일환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유럽의 철학자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다.

랑시에르는 194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그 세대의 다른 급진적인 청년들처럼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의 전쟁을 경험한 후 정치적 각성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파리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 입학하면서 철학적으로는 ‘샤르트르의 아이들’에 속했던 그에게 전환의 계기가 닥친다. 바로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루이 알튀세르를 만나면서 철학적으로 일대 회심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1969년 벵센느 자유대학에 철학과를 설립하는 와중에 알튀세르의 제자들과 커리큘럼을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된다. 랑시에르의 회고에 따르면 그들이 이론적 실천이라는 명분하에 ‘아는 자’ 즉 지식인과 ‘모르는 자’ 즉 대중들을 구분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1974년에 『알튀세르의 교훈』이라는 책을 통해 알튀세르를 ‘기성 엘리트 권력의 옹호자’라고 비판하면서 스승 및 동료들과 떠들썩하게 절연했고, 이후 어느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 활동을 벌여왔다.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19세기 유럽 노동자들의 문서고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 작업의 결과물을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논리적 반란(logical revolt)』이라는 이름의 잡지를 통해 속속 발표한다. 여기서 ‘논리적 반란’은 억압받고 지배당하는 자들의 정치적 저항 혹은 반란이란 언제나 철저히 논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뜻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 랑시에르의 작업에서 ‘정치적 주체화’라는 기획으로 확대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배 담론 안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단적 주체들을 지식인의 이름으로 대신하거나 또는 대표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침묵하는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목소리를 공적 담론장 안에서 유통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의 일관된 연구 기획인 것이다. 그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저작이 바로 이 책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이다.

12월 4일 중앙대에서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하면서 랑시에르는 이 책에 담겨 있는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자기 생각의 핵심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2005년 가을 프랑스에서 일어난 방리유 이주노동자 젊은이들의 반란을 예로 들어, 이주자들ㆍ실업자들ㆍ거주지가 없는 자들 그리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모두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생들은 ‘사이에-있는’ 존재임을 주장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다양한 명목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를 향해 자신들도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그 사회 안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배제한 사회와 자신들이 배제된 그 공간의 ‘사이’ 혹은 ‘틈'에서, 새로운 시민권(성)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로부터 할당받은 몫이 없는 자들로서 그녀/그들은 “너희들이 전체에 기여하는, 너희들만이 가진 탁월한 능력을 보여 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이 사회가 줄 몫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회를 향해 자신의 집단의 특수성이나 이해관계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특수성이 거부되든, 관용되든 그것은 이미 전체와 맺는 모종의 ‘합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몫 없는 자들은 “우리는 공통 특성을 갖고 있다. 정치는 특정한 능력이 아니라, 말하는 존재들의 평등을 참조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몫 없는 자들은 그들의 집단을 공동체 전체와 같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랑시에르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은 ‘몫 없는 자’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 스스로를 ‘전체’라고 긍정하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것에 관한 새로운 사유는 세계의 낡은 감각적 분배를 파괴하고 다른 종류의 분배로 변환시킴으로서 삶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하는 것과 직결된다. 그래서 랑시에르는 감각적 체제에서 예술을 식별하는 활동이 결국 정치의 조건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능력과 정확히 조응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정치와 예술은 공히 감각(감성)적인 것을 새롭게 나누는 활동, 즉 감성적 혁명을 추구하는 활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다 상세한 것은 이 책과 함께 이미 출간된 그의 책 『감성의 분할』(오윤성 옮김, 도서출판 b, 2008년 2월)이나 향후 단행본으로 출간될 방한 강연문 모음집을 참고하기 바란다.] 

필자는 이번에 서울대와 중앙대 강연을 참석하면서 그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청중들로부터 쉽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쉴 새 없이 답변을 쏟아내곤 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이 이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정치에 있어 새로운 감성의 질서를 발명할 것을 거듭 촉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잠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의 한계가 바닥까지 드러나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 속으로 더욱 과감히 뛰어들어야 할 바로 그때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해방은 인민의 주체적 역량으로만 가능할 것임을 다시 한 번 믿어 보자, 라고 순진하게 되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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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자 안병무 평전 - 성문 밖에서 예수를 말하다
김남일 지음 / 사계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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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병무 선생과의 인연

 

지난 2006년 당시 나는 한백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한백교회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안병무 선생과 박성준 선생이 공동으로 설립한 평신도중심의 교회로서, 국내의 대표적인 민중신학적 신앙공동체이다. 그때 나는 한백교회 김진호 목사님의 소개로 심원안병무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하고 있던 안병무아키브 사업의 기초 작업인 안병무 선생의 저작총목록집 제작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일산의 박영숙 선생(안병무 선생 미망인) 자택을 찾아가 그곳에 보관 중이던 안병무 선생의 저작들, 예컨대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들에서부터 미출간된 논문, 강연, 설교 원고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정리되어 있던 저작목록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심원기념사업회에서 내게 요청한 것이 바로 연대순으로 글을 정리하되, 중복게재 및 동고이제(同稿異題)를 확인 표기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모으는데 걸린 시간이 4개월 정도 소요되었고, 어느 정도 자료가 모였다고 판단된 시점부터는 모은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목록집을 작성하는 데 역시 4개월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렇게 총 8개월에 걸쳐 나는 박영숙 선생 자택과 천안의 옛 한국신학연구소 자료실,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한신대학교 도서관, 수유리 장공도서관, 그 외 안병무 선생을 잘 아는 분들의 댁을 찾아다니며, 선생이 쓴 모든 글을 수집하고 검토하여 선생이 평생 동안 쓴 글에 관한 총체적인 서지목록을 만들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나온 두 종류의 전집 열 세권(한길사판 총 여섯 권과 한국신학연구소판 총 일곱 권)이나 기타 선생의 이름으로 출간된 단행본 어디에도 수록된 바 없는, 그래서 기존의 저작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116편의 글을 새롭게 발굴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모아 기존 전집을 보완하는 의미의 안병무 저작 선집 세 권을 만들 수 있었다. 『안병무 저작선집 1: 성서의 법정신』(20편), 『안병무 저작선집 2: 그리스도와 국가권력』(51편), 『안병무 저작선집 3: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45편). 이 책들은 비매품으로서 300부 정도만 제본하여 2006년 10월 안병무 선생 10주기 기념 출판행사 때 공식적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출판에 도움을 준 기념사업회의 몇몇 분들과 전국의 대학 도서관 및 연구소 등에 모두 기증되었다. 

나야 안병무 선생이 살아있을 때만해도 아직 어렸기에 그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분을 실제로 뵌 적도 없고,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책과 글을 통해 그를 만났고 누구보다 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2006년 그 한 해 동안 나는 안병무 선생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차에 그 일을 맡아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시 내면의 혼란을 안병무 선생의 글을 찬찬히 읽는 과정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일제 식민치하였던 1922년에 태어나 간도 용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청년기에 해방과 전쟁 및 분단을 경험하고, 독일 유학 이후 교수로 지식인으로 7-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며 민중사건을 신학의 언어로 증언하고자 했던 신학자 안병무. 민중신학을 세계적인 신학으로 정초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신학자이자, 여전히 근대라는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대를 비판하고 근대를 넘어설 수 있는 신학적 사유와 비평의 가능성을 예시하여 준 脫/向의 신학자 안병무. 예수사건론 곧 민중사건론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발본적으로 재해석하고, 체제내화된 교회를 넘어 예수운동을 통해 역사적 예수에게로 가는 지평을 우리에게 보여준 예수 역사학자 안병무.  

전례가 없는 작업을 시작하면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듯 거듭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기존 전집의 출전이나 목록에 나와 있지 않았던 원고를 우연히 새롭게 발견하면서 맛본 그 벅찬 감격과 환희 때문에 점점 안병무라고 하는 인물의 삶과 글쓰기의 세계 속으로 나도 모르게 빠져 들어갔다.

생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잡지를 네 개나 창간했고, 그 중 하나는 매회 직접적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실은 탓에 검열과 절취의 탄압을 당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강제로 폐간당하기까지 했다. 유학 전에 이미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했고, 유학 이후 한국신학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그 학교를 당시 한국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역동적인 신학교육을 수행하는 학교로 만드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학자로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이루게 되는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의 강단이나 연구실이 아닌 차디찬 감옥과 격렬한 투쟁의 시위현장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강제 해직의 기간 동안 그는 민중사건 속으로 더욱 깊이 자신을 침윤시켰으며 그때의 그 경험들-민중과의 만남-이 그를 민중신학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사후에 「안병무는 정말 그리스도인이었는가」라고 하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단 논문까지 나올 정도로 그는 평생을 제도권 교회 및 주류적인 기독교 신앙/신학과 대립했던  급진적인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평생 네 개의 각기 다른 지향성을 가진 교회(명동향린교회, 갈릴리교회, 강남향린교회, 한백교회)와 국내 최초의 개신교수녀공동체(디아코니아자매회)를 창립한 인물이기도 했다. 교회를 비판하고 거부하며 교회를 넘어 이제는 갈릴래아 예수-오클로스의 예수운동을 민중운동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가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은 것도 모자라 결정적인 시기마다 새로운 실험을 모색하는 교회들을 창립해왔다는 것은 내게도 매우 역설적인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그것들뿐이겠는가. 한국신학의 세계화 및 주체화를 위해 대학 밖의 독립적인 신학연구소를 세웠고 재야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기독교민중운동, 민중교회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의 삶을 어떻게 간단히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내가 분명히 확인한 것은 어쨌든 그는 그저 글로서 말하고 글로서 생각하며 글로서 싸웠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안병무아키브 작업을 하던 당시 끊이지 않고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렇게 미친 듯이 글을 썼을까?"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펜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지금도 나는 내가 그때 이후로 평생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안병무 선생처럼 살 자신은 도저히 없다. 나같은 사람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규모의 삶을 감당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성장한 토양이나 경험했던 현실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는 정말 알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글을 계속 써야만 했던 이유 말이다. 그가 왜 그렇게 써야만 했는지를 내가 가슴으로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는 함부로 내 삶을 포기할 수 없을 듯 싶었다. 죽은 안병무 선생이 산 내게 남겨 준 것은 그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글들이었다. 그 글들 속에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다.

평전에 대한 독후감을 써야하는데 자꾸만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안병무 선생이 갖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거리두기가 좀처럼 되지 않았고, 내가 경험하고 이해한 안병무의 모습과 작가가 복원한 안병무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겹쳐져서 비평적인 관점에서의 독서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민망하지만 내가 작업한 『안병무저작 총목록집』의 발간으로 국내의 안병무 연구는 진일보할 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 분명 사실이고, 바로 이 목록집과 저작선집을 참조하여 안병무 평전도 출간될 수 있었다. 내가 편집한 자료들이 출간되던 2006년 10월 선생의 10주기 기념행사와 시기를 맞추어 안병무 평전 출간 사업이 비로소 추진되기 시작했고, 그 필자로 소설가 김남일 선생이 선정되었다는 소식까지도 들었다. 그리고 1년 만인 작년 10월에 드디어 안병무 평전이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안병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직 자유로움을 느낄 수 없었던 탓인지 책을 구입해놓고도 선뜻 평전을 읽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구나 내 나름대로 1년 가까이 작업을 하면서 선생의 글을 읽었고, 그를 만났다는 생각 때문인지 굳이 다른 사람이 쓴 평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신학윤리 수업에 제출할 평전 독후감 과제의 대상 도서를 찾다가, 문득 이 책이 생각났다. 굳이 새로운 책을 찾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는 결국 읽어야 할 책이었는데, 이제야 그 시기가 온 것이라 생각하며, 책을 구입한지 1년 만에 드디어 나는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앞서 안병무 선생에게서 가졌던 그 물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비록 글로서만 그분의 생애를 더듬어 갔지만, 이 평전의 작가인 김남일 선생은 안병무가 거쳐 온 모든 공간들과 만난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며 그분의 생애 전체를 보다 선명하게 복원한 것이었다.

이 평전 덕분에 나는 내가 그토록 궁금했던 것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즉 민중신학자 안병무로 하여금 그토록 평생 많은 글을 그것도 목숨 걸고 쓰게 한 그 이유와 동력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민중과의 만남. 물론 내가 여태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이 평전을 통해 즉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나는 안병무에게 있어서 이 민중과의 만남이야말로 그의 신학의 핵심이자 그의 신학을 윤리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전거가 된다고 본다. 이 평전의 내용을 확인해나가면서 그 부분을 짚어보고자 한다.

 

 

2. 예수를 찾아 간 성문 밖에서 민중예수를 만나다

 

사전적인 정의대로 하자면, 평전(評傳)은 단순히 비범한 한 인간의 일생을 다룬 ‘전기'(biography)가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집필자의 일정한 평가와 해석이 담겨 있는 ‘비평적 전기’(critical biography)를 의미한다. 물론 그 어떤 전기이든 해당 인물에 대한 일정한 평가와 해석이 들어 있기 마련이지만, 일반적인 전기와는 달리 그 인물에 대한 뛰어난 업적과 더불어 한계와 인간적인 약점도 함께 드러내는 것이 올바른 의미의 평전이다.

나아가 ‘평전’은 문제적 개인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하면서도 거기에 평전 작가의 서사적 상상력이 상당부분 개입하는 이른바 ‘사실적 허구’의 양식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 때문에 평전은 평전 작가의 비평적 해석과 평가가 깊이 매개될 수밖에 없는 인물 비평 양식인 것이다. 좋은 평전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의 중요한 인물을 둘러싼 사상 ․ 철학 ․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동하는 양상에 대한 평전 작가의 날카로운 비평적 안목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일이 쓴 이 평전은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간 한 인물로서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삶과 신학, 그리고 그가 맞닥뜨렸던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들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대로, 자연인 안병무를 민중신학자 안병무로 만든 것은 ‘어머니 곧 선천댁’, ‘역사의 예수’, ‘한국의 민중’이었다. 안병무는 바로 그 타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 역사의 공간으로 뛰어들어 민중신학자가 되었다.

이 평전은 크게 보아 연대기적으로 서술되긴 했지만, 첫 장을 안병무 선생이 마지막으로 쓴 책인 『선천댁』(범우사, 1996)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점에서부터 보통의 전기와는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선천댁』은 본명 정원숙이란 이름 대신에 평생을 ‘선천댁’이라 불리며 살다간 안병무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야 말로 안병무가 평생을 쫒아 온 민중이었다. 물론 안병무는 그 민중을 통해 자신이 찾아 헤맸던 역사의 예수의 현존을 경험했다. 예수-민중-오클로스, 다시 오클로스-민중-선천댁으로 이어지는 안병무의 신학적 탐구의 여정은 고스란히 타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신을 갈구하던 실존주의자 시절에 예수를 만나길 갈망했고, 그 예수를 찾아 불트만이 있는 독일로 갔었다. 하지만 그는 불트만으로부터 “역사적 예수는 찾을 수 없다”는 소위 역사적 예수에 관한 불가지론적 답변만 듣고 돌아왔다. 신을 만나기 위해 예수를 찾았고, 예수를 찾기 위해 독일까지 갔지만, 결국 독일에서 경험한 것은 엄혹한 조국의 현실이었고, 조국의 현실로 돌아와 그는 다시 예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어느 날 그의 눈 앞에 ‘전태일’로 돌아온다.

이 평전에서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내가 선생의 아키브작업을 하면서 발견한 것 중에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것이 1970년 11월 13일이고, 당시 안병무는 『현존』이라고 하는 잡지를 내고 있었는데, 이 잡지의 11월호 편집후기에 전태일에 관한 글이 발견되었다. 잡지에는 발행일이 11월 1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전태일에 관한 글이 있을까 신기했었다. 아마도 재판을 찍으면서 급하게 끼워 넣은 듯싶었다. 그만큼 그에게 그 사건이 충격으로 남았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전태일이 그에게 예수로 다가왔고, 다시 그 전태일을 통해 그는 한국의 민중들에게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민중을 통해 다시 성서를 읽으면서 <마르코복음>에서 예수와 오클로스를 발견했고 민중신학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그에게서 신앙과 윤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윤리가 행위 혹은 실천의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서, 영원히 중단될 수 없는 주체의 존재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윤리적 주체로서 "그리스도인-되기" 또한 현실 속에서 늘 새로운 타자,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라는 사건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사후적으로 추체험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전면(前面)에 인간됨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결정적인 반면(反面)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구원을 일시적으로 허락하는 '복음'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는 고통에 겨운 얼굴로 우리 앞에 현현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의 지평, 즉 윤리의 지평이 열린다. 타자의 고통스런 얼굴을 대하기 전에 주체는 단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향유(jouissance)의 존재, 또는 경제적 존재일 뿐이다. 자기의 거주와 향유 안에 고립된 주체는 어떤 윤리적 책임도 느낄 수 없다. 그가 말하는 주체는 타자의 고통에 책임적으로 반응하는 윤리의 주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중신학자 안병무 역시 민중을 통해 예수를 발견했고, 신을 발견하며 자신의 신앙을 실천해나갔다. 신앙의 실천 과정이 곧 윤리적 실천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가 감옥에서 친구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종교적 행위가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속의 삶 가운데서 신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본회퍼가 그랬던 것처럼 안병무에게서 그리스도인되기는 세상과 분리된 신을 향한 일방적인 경건이 아니라 신이 현존하고 있는 이 고통의 세계, 그 신의 현현이라 할 고통당하는 이 땅의 모든 예수들과 함께 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 평전은 “성문 밖에 예수를 말하”기 위해 여전히 “성문 밖에서 우리들의 이웃의 모습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예수들을 찾아 갔던” 안병문의 일생을 속도감 있는 필치로 잘 그려내고 있었다. 더욱이 신학에 무지하고 기독교인도 아니라고 하는 작가가 그 어떤 신학자들보다도 안병무의 신학세계를 깊이 꿰뚫고 있다는 사실도 그저 놀라웠다.

 

 

3. 신학의 윤리-정치학적 과제에 관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안병무의 그 신학적 실천을 계승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그의 신학에 대한 주석달기가 아닌 그의 작업을 오늘의 맥락 속에서 재현해내는 것, 즉 우리가 이제 그가 했던 것처럼 민중신학적 실천, 신학윤리적 실천을 반복해내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나는 우리가 사회 밖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혹은 비시민, 사회적 무능자, 주변인, 배제당한 자들, 소수자, 하위주체, 민중 등으로 부를 수 있는)의 입장에 서지 못하는 한, ‘사회'에 대해 혹은 ‘교회’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이 위선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회적 약자의 당파성을 취하지 않는 모든 신학의 구원론은 정치적 중립을 가장하여 결국 상이한 이해관계, 상이한 입장을 가진 집단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지배를 향유하는 집단, 특권을 향유하는 집단의 입장에 서는 것이고, 그리하여 사회 속에서 관철되고 있는 모순들에 대해 눈을 감아버리는 ‘그들만의 천국’ 이야기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정치학에서는 ‘잊어버림'(즉 망각)의 정치라고도 한다. 따라서 잊어버림의 정치를 작동시키면서 ‘민주주의' 혹은 ‘하느님나라’를 운운하는 것은 언제나 위선일 수밖에 없다. 포스트맑스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했듯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 현대국가에서 조화로운 '사회'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이며, 실재의 차원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현실의 모든 담론이 기실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현실 그자체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과학적 비판담론은 오로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섬으로써만 그 성립 계기를 갖게 된다. 그래야지만 사회 속에 관철되고 있는 모순들이 전모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 조건이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모순을 숨기지 않고 말함으로써만, 즉 부정성과 대면할 때만이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 대한 과학적 비판담론의 위상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면, 비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배제를 당하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 예컨대 비정규 여성 노동자, 비정규 이주노동자, 비정규 청소년 노동자, 비정규 장애인 노동자, 도시빈민, 몰락 농민, 성적 소수자들, 실업계 고교생, 미취학 아동, 독거노인, 일급 지체 장애인, 감금된 정신병자, 화교,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비학생 청소년들, 전과자, 실업자,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신용불량자(금융 채무불이행자), 매매춘 여성, 소위 이단적 소종파 종교인들(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 미자립 이혼여성,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단지 현상적으로만 기술하고 보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러한 차별과 배제를 생산시킨 숨겨진 메커니즘에 대한 원리적 해명으로까지 우리의 분석을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메커니즘에 시민사회와 국가, 자본 등이 어떻게 연합적으로 공모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또 그들이 각각 어떠한 이익을 구조적으로 누리고 있으며, 반대로 차별과 배제를 당하는 자들이 겪는 희생과 고통을 인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배제와 차별의 기원, 망각과 재생산의 장치 혹은 기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관계, 담론적 정당화, 윤리적 기술 등에 대한 세밀하고도 정교한 분석 없이는 대항담론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국가정책을 시정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를 운동의 동력으로 포섭해낼 수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특수성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란 결국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발전 및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 경로와 역시 매우 밀착되어 있다.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독특한 이중성 즉 이데올로기가 자율적으로 자기 운동을 벌이면서 생산되는 장소로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간이라는 특성과 다른 한편으로 이해관계의 대립 속에서 더 큰 이익 또는 특권을 향유하기 위해 비시민적 타자들을 억압 차별 배제하는 행위들이 행해지면서 그러한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들이 부단히 생산하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들과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비판하며 시민사회를 넘어 국가 및 자본을 향한 해방적 담론투쟁을 전개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 민중신학적 실천의 본령이 아닐까? 『안병무 평전』이 내게 가르쳐준 새삼스러운 신학의 윤리-정치학적 과제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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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6-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안병무 선생의 책 몇 권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해방자 예수>(현대사상사)가 <갈릴레아의 예수>와 동일한 내용인지 알고 싶습니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거스르는 단 하나의 사랑 그리고 밤의 노래”

달력이 5월에서 6월로 넘어가고 있던 그날 밤, 그곳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인터넷 뉴스에서는 친절하게도 그날이 처음 물대포가 등장한 날이라고 알려준다. (나중에 책을 사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모 일간지의 요청으로 취재를 나온 길이었고, 나는 시청 앞에서 집회를 마치고 양산동으로 돌아오려던 차에,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의 “여기 혁명전야야!”라는 흥분된 전화 한 통을 받고, 발걸음을 되돌려 시청에서부터 안국역을 지나 경복궁 동십자각을 향해 숨 가쁘게 뛰어가던 길이었다.

2008년 5월 31일 밤, 청와대를 향하고 있던 촛불의 흐름은 크게 세 갈래였다. 사직터널 쪽에서 내려오는 촛불이 효자동 길로 향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고, 안국동에서 동십자각으로 향하던 시민들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또 청운동 길로 향하는 촛불도 경찰과 대치중이었다. 10만 인파가 청와대 길을 완전 포위한 형태였다. 내 기억에 우리가 만났던 곳은 대략 경복궁역 근처 효자로 입구쯤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를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의 소설이 나올 때 마다 꼭 사서 읽어보는 4만 열혈 독자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 당시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은 우리 학교 문창과를 졸업한 선배였는데, 나는 그에게 “방금 봤어? 김연수가 지나갔어!”라고 말했었다. 김연수 작가와 잠깐 인사를 나누고, 양해를 구해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었다. 김연수 작가에게는 그날 우리의 만남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순간이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작가는 소설의 후기에서, 그날 밤 촛불시위대와 함께 연좌하는 중에 전경들 앞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추던 젊은이들을 보았다고 술회한다. 그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에게 “이것이 어제와 다른, 새로운 세계라면, 반드시 복수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는 긍정적 세계관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날 밤 효자동에 그와 함께 있었고,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혁명과 우리네 일상의 삶에 관해 내 나름대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밤이 노래하는’ 것을 함께 들었고, 그것은 (작가가 자주 말하는 대로)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열망 가운데서 하나의 세계로 연결된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김연수가 누구던가. 그는 스스로를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다. 프로 소설가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소설에 인생을 건 진짜 소설가라는 것. 더불어 어느 젊은 평론가의 무덤덤한 증언대로, 1~2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데, 그러고 나면, 당신이 책 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상이 주어지고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그런 부류의 작가이다. 소위 89학번 세대의 가장 지성적인 작가이자, 그 세대의 감각과 문제의식을 누구보다도 첨예하게 드러내온 작가 김연수가 학부생 시절부터 구상해온 주제를 다듬고 또 다듬어 이제야 완전한 버전으로 세상에 공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장편소설『밤은 노래한다』이다. 김연수의 팬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를 ‘21세기 한국문학의 블루칩’이라고 평가하는 문단에서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작품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누구는 이 소설이 가슴 뜨거웠던 어떤 젊은이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고, 어떤 이는 조국광복과 계급해방이라고 하는 숭고한 꿈을 품은 채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혁명에 투신했던 젊은이들의 엇갈린 운명이 빚어낸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소설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친구를 죽일 수 없는 아이의 세계에서, 친구라도 죽일 수 있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자 그런 성장의 중심에 놓여있는 사랑에 관한 낭만소설이라고 말한다. 아무려면 어떨까? 이 소설 안에는 혁명도 있고, 이념도 있으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도 있다. 그리고 그 혁명과 이념의 역사를 통과했던 젊은이들의 성장과 운명도 있으며, 그 모든 역사와 운명마저 거스르고자 했던 처절한 사랑도 들어 있다.

1930년대 초반 만주 혹은 간도지역의 항일운동사 혹은 공산주의 혁명사의 한 귀퉁이에서 민생단 즉 일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동지들의 손에 죽어나간 500여명의 혁명전사들이 있었다. 적군인 일본군이나 이민족인 중국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같은 조선인들에 의해 그것도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식민지 조국을 해방시키고 무산계급이 독재하는 공산주의국가를 함께 세우고자 동고동락했던 혁명동지들의 손에 몇 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숙청되었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겠는가? 단순히 야만적이었고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조건의 탓으로 돌리기엔 무엇인가 섬뜩한 보편적 역사의 진실이 감추어져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작가는 그 역사의 진실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진실 뒤에 가려진 더 놀라운 삶의 진실을 슬그머니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을 두 여인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나를 데려가우. 이번에는 진짜 바다를 내게 보여줍소.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잘 압지. 그러니 내게 진짜 바다를 보여줍소. 그럼 나는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의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되겠슴둥.” (149~150쪽)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324~325쪽)


이 작품과 더불어 이제 소설의 이야기로 역사를 수집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 김연수의 작업은 정점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에게 있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역사를 거슬러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 속의 주체가 그렇게 새로운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구축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역사를 대체한 픽션으로의 역사 즉 '사랑'의 계보학을 구축함을 의미한다. 김연수 단편 중 최고의 걸작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에서 "후회는 없어"라는 외침으로 유서를 끝맺은 그녀가 그러했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까지 끌려갔던 할아버지가 남겨준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이번에 나온 『밤은 노래한다』의 이정희가 김해연에게 남긴 편지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바로 역사 뒤에 숨겨진 하나의 진실, 곧 사랑에 관해 노래하는 꿈의 조각들이었던 셈이다. 소설가 김연수에게 역사의 실천은 사랑을 향한 픽션의 절차이다. 그 픽션의 절차 가운데서 그는 타인의 이야기에 다가가는 문학의 윤리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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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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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맛있고,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오현종 소설집, 『사과의 맛』(문학동네 2008년 9월)

우리는 흔히 동화라고 하면 순수한 어린이들이 읽는 교훈적이면서 감동적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만다. 그러나 동화의 역사를 알고 나면 동화란 것이 그저 어린 아이들이 읽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20세기 역사학의 거장 필립 아리에스(Phillip Aries)가 가족 사회학을 혁명화한 저작 『어린이의 세기』에서 잘 밝혔듯이 어린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생애 주기로 개념화하고, 그에 따른 어린이만의 고유한 의상과 놀이, 그리고 그들에게 ‘적합한’ 교육적 실천의 형성은 철저히 17세기 이래의 서구 역사의 산물이었다. 이 어린이의 탄생 시기에 맞추어 함께 등장한 문화적 산물이 바로 동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동화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고전 동화가 우리로 하여금 보편적 가치로 믿게 했던 것들이 사실은 불의하고 부당한 세상에 순응하게 만드는 은밀한 이데올로기였음을 폭로하는 연구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저명한 동화 연구자 잭 자이프스(Jack Zipes)에 따르면, 동화는 문명화 과정을 따르는 동시에 전복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문명화 과정 중의 담론투쟁의 산물로서, 동화는 아이들을 사회화함으로써 그들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시민으로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동화는 문명화 과정에 내포된 정치와 윤리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급진적인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가령 『행복한 왕자』 등의 동화를 지은 오스카 와일드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역전시킨 동화들 속에서 안데르센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뒤집고, 성서의 리듬과 어법을 차용해 오히려 기독교의 엄격한 규약에 반기를 든다. 프랭크 봄도 『오즈의 마법사』 속 유토피아를 통해 문명화 과정의 모순을 꼬집었다.

이러한 동화가 갖고 있는 이중성의 미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여주고 있는 요즘 소설이 바로 오현종의 신작 소설집 『사과의 맛』이다. 물론 오현종의 소설은 어린이용 동화가 결코 아니며, 차라리 성인용(?) 동화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우리에게 친숙한 어린이용 동화, 이를테면 안데르센의 동화인 『라푼젤』과 『인어공주』, 그림 형제(Jacob Grimm & Wilhelm Grimm)의 『헨젤과 그레텔』, 동양의 고전 『서유기』, 그리스로마 신화 중 하나인 「판도라의 상자」 등을 서사 구조상 거의 유사하게 패러디하되,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바꾸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현재 한국의 일상적 공간 안으로 이동시켜 동화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판타즘을 충격적으로 전복하는 식이다. 소설가 오현종에 의해 원작 동화가 그 내적인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본래 위치하고 있던 맥락인 낭만적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이제 이야기는 불륜과 사생아 탄생, 십대들의 성적 일탈, 고부간 갈등, 농촌으로 시집온 이방인 여성들의 학대받는 삶, 장애인들을 착취하는 사회, 가부장주의, 사채업의 폐해, 채무관계로 뒤얽힌 가족, 노인 유기, 성매매 등을 다루고 있는 포스트모던 리얼리즘 소설의 단계로 진입한다.

사실 소설가 오현종은 이미 지난해 발표한 장편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 헐리우드 영화 <007 시리즈>를 패러디해 여성의 자아 찾기를 독특하게 소설화하여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소설적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그 주제의식도 묵직한 작품이었는데, 이번의 신작 소설집에서도 아홉 편의 단편작품을 통해 그 저력을 더욱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어릴 적 추억 속에 세계명작동화로 남아 있는 『라푼젤』을 패러디한 단편 「상추, 라푼젤」에서 라푼젤과 왕자(왕씨 성을 가진 ‘자’라는 이름의 소년)의 사랑은 고등학생들의 일탈적 ‘불장난’으로 탈-낭만화된다. 라푼젤의 어머니의 방해를 따돌리며 긴박하게 나누던 뜨겁던 사랑은 결혼과 동시에 금세 식어 버린다. 왕자는 “머리를 짧게 자른 라푼젤은 꼴도 보기 싫다”면서 나이트클럽 인어쇼에 넋이 나가 있다. 그런데 그 인어쇼의 인어는 가족과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중해 나이트클럽에서 노예처럼 착취당하며 춤을 추고 있는 한 장애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 뒤에 실린 단편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를 통해 확인된다. 그리고 그 장애인 여성의 자매는 알고 봤더니 어촌의 노총각 어부 집에 시집왔지만, 탐욕스러운 시어머니에 의해 우물에 갇힌 채 날마다 진주로 된 눈물을 흘려내야만 하는 가련한 이방인 여성이었음을 또 다른 단편 「연못 속에는 인어가」가 보여준다.

오현종의 동화 전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공포영화로도 패러디된 바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제목 그대로 리메이크한 단편 「헨젤과 그레텔」은 한 집안의 장녀가 경제력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을 놀이동산에 유기하는 내용이다. 사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도 부모에 의해 버림받은 아이들의 복수극이었는데, 작가는 이를 당대 한국적 맥락에서 사채로 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인한 노부모 및 장애인 유기 사건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 역시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이 아닌 영화나 SF소설 등의 보다 대중적인 서사 양식들을 차용하되 그것을 현실감있는 사회사 속에 위치시켜 본래의 서사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내파하고 새로운 윤리적ㆍ정치적 성찰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미학적으로 성공한 소설 즉 재미있는 소설만이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소설이라는 아도르노의 격언이 그대로 들어맞는 사례라고나 할까. 장담하건대, 올 가을에 읽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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