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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한국 인문학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저자들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마이클 샌델과 슬라보예 지젝이 연달아 다녀갔다. 그리고 6월 항쟁 25주년을 맞이하여 이런저런 학술대회들이 여러 차례 열렸고, 199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주의적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도 있었다. 덕분에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6월에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신간서적들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책 두 권을 골라 봤다. 한 권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보고서이고, 또 한 권은 매우 추상도가 높은 이론서이다. 이론과 현실을 매개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최적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일해도 가난하며, 일하지 않아도 가난한 이들을 아십니까?

워킹푸어working-poor(근로빈곤층)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1990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 말은 '극심한 소득양극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워킹푸어 문제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대다수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한국의 워킹푸어: 무엇이 우리를 일할수록 가난하게 만드는가?』(프레시안 특별취재팀, 책보세, 2010), 23.

바버라 에런라이크이의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 이 책이 바로 '워킹푸어'라는 단어를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키는 데 기여한 바로 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2001년에, 그것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고, 이미 국내에서도 워킹 푸어 또는 빈곤노동에 관한 훌륭한 연구서 및 취재보고서들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고, 여러 저널에서 이 문제를 심층기획기사로 다룬 바 있다(심지어 <조선일보>도 워킹푸어 특집기사를 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0/2009072000066.html).


그렇게 워킹푸어에 관한 연구나 보고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의 빈곤노동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워킹 푸어들을 묘사하고 증언하는 방식의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극도의 처절하고 우울산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면서도, 애써 자극적인 묘사로 분노를 자아내기보다는 냉정하리만치 담담한 묘사로, 그러면서도 은연 중에 위트와 유머를 곁들여 가난한 이들의 삶을, 아니 자신이 체험한 그 가난한 삶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한번 붙들면 절대 놓치 않을 그런 책이다.



'구조주의'로부터 '구조주의'를 넘어

내 개인적으론 6월에 출간된 책 중 가장 반가웠던 책이다. 오늘날 정치적 주체화라는 문제설정 가운데서 권력과 저항, 또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출간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맑스주의 철학자인 에티엔느 발리바르의 제자이자, 그로부터 극찬을 받은 젊은 일본 지식인 사토 요시유키. 이미 그의 다른 책인 <신자유주의와 권력>의 일부분이 미리 번역되어 소개된 까닭에 나는 그의 책이 나오기를 일찍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동시대 비판적 정치철학 담론의 프랑스적 기원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네 사람의 인물이 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그리고 알튀세르이다. 흔히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들 20세기 프랑스 철학 4인방의 권력 이론을 깊이 탐구하면서, 저자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분모를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이론이라 지목한다. 


또한 정신분석(특히 라캉) 이론이 철학을 촉발하는 방식에서 "권력에 대한 주체의 의존"이라는 테제가 산출됐다면, 권력에 대한 저항의 사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주체의 의존"과 주체의 '탈중심화'라는 테제를 제출한 정신분석 이론 자체에 대한 '저항'의 사상이기도 하다. '구조주의적' 철학은 정신분석이라는 철학의 '타자'에 의해 촉발됐으며, 정신분석이 제시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용시켰다. 이것은 철학과 정신분석을 동시에 포함한 구조주의적 사유가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의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 각자가 전개하고 있는 권력의 이론화는 상이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더욱이 그러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이론화 방식 역시 전혀 달랐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소개하면, 푸코와 들뢰즈ㆍ가타리에게서 권력에 대한 저항 전략은 "주체적 양상의 변용과 특이성의 구축"이라면, 알튀세르와 데리다에게서는 "우발성의 침입이 일으키는 구조의 생성변화"라고 정리된다. 지젝과 버틀러, 라클라우가 공저한 『우연성, 보편성, 헤게모니』, 그리고 국내외 연구자들이 쓴 알튀세르 관련 논문들을 모은 『알튀세르 효과』와 함께 읽는다면,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한 이론가들 사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배가될만한 훌륭한 이론서이다. 




그외에도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내에 들뢰즈(& 가타리)의 노마디즘 철학이 한창 유행할 때, 한국보다 먼저 그 붐이 일었던 곳이 바로 일본이다. 1970년대 일본사상계를 재패한 인물이 가라타니 고진이라면, 1980년대는 사실상 아사다 아키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물론 뒤이어 등장한 나카자와 신이치 역시 그에 못지 않은 명성을 누렸다). 위에서 소개한 사토 요시유키의 책보다 수십년 앞서 이미 아사다 아키라는 『구조와 힘』이라고 하는 책으로 일본 열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책이 나온지 불과 6개월도 채 안되서 이 책 『도주론』을 냈다고 한다(사사키 아쓰시, 『현대 일본사상: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참조).  


여하간 이미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는 책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위에서 소개한 요시유키의 책과 함께 놓고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더불어 국내 저자들의 들뢰즈 연구서와 비교하면 읽어도 좋을 듯.



탁월한 여성 비평가 권명아 선생의 비평집이다. 문학에서 영화, 정치, 사회를 넘나드는 비평의 향연. 아직 읽어보지 못해 자세한 소개는 못 하겠지만, 그간 내가 읽어본 그분의 글로 미루어 짐작컨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일 듯.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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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도 좋은 책들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인문학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부터 앞선다. 대체 책값을 다 어떻게 감당하나 싶어서..^^ 



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그리고 잘려진 그 손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라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일본의 신진 평론가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다. 현재 일본에서 그는 아즈마 히로키와 더불어 가장 떠오르는 젊은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이 책의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 의아했다. 2009년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2010년에 국내에도 번역된 사사키 아쓰시의『현대 일본 사상-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에서는 2000년대 일본 사상계는 사실상 아즈마 히로키의 독무대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사사키 아타루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도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인물이라는 얘기이다.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글쓰기 또는 문학이 가진 위대함, 그 혁명적 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힘이고,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가 드는 혁명의 범례는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 아니 루터의 '대혁명'이다. 루터가 주도한 사건이 단순히 종교적 개혁이 아니라 혁명, 그것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 대혁명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70쪽) 

저자는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니며, 텍스트의 변혁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지극히 편파적이고 비약이 심한 주장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왠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내가 그만큼 언어와 텍스트의 힘에 대해 무지한 것일지 모른다는 자책감만 늘어날 뿐이다. 그만큼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의 차원을 넘어 강한 흡입력과 호소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논리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감응의 문제일 것이다. 근래에 만나본 가장 독창적이고 심오한 문학론 혹은 텍스트론이었다. 앞으로 한국 문학평론가들의 글에서 사사키 아타루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될 듯.



2. 이미지의 가면 뒤에 사라지고 있는 실재를 되찾기 위하여


 20세기發 프랑스産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이라면(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産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응당 그 저작권자 중에 한 사람은 보드리야르일 것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이렇게 애도했다고 한다. 


보드리야르는 1981년 주저인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민음사, 2001)을 출간한 이후, 줄곧 자신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확대 적용한 연구들을 생산해왔다. 그러한 지적 여정의 최종점에 바로 이 책, 『사라짐에 대하여』가 놓여 있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가 현실/실재를 가리고 왜곡하며 대체하는 상황을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로 파악하고, 바로 그렇게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로 자리잡은 시뮬라크르의 만연을 우리 시대의 위기의 징후로 이해한다. 처음에는 실재의 깊은 반영이었던 이미지가 종국에는 실재나 현실과는 무관한, 자기자신만의 순수한 시뮬라크르로 전환되는 현상. 그것이 바로 시뮬라시옹이며, 바로 이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미지의 폭력과 이미지에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며, 이미지들로 인해 사라진 실재를 되찾을 것을 요청하고 있다.



3. 갈등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의 모델을 찾아서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구조화이론(structuration theory)’은 구조의 이중성 개념을 전제로 하여 구조와 행위(자) 사이에 매개체인 반복적인 사회적 관행, 즉 '제도'(institution)를 배치함으로써 사회과학의 오랜 난제인 사회현상의 두 축으로서 구조와 행위자 간의 관계를 통합하려고 시도했다. 기든스의 구조화이론에 따르면, 구조는 행위자들의 행위를 통해 존재가 확인되는 원리이고, 행위자는 그 원리의 실행자이며, 제도는 행위자의 구조적 실행의 매개이자 산물이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운동가인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는 최근 소개된『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글항아리, 2012)에서 민주주의는 결국 마음의 습관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마음은 영구혁명과도 같은 민주주의 실험의 지난한 과정 속에 동반되는 갈등과 긴장을 끌어안는 태도 내지는 습속을 가리킨다. 개인의 차원에 속하는 마음의 습관을 사회적/집단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 그것이 바로 '제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파머는 말한다. "복원된 평원이 번창하듯이 민주주의가 번창하려면 우리의 마음과 제도가 함께 작용해야 한다"라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형 민주주의, 복지체제,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이 책 『갈등과 제도』의 출간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사회 갈등 이론 및 제도주의 사회학/정치학 이론을 바탕으로 생산ㆍ노동복지정치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 갈등의 주체ㆍ원인ㆍ양상 등을 분석하고, 나아가 그 각각의 영역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적 모델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본격적인 사회과학 이론서라 비전공자가 읽기엔 조금 버거울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있는 이들에겐 많은 참조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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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봄이 시작되자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책 세 권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 두 권을 뽑아봤다. 물론 이 책들 말고도 좋은 책들이 더 있는데, 다음 주쯤에 한번 더 소개해볼 생각이다. 



1. 철학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들


먼저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젊은 철학자 로렌초 키에자(Lorenzo Chiesa)의 저작이 단행본으로선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미 계간 <자음과모음> 2008년 겨울호에 실린 "조르조 아감벤의 프란체스코파적 존재론"(http://story.aladin.co.kr/m/chiesa)이라는 글을 통해서 그의 사유의 단면이 소개되었고, 그보다 조금 전인 2008년 10월에 중앙대 대학원 신문을 통해 도서출판 난장을 이끌고 있는 이재원씨(<주체성과 타자성>의 발행인이기도 한)의 번역으로 "에스포지토, 아감벤과 네그리를 넘어서"라는 짧은 글이 소개된 바 있다(http://www.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48). 


사실 두 글 모두에서 키에자는 자신의 사유와 논리를 본격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의 선배격으로서 현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저명한 철학자들인 조르조 아감벤과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작업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고유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라캉을 해석한 책인 <주체성과 타자성>이 우리에게 도착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을 종종 "주체성의 과학" 혹은 "주체에 관한 과학"으로 이해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먼저 소개된 라캉 정신분석학의 철학적 측면에 관해 다루고 있는 여러 책들(예컨대,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 같은)과 함께 읽으면서 라캉이 말하는 주체가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면 유익할 듯. 

"라캉적 주체는, 순수하게 부정적인 계기의 떠맡음과 극복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여하는 주체나 불가능성의 주체가 아니라 주체화된 결여이다." (24쪽)


 

현존하는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알랭 바디우가 말했다. "진정한 철학자는 그 자신의 고유한 근거에 의하여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새로운 문제를 제안하는 사람이다. 철학은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발명하는 것."(http://blog.naver.com/paxwonik/40121714947) 바디우만큼이나 유명하고 논쟁적인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도 비슷한 말을 했다.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3)


아마도 고대 이래로 철학의 역사에서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를 제안하고 발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했던 것이 바로 아포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철학 명제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지성의 산물이자 철학사의 가장 대표적인 아포리즘이다. 물론 현대철학자들 가운데서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이 곧 실재다"나 데리다의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 레비나스의 "윤리학이 존재론에 선행한다" 같은 아포리즘들을 통해 우리는 그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사유의 세계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은 아포리즘을 통해 철학사를 조명하는 신선한 접근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프랑스 현상학자 중 가장 근본적인 삶의 현상학자라고 불리는 미셸 앙리 서거 10주년을 기념하여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이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현상 그 자체를 특권적으로 다루는 철학이다. 오직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의 생생한 의미가 현상학이 문제로 삼는 핵심적인 주제인 것이다. 그런데 앙리는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파고든다. 

"현상학의 질문, 이것만이 철학에 고유한 대상을 부여할 수 있으며, 이것만이 철학을 다른 과학이 발견한 것들에 대한 사후작용으로서 반성의 활동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리, 즉 지식의 근본적인 원리로 만들 수 있다. 이 질문은 이제 현상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이 주어지는 방식, 즉 그들의 현상성과 관계한다. 다시 말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남 그 자체와 관계한다. ... 이것이 바로 현상학의 주제이다." (10쪽) 

한편, 앙리는 가장 내가 알기로 그는 프랑스 현상학의 신학적 전회를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말년에 남긴 책 세 권은 모두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의 책이 드디어 소개되었는데, 이제 앙리의 책 출간을 계기로 프랑스 현상학계에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일군의 현상학자들의 신학적 전회(theological turn) 경향에 관한 연구서들도 번역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2. 사회과학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들

사실 이 책의 제목보다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들이 만드는 현실 속 유토피아"라니?! 원서의 제목과 부제가 "What The Least Religious Nations Can Tell Us About Contentment"(최소한의 종교적 국가들이 미국에게 평안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인 걸 보면, 부제는 출판사에서 바꾼 것 같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최대의 정치적/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다보니 북유럽 복지국가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존의 북유럽 복지국가들(노르딕 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로도 불리우는)을 다루는 책들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바로 그들의 '종교적'(또는 세속화된)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제도나 정치체제, 경제적 성공, 연대에 평등성의 사회문화를 다루는 책들은 많이 소개되었지만,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종교적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소개되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유토피아라고 하는 것이 제도나 구조의 선진성만 가지고는 말하기 곤란이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종교적 삶이 없이도, 즉 신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도 비교적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어쩌면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 본회퍼가 말한 "신 없이 신 앞에"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북유럽의 선진화된 복지국가들이 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여준다. 


작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분노하라>로 유명한 94세의 레지스탕스 노투사 스테판 에셀. 바로 뒤이어서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 <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라고 하는 정책 제안서라고 한다. 문제제기를 통해 저항과 비판의식을 촉발시킨 후에, 이제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다루는 정책 제안서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현명한 운동가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정치의 본령은 이념과 구호가 아니라 정책임을 밝힌다. 그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물론 이념과 구호가 없는 정책은 항로를 잃어버린 배와 같을 것이다. 대안적인 정책 및 프로그램의 구상과 그 실천은 그것이 애초에 지향했던 이념이나 가치와 괴리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나 이념이나 가치가 그 자체만 가지고는 역사적인 현실관계들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의 현실에 분노할 수 있고 개혁이든 혁명이든 현실을 바꾸기를 꿈꿀 수 있는 것도 결국 이념과 가치의 힘이다. 어차피 이념과 정책, 구호와 프로그램, 이론과 실천, 추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질 수 없다. 그렇다고 둘을 결합시키기 위한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어차피 발생할 수밖에 없는 둘 간의 긴장을 유지하되, 우리는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둘의 결합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념이 담긴 정책, 정책을 통해 현실화된 이념으로 말이다. 

"이제 성장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편을 가르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의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되었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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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집단 CAIROS 정치신학세미나 시즌2

현실 유토피아 연구_복지국가로 복지국가 넘기


* 세미나의 기본 취지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진행되었던 연구집단 CAIROS의 정치신학세미나 시즌1을 다시 이어가는 정치신학세미나 시즌2를 5월 23일(수)부터 시작합니다. 이번 시즌2에서는 "현실 유토피아 연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새로운 전망, 새로운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모색되고 있는 국가 및 사회체제들을 심도있게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한 모색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위시하여 그와 연관된 여러 급진적 이념과 운동, 이론들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우리가 이 세미나에서 현실의 잠정적 유토피아를 향한 탐구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일단 마르크스주의는 아닙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를 빼놓고선 현대 자본주의를 넘어선 대안사회를 말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이론과 실천들을 자주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그것, 모두가 다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그것, 바로 '복지국가'를 출발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2010년 6월 지방선거, 그리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로부터 이어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4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거쳐, 이제 연말의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지난 2~3년 동안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대의 이슈가 다름아닌 ‘복지국가’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은 “인간이 가슴에 품은 가치와 이상이 충만하게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꿈과 상상력”(틸리히)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국 '현실'로부터 생겨나고 '현실'에 발딛고 있지만, 어떻게든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열망의 징후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멀리 가지 않고 복지국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궁극적으론 복지국가를 넘어선 '더 나은 세계'의 전망을 함께 탐구해보려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진지한 고민과 대화를 함께 나눌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 상세한 세미나 일정


제1막: 복지국가의 역사_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형성사를 중심으로 

제1막에서는 19-20세기 유럽의 다양한 복지국가 모델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물론 복지국가 형성의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이념이 있으니, 바로 사회민주주의입니다. 갈등이론적 사회학을 대표하는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20세기는 사회민주주의의 세기"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과연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규명해보는 것이 제1막의 목표입니다.  


세미나 텍스트















* 이 주제와 관련하여 위의 책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입니다.





























제2막: 복지국가의 현재와 미래_복지국가 위기론과 대안론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및 세계경제의 통합, 탈산업화의 구조적 변화 등으로 인해 현대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들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제2막에서는 먼저 현재 유럽의 선진화된 복지국가들이 처한 위기와 변화의 조건들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복지국가 위기의 해결책으로, 혹은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들이 제시되고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세미나 텍스트















* 이 주제와 관련하여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입니다.
















제3막: 한국 복지국가체제 논쟁과 전망_복지정치, 경제민주화, 좌판적 비판을 중심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복지국가의 전환은 한국의 복지제도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3막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 복지국가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시작된 학계의 복지국가체제 논쟁부터, 정치적 이슈로 부상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좌파진영의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들, 그리고 학계와 저널리즘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국적 복지국가 수립의 과제들을 탐구합니다.


세미나 텍스트 (세미나에선 중요한 글들만 선별하여 읽습니다)














관련 참고도서(부분적으로 세미나에서 중간중간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제4막: 다시 정치로, 다시 민주주의로

복지국가를 향한 연구와 운동은 정치 혹은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학자들마다 계급정치, 노동정치, 정당정치, 시민사회, 경제민주화 등으로 답변이 갈리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민주주의의 내용과 범위, 주체와 조건, 이상과 절차 등에 대한 질문으로 수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긴 여정을 거쳐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적 정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세미나 텍스트
















관련 참고도서(역시 부분적으로 세미나에서 중간중간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세미나 일정(읽을 텍스트나 시간, 진행 방식 등)은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참조할 만한 뉴스기사, 칼럼, 보고서, 학술논문, 강연자료 등을 멤버들 간에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가능하면 복지국가 관련 학술행사도 함께 참석할 계획입니다.  


5월 23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6시에 연구집단 카이로스의 새 연구실(숙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용산중고등학교 근처)에서 진행합니다. 


세미나 참가비는 월 1만원입니다(발제문 및 참고자료 복사와 간식비, 뒷풀이비 등으로 사용 예정).


세미나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dawi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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