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화(globalization)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자본의 투자활동 등 여러 가지 경제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특히 금융 세계화가 초래한 모순이 198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위기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2008년 들어 그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초대형 금융공황으로 귀결되었다. 작년 가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發 금융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과연 정당한가를 재고하는 계기를 확실히 제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비판적 재고들조차도 우리의 일상과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는 데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하고, 또 그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금융 세계화나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는다고 해서 우리가 곧바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행위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제도나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정치적 선택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추상적 이슈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넘어 각자의 심리 속에서 구체적 느낌으로 전환되어 전달되어야만 한다. 결국 우리에겐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다시 말해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이슈들을 매개하는 삶의 기반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라고 하는 미국 출신 사회학자의 작업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세넷은 일찍부터 글로벌하고 변화무쌍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저작을 발표해왔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저작들,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 『살과 돌』(문화과학사, 1999),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에 이어 올해 2월에 번역 출간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풀어내면서 퇴출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잘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로 인해 불안할 때 이는 우리가 그 불안함의 대상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어떤 두려움을 유발하는 지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불안은 오히려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할 때, 왜 자신이 그것의 타깃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불안은 주체가 알지 못할 때, 즉 그가 믿고 있던 신념, 환상, 지식 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무언가가 불안을 일으킨다면 이는 무엇보다 그 무엇이 지식으로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넷이 말하고 싶은 바도 결국 그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 속에서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지식 속으로 통합할 수 없는 무엇, 지식에 저항하는 무엇, 그 수수께끼 앞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불안은 그 수수께끼가 단순히 주체의 무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겨냥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안의 제거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그 실재적인 대상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불안에 의해 지시되는 어떤 위험에 대한 방어기제가 우리의 삶을 사실상 더욱 피폐하고 힘겹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불안스러워 하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넷은 이 책에서 그 불안의 근원을 세 가지 주제의 측면에서 조사한다. 1장 “관료제의 변화”는 새로운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 제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관료제의 붕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금의 세계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논제를 통해 개인이 삶을 서사적으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녹아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정 부문의 유연한 조직들에서 예전 사회자본주의 하의 관료제의 제도적인 틀은 붕괴되고, 새로운 조직에서는 새로운 권력 지형이 생겨나고 있다. 조직의 중심부는 관료제의 중간층을 대폭 없애고 조직의 주변부를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한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은 제도적 권위를 회피하게 되고, 결국 사회적 자본도 낮아진다. 하여 새로운 조직과 제도의 노동은 근대적 부르주아 노동윤리의 두 요소, 즉 보상의 지연과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사고라는 틀을 해체해버렸다. 인생 설계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점에서 특권을 갖고 있는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서민 계층 간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2장 “능력주의와 퇴출의 공포”는 사회에서 퇴출되고 뒤처질 것에 대한 불안감이 ‘기능사회’에서 재능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관료제의 붕괴는 사회 시스템의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오늘날 현대 사회는 잠재능력 중심의 능력위주 무한 경쟁 소비 사회가 되었다. 그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과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근대적 장인정신(craftsmanship)은 현대 사회에서 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3장 “정치의 몰락”에서는 소비행태와 정치적 태도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서, 시민들이 진보 정치에서 점점 등을 돌리면서 스스로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되어가는 이유를 해명하고 있다. 대중들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 가운데서 소비자로 길들여지면서 정치적 실천마저도 소비행태와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4장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개인의 자질”에서는 개개인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닻’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넷은 변화의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대안적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해주는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 등 세 가지를 든다. 덧붙여,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연금 관리 및 의료보험 가입을 대행하는 등 노동자들의 경험이 서사적으로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병렬 조직’의 설립, 일자리 나누기,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자본의 제공 등을 제도적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대중적 염원을 포섭해 사로잡기보다는 끊임없이 대중을 배제하고 개체화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그 대중적 포섭의 토대가 취약하여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아 오면서도, 동시에 페리 엔더슨(Perry Anderson)의 지적처럼 “종교개혁 이후 최초로 세계 사상계 내에서 의미심장한 반대파를 갖지 않은” 이데올로기라 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폐해가 큰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저항은 대중조직 차원에서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나 부재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집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수많은 전향과 절충, 그리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넷의 이 책은 일상의 구체적인 지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를 제시해주는 훌륭한 지도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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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6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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