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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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맛있고,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오현종 소설집, 『사과의 맛』(문학동네 2008년 9월)

우리는 흔히 동화라고 하면 순수한 어린이들이 읽는 교훈적이면서 감동적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만다. 그러나 동화의 역사를 알고 나면 동화란 것이 그저 어린 아이들이 읽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20세기 역사학의 거장 필립 아리에스(Phillip Aries)가 가족 사회학을 혁명화한 저작 『어린이의 세기』에서 잘 밝혔듯이 어린이를 하나의 독립적인 생애 주기로 개념화하고, 그에 따른 어린이만의 고유한 의상과 놀이, 그리고 그들에게 ‘적합한’ 교육적 실천의 형성은 철저히 17세기 이래의 서구 역사의 산물이었다. 이 어린이의 탄생 시기에 맞추어 함께 등장한 문화적 산물이 바로 동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동화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성찰함으로써 고전 동화가 우리로 하여금 보편적 가치로 믿게 했던 것들이 사실은 불의하고 부당한 세상에 순응하게 만드는 은밀한 이데올로기였음을 폭로하는 연구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저명한 동화 연구자 잭 자이프스(Jack Zipes)에 따르면, 동화는 문명화 과정을 따르는 동시에 전복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문명화 과정 중의 담론투쟁의 산물로서, 동화는 아이들을 사회화함으로써 그들을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시민으로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동화는 문명화 과정에 내포된 정치와 윤리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급진적인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가령 『행복한 왕자』 등의 동화를 지은 오스카 와일드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역전시킨 동화들 속에서 안데르센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뒤집고, 성서의 리듬과 어법을 차용해 오히려 기독교의 엄격한 규약에 반기를 든다. 프랭크 봄도 『오즈의 마법사』 속 유토피아를 통해 문명화 과정의 모순을 꼬집었다.

이러한 동화가 갖고 있는 이중성의 미학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여주고 있는 요즘 소설이 바로 오현종의 신작 소설집 『사과의 맛』이다. 물론 오현종의 소설은 어린이용 동화가 결코 아니며, 차라리 성인용(?) 동화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싶다. 우리에게 친숙한 어린이용 동화, 이를테면 안데르센의 동화인 『라푼젤』과 『인어공주』, 그림 형제(Jacob Grimm & Wilhelm Grimm)의 『헨젤과 그레텔』, 동양의 고전 『서유기』, 그리스로마 신화 중 하나인 「판도라의 상자」 등을 서사 구조상 거의 유사하게 패러디하되,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바꾸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현재 한국의 일상적 공간 안으로 이동시켜 동화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판타즘을 충격적으로 전복하는 식이다. 소설가 오현종에 의해 원작 동화가 그 내적인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본래 위치하고 있던 맥락인 낭만적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이제 이야기는 불륜과 사생아 탄생, 십대들의 성적 일탈, 고부간 갈등, 농촌으로 시집온 이방인 여성들의 학대받는 삶, 장애인들을 착취하는 사회, 가부장주의, 사채업의 폐해, 채무관계로 뒤얽힌 가족, 노인 유기, 성매매 등을 다루고 있는 포스트모던 리얼리즘 소설의 단계로 진입한다.

사실 소설가 오현종은 이미 지난해 발표한 장편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에서 헐리우드 영화 <007 시리즈>를 패러디해 여성의 자아 찾기를 독특하게 소설화하여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소설적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그 주제의식도 묵직한 작품이었는데, 이번의 신작 소설집에서도 아홉 편의 단편작품을 통해 그 저력을 더욱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어릴 적 추억 속에 세계명작동화로 남아 있는 『라푼젤』을 패러디한 단편 「상추, 라푼젤」에서 라푼젤과 왕자(왕씨 성을 가진 ‘자’라는 이름의 소년)의 사랑은 고등학생들의 일탈적 ‘불장난’으로 탈-낭만화된다. 라푼젤의 어머니의 방해를 따돌리며 긴박하게 나누던 뜨겁던 사랑은 결혼과 동시에 금세 식어 버린다. 왕자는 “머리를 짧게 자른 라푼젤은 꼴도 보기 싫다”면서 나이트클럽 인어쇼에 넋이 나가 있다. 그런데 그 인어쇼의 인어는 가족과 남편에게 버림받고 지중해 나이트클럽에서 노예처럼 착취당하며 춤을 추고 있는 한 장애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 뒤에 실린 단편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를 통해 확인된다. 그리고 그 장애인 여성의 자매는 알고 봤더니 어촌의 노총각 어부 집에 시집왔지만, 탐욕스러운 시어머니에 의해 우물에 갇힌 채 날마다 진주로 된 눈물을 흘려내야만 하는 가련한 이방인 여성이었음을 또 다른 단편 「연못 속에는 인어가」가 보여준다.

오현종의 동화 전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공포영화로도 패러디된 바 있는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제목 그대로 리메이크한 단편 「헨젤과 그레텔」은 한 집안의 장녀가 경제력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을 놀이동산에 유기하는 내용이다. 사실 그림 형제의 원작 동화도 부모에 의해 버림받은 아이들의 복수극이었는데, 작가는 이를 당대 한국적 맥락에서 사채로 인한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인한 노부모 및 장애인 유기 사건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 역시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이 아닌 영화나 SF소설 등의 보다 대중적인 서사 양식들을 차용하되 그것을 현실감있는 사회사 속에 위치시켜 본래의 서사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내파하고 새로운 윤리적ㆍ정치적 성찰의 자리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미학적으로 성공한 소설 즉 재미있는 소설만이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소설이라는 아도르노의 격언이 그대로 들어맞는 사례라고나 할까. 장담하건대, 올 가을에 읽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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