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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 - 자산의 격차는 어떻게 개인의 삶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었는가
리사 앳킨스.멀린다 쿠퍼.마르티즌 코닝스 지음, 김현정 옮김 / 사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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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이런 초월번역은 또 처음본다. 원서와 다른 목차 구성은 그렇다 쳐도, 원문에 들어 있던 주석은 모두 없애고, 번역 누락한 문단도 수십개가 넘는다. 심지어 원문에 없는 번역자의 창작문도 들어가 있다. 왜 이런 식으로 책을 내는가? 저자들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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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경제학
이정우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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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문제에 관한 좋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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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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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화(globalization)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 그리고 자본의 투자활동 등 여러 가지 경제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특히 금융 세계화가 초래한 모순이 1980년대부터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위기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2008년 들어 그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초대형 금융공황으로 귀결되었다. 작년 가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發 금융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본주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과연 정당한가를 재고하는 계기를 확실히 제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비판적 재고들조차도 우리의 일상과는 다소 멀게 느껴진다는 데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하고, 또 그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금융 세계화나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는다고 해서 우리가 곧바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행위자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제도나 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정치적 선택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추상적 이슈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넘어 각자의 심리 속에서 구체적 느낌으로 전환되어 전달되어야만 한다. 결국 우리에겐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다시 말해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이슈들을 매개하는 삶의 기반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라고 하는 미국 출신 사회학자의 작업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세넷은 일찍부터 글로벌하고 변화무쌍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저작을 발표해왔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저작들, 『현대의 침몰: 현대 자본주의의 해부』(일월서각, 1982), 『살과 돌』(문화과학사, 1999),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문예출판사, 2002),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문예출판사, 2004)에 이어 올해 2월에 번역 출간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원제 The Culture of the New Capitalism)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 놓고 있는지 풀어내면서 퇴출 공포로 대변되는 불안정한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잘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가 무엇인가로 인해 불안할 때 이는 우리가 그 불안함의 대상에 관해 알고 있는 것, 어떤 두려움을 유발하는 지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불안은 오히려 그 무엇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할 때, 왜 자신이 그것의 타깃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그러므로 불안은 주체가 알지 못할 때, 즉 그가 믿고 있던 신념, 환상, 지식 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무언가가 불안을 일으킨다면 이는 무엇보다 그 무엇이 지식으로 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세넷이 말하고 싶은 바도 결국 그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 속에서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지식 속으로 통합할 수 없는 무엇, 지식에 저항하는 무엇, 그 수수께끼 앞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물론 이러한 불안은 그 수수께끼가 단순히 주체의 무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겨냥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불안의 제거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그 실재적인 대상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불안에 의해 지시되는 어떤 위험에 대한 방어기제가 우리의 삶을 사실상 더욱 피폐하고 힘겹게 한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불안스러워 하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넷은 이 책에서 그 불안의 근원을 세 가지 주제의 측면에서 조사한다. 1장 “관료제의 변화”는 새로운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 제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관료제의 붕괴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지금의 세계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논제를 통해 개인이 삶을 서사적으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녹아 사라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정 부문의 유연한 조직들에서 예전 사회자본주의 하의 관료제의 제도적인 틀은 붕괴되고, 새로운 조직에서는 새로운 권력 지형이 생겨나고 있다. 조직의 중심부는 관료제의 중간층을 대폭 없애고 조직의 주변부를 직접적으로 강력하게 통제한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은 제도적 권위를 회피하게 되고, 결국 사회적 자본도 낮아진다. 하여 새로운 조직과 제도의 노동은 근대적 부르주아 노동윤리의 두 요소, 즉 보상의 지연과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사고라는 틀을 해체해버렸다. 인생 설계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시점에서 특권을 갖고 있는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서민 계층 간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2장 “능력주의와 퇴출의 공포”는 사회에서 퇴출되고 뒤처질 것에 대한 불안감이 ‘기능사회’에서 재능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관료제의 붕괴는 사회 시스템의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오늘날 현대 사회는 잠재능력 중심의 능력위주 무한 경쟁 소비 사회가 되었다. 그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과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던 근대적 장인정신(craftsmanship)은 현대 사회에서 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3장 “정치의 몰락”에서는 소비행태와 정치적 태도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면서, 시민들이 진보 정치에서 점점 등을 돌리면서 스스로 보수적이고 수동적으로 되어가는 이유를 해명하고 있다. 대중들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화 가운데서 소비자로 길들여지면서 정치적 실천마저도 소비행태와 유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4장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개인의 자질”에서는 개개인이 표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문화적 닻’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넷은 변화의 시대가 새롭게 요구하는 대안적 가치로 사건과 경험의 축적을 통한 서사적 삶의 회복, 스스로를 쓸모 있는 존재로 느끼도록 해주는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 등 세 가지를 든다. 덧붙여, 일자리를 알선하거나 연금 관리 및 의료보험 가입을 대행하는 등 노동자들의 경험이 서사적으로 단절되지 않게 하는 ‘병렬 조직’의 설립, 일자리 나누기,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자본의 제공 등을 제도적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대중적 염원을 포섭해 사로잡기보다는 끊임없이 대중을 배제하고 개체화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그 대중적 포섭의 토대가 취약하여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아 오면서도, 동시에 페리 엔더슨(Perry Anderson)의 지적처럼 “종교개혁 이후 최초로 세계 사상계 내에서 의미심장한 반대파를 갖지 않은” 이데올로기라 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폐해가 큰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저항은 대중조직 차원에서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나 부재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집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수많은 전향과 절충, 그리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넷의 이 책은 일상의 구체적인 지점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지를 제시해주는 훌륭한 지도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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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6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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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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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국민이 다함께 읽고 한 자리 모여 세미나를 해야 할 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2008년 8월)

 때로는 장황하게 서평을 쓰는 것마저 민망하게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저 “일단 읽어 봐라”, “반드시 읽어라”, “읽고 나서 얘기해보자”, 뭐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책이 가끔 있는 법이다.

 작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가 단연 그런 책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이 제기한 ‘청년실업’ 혹은 ‘청년백수’는 단 순히 20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10대들을 입시라는 족쇄를 채워 인질로 잡아놓고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 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베틀 로얄’의 무한경쟁사회”이자, 그러한 “세대 간 경쟁의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20대를 윗세대(특히 386세대)가 악랄하게 착취하고 있는 사회”이며, “민주화라는 이데올로기의 이름하에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 독과점의 강화로 특징지어지는 승자독식사회”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전체적 모순 구조가 20대들에게 이르러 특수화된 사례가 바로 ‘88만원 세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은 결국 세대를 막론한 한국 사회 전체 구성원들을 향해 긴급히 토론을 요구하는 책이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아젠다(agender)’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그 역할을 할 책이 바로 손낙구(http://blog.daum.net/bomnal3)의 『부동산 계급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88만원 세대』보다 더 보편적이고 그만큼 오래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그 핵심부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는 책이다. 다행히 책의 내용이나 구성은 그리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정말로 고등학생 수준의 독해 능력만 되어도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쉽다고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이 책이 갖는 여러 가지 측면의 중요한 담론적 가치와 별개로, 지금까지 나온 많은 양의 부동산 관련 책들과 대조하여 특징적으로 구별되는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이 책이 부동산 투기의 문제를 경제사회학적 차원에서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그 실상을 정치사회학적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니까 부동산 재테크의 비법 따위나 알려주겠다고 선전하는 수다한 책들과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른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은 그 모든 이야기를 철저하게 통계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해냈다. 부동산과 관련한 좌파적 혹은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의 비판적 담론이야 계속 있어 왔지만 정작 부동산 문제가 ‘언제부터’ ․ ‘어떻게’ ․ ‘왜’ ․ ‘누구에 의해’ 이 지경이 되었나 하는 문제의 실체는 보다 정교하게 해명되지 못하고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도덕적 비판으로만 그치고 말았던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그와 같은 기존 담론의 한계를 실증적인 자료와 통계를 무기삼아 한결 진일보된 방법론으로 돌파하고 있다.

 저자가 제기하는 한국사회 부동산 문제는 너무 빨리 오른다→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부동산 보유 여부 및 부동산가격 인상 여부에 따라 소득 및 재산 격차가 순식간에 심화된다→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할 듯싶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부동산은 당대 한국 사회에서 계급적대 혹은 빈부격차의 주범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한국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적 모순이 부동산에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 가치이다. 당연히 이 부동산 소득 격차가 곧 계급 격차로 이어지고 있으며, 한번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게 됨에 계속 부자가 되고,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영원히 가난한 신세를 못 벗어난다. 부동산 소득 수준이 곧 계급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격차가 교육, 문화적 향유 수준의 차이를 넘어 건강 및 평균수명의 차이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 앞에서 독자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내 땅 내 집 내 맘대로 한다’는 논리는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사회 안에서도 ‘돌연변이’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비뚤어진 부동산관이라고. 이토록 천박하고 무례한 자본주의적 투기꾼의 궤변이라고나 할 억지 논리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의 극단적인 사유재산 제일주의, 정부의 주택정책, 부동산 학자와 언론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수 십 년 동안 투기와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비호하는 신념체계로 우리 사회 깊숙히 무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오늘도 부동산 계급 카르텔은 끊임없이 부동산 신화를 불러들여 불로소득을 얻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런데 어떡하랴? 부동산 재산만 382억원(그 중 빌딩 재산이 무려 330억에 달하는)을 가졌다고 신고하신 분 그러니까 부동산 공직자 종합 1위를 차지하신 그 분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며, 집권여당의 의원들은 물론이고 청와대 비서진과 행정부 고위 공직자들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로 그간의 부를 축적한 이들인데, 과연 부동산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2008년 초 현 정권의 첫 환경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땅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박 모 교수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며 항변했다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는데,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농사도 안 지으면서 농지를 사랑해서 땅을 사는 게 바로 투기라는 아주 상식적인 진리를 말이다.

 이 책을 읽지 않고 현 시기 한국 사회의 위기와 고통에 관해 논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마저 들 지경이다. 문득 올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쇠고기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두고 ‘국민 MT’라고 한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에 빗대어 나는 이 책이 ‘국민MT’에 가져가 다함께 밤새워 읽고 ‘세미나’라도 해야 할 그런 책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세미나 같이 한 번 해보고 싶으니 독자 여러분들도 꼭 좀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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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 당비의생각 1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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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정치에서 다시 현실의 문화로”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산책자(2008년 6월)
 

   

당대비평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흔히 당비라고 불렀던 이 잡지는 한국의 비판담론의 공간에서 꽤나 특이한 위치를 차지했다. 일단 우파적 성향의 잡지는 결코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숨겨진 야만과 모순을 읽어내는 시각이 너무나 불온했고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좌파라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 이들의 비평 대상에 바로 좌파 또는 진보진영이 단골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잡지는 여타의 다른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비평지가 다루지 못했던 신선한 기획들을 많이 선보였다.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기억의 정치학, 우리 안의 이분법, 세대 갈등, 한국 사회의 고통과 차별의 구조, 민주화체제의 이면,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 테러의 정치학 등등.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6월 말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이름으로 책이 새로 하나 나왔다. 책의 제목만 봐도 다분히 촛불집회를 의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라는 제목에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서동진이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민주화 체제가 마감되고 난 지금 그 체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되돌아보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해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1부에서 검토한다. 예컨대 경제주의에 함몰된 기업형 사회의 등장(홍기빈, 「CEO 대통령, 주식회사 코리아」), 그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은 채 사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 귀족들의 득세(홍세화, 「사회 귀족 체제와 촛불 광장」),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혹은 대표되는 새로운 여론형성 문화의 기저에 자리 잡은 ‘네티즌’들(이상길, 「인민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기러기 가족과 이주자 가족 혹은 동성 생활공동체, 반려동물 가족 등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야 할 가족 형태의 등장(임옥희, 「욕망의 민주화는 가족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등을 차례로 살피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민주화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체제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새로이 등장한 권력들에 대한 탐색과 함께 정치적 힘들이 작동하는 장소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들도 돋보인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는, 그리하여 오히려 정치의 공간이 소멸되는 상황들(서동진, 「소송하는 사회, 불평하는 주체」),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안전이 보험으로, 즉 개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는 현실들(이택광, 「자본주의라는 공포물에서 살아남기」), 제도권의 순치로 실천적 교양의 자리를 잃어버린 지식인의 초상들(김원, 「대학 속의 지식인,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빈곤의 위협에 처한 이들에게 책임을 환원시키는 능동적 복지의 허상들(최예륜, 「생산적 복지에서 능동적 복지로」)을 차례로 접하면서 우리는 이 시대 빈곤한 정치적 삶의 형식들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러한 민주화 이면에 존재하는 삶의 형식을 통해 빚어지는 사회적 주체라고 하는 것들이 능동적인 시민이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역설하는 ‘21세기의 성공적인 인재’이든 결국엔 ‘신자유주의적 발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피지배자의 형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섬뜩한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

 

닫는 글로 실린 김진호의 글이 특히 압권인데,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들의 저 축제가 어쩌면 사회적 배제 담론으로 표상되는 빈곤계층에 대한 사회적 학살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던지고 있기 때문. 시민사회의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는, 오로지 외국의 학계에서 빌려온 언어를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인, 그래서 존재하고 있으나 전혀 만날 수 없고, 우리 주변에 엄연히 살아 있으나 단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과연 사회란 무엇이고 또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덧붙여 한 가지 생각해볼만한 것이 있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아마도 “광장의 문화”가 “현실의 정치”와 대립되는 그 무엇으로 상정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촛불집회는 문화적 축제의 수준을 넘어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까지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따라서 광장의 문화가 있고, 현실의 정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이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광장이 정치가 되었고, 오히려 현실이 문화가 되어버린 세계 앞에서 우리는 질문의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광장의 정치 즉 현실에 존재하지 못하던 정치를 창출한 그 축제의 공간이 현실의 문화의 한 단면은 아닌가 하는 질문 말이다.

 

이제는 거의 다 꺼져버린 촛불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촛불집회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치적 삶의 형식과 그것을 실행할 정치적 주체들의 형상을 발굴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작업의 첫 번째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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