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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한국 인문학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저자들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마이클 샌델과 슬라보예 지젝이 연달아 다녀갔다. 그리고 6월 항쟁 25주년을 맞이하여 이런저런 학술대회들이 여러 차례 열렸고, 199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주의적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도 있었다. 덕분에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6월에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신간서적들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책 두 권을 골라 봤다. 한 권은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보고서이고, 또 한 권은 매우 추상도가 높은 이론서이다. 이론과 현실을 매개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최적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일해도 가난하며, 일하지 않아도 가난한 이들을 아십니까?
워킹푸어working-poor(근로빈곤층)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1990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 말은 '극심한 소득양극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워킹푸어 문제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대다수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한국의 워킹푸어: 무엇이 우리를 일할수록 가난하게 만드는가?』(프레시안 특별취재팀, 책보세, 2010), 23.
바버라 에런라이크이의 『노동의 배신Nickel and Dimed』. 이 책이 바로 '워킹푸어'라는 단어를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키는 데 기여한 바로 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2001년에, 그것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이고, 이미 국내에서도 워킹 푸어 또는 빈곤노동에 관한 훌륭한 연구서 및 취재보고서들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고, 여러 저널에서 이 문제를 심층기획기사로 다룬 바 있다(심지어 <조선일보>도 워킹푸어 특집기사를 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20/2009072000066.html).
그렇게 워킹푸어에 관한 연구나 보고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의 빈곤노동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책이 워킹 푸어들을 묘사하고 증언하는 방식의 독특함 때문일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극도의 처절하고 우울산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하면서도, 애써 자극적인 묘사로 분노를 자아내기보다는 냉정하리만치 담담한 묘사로, 그러면서도 은연 중에 위트와 유머를 곁들여 가난한 이들의 삶을, 아니 자신이 체험한 그 가난한 삶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한번 붙들면 절대 놓치 않을 그런 책이다.
'구조주의'로부터 '구조주의'를 넘어
내 개인적으론 6월에 출간된 책 중 가장 반가웠던 책이다. 오늘날 정치적 주체화라는 문제설정 가운데서 권력과 저항, 또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출간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맑스주의 철학자인 에티엔느 발리바르의 제자이자, 그로부터 극찬을 받은 젊은 일본 지식인 사토 요시유키. 이미 그의 다른 책인 <신자유주의와 권력>의 일부분이 미리 번역되어 소개된 까닭에 나는 그의 책이 나오기를 일찍부터 고대하고 있었다.
동시대 비판적 정치철학 담론의 프랑스적 기원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네 사람의 인물이 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그리고 알튀세르이다. 흔히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이들 20세기 프랑스 철학 4인방의 권력 이론을 깊이 탐구하면서, 저자는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분모를 라캉의 구조주의적 정신분석이론이라 지목한다.
또한 정신분석(특히 라캉) 이론이 철학을 촉발하는 방식에서 "권력에 대한 주체의 의존"이라는 테제가 산출됐다면, 권력에 대한 저항의 사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주체의 의존"과 주체의 '탈중심화'라는 테제를 제출한 정신분석 이론 자체에 대한 '저항'의 사상이기도 하다. '구조주의적' 철학은 정신분석이라는 철학의 '타자'에 의해 촉발됐으며, 정신분석이 제시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용시켰다. 이것은 철학과 정신분석을 동시에 포함한 구조주의적 사유가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의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 각자가 전개하고 있는 권력의 이론화는 상이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더욱이 그러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이론화 방식 역시 전혀 달랐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소개하면, 푸코와 들뢰즈ㆍ가타리에게서 권력에 대한 저항 전략은 "주체적 양상의 변용과 특이성의 구축"이라면, 알튀세르와 데리다에게서는 "우발성의 침입이 일으키는 구조의 생성변화"라고 정리된다. 지젝과 버틀러, 라클라우가 공저한 『우연성, 보편성, 헤게모니』, 그리고 국내외 연구자들이 쓴 알튀세르 관련 논문들을 모은 『알튀세르 효과』와 함께 읽는다면, 현대 정치철학의 주요한 이론가들 사이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배가될만한 훌륭한 이론서이다.
그외에도 이런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내에 들뢰즈(& 가타리)의 노마디즘 철학이 한창 유행할 때, 한국보다 먼저 그 붐이 일었던 곳이 바로 일본이다. 1970년대 일본사상계를 재패한 인물이 가라타니 고진이라면, 1980년대는 사실상 아사다 아키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물론 뒤이어 등장한 나카자와 신이치 역시 그에 못지 않은 명성을 누렸다). 위에서 소개한 사토 요시유키의 책보다 수십년 앞서 이미 아사다 아키라는 『구조와 힘』이라고 하는 책으로 일본 열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책이 나온지 불과 6개월도 채 안되서 이 책 『도주론』을 냈다고 한다(사사키 아쓰시, 『현대 일본사상: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참조).
여하간 이미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는 책인데, 이번에 개정판이 다시 번역되어 나왔다. 위에서 소개한 요시유키의 책과 함께 놓고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더불어 국내 저자들의 들뢰즈 연구서와 비교하면 읽어도 좋을 듯.
탁월한 여성 비평가 권명아 선생의 비평집이다. 문학에서 영화, 정치, 사회를 넘나드는 비평의 향연. 아직 읽어보지 못해 자세한 소개는 못 하겠지만, 그간 내가 읽어본 그분의 글로 미루어 짐작컨대,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일 듯.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