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돌벽 회랑을 지나 나무문을 열자 어둑한 방이다. 발자국 소리가 공간을 채우자 텅 빈 것 같았던 구석에서 희미한 어둠이 일렁인다. 사람의 기척이다. 남자가 등잔에 불을 붙이자 마법처럼 사슬에 양 손목이 묶인 여성의 하얀 나신이 드러난다. 천장으로부터 바닥까지 팽팽한 수직의 긴장감. 코르셋 라인 잘록한 허리 아래로 탐스러운 엉덩이와 매끈하게 뻗은 다리의 곡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그녀의 본능적인 노력은 남자의 명령에 의해 허무하게 격절된다.
-다리 벌려.
돌아서 있는 여자의 표정은 떨리는 어깨의 움직임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망설이던 그녀는 체념한 듯 다리를 양 쪽으로 벌린다. 시선은 바쳐진 제물의 구석구석을 탐한다. 게걸스럽게 몸의 구석구석을 훑던 남자는 벽에 걸린 채찍을 들고 여자의 등 뒤로 다가간다. 파열음과 함께 엉덩이에 붉은 자국이 꽃처럼 피어날 때 마다, 자존심으로 꽉 악문 턱이 조금씩 열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터진 둑처럼 붕괴된 내면의 흔적이 신음소리가 되어 둘만 있는 공간을 채운다. 고통이 열병처럼 온 몸을 뒤덮자 여자는 벗은 몸과, 벌린 다리가 부끄럽지 않다. 남자가 채찍을 휘둘러 고통과 부끄러움의 감각을 미묘하게 컨트롤 하며 그녀를 몰아갔다.
채찍질을 멈춘 남자는 땀과 매 자국으로 뒤덮인 그녀의 엉덩이 뒤로 가까이 다가간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느껴지고, 달아오른 상대의 몸이 셔츠의 두께 너머로 느껴지는 거리까지. 여자는 열이 올라 흥분과 아픔의 경계조차 모호하다.
남자는 여자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말 했다. 당신에게 밤새 더 잔혹한 수치를 강요할 생각이라고. 그녀의 겨드랑이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시간은 오로지 남자의 편이었고, 여자는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수직의 공간에서 벗어날 요량이 없다. 남자가 두툼한 손가락을 그녀의 긴장한 다리 사이로 가져가니, 그녀는 훅 하고 숨을 들이마실 밖에...
#. 2
헉, ‘O의 이야기’의 1장에 나오는 모종의 장면을 재구성하다가 본격 SM야설 블로거로 거듭날 뻔 했다. 그대로 옮겨볼까 했지만 영 재미가 없어서.
전설의 빨간책인 O의 이야기가 재미가 없다는 건 당혹스러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분명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있었던 기억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기억을 돌이켜 보자. 내가 이 소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완역판이 없던 시절. 당시 O의 이야기는 조악한 번역으로, 게다가 여러 조각으로 난도질 된 채, PC통신 게시판 틈바구니에서 묻혀질 날만 기다리는 신세였다. 하릴없는 변태들이나 물어물어 찾아오는 그런 곳에 있었다. 이 소설을 발견하고 나는 흥분했다. 파편화되어 완독할 수도 없었고 심리적 묘사가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터부를 들여다본다는 은밀한 기대감과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에 취해 읽기를 멈출 수 없었던 거다. 이 책 이후, 지배와 복종이라는 어둠의 어휘들은 오랜 시간 그림자처럼 나의 양지바른 이성과 감성의 언저리를 배회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 책이 재미없는 이유는 뭘까. 물론 그 동안 내가 발랑 까졌기 때문이겠지만, 그것 보다는 '기대감에서 연원한 아우라가 소멸되자 지루한 심리묘사와 완곡어법로 치장된 섹스장면, 기대만큼 섬세하지 않은 감정의 결이 거슬렸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그 편이 더 폼 날 것 같다.
예컨대, “그는 엄청난 크기와 강도를 자랑하는 성기로 O의 앞과 뒤를 미친 듯이 유린한 뒤, 바깥이 아주 캄캄해진 다음에야 놓아주었다.” (244p)같은 장면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전혀 섹시하지가 않다.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을 관두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읽나보다. 평이한 어휘에, 안전한 전개, 달달한 묘사에, 트렌디한 감성 몇 스푼쯤 넣고 쉽게 쓰인 글. 편하고 재미있지 않은가. 동의하기는 어려우나, 이제 이 분야의 대표선수는 O가 아니라 크리스찬 그레이와 아나스타샤인가.
#. 3
내용을 훑어볼까. 주인공 O는 파리의 젊은 여성 포토그래퍼. 소설의 도입부는 상류계층의 성적 유희를 위한 SM던젼인 루아시 성으로 가는 O와 르네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다. 연인의 주문으로 성으로 가는 택시에서 속옷을 내리는 O의 모습에 안온하지만은 않을 그녀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이후, 유별난 연인의 완전한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O의 투쟁적이기까지 한 사랑이 소설의 초반부를 채운다. 한용운의 시 ‘복종’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그런 종류의 사랑을 묘사할 도리가 없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면 그것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두 문학작품의 의미가 (최소한 표면적인 층위에서는) 기가 막히게 일맥상통한다.
그 이후 대상을 바꿔가며 심화되는 O의 내면을 작가는 사드-마조흐적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표현한다. 비록 오늘날 까진 우리들의 관점에서 볼 때 만족스러울 만큼 야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스와핑, 난교, SM등 다소 파격적인 내용을 보건대 출판 당시 그 시대의 터부와 정면으로 부딪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 4
그래서 이 책이 출판되고 40년간 모두는 궁금했던 거다. ‘과연 누가 이 책을 썼는가’. 저자, ‘폴린 레아주’는 남성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내용이 극단적인 남성주의적 시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의선상에는 주로 저명한 남성작가들이 올라 있었고, 특히 이 책의 서문인 ‘노예로서의 행복’을 쓴 장 폴랑은 유력한 용의자였다. <누벨 르뷔 프랑세즈>(La Nouvelle Revue Français=NRF: 앙드레 지드가 창간한 저명한 순수문학 잡지였다.)의 편집장이자 비평가로 충분한 필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심지어 사드 마니아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정작 폴랑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결국 40년이 지난 1994년 그 비밀이 풀리게 된다.
장 폴랑의 연인이자 비서였으며 저널리스트 겸 소설가인 안느 데클로스(Anne Desclos, 1907~1998)(그녀는 잡지의 저널리스트이자 사장 비서였고, 장 폴랑은 편집장(사장)이었다. 또한 장 폴랑은 기혼이었고, 안느 데클로스는 미혼이었다. 훈훈한 ‘누벨 르뷔 프랑세즈’의 사내문화가 아닐 수 없다.) 가 소설의 저자가 본인임을 밝힌 것이다. 그녀의 나이는 여든 여섯이었고, 소설이 출간된지 4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당시 나는 젊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답니다. 그래서 다른 무기를 찾아야 했어요. 육체가 전부는 아니었으니까요. 무기는 정신 속에도 존재하니까 말입니다.“-(291p역자후기중)
이 소설은 연인끼리의 말다툼으로 탄생하게 됐단다. “여자는 그런 류의 소설을 쓸 수 없다.”는 폴랑의 말에 데클로스가 발끈했고, 실천적 반론이자, 문학적인 ‘연애편지’로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 결과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으나, 그녀는 그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영광은 데클로스가 아닌 필명, ‘폴린 레아주’의 것이었으므로. 1954년 프랑스 문단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만 하다.
O의 이야기가 프랑스와 세계 문단, 그리고 문화에 미친 영향은 실로 오묘하다. 출간 당시 프랑스 현대문학은 충격에 휩싸였고 당연히 정부는 책의 출판을 규제하려 들었다. 그러나 사르트르 등 당대 지성인들은 적극적인 옹호로 이 책을 살렸다, 그 결과 이 책은 실제 저자가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단에 자유라는 유산을 남겼다.
실로 다양한 작가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했는데 멀리는 '엠마누엘'을 쓴 에마뉘엘 아르상부터 가깝게는 마광수까지. 사실 이 분야를 표방하는 현대에 에로티시즘치고 이 소설의 영향권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항간의 얘기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문학이라고 한다.
#. 5
O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도 영 재미없는 이야기 뿐은 아니다.
먼저 여성주의적 관점. 여성을 단순한 피억압계층으로 보고 여성-남성의 이분법적 도식 위에서 동등한 수준의 평등을 쟁취하자는 당시 페미니즘의 흐름에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여성’이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이 소설은 여성의 행복이 당시 여성의 생각보다 입체적이고 복잡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므로써 20세기 중반 페미니즘의 담론을 확장시키는데 기여했다.
사회적 관점.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우리는 '생각으로 죄를 범할'수 없다. 사상을 전향하지 않는다고 신체를 구속하는 이 빌어먹을 사회의 신화적 폭력성은 안느 데클로스의 성적 판타지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국가 보안법이 레드 콤플렉스의 핵심이라면 변태로 치부되는 BDSM은 핑크 콤플렉스의 핵심이었다. 여기, 프랑스 사춘기 소녀의 환상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은 지렛대처럼 세상의 관점을 뒤집어 환상을 현실로 이끌어왔다.
개인적으로. 수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다보면, 자신의 성적, 인간적 자존을 포기하면서 적극적으로 타자에 귀속되려는 마조히스트 특유의 감성이 내 수퍼에고의 껍질을 깨고 부드러운 이드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 성은 성이고, 섹스는 섹스다. 무슨 이즘이나, 사회적인 역학관계는 당사자들의 합의 앞에 무용한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활용해 온 자연스러운 가치이며 삶의 모습이 아닐른지. 오, 꿈꾸어라, 꿈 꿀 수록 우리의 잠자리는 즐거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