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예언>


  오늘 또 굵직한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바로 일본의 전 수상 <아베신조>를 향한 테러에 대한 건이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서는 많이 술렁이고 있는가보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밤을 새도 다 하지 못할 것이다. 즉, 과거부터 일본이란 나라는 마음에 안 들면 또는 어떤 집단을 위해서 테러를 하는 일이 반복되었던 나라였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일도 그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스가>나 <기시다> 같은 인물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런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엔 아베이기 때문에 약간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아베>란 자에 대해서 조금 말을 하고 넘어가면, 그는 다 알다시피 <전범 기시 노부스케란> 놈의 외손자로, 그 <기시>의 후광을 등에 업고 일본을 나락으로 빠뜨린 인물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를 추종하는 우경들은 일본을 다시 전쟁하는 나라로 만들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켜보겠다고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란 놈은 <기시>에 이어서 일본을 망하게 만든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바로 이 나라, 즉 <대한민국>을 밥으로 삼았던 인물들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나라를 호시탐탐 노렸던 것도 모자라서, 때마다 괴롭히고 야비함의 극치로 이 나라를 유린하려 했던 놈들이란 이야긴데, 그래서 다른 것은 차치하고 본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아베>란 놈이 <비명횡사>할 것을 예견했었고,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바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오늘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근래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이번 사건은 외면할 수 없어 이 글을 쓰고 있는데, 그래서 본인이 누차에 걸쳐서 말하고 있지만,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나라를 위하고, 지역을 위하고, 설령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는 핑계를 댈지라도, 남을 괴롭혀가면서까지 추구하는 일에는 분명히 그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것은 몇 백배의 이자가 붙어서 비참하게 결론이 나는 수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의 우익들과 고위층들은 진지한 반성을 하길 바라며, 그것은 또 <아베노믹스>란 허울 좋은 명분이 만든 일본 패망에 대한 분노가 그렇게 표현된 면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로 해서 다시 <본인의 예언>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고, 이 사건의 교훈으로 다시 한 번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시간 가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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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James_Joyce_by_Alex_Ehrenzweig,1915_restored>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Love, Loves to Love Love)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221941113)

 

 

 <작품>
 

 1904- <芸術家의 肖像-A Portrait of the Artist> = <젊은 예술가의 초상>原型이 된 에세이

 1904-1906- <Stephen Hero> = <芸術家의 肖像>改稿小説 =1944年 出版

 1907- <室内楽=Chamber Music> 詩集

 1914- <더블린의 사람들= Dubliners> 短篇集

 1916-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長篇小説

 1918- <추방자들=Exiles> 戯曲

 1922- <율리시스=Ulysses> 長篇小説

 1927- <Pomes Penyeach> 詩集

 1939- <Finnegans Wake> 長篇小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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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블린의 사람들

 

 조이스의 작품 중 아일랜드에서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의 무대와 주제의 대부분도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더블린 사회의 정체(停滯)와 마비(痲痹)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조이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한 15편 연작단편집다. 이 작품에는 <에피파니>가 도입(導入)되어 있다. <에피파니>는 조이스 문학 특유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중에 그 사물의, 예를 들어서 <()>이 갑작스럽게 의식되어 그 본질을 노정(露呈)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이스>는 그러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현현(顯現)>을 테마(주제)로 한 작품들을 <에피타니 문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단편집 최후에 나오는 제일 유명한 작품 <죽은 자들>1987년에 <더 데드( The Dead)/ 더블린 사람들에서>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것은 <존 휴스톤 감독(John Huston, 本名: John Marcellus Huston, 190685-1987828. 미국의 영화감독, 각본가, 배우> 최후의 작품이 되었고2000년에는 뮤지컬로 소개되었다.


 

 <구성(構成)>

 

 단편집을 구성하는 각편(各編)은 다음과 같다.

 단, 내용은 추후 소개하거나 생략함.

 1. The Sisters <자매(姉妹)>

 2. An Encounter (어떤 만남)

 3. Araby (애러비)

 4. Eveline (이블린)

 5. After the Race (경기가 끝난 뒤에)

 6. Two Gallants <두 사람의 만용(蠻勇) 자들>

 7. The Boarding House (하숙집)

 8. A Little Cloud (작은 구름)

 9. Counterparts (대응)

 10. Clay (-점토)

 11. A Painful Case <참혹한 사고(事故)>

 12. Ivy Day in the Committee Room <파넬 추모일의 위원회실(선거사무실)>

 13. A mother (어머니)

 14. Grace (은총)

 15. The Dead (죽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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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젊은 예술가의 초상

 이것은 중단했던 소설 <스티븐 히로(Stephen Hero)>를 거의 전면적으로 개고(改稿)했던 것이다. 원작품의 초고(草稿)<노라>와 말다툼을 한 뒤에 스스로 없앴다. 이 글은 Künstlerroman-교양소설, 일종의 성장소설로, 재능이 있는 예술가가 성숙한 자의식(自意識)에 눈을 뜨기까지의 자기계발(自己啓発)의 과정을 전기(傳記)적인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는 자신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인 독백(獨白)의 사용과 등장인물의 외적인 환경보다 정신적인 현실에 비중을 두고 있다. 나중 작품들의 실험적인 면이 있는 작품이다. <스티븐 디덜러스>는 그의 대표작 <율리시즈>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디덜러스><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다이달로스(:Δαίδαλος=Daidalos) 건축가)>, 태양 가까이까지 날아갔다가 추락했던 아들 <이카루스(καρος=Icarus)>의 설화(說話)를 토대로 하고 있다. <디덜러스>는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 문학을 지망하는 소년으로, 유년시대부터 청춘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성장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교양소설(Künstlerroman)적인 요소와 자전소설적인 요소도 있다. 그 문체(文體)는 동화(童話)와 교과서, 예배(禮拜), 설교(說敎), 미학론(美學論), 일기(日記) , 여러 가지의 특징을 보인다...

 

 

 

 

 

 <나머지는 생략하거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소개할 수 있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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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James_Joyce_by_Alex_Ehrenzweig,1915_restored>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Love, Loves to Love Love)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221941113)

 

 

 <후기>

 

 , 주로 에피소드이므로 두서 없이 번호로 소개함.

     그리고 이 글은 <백과사전> 등에서 발췌한 것이며, 앞의 것들과 중복되는 것도 있으므로 주의할 것.

 

 1.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 중산층의 치부를 여러 층에 걸쳐서 묘사한 단편 15개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소설이다. 더블린 사회를 '마비(paralysis)'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연재 당시부터 더블린 사람들의 거센 항의와 삭제 요구, 소송 제기 위협 등에 시달렸다. 또한 출판 계약이 결렬되었다거나, 출간지연 등, 다양한 이유로 9년 만인 1914년에야 출판될 수 있었다.

 

 2. 1916에고이스트지에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연재. 희곡 <망명자들>을 . 시카고의 <포이트리지에 시 8편을 게재함. 그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인 <율리시스>를 뉴욕의 리틀 리뷰에고이스트지에 연재. 이 시기부터 눈병에 시달리기 시작함.

 

 3. <율리시스><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19세기까지의 소설 개념을 타파한 작품으로 일컬어짐. 중년의 신사 <레오폴트 블룸> 그의 아내 <매리온> 종일 더블린 거리를 거니는 젊은 예술가 <스티븐 디덜러스> 세 사람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일을 묘사한 작품. <의식의 흐름>이라는 <심리주의적 서술 기법>으로 주인공들의 내적 상태를 생생하게 표현. <에피파니>는 의식의 확대 과정을 주제로 구현시키는 기법으로 사용. 방뇨, 수음, 사디즘, 성교, 자살 등, 연재 당시 외설 논란으로 출판이 금지 됨. 가톨릭의 상징과 구절들을 희화화하고 풍자하여 신성 모독 혐의까지 받음. 그래서 연재 중단과 출간 거부 후에 1922년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운영하던 미국 여성 <실비아 비치>의 노력으로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됨. 이후 프랑스판 밀수본이 영국에서 은밀히 거래됨. 미국은 1934, 영국은 1936년에 출간됨.

 

 

 

<Sylvia Beach at Shakespeare & Co Paris>

 

 

<1920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조이스와 함께>

 

  

 4. 마지막 작품 <피네건의 경야>1923년경부터 집필하기 시작. 의식의 흐름 기법이 한층 더 복잡하고 심도 깊게 사용되며, 한층 진일보한 실험적 작품. 그는 <인간의 꿈속에 관념과 감정, 음절들이 나타나는, 일관적이지 않은 무의식적인 계기들을 기록하고자 의도했다>고 함. 그래서 이 작품은 17개 국어를 혼용하고, 단어와 문법, 맥락을 모두 파괴한 새로운 형식으로 쓰임. 또한 단일 플롯 외, 주요 하위 플롯들이 다수 존재.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도 꼽힘. <에즈라 파운드><신성한 환상이나 최신 임질약이 아니고서야 이 온통 빙빙 도는 완곡어법을 따라잡을 수 없다>라고 했으며, 소설가 <H. G. 웰스><이 재담과 공상과 섬광들을 감상하려면 몇천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함. 이 작품은 1939년에 출간되었으나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평론가들로부터도 난해하다는 평가만을 받았음.

 

 5. 말년의 조이스는 녹내장과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함. 딸 루시아의 정신분열증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겪음. 그 때문에 루시아의 병을 치료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했고, 무수한 돈을 퍼부었는데, 심리학자 <칼 융>은 루시아의 상태를 진단하고 <맥락 없는 말과 관념들을 결합시키는 조이스의 작가적 광증이 만들어 낸 >이라고 말함. 그런 이유 등으로 그는 알코올중독과 무기력증, 우울증, 신경쇠약을 겪었으며, 그 때문에 <노라>는 두 번이나 가출함.

 

 6. 18934월 동생 스태니슬로스와 함께 더블린에 있는 예수회 재단 그래머 스쿨인 <벨버디어 칼리지>에 수업료를 면제받고 입학. 조이스는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사실상 학생장에 해당하는 마리아회 회장으로 2번이나 선출됨. 그러나 로마 가톨릭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의심을 받고 학교를 떠남.

 

 7. 그는 <헨리크 입센>을 대단히 좋아하여 원본을 읽기 위해 노르웨이 표준어를 배웠다. 그래서 우리 죽은 자가 깨어날 때 Naar vi døde vaagner에 대한 평론 입센의 새로운 극 Ibsen's New Drama18세 생일이 지난 직후 1900년 런던 포트나이틀리 리뷰 Fortnightly Review에 실었다.

 

 8. 어려서부터 문재(文才)가 나타났다. 그 때문에 작가가 될 것을 결심했으며 가족과 친구, 선생님도 인정해주었다.

 

 9. 190110월 아일랜드 문예극장(후에 더블린 애비 극장)이 대중의 취향에 영합했다고 공격하는 평론 민중의 날 The Day of the Rabblement을 출판. 그전에 조이스는 이 극장을 지지했고 학생들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캐슬린 백작부인(Countess Cath- leen)이 이설(異說)이라고 공격할 때도 참가하기를 거부함. 이 무렵 무절제한 생활을 했으나 졸업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라틴어에서 2등급 우등'으로 대학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19021031일에 학사학위를 받음.

 

 10. 글솜씨를 훈련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시를 썼으며, 신이 인간의 눈에 신성(神性)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인 '현현'(顯現 epiphany)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인 짧은 산문 구절로 연습함. 그는 그 말을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묘사하는데 사용함.

 

 11. 그는 실험을 통해 관찰한 대상을 정확히 기록하면서 간결한 문체를 개발할 수 있었다. 창작을 위한 생계비를 벌려고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더블린에서 몇 번 강의에 참석한 뒤, 빌릴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빌려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2주간 강의를 들은 뒤 더블린에서 얻은 자격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와 1개월 동안 휴가를 보냈다.

 

 12. 다시 파리로 돌아가서 의학공부를 포기하고 서평 몇 편을 씀. 그 수입과 영어강의 수업료, 어머니에게서 받은 약간의 송금액으로 <생 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성 토마스 아퀴나스,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대한 미학 이론을 정리함.

 

 13. 1904<조지 러셀>이 아일랜드 배경 단편을 1편당 1파운드씩 주고 농민 잡지 아이리시 홈스테드 The Irish Homestead에 실어주겠다고 제안함. 이 제안을 받아들여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1914)로 출판된 단편을 쓰기 시작함. 그 가운데 자매 The Sisters·에블린 Eveline·경주가 끝난 뒤 After the Race<스티븐 디덜러스>라는 가명으로 발표된 후, 편집자는 조이스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14. <노라 바너클>이라는 소녀를 만나서 <블룸즈데이'(Bloomsday : 그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날>라고 선택한 616일에 그녀와 사랑에 빠짐. 결혼식은 치르지 않고 그녀를 설득해 190410월 더블린을 떠남.

 

 15. 1906~07년의 8개월 동안 로마의 은행에서 일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을 혐오함. 이와 대조적으로 아일랜드는 기분 좋은 곳으로 여김.

 

 16. 동생 <스태니슬로스>에게 보낸 글에서 <자신은 단편 속에 아일랜드 사람의 미덕인 후한 마음을 높이 산 적이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단편 사자(死者)The Dead을 쓰기 시작했다고 함.

 

 17, 그가 말했듯이 <초기 단편>에서는 <더블린의 마비상태를 보여주려고 했으나> 작품에는 말 한마디, 세부항목 하나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함. 그리고 유럽 문학을 연구하면서 상징주의와 사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결과 작품 속에 이 대립된 두 사조가 종합되어 나타나기 시작함.

 

 18. 스티븐 히어로가 예술적 통제력과 형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이라는 제목의 '5개의 장()으로 된 작품'으로 재구성해 집필함.

 

 19. 옛 친구가 1904년 여름에 자신도 <노라>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슬픔에 빠짐. 그러나 다른 친구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밝혀줌. 이때 조이스의 태도는 <코넬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음. 차분한 구절만 뽑아 제임스 조이스의 편지 Letters of James Joyce모음집에 실었는데, 원래의 편지 내용에는 매우 외설적인 내용도 있다. 그는 배반당했다고 계속 느끼고 있었고, 배반이라는 주제는 후기 작품 대부분에서 다루어짐.

 

 20. 이탈리아가 전쟁을 선포하자 스태니슬로스는 억류되었고, 그와 그의 가족은 취리히로 가게 됨.

 

 21. 헌터 씨()에 대한 단편소설로 생각하고 율리시스의 첫 장을 쓰기 시작함. 이때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처음에는 왕립도서기금에서 75파운드의 보조금을 받았고, 그 뒤 <에디스 록펠러 매코믹 부인>으로부터 많은 보조금을 받았다. 에고이스트 Egoist의 편집자 <해리엇 쇼 위버>로부터 계속 보조를 받았는데, 1930년에는 그 금액이 2,300파운드에 달했다.

 

 22. <위버>의 후한 보조는 그의 작품을 좋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겪는 고생을 동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가난에 쪼들렸을 뿐만 아니라 죽는 날까지 눈병을 앓았다. 19172월에서 1930년까지 홍채염·녹내장·백내장 등으로 25차례나 수술을 받았고 아예 눈이 먼 적도 있었다.

 

 23.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활동했는데, 작품 가운데 가장 유쾌한 구절 일부는 건강이 최악일 때 쓴 것도 있다.

 

 24.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책으로 출판해줄 영국인 인쇄업자를 찾을 수 없자, <위버>가 직접 미국에서 인쇄하고 출판했는데 영국의 <에고이스트출판사>보다 먼저 <B.W. 휴브시>19161229일에 역시 미국에서 출판을 했다.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자 19183월 미국의 리틀 리뷰 Little Review율리시스에서 에피소드를 뽑아 출판하기 시작하여 192012월 작품이 판금 될 때까지 계속 출판했다.

 25. 1차 세계대전 뒤 트리에스테로 돌아와 몇 달 동안 지내다가 에즈라 파운드의 초청을 받고 19207월 파리로 갔다.

 

 26. 파리에서는 '셰익스피어사'라는 서점의 주인 <실비아 비치>192222일에 율리시스를 출판했다. 검열문제로 이미 알려져 있던 책이라 금방 유명해졌다. 조이스는 <발레리 라르보>의 강의를 들으면서 비평에 대비함. <라르보>율리시스가 호메로스의 작품 오디세이아 Odyssey와 유사한 구조라고 지적하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특정한 예술과 학문을 취급하며, 독특한 상징이 있고, 인간의 신체 중 특별한 기관을 나타내며, 독특한 색과 ……적합한 기법이 있으며, 특정한 시간에 일어난다>고 평함. 그러나 조이스는 그러한 체계로 출판한 적이 없으며, 실제로 책에서 장별 제목도 빼버렸다. 이 같은 체계는 독자보다 창작할 때 작가 조이스에게 더 유용했던 것 같다. 기법상의 장치가 너무 두드러진 경우가 있었는데, 많은 찬사를 받은 황소 같은 태양(211)에서는 자궁 속의 태아의 성장을 상징하려고 앵글로색슨어에서 근대영어까지 영어 산문 발전단계에 해당되는 모든 단계별 언어가 사용됨. 이 경우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뛰어났으나 전개 과정은 신중하지 못함. 그러나 신문사가 배경인 아이올로스(24) 같은 데서는 수사학을 '예술'로 다룸으로써 그 효과의 강도와 깊이를 더했다. 이 장에는 수백 개의 비유적인 표현과, 사건이 발생한다는 말 대신 무언가가 '불어댄다'(blows up)라든가, 사람들이 돈을 벌 때는 '바람을 일으킨다'(raise the wind)는 식으로 바람에 대한 표현을 썼다. 그 결과 독자들은 산문에서 보기 드문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유명한 마지막 장에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몰리 블룸>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데, 마침표가 없는 8절에 걸친 긴 구절의 효과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최고의 강점은 깊이 있는 인물묘사와 폭넓은 유머라 할 수 있다.

 

 27. 파리에서 쓴 피네건의 경야는 작품 제목이 비밀에 붙여져 19395월 완본이 나올 때까지 '집필 중인 작품'으로만 통함.

 

 28. 딸은 처음에는 약간의 비정상적인 기미만 보였으나 점점 심한 정신병으로 악화됨. 그러자 그는 온갖 치료방법을 쓰다가 마침내 파리 근교 정신병원에 입원시킴. 1931년 딸의 불평을 못 이겨 아내와 함께 런던에 가서 결혼식을 올림.

 

 29. 피네건의 경야는 만족할 때까지 한 구절을 12번 이상 고친 적이 많았다. 글자 하나하나를 면밀히 조사하고 곰곰이 생각해 썼다. 대개 단순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더블린 근처 <채플리저드>에 사는 선술집 주인과 그의 아내와 세 자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험프리 침프든 이어위커 씨><애나 리비아 플루러벨 부인>, <>, <>, <이자벨>은 모든 평범한 가족을 대변하며, 모든 인간이 꿈꾸는 전형적인 가족을 나타낸다. 역사는 순환한다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이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에 미완성으로 남은 문장의 끝단으로 작품이 시작된다. 수많은 꿈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언어는 혼합되어 <애나 리비아의 머리(vlossyhair)>에서 'włosy'는 머리라는 뜻의 폴란드어이고 '바람(a bad of wind)이 분다'에서 'bâd'는 바람을 뜻하는 터키어이다. 문학과 역사 속의 인물들이 '서로 오해하는 마음이 생겨 합작을 반대하는 것'처럼 나타났다가 합해지고 또 사라진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주인공은 더블린 시와 '즉흥적이고 수다스러운 할머니 <애나 리비아>의 협곡같이 미끄러운 활주로에 굽이쳐' 매혹적으로 흘러내리는 리피 강이다. 전편에 걸쳐 조이스 자신이 등장하여 농담을 하고 그의 비평가들을 조롱하며, 자신의 이론을 옹호하고, 아버지를 회고하며 스스로 즐거워한다.

 

 30. 끝까지 마지막 작품에 대한 비판으로 실망하고 있었다. 오늘날 그의 작품만을 취급하는 2개의 정기간행물 중 하나에서 전적으로 피네건의 경야만 다룬다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기뻐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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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James_Joyce_by_Alex_Ehrenzweig,1915_restored>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Love, Loves to Love Love)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221941113)

 

 그는 20세기의 작가 중에서 제일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앞의 <사무엘 베케트>에서 조금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기회로 여기서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언제든 소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고, 다만 그 시기만 결정되지 않았을 그런 위인(偉人)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개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영광>이며, 지금까지 그를 잘 몰랐던 분들에게도 그를 알 수 있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일랜드 위치도>


 

 

 그리고 그 <트리에스테> 개인교사 시절의 생도 중에는 <이탈로 스베보(Italo Svevo)>라는 펜네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로 <아론 에토레 시미츠(Ettore SchmitzItalo Svevo. 1861년12월19일~1928년9월13일. 이탈리아의 작가)>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1907년에 만나서 친구로서 지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비평가로서 오래 교우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스베보><율리시즈>의 중요한 모델이 되었으며, 특히 <스베보>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는유대인의 신앙에 관한 기술(記述)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안질(眼疾)이 심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그 <트리에스테>에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병은 나중에 그를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된다.

 


<스베보>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는 1915년에 <취리히>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프랭크 벋젠(Frank Budgen=Frank Spencer Curtis Budgen. 1 March 188226 April 1971. 영국의 화가, 작가, 사회주의자)>과 평생 친구로 지냈다. 그리고 <율리시즈><피네건의 경야>를 집필했을 때는 <벋젠>의 조언을 구했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 Budgen Zurich 1962>


 

 그리고 또 그곳에서는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030~1972111. 미국의 시인·문예 비평가. T. S. 엘리어트와 함께 20세기 초반의 모더니즘 시 활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는 모더니즘 운동, 특히 이미지즘(Imagism)과 보티시즘(Vorticism)을 추진한 원동력이었다>에 의해 영국의 페미니스트 출판사 주였던 <미스 헤리엇 쇼 위버(Miss Harriet Shaw Weaver. 1 September 1876–14 October 1961. 영국의 정치적 활동가. 잡지 편집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페트런(patron=경제적인 후원자)이 되었으며, 그는 그 후로 개인교수도 그만두고 집필에만 전념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약 25년간에 걸쳐서 수천 파운드를 원조했다.

 


<American poet Ezra Pound. Venice, 1963>

<Harriet Shaw Weaver in 1907>


 

 그런데 그와 <에즈라 파운드>와 처음 만났던 것은 1920년이었다. 그러자 <파운드><예이츠>와 함께 협력해서 그에게 영국 왕실의 문학 기금과 장학금을 받게 해주었다. 그리고 <율리시즈>를 발표할 수 있는 게재지(揭載誌)도 소개해주었던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다.

 종전 후, 그는 다시 <트리에스테>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곳은 완전히 변해있었고, 동생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되었다.(동생은 전쟁 중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리고 1920년에 <파운드>의 초대로 일주일 정도의 예정으로 파리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약 20년간 그곳에서 지냈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자신의 안질(眼疾) 수술과, <루시아>의 조현병(調絃病, 독일어: Schizophrenie, 영어: Schizophrenia) 치료 때문에 자주 스위스를 방문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머물던 동안 <엘리엇><발레리 라르보(Valery Larbaud. 29 August 18812 February 1957. 프랑스의 작가, 시인)> 그리고 <사무엘 베케트> 등과 교류했다.

 

<Larbaud, c.1900>

 그리고 <피네간의 경야> 집필을 할 때는 <유진 졸라스(Eugene Jolas=John George Eugène Jolas. October 26, 1894May 26, 1952. 작가, 번역가, 문학평론가)>와 그의 아내 <마리아 졸라스>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래서 그 부부의 전폭적인 도움과 <미스 헤리엇 쇼 위버(Miss Harriet Shaw Weaver)>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책들은 출판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Maria McDonald Jolas, as a child in Louisville, Kentucky, ca. 1910. She is seated in the middle of the staircase>

 

 그리고 <졸라스 부부>는 전통적인 문예잡지(Transition=literary journal)에 그의 신작(新作)<진행 중의 작품> 또는 <집필 중의 작품(Work in Progress)>이라는 가제(仮題)로 부정기적으로 연재하게 해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중에 완성된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였다.

 그리고 1940년에 나치의 프랑스 점령이 가시화되자 그는 <취리히>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1941111, 십이지장궤양천공(十二指腸潰瘍穿孔)의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그 다음 날 재발했다. 그래서 몇 번에 걸쳐서 수혈을 했던 보람도 없이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113일 오후 2, 잠시 눈을 떴던 그는 다시 의식을 잃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달라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15분 후에 급히 들어왔지만 그 사이에 사망했다. 그러자 <취리히><플룬턴 공동묘지(Fluntern Cemetery)>에 묻혔다.

 

 


 

 


<Grave of James Joyce in Zürich-Fluntern>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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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James_Joyce_by_Alex_Ehrenzweig,1915_restored>

 

 사랑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Love, Loves to Love Love)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1882221941113)

 

 그는 20세기의 작가 중에서 제일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앞의 <사무엘 베케트>에서 조금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기회로 여기서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는 언제든 소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고, 다만 그 시기만 결정되지 않았을 그런 위인(偉人)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소개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영광>이며, 지금까지 그를 잘 몰랐던 분들에게도 그를 알 수 있을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일랜드 위치도>


 

 그 후, 그는 취리히(: Zürich, 스위스독일: Züri. 스위스 최대의 도시)로 갔다(자발적망명). 그리고는 <영국 알선업자>를 통해서 <벌리츠코포레이션(Berlitz Corporation=벌리츠 語学学校. 1878년에 설립된 미국합중중의 어학교육기업.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에 본부가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 자회사를 가지고 있다>의 영어 교사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알선업자는 사기꾼으로 판명이 났다. 그러자 그 학교의 교장이 그 사정을 듣고 그를 <트리에스테(이탈리아어: Trieste, 라틴어: Tergeste, 독일어: Triest, 슬로베니아어: Trst, 크로아티아어: Trst. 이탈리아 동북부의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주에 있는 도시. 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에 있는 항구 도시. 그곳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탈리아령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다>로 갈 것으로 권했다.

 

 

  

 <취리히 위치도- 붉은 점>               <트리에스테 위치도- 붉은 점>


 

<The first Berlitz Language School in Providence, Rhode Island (1878)> 

 하지만 그곳으로 간다고 해도 취직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벌리츠>의 <트리에스테학교> 교장의 배려로 190410월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풀라(크로아티아어: Pula, 이탈리아어: Pola=폴라, 슬로베니아어: Pulj=, 독일어: Polei=폴라이.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주의 도시. 이스트라 반도 최남단에 위치하며 이스트라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 뒤에 크로아티아령>에서 취직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1913년의 영역>                <폴라의 위치도-크로아티아>               


 

 19053, 오스트리아에서 스파이 조직이 적발되었다. 그러자 모든 외국인들에게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러자 그도 추방되었는데, 그때 다시 교장의 도움으로 <트리에스테>로 가서 영어 교사가 되었고, 그 후로 10년 정도 그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해(1905) 7월에 아들 <조지>가 태어났고, 그 후에 동생 스타니슬라우스(Stanislaus)를 그곳으로 불러서 교사로 취직시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못했는데, 그것은 <조이스>의 음주벽과 낭비벽 때문에 다투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런던의 출판사에 <더블린의 사람들> 12편을 보냈지만 출판 거부 당했다.

 19067, 그는 방랑벽이 또 도져서 로마로 가서 은행의 통신계로 잠시 근무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율리시즈>를 단편으로 구상을 하거나 <더블린의 사람들>의 도미(掉尾)를 장식하는 단편 <죽은 자들(The Dead)>의 집필을 개시했다. 하지만 또 19073월에 그는 <트리에스테>로 다시 돌아갔으며, 7월에는 딸 <루시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해 5월에는 시집(詩集)으로 <실내악(室内楽=Chamber Music)>을 출판했다든지 <죽은 자들>을 탈고한 후 <예술가의 초상>으로 개제(改題)했던 자전적 소설 <스티븐 히어로(Stephen Hero)><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의 수정에 착수했다.

 19097, 그는 아들을 데리고 더블린으로 돌아갔는데, 그것은 아버지에게 손자도 보여드리고 <더블린의 사람들> 출판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8월에는 <몽셀 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노라>의 가족과 초대면도 했다. 그리고 <트리에스테>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노라>의 가사(家事)를 도와주기 위해서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에바(EVA)>를 함께 데리고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해서 <트리에스테>로 돌아가고 1개월 후에 그는 더블린에서 최초의 영화관 <볼타(Volta Cinematograph)>를 설립하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사업이 궤도에 올랐던 19101월에 또 한 명의 여동생이었던 <아이린(Eileen)>을 데리고 <트리에스테>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가 없던 중에 영화관은 어이없이 도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에바>는 향수병에 걸려서 수년(數年) 후에 더블린으로 돌아갔고 <아이린>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체코>의 은행원과 결혼했다.

 

 19126<더블린의 사람들>에 수록된 내용 중에 일부를 삭제하고 싶다는 주문이 <몽셀 사>로부터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몽셀 사>의 발행인이었던 <조지 로버츠(George Roberts)>와 상의하기 위해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의견이 달라서 합의를 보지 못했고, 계약은 무효가 되었다. 그러자 낙담(落膽)했던 <조이스><로버츠>에 대한 풍자시로 <버너에서 나오는 가스(Gas from a Burner)>를 쓰고 더블린을 떠났는데, 그 후에 다시 아일랜드를 찾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그 사이에 <더블린으로 돌아가서 영화관을 다시 맡을까?>라든가 <아일랜드산 트위드(tweed=스카치=올이 굵고, 표면이 거친 모직물)>를 수입해보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그의 지인들은 그가 빈털터리였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당시, 그의 수입은 오로지 교사를 해서 버는 것뿐이었는데, 그는 주간에는 <벌리츠 학교><트리에스테 대학=당시에는 고등상업학교>의 강사를 했고, 밤에는 가정교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그에게 배운 제자 중에는 그가 1915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떠나서 스위스로 가려고 했을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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