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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鄭家)가 떠난 밤>


 3.

 사실, 내가 그 동네에서 살았던 것은 약 석 달 간의 짧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동네가 워낙 작아 그처럼 오가며 만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가 있었고, 그러자 또 나중에는 퇴근 후에 그들과 막걸리라도 한잔 씩 나누는 사이까지 발전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세 번째 쯤의 술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는 "아, 안면이 있군요?"하며 먼저 인사를 했고, 그러자 또 나도 엉겁결에 "아, 네, 그때 그 박쥐?"하며 대답을 했던 것이 우리가 나눈 첫 인사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러자 또 옆에 앉았던 동네 청년들이 "이 사람 또 박쥐를 잡았군, 그래!"하는 것으로 그날의 첫 상견례는 치러진 셈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는 그 길로 남자들이 으레 하듯 술자리에서 쉽게 친해져서는, 제법 가까운 사이까지 가게 되어갔다는 것이 그와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그로부터 얼마 후에 그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말로는 저녁이라도 한 끼 같이 하자는 것이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그 초대에 흔쾌히 응했고, 그렇게 해서 그의 부인과도 인사를 하게 되어 그 후로는 수시로 서로 간에 왕래가 잦게 되었던 것이다.

 "김 형도 잘 아시겠지만, 사실 객지 생활이란 게 그렇게 녹녹한 게 아니에요. 왜, 고향 떠나면 고생이란 말도 있질 않습니까? 그리고 저도 할 수 없이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것이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야 할 텐데, 하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잘 안돼요. 아마도 이젠 이곳이 정이 들었나 봅니다..."

 "아무튼 김 형! 이렇게 알게 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봅시다!"

 그러나 그는 박쥐에 대한 나의 물음에는 입을 닫았다.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통달한 듯했던 <박쥐사냥법 강의>와는 달리 유독 그 부분에서 만큼은 함구했고, 나는 또 본인이 이야기 내기를 꺼려하는 것을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어 그 후로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삼갔던 것인데, 아무튼 그 후로는 별 허물없이 서로 간에 접촉하는 일이 잦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그가 우연을 가장해서 스스로 찾아오는 것으로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청하지도 않은 술자리에 끼어들 때는 나를 핑계로 슬그머니 참석을 해서는 동네 청년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것으로 나와의 만남은 지속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뒤에 안 것으로, 그는 그 동네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가 나타나면 마지못해 서로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고, 특히 술자리에 나타났을 때는 무언가 모두들 말은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를 조금 꺼려하는 듯한 눈치를 읽을 수가 있었으며, 그가 또 당시 실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태라 그랬는지 동네에 달랑 두 개 뿐이었던 가게에다 외상값도 채울 만큼 채워놓고 있어서, 한 가게의 주인은 그를 보던 눈빛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도 그런 것을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도, 그는 그런 자리에 억지로라도 참석치 않으면 달리 어디 가서 술도 한잔 제대로 얻어먹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내심 그런 그가 이해되기도 했던 것인데, 그래서 또 언젠가는 그런 그가 측은해 보여서 내가 대신 외상값을 갚아주기도 했고, 돈도 못 받을 줄 알면서도 일부러 꿔주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몇 번에 그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나의 호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져서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그는 곧 원래대로 돌아간 듯 보였고, 다시 곤궁해져서는 부부 싸움을 하는 일도 잦아지는 듯 보여, 옆에서 지켜보던 나로 하여금 우울함을 느끼게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또 그럴 때면 으레 나의 거처로 찾아와서 "김 형, 오늘 술 한 잔 사 주세요!"하던 그였기에, 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동네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그가 그렇게 곱게 만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는 것으로 나에게는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 등이, 그 이유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김 형, 왜 만날 그를 도와줘요?"

 그리고 어느 날, 동네 청년 한 명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예? 내가 도와준 게 뭐가 있다고!"
 "뭐, 내가 보니 술이며 돈이며 그가 요구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 같던데. 그리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그러면 오히려 그 사람 버릇만 나빠져요. 아무리 지금 세상에 자신이 노력을 해서 먹고살아야지, 매일 빈둥거리며 놀면서 박쥐나 개구리 같은 것이나 잡고, 산에 가서 이상한 나무 같은 것이나 베어서 오고, 그게 어디 젊은 사람이 할 짓이요? 어린아이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자 또 다른 청년이 이렇게 거들었다.

 "아, 그 개구리. 그 정말 맛있던데? 한번은 그 사람이 개구리를 잡아와서 나하고 같이 먹자고 하잖아? 그래서 같이 구워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더라고? 그런데, 그러더니 그 사람 나보고 슬쩍 하는 말이, 술은 날더러 사라고 하는 거야, 하하하... 내참 기가 막혀서!"
 "뭐? 그걸 같이 먹었다고? 이런 등신!"

 그러자 또 다른 청년이 이렇게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박쥐는 잡아서 어떻게 한 거지? 자기가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던데?"
 "모르지, 어디 내다 파는 건지도!"

 아무튼, 그들의 그에 대한 비난은 이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마을에서 그 정도의 말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제외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어서 나는 그에게 더욱 동정이 갔던 것인데,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동네 청년들이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만은 없었던 장점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또 도시(都是) 내가 들었을 때는 사기성이 농후한 발언들로 밖에는 들리지기 않아 듣고 앉았던 자리가 민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는 그런 것들을 어디에서 다 듣고 왔던지, 술자리에서 곧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거나 정치 이야기 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앞으로는 어떤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 등의 사이비 적인 종교 관에 가까운 말까지 거침없이 해댔고, 또 마치 자신이 그런 것들을 다 이룰 것인 양 큰소리를 치곤 했던 것이 그런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이상했던 것은, 그런 그의 이야기를 못 미더워 하는 것 같았으면서도 그 사람들에게는 먹혀 들어갔던지, 그 이야기들을 그들은 끝까지 듣고 있었더라는 것이, 그리고 또 내심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더라는 것 등이 그런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 이유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서 물에 뜬 기름과도 같은 존재로, 그러나 영원히 그 물과 합쳐지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또 그 물과 공생하는 관계로 그 동네에 남겨져 있었고, 아마도 그래서 그는 청하지도 않은 술자리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타나서는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가 있었던 것으로 나에게는 보여졌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그런 묘한 구석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사는 형편은 그의 그 장대하고 거창했던 예견이나 비전(vision) 혹은 논리와 자꾸 멀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또 그를 어쭙잖은 몽상가로 그 동네에 남겨지게 하는 이유 같은 것으로 내 눈에는 보이고 있었는데...

 "김 형! 내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렇지만 아직 계획 단계라 지금 당장 밝힐 수는 없고, 아무튼 조만 간에 어떤 일을 하나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만 잘되면 내 김 형을 섭섭하게 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좀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또 언제가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금방이라도 그가 무슨 일을 터뜨릴 것만 같아 기대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야 생각하기로 <그것도 사기였을 뿐이었던가?>하고 생각은 하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그런 사람을 사로잡는 무슨 힘 같은 것이 있는 듯 했고, 그래서 또 당시의 우리들은 모두 그의 그런 매력에 넘어가고 말아, 나뿐 만이 아니라, 그리고 나는 솔직히 순수한 심정으로 그를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동네의 다른 청년들도 다 나 같은 심정이 되었던지 그의 그런 말을 믿고 그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곤하며 지냈던 것 만은 부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래서 아마도 그들의 분노가 더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그가 그날 밤, 그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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