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鄭家)가 떠난 밤>
4. 아무튼, 나는 그가 다녀간 후부터는 제법 긴장을 했던 때문인지, 이런저런 생각에 자리에 누워서도 몸만 뒤척이고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경험으로, 일련의 일들은 어쩌면 그렇게 이어지지 않고 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인지, 그가 찾아오기 전의 그런 몽롱했던 상태와는 달리 이번에는 긴장이 되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 그가 그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일까?> <왜 그는 칼을 지닌 채로 나에게로 왔던 것일까?> <밤늦게 돈이 그렇게 급하게 필요했던 이유는?!...>
나의 의문은 그렇게 밤이 깊도록 이어졌지만, 그러나 내가 그 정황만으로 밝힐 수 있다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토록 그란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여태 그의 껍데기만 보고 왔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것이 정확한 결론이라 여겨지는데, 어쨌든 나는 그런 저런 생각에 그날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는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회사에서 돌아 와보니 동네 청년 둘이 가게 앞 평상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내가 나타나자 급히 자리를 청했다. 그리고는
"김 형! 그 소식 들었소?"
하고 급히 물었다.
"네? 무슨 소식이요? 난 못 들었는데?"
그러자 나는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었던 박(朴) 씨의 말에 이렇게 대답을 하고는 건네주던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러자 또 박 씨가 이렇게 말을 했다.
"아, 그 정(鄭) 씨 말이요! 그 사람이 어제 밤, 야반도주를 했다는군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리고 정말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사람 우리한테 진 빚도 있고, 가게에도 외상값이 그렇게 많았다는데. 그리고 또 솔직히 우리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 해줬소? 그런데 그렇게 도망을 치다니! 그리고 그 마누라도 마찬가지요!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디 잠시 나간다고 하면서 여자가 먼저 집을 나갔다고 하고, 나중에 그 정(鄭) 씨가 짐을 챙겨나가서는 어디서 합쳐서 도망을 간 모양인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이야기라도 했어야지 그런 법이 어딨냐고 안 그래?"
그러자 또 옆에 앉았던 이(李) 씨가 다소 흥분한 듯 이렇게 말을 하고는 술을 들이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때서야 그 사건의 전말을 조금씩 알아갈 수가 있었고, 정가(鄭家)가 왜 그렇게 전날 밤 그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모두들 겉으로는 그를 외면하는 듯 했으면서도, 그러나 속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모습을 닮아주길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고 있었는데, 그리고 또 그의 '박쥐사냥' 때의 유유했던 모습과는 달리 많지도 않았을 짐보따리를 지고서 그 길고도 길었을 동구 길을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두려워하며 그 어두운 밤길을 달려갔을 그를 생각하니 나는 가슴이 아려서 도저히 술잔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어째, 김 형은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거란 걸 전혀 눈치 못 챘소? 두 사람이 제법 가깝게 지내는 것 같던데?" "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제가 두 분과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다른 분들과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혹시라도 그 사람이 김 형에게는 무슨 귀띔이라도 했던가 해서."
박(朴) 씨는 혹시라도 자신이 말을 잘못해서 나의 심기라도 건드릴까 싶었던지 금방 변명 같은 말로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서 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어차피 정가(鄭家)나 나나 그 동네에선 뜨내기거나 타인들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언제 그런 일을 저지르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그들에게는 이해되고 있었다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었고, 그것으로 또 그들은 나에게 주의를 주는 것으로 나에게는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조만간!...>
하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빠르게 가로질러 갔던 것도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였다. 아직 정가(鄭家)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런 사람이 어딨어?!" "아, 어르신 나오십니까?"
박(朴) 씨가, 그 정가(鄭家)가 살던 집의 주인이자, 그 동네의 어른들 중 한명이었던 김(金) 영감이 나타나자, 대번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김 영감이 또 이렇게 말을 했다.
"음, 그래. 그리고 내 오다 들었는데, 자네도 잘 모른단 말이지?" "네, 저도 지금 듣는 이야기라..." "나쁜 놈!..."
김 영감도 그 동안 말은 없었어도 내가 그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던지,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이를 갈듯이 나를 노려보는 채로 그 정가(鄭家)의 욕을 했다.
"아마, 어르신 댁에 밀린 방세도 제법 되죠?"
그러자 또 그때, 이(李) 씨가 인사가 늦어서 이제야 아는 척을 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말을 하자, 김 영감은 대답대신 그를 흘낏 쳐다보고는
"꿍..."
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떠난 후였다. 그리고 이제 와서 누구에게 하소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었다. 그리고 또, 그래서였던지 김 영감도 가지도 앉지도 못한 채 그렇게 서서는 우리를 한 번씩 둘러보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어르신 나오셨어요?"
그리고 또 그때, 가게 주인이 김 영감의 소리를 들었는지 급히 밖으로 나오면서 이렇게 인사를 했다.
"음... 그래, 자네에게도 외상값이 제법 있었다지?" "네, 제법 되죠. 하지만 그깟 것은 잃어버린 셈 치면 되지만, 그 인간이 불쌍해서..." "뭐?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또 못된 짓이나 저지르고 다니겠지. 그러니 당하는 사람만 불쌍하지!" "아, 그야 그렇지만..."
김 영감은 한 소리 지르고 나니 속이라도 좀 풀렸다는 듯, 줄 끊어져 날아가는 연(鳶)을 아쉽게 바라보듯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있었다. 그러자 또 가게주인이 이렇게 말을 했다.
"하여튼,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거라니까? 하지만 영감님은 그 사람 덕분에 박쥐는 실컷 자셨잖아요? 저는 그것 구경밖에는 못했는데!" "뭐, 박쥐? 아니, 근데 이 사람이?..."
김 영감은 가게주인이 박쥐라는 소리를 내자 발끈 화부터 냈다.
"아뇨, 전 그저..." "아, 그럼 그 박쥐를 영감님 드리려고 그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잡았던 거로군요?!"
그러자 또 그때, 눈치도 없이 박(朴) 씨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 끼어들었다. 그리고 또, 우리는 그때서야 그 박쥐의 행방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래서 또 아마도 그 정가(鄭家)는 밀린 방세를 어쩔 수가 없어서 그것이라도 잡아서 김 영감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환심을 사고는 그렇게 근근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나에게는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흠, 그런 소리하지 말아! 그리고 그 몇 마리 되지도 않는 박쥐, 광에 그대로 있으니 먹고 싶으면 자네들 가져가서 먹어라구!"
김 영감은 갑자기 속을 보인 것 같았던지 이렇게 뱉듯이 말을 하곤 어둠 속으로 총총하게 사라져갔다.
"영감님께서 눈이 좀 좋지 못하신가 보죠?" "응, 글쎄!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갑자기 침침하다시면서 그 사람에게 그것을 부탁했던 모양이야! 그래 놓고는 저렇게..." "네, 하지만 노안이실 텐데?" "모르지 뭔지! 아무튼 천천히 들 들어, 난 들어갈 테니까!"
가게주인은 김 영감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내가 한 말에 그렇게 답을 하곤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술자리도 그때부터는 썰렁하게 변해갔는데, 그러나 그것은 비단 그 정가(鄭家)의 일 때문만은 아닌 듯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었고, 나는 그런 중에도 다른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그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한 몽상가의 또는 불성실자의 그리고 또 어쩌면 한 사기꾼의 마지막 카드 즉, 도주 극에 불과했던 것일 뿐이었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으레 있을만한 그런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에게서는 그 일이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나의 입장이, 그리고 비록 그 자리에서 말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과는 달라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그가 나를 찾아왔던 것은 어쩌면 그가 나를 그만큼 믿었던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는 그 동네에서는 어디 마땅하게 찾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또 제일로 만만했을 나를 택해서 그렇게 왔다고 볼 수도 있었고, 그것은 또 자신의 그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 나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칼은!...>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그를 느끼기에 그는 그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우발적인 또는 홧김에 어쩐다고, 술을 마신 김에 궁지에 몰린 기분을 그렇게 풀어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제 영원한 의문이 되고 말았고, 그것으로 나는 평생 그 의문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 정가(鄭家)는 정말로 나를 죽일 목적으로 그렇게 찾아왔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또 내가 그것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면, 그는 정말로 나에게 칼을 들이댔을 것인가?!------------->
나는 그날, 그들과 어울려서 술을 제법 마셨는데도 그날 밤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가져간 녹음기라도 팔아서 차비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개운치 않은 뒷맛은 여전했고, 금방이라도 그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아서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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