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빅
필립 K. 딕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약리학시간에 배운 인류가 원하는 두 가지  궁극적 약물은 만병통치약과 부작용 없는 마약이다. 인간은 통제를 원하는 존재이며 그 통제의 소망의 끝에는 자신의 생명과 감각에 대한 통제가 있다.  생명을 연장하며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쾌락을 유도하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고작 이 정도의 수준이다. 1966년 출판된 이 책은 필 딕의 개인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히피와 마약의 시대에 씌여진 것이다. 마약이 통제하는 감각의 세계에서 누구나 행복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인간 조건 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한 시대였다.

인간이 생명까지를 통제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감각과 생명을 통제한 상황에서 또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1960년대에서 바라본 1990년대는 드디어 인간의 생명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연장하여 조절할 수 있게 되는 시대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기계론적 이해에 근거한다.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도 컴퓨터 바이러스가 침범하거나 방어해야 하는 기계처럼 하나의 기제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기계론적 정신의 획득은 인간의 정신을 죽음의 생체적 한계에서 얼려 보관하는 형태로 붙잡아 둘 수 있게 만든다. 인간은 다시 불행하다. 정신을 지켜야하고 침입자로부터 지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하고 다시 이것을 위한 노동을 해야만 한다. 마약 때와 동일한 쳇바퀴 돌기다. 인간은 하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번거로운 일만 늘어난다. 더욱이 정신을 기계론적으로 파악하여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간은 타인의 정신을 조작하는데 더 관심이 있다. 생명을 정신의 보존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겨우 생명과 정신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이 산업 역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소모되어가는 생명을 청소하고, 새로 들어오는 사체를 수용할 능력을 높혀 가동률을 올려야만 한다.

딕이 이야기하는 미래 세계의 감각의 통제나 생명의 통제도 인간 조건을 바꾸지는 못한다. 무엇이 인간을 이렇게 가두어두고 있는가? 구원의 방법은 없는가? 필립 딕은 그의 작품들을 통해 끊임없이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가 보는 인간의 구원은 시간을 벗어나는 것, 혹은 선한 의지의 대물림으로 후손에게로부터 올 구원자에 있다. 그렇다면 선한 의지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나 있는가? 유빅(Ubik)은 세상을 떠받히고 역행(엔트로피의 증가)을 통제하고 있다. 유빅은 선한 의지에 의해 지속된다. 유빅은 어딘가 있고 어디나 있다.

이제 인간은 유빅(선한 의지의 산물, 생명의 근원)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해질 것인가? 사실 우리는 필립 딕이 이야기하는 유빅에 의해 지탱되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유빅에 의해 생존하면서도 불만뿐 인 것이 우리 스스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조건인지 모른다. 우리의 이 악한 힘은 은밀히 방치되면 죽음 혹은 소멸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유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오래된 거짓말이다.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 유빅은 아무런 요구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소유하기 위한 삶이 아닌, 이웃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울 때 유빅은 어딘가 있고 어디나 있을 것라는 구원자의 말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 비룡소 클래식 18
에디스 네스빗 지음, H. R. 밀라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원작이 된 이 책은 1902년 영국의 여성 작가 에디스 네즈빗의 작품이다. 어릴때부터 형제들의 건강이 좋지 않아 태어난 런던이 아닌 시골과 외국에서 자란 네즈빗은 그 때의 경험을 이후 그녀의 작품에 많이 반영한다.

 어릴 적 그녀의 남매들과의 경험을 배경으로 함에 틀림없는 이 소설은 다섯 남매들이 우연히 모래 채석장에서 만난 기괴한 모양의 요정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이 요정과의 만남으로 다섯아이는 왠갖 종류의 사고와 해프닝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서로 의지하고 그런 일들을 각자의 역할을 맡아가며 해결해 내는 이 아이들은 사실  어떤 일이라도 서로를 믿고 의지해 나가면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쁜 것도 돈이 많은 것도 날 수 있는 것도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리 행복해 지는 길은 아니었고 도리어 병사든 인디언의 공격이라도 서로 힘을 합치면 넘길 수 잇는 문제였던 셈이다. 아이들이 원한건 결국 매일 이루는 소원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가족의 안녕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삶을 원했다. 정말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우리네 삶이란 동심도 잃고 아이들에게서 동심도 빼앗는 삶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음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죽지 않고 불현듯 삶의 모퉁이를 돌 때 우리에게 깨달음들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글쓰기는 잊혀진 기술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누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기표현법인가? 많은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진정 읽을만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이 없는 것은 글에 감정의 표출이 아닌 자신의 심정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써 내려간 글이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며 그것을 읽는 상대의 시간을 아깝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런 글쓰기를 뜻하는 것이리라.

제목에서도 보여주듯이 책의 주제는 질보다는 양이 글쓰기 연습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원고지 10장, A4 1장은  운동으로는 10km의 기본체력이며 이 체력이 있어야 비로소 글쓰기라는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본거리는 단순히 뛰어서 가능한 거리는 아니다. 계획이 있어야만 한다. 글은 기승전결 중 전이 생각하는 순서로 가장 먼저이고 중요하므로 이것을 근간으로 글의 구성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중심 생각에 근거한 창작메모로만 장거리를 뛰는 것이 가능해 진다. 그리고 근간의 생각을 정하고 계획이 생기면 다시한번 양이다. 쓸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꺼리가 생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의 양도 사실은 생각의 깊이와 연관되기는 마찬가지다.그 문제에 대해 끈기있게 생각하는 것이 문장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창조적 생각과 자기만의 견해를 갖는 글을 쓰는 방법은 독서와 연결끈을 찾기 위한 사색이다. 남의 글을 읽으면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연결되어 글쓰기꺼리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자기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독서. 즉 키워드를 정하고 읽는 것이다. 그저 읽는다면 아무것도 자신의 삶에는 와닿지도, 자신의 사고를 풍성하게도 하지 못하는 독서가 되고만다. 키워드 정하고 메모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주제와 책이 제시하는 주제를 연결시키는 행위이다. 사이토씨는 이것이 객관과 주관의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책의 핵심을 파악한 후 자기흥미 부분 찾으면 자기 색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서로 다른 키컨셉 (하고 싶은 말) 3가지를 연결하는 논리를 찾는 사색놀이이다. 3가지를 연결하는 방법은 누구나에게 독창적일 수 밖에 없다. 세가지 키컨셉 연결이 자신만의 잠재의식을 깨워 남과 다른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의 틀 위에 써진 글이라야 남의 시간을 허비시키지 않는 글이 될 자격이 갖추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생각 위에 차례로 건물을 올려간다. 레쥬메 작성은 각 항목마다 무엇에 대해 쓸지 백자 이하로 적어 놓는 것이다. 장-절-항목을  대강 파악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참고로 자료를 찾는다고해도 명확히 무얼 찾을지가 정해진다. 키워드 키컨셉으로 키프레이즈 (글 전체가 말하고 싶은 한마디)가 만들어지면 이 글은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같은 키프레이즈와 레쥬메를 가지고도 본격적인 글쓰기에서는 전혀 다른 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문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문체는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사람마다 문체가 다른 것은 포지션 설정-자신과의 거리-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생각만을 가르치려하는 사람, 우물쭈물하는 사람,  사실만 나열하는 사람. 이것은 주관과 객관의 균형유지의 문제다.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것이 수동적 영향을 능동적 자기생각으로 반전시키는 것이라면 스타일은 이런 영향과 자기생각의 긴장을 즐기는 행위이다. 글쓰기가 단순한 일회적 작업이 아닌 평생의 내공의 축적인 이유는 자기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문체의 변화를 시도하는 재미들이 앞으로의 글쓰기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남과 다른 나를 만든다. 빌헬름 딜타이의 말대로 남들이 제시한 개념이라는 것, 틀이라는 것을 들이대지 않고 삶의 연관과 집합적 전체를 바라보도록 하는 눈을 가지는 훈련이다. 사이토씨는 이것을 10장을 써내는 힘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표현한다. 자기만의 관점과 할 얘기가 있을 때 비로소 상세한 가지들과 이런저런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기주장을 써내려가는 10장의 분량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를 완성하는 시간 아침 30분
다카시마 데쓰지 지음, 김현영 옮김 / 티즈맵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은 여러 실용서적들이 많이 나오는 나라이다. 지하철에서 읽기편한 이런 책들 가운데 꽤 쓸만한 내용의 책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썩 그러지는 않다. 건질 것은 아침시간이 중요하다는 것과 아침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그 외에는 실용서로도 부족한 느낌인 책다.

내용의 핵심은 아침 시간은 효율이 2배이므로 이 시간에 집중하자는 책이다. 아침시간의 활용 위해 조금씩 깨는 시간 앞당기고 습관이 되게 하며 잠자는 시간을 조절한다. 아침의욕(작업흥분)을 활성화하려면 효율을 위해 아침에 할 일은 전날 치우지 말고 놔둔다.  목적의식을 명료화하고 자기동기를 부여한다. 아침 워밍업으로 웃자, 걷자, 따뜻한 샤워,수분 당분 섭취를 권한다.

오전에 80%의 일을 마치고 오후는 씨뿌리기 시간으로 혹은 30분의 낮잠 시간으로 활용한다. 공부를 이런 페이스에 맞추면 훑어보기(저녁)-이해(아침)-정리(오후)가 된다. 이런 아침 생활의 지속을 위해 자기 보상으로 [아침의 즐거움]을 부여하여 일찍 일어나게 하고, 수면 리듬을 이해하여 수면 질을 높히는 팁을 제시한다.

앞으로 이 책이 동기가 되어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게 된다면 책값은 아깝지 않을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계명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 개혁 신학의 젊은 기수 마이클 호튼 시리즈 3
마이클 호튼 지음, 윤석인 옮김 / 부흥과개혁사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십계명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으면서도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며 살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십계명에 나타난 간음, 탐욕, 살인, 도적질, 하나님의 자의적 숭배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드러나건 숨겨지건 비일비재함을 지적한다. 자본주의하의 현대 기독교에 이르러서는 이런 기준에 편승하여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써 심리적 사회적 목적의 종교생활을 하고, 죄는 이미 해결된 문제로 치부하여 죄를 알지 못하는자와 방불한 삶을 살고 있다는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를 죄인으로 인식하게 하며 그로 인해 은혜를 필요로 하게 하신다. 죄를 인식하는 것은 칭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닌 우리를 궁극적으로 부르시는 성화의 과정에서도 우리가 어떤 존재로 거룩하게 만들어지고,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얼마나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깨닫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나타나 있는 십계명은 우리로 우리의 죄인됨을 알게 하는 의미를 갖는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해 감에 있어 믿음의 역할을 오해하여 자의적 노력에 힘을 쏟고 그 실패에 의아해하며 다른 붙들거리를 찾고자 했었다. 이제 완성됨을 여기서는 보지 못할, 그러나 은혜로 완성될 것을 믿으며 그의 자녀로 죄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죄악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나의 모습과 사람들의 군상을 보며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알아가게 된다. 

불쑥불쑥 솟는 악의와 복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녀되었음의 큰 축복 아래 있음을 알게 된다. 용서함 받음을 아는 것은 우리가 용서하는 자가 되는 이유이며, 거룩한 자로 여김을 받는 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이유가 되고, 사랑받는 존재임을 아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죄인임을 아는 것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고 부름에 동행하기를 권하는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