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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성의 과학, 싱크 Sync - 혼돈스런 자연과 일상에서 어떻게 질서가 발생하는가?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 조현욱 옮김 / 김영사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과학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심오한 현대과학의 발견에서 쇼킹한 측면을 부각하여 판타지를 읽을 때와 같은 환상을 경험하게 하는 책으로, 이런 책의 극단에 폴 데이비스의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나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가 있다. 또 하나는 과학에서 현실적으로 뭔가 유용한 것이 있음을 알려주는 책으로서, 각종 공학관련 서적이 그 극단에 해당된다. '동조'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다룬 본 책은 그 양극단 사이의 정가운데쯤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굉장히 성공적인 양다리 걸치기라는 점을 먼저 말해 둔다.
많은 경우 그러하듯,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몇 달 전 신문의 책리뷰를 보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반딧불이 수천마리가 동시에 깜빡거리는 현상, 룸메이트끼리의 월경 동조, 인간 심장의 박동세포가 서로 박자를 맞추는 일 등, 리뷰는 일견 불가사의해 보이는 여러 동조현상들을 이 책이 다루고 있다고 했다. 그 리뷰를 보고 이 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솟아났는데, 그것은 과학주의자면서 과학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나의 이중적 심리상태가 과학주의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과학주의를 뛰어넘는 무언가라는 것은 아마도 결정론에 대한 반박, 기계론적 관점에서는 매끈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파도와 같은 결이 존재한다는 주장, 뭐 이런 따위의 것들일게다. 만약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딧불이 수천마리가 정말로 동조를 한다면, 시간의 모습은 미끈한 화살에서 주기적인 마디를 가진 대나무로 바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반딧불이가 무더기로 깜빡이는 현상을 설명할 때, 반딧불이가 서로의 주기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가? 과학자에게서 시간이 울퉁불퉁하다는 주장을 기대하다니...' 물론, 반딧불이의 동조에 대한 이 한치의 빈틈도 없을 듯한 과학자의 설명은 기가 막히게 완벽했다. 그 설명에는 시간을 구부러뜨릴 이유도, 결정론을 포기해야 할 까닭도 없었다. 모든 과학적 토대는 지엄한 왕좌에서 당당하고 굳건하게 꿈쩍도 않고 버티고 있었다.
과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스릴있는 내용은 없었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심오한 주제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일리야 프리고진, 제임스 글리크 등의 저서를 접하면서 광적으로 사로잡혔던 매혹의 비선형 세계. 만델브로트 세트의 한없이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무늬로의 여행. 용어부터 흥미로운 '이상한 끌개 (strange attractor)'... 이러한 이국적인 과학 - 카오스, 복잡계 과학 - 에 '동조'라는 새로운 주제가 첨가된 것이다. 극소로 오그라드는 앙코르와트라 할만한 프랙탈의 무시무시함에 비하면 동조 현상은 너무 친근하고 별다르게 신기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책이 '좁은 세상 네트워크'를 다루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르자, 나는 다시 과학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딱딱한 지적 엑스타시를 맛볼 수 있었다. 다만, 약간의 판타지가 결여된... 이를테면 사회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주제가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도출되는 곡예. '겹침이 없는 세상이란 사회 구조나 가족이나 공동체가 전혀 없는 세상일 것이다.' '좁은 세상으로 바뀌는 것을 국지적 수준에서 알아차리는 것은 원래 불가능하다.' '독재 정권의 손에 들어가면 동조는 인간 이하의 모든 것을 상징하게 된다.' 등...
언제나 그렇듯, 과학책은 끝에서 나를 실망시킨다.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과학주의에 대한 환멸'과 연관되어 있는데, 거의 모든 거창한 과학책이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내비치며 끝맺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인간의 생각을 동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사랑이, 분노가 모두 뇌파의 합창 레파토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나는 진화론을 거부한 창조론자처럼 서글픈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해가 거듭될수록 자유의지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과학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을... 그리고 과학주의자로서의 나의 반쪽이 무표정한 얼굴로 과학주의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것을...
'로렌츠는 자기 방정식의 궤적이 특정한 넓은 영역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무한대 속으로 달아날 수는 없다. 이 속에 갇혀서 영원히 순한하되 스스로를 교차할 수는 없는 게 궤적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