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민주적인 소통방식인가? - 질문 자체가 잘 못 되었을 수 있다. 블로그는 소통방식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라캉이 말한 것처럼, 그 가치를 인정하리라 예상하는 '환상 속의 상대자'에게 보내는 '부치지 않은 편지'에 가깝다. 이메일처럼 특정 상대자에게 보내는 형식도 아니고, 게시판처럼 불특정 상대자에게 공개하는 형식도 아니다. 블로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가게처럼, 아무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 아바타나 아이디가 사이버 공간상에서 개인에 상응한다면 블로그는 사이버 공간상에서 가게에 상응한다. 집은 아니다. 집은 그 대문을 열어놓고 누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통하지만, 사실 온갖 손님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자작 수공예 상품들로, 때로는 기성 히트 상품들로 진열장이 가득 찬 자그마한 쇼핑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기도 하다. 꾸준히 다듬어 상품가치를 높여서 시장에서의 경쟁을 뚫고 많이 팔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방문자수와 댓글수가 이윤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의 이윤이 적정 선을 넘어서면 다시 새로운 자본으로 재투자되고, 여기에 블로그 주인장의 근면한 노동이 결합되면, 양의 피드백 회로가 작동되어 결국은 블로그의 거대기업화를 이끌어 낸다.

블로그의 거대기업화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그 하나는 주인장의 부지런함. 또 하나는 주인장의 글솜씨다. 부차적인 요인이 몇 가지 더 있는데, 그 중에 주인장의 사교성은 앞서 말한 두 가지 요인보다도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몇 가지 요인들에 의해 매일 방문자 수가 수백에 총 방문자 수가 백만에 육박하는 초거대 블로그와 매일 방문자는 거의 자기 자신뿐인 망한 블로그가 갈린다. 그런데, 그 분화는 몇 가지 요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카오스 이론의 사회과학적 연구대상이라 할 정도의 비선형성이 그 특징이다. 블로그의 이러한 비선형적 양태는 매우 훌륭하고 주옥같은 글이 담긴 블로그가 방문자 수에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그런 블로그가 되는 이유가 된다. 다이아몬드로 가스층을 형성하였지만 임계 질량에 미치지 못하여 그냥 성운에서 진화가 멈춘, 되다 만 별의 꼴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동역학에 의하여, 눈물나게 훌륭한 글에 추천이 겨우 한 두개 밖에 달리지 않는 경우를 심심챦게 본다. 그러나 좋은 글이라면 추천과는 상관없이 '이주의 마이리뷰'로 선정될 수 있었기에, 나같은 게으름뱅이도 이렇게 훌륭한 글, 그리고 서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주의 마이리뷰'도 추천수로 선정한다고 한다.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을 앞으로는 보기 힘들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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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저도 동감하는 문제이구요. 정말 좋은 글을 쓰신분들중 ..블로그를 안하시는 분들은 돌아오시라는 의미로 꼭 즐찾을 해놓아요.. 정말 놀라운 글들은 묻히는 경우가 많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그런분들 글을 좀 퍼와서 출처 밝히고 선전이라도 하고 싶은..그런데 추천수로 정하다니.. 너무하는군요 라는 말밖에는 ..!!

전자인간 2007-07-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결정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라딘도 역시 하나의 자본주의적 기업일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에, 괜한 기대는 하지 않는게 낫겠다고 조용히 읊조리기도 합니다.

마늘빵 2007-07-2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를 그렇게 추천수를 통해 선정한다고 발표를 했었는데, 몇몇 분들이 - 저도 포함 - 그렇게 하면 공정하지 않을 것 같고 부작용이 따를 것 같다고 지적했답니다. 서재지기님들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는 마을지기님이니 좀 더 기다려봐도 될 듯 합니다.

근데 한가지 질문, 서재권력 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저는 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만, 저 단어를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현재 토론때마다 가끔씩 등장하는 언어인 서재권력 이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전 이걸 허구라고 보거든요. 없는데 마치 있는것처럼 꾸밈으로써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는거 같습니다. 전자인간님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전자인간 2007-07-26 08:05   좋아요 0 | URL
제가 뭘 안다고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십니까요? ^^ 허접한 답변이 될 우려를 무릅쓰고 간단히 답변드린다면...
'권력'을 들뢰즈적인 이론틀을 빌어와서 (어줍잖게) 정의하자면, '리좀형태로 탈주하는 욕망의 궤적을 홈패인 공간에 가두는 안티-욕망의 장(field)' 쯤이 될라나요?(뭔 소리지?) 어쨌든 말씀하신 '권력'이라는 것이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위와 같은 정의를 내려 봤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알라딘 거대 서재가 타자의 욕망을 억누르고 홈패인 공간에 가두느냐 여부가 아프락사스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겠지요. 이건 서재 주인장에 따라 갈릴 문제라고 봅니다. 타자의 욕망이 서재 주인장의 욕망의 탈주선과 서로 교차하면서 제 삼의 탈주선을 긋는다면, 그것은 '권력'보다는 '기계(들뢰즈가 말했던 의미로서의)'로 불리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이겠지요. ^^

마늘빵 2007-07-26 12:54   좋아요 0 | URL
아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들뢰즈는 영... 몰라서;;;

전자인간 2007-07-26 13:00   좋아요 0 | URL
요는, 서재 주인장에 따라 다를 거라는 말씀입니다. ^^

마늘빵 2007-07-2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고 추천하고 찜 좀 하겠습니다. :) 님 덕분에 생각할 꺼리가 하나 더 생겼어요.

투명고냥이 2007-07-2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주의 마이리뷰의 선정 방식의 변화는 결코 좋지 않은 방법이네요.
아프라삭스님 말씀처럼 되면 좋겠네요.
쓰신 글 무척 잘 읽고 동감합니다.

전자인간 2007-07-26 08:06   좋아요 0 | URL
네, 추천수로 '이주의 마이리뷰'를 뽑는 방식이 관철되면, 개인적으로 알라딘, 참 재미없어질 것 같습니다. 아프락사스님같은 분들이 반대하셨으니, 희망을 가져볼 만 합니다만...

비로그인 2007-07-2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자인간님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서재 종종와서 고견 듣고 가겠습니다 ^^

전자인간 2007-07-26 11:5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체셔고양이님.
제 뜻이 오해없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이제까지도 가끔 그래왔지만, 앞으로 저도 님 서재에 종종 들르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7-07-2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는 방법은 각양 각색이지만,생각의 종착지는 하나일때 반가워집니다.
잘 읽고 가요.

전자인간 2007-07-26 11:56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의 종착지에서 다른 길로 오신 분들을 만나는 것도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초롬 너구리예요 ^^ 님의 글이 정말 제 마음을 대신 다 표현해주신 것 같아 감사드려요 (흠, 전 언제쯤 제 머리에 있는 걸 100%는 아니더라도 잘 쓸 수 있을까요? ^^;;;) 여하간, 옥석을 가려내는 눈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이 제도를 실행할 경우에 오는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자인간 2007-07-26 13: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너구리 드 보통님 ^^ 너무 많은 분들이 저의 생각에 동의해 주셔서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저로서도 제 머리에 있는 걸 100% 다 적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과찬의 말씀이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07-07-26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며시 와서 아주 꾹 추천하고 갑니다.
인기있는 블로그가 반드시 양질의 블로그는 아닐 터, 그런면을 잘 정리해주신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주의 마이리뷰를 추천으로 정한다는 것에는 저도 반대합니다!!

전자인간 2007-07-26 13:25   좋아요 0 | URL
어익후, 이러다가는 알라딘의 방침에 반대한 반대파의 앞잡이로 찍히겠는걸요~. 반갑습니다. 다락방님, 저의 의견에 동의하셔서 더욱 반갑습니다.

마늘빵 2007-07-27 01:45   좋아요 0 | URL
반대가 대세군요. 글쎄 부작용에 대해서 알라딘 측이 많이 고민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원래 하던대로 하는게 더 낫지 싶은데.

향기 2007-07-27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쯤 이렇게 도도히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요? 한참을 부러워 하다가 꾹 추천하고 갑니다. ^ ^

전자인간 2007-07-27 09:14   좋아요 0 | URL
제 글쓰기가 국문과 학생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다니요!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7-07-28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http://blog.aladdin.co.kr/zigi/1451605) 좀더 본질적인 의미의 논평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알라딘에 갑자기 지적이고 교양 넘치는 사람이 뚝 떨어져서 님의 글들을 이해하고 이를 파워풀하게 관철시켰으면 하는 소망을 하게 됩니다 ^^;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 이걸 철학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시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는 판단중지입니다~

전자인간 2007-07-28 19:52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의 글과 서재지기님이 남긴 댓글을 읽어 보았습니다만, 역시나 서재지기님의 답변은 기업으로서의 알라딘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보다 더 이윤을 많이 가져다 줄만한 책과 리뷰에 대해 '이주의 마이리뷰' 적립금을 투자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올바른' 투자일테니까요.

승주나무 2007-07-28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아프 님//'서재권력'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서재권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타나는 발화시점과 그것을 논하는 발화주체에 따라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아예 그런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문단권력'도 결국 그런 거 아닐까요.. 어차피 '..권력'이 '현상'이라면, 현상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무에 관한 논쟁보다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주된 의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참, 아프 님의 서재도 아닌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 그냥 논의가 있길래 남겨봅니다~

마늘빵 2007-07-28 15:23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음 근데 있다고 해도 보통 요즘 이 말을 붙이는걸 보면, '열혈 알라디너' = '서재권력'이 되는거 같더군요. 이 등식은 아니죠. :)

누에 2007-07-3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엷은 중력장을 갖고 있지만, 황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성운'은 지하서재의 책더미 속에 파묻혀있던데... ^^

전자인간 2007-08-01 15:40   좋아요 0 | URL
다이아몬드 성운을 찾으려면 고고학자가 되어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