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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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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셋에서 시작해서 별 다섯이 된 책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2015. 9.

 

이 책을 읽음으로 하루를 득템한 기분이다. 책날개를 젖히면 서문과 목차에 앞서 책에 대한 깨알 같은 찬사가 가득하다. 이 책은 독자 개개인의 불안증에 대해 알아차릴 수 있도록 쓰여 있다. 전문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쉽게 기술되어 있어서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번역자조차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 역자 후기를 채우고 있다. 리뷰를 쓰는 나 역시 나의 불안증에 집중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스콧 스토셀 대신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의 평가를 별점 셋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별 다섯을 준 이유다. 있는 그대로, 지금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각자의 사적 역사를 들춰보아야 한다.

    

불안은 타인의 반응에 대한 과도한 의식일까?

 

내 불안증의 출발은 죽은 쥐를 만진 경험에서 출발한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1학년, 학교 봉사 활동으로 지역 정화 사업에 전교생이 참여했다. 새마을 운동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학교 앞 하수구 같은 하천에 들어가 젖은 쓰레기를 줍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는 대충 청소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담임선생님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꽤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집게도 없었다. 오로지 손으로 오물을 집어 봉투에 담아야 했다. 질척거리는 흙속에서 뭔가가 잡혔다. 죽은 생쥐였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걸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나서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했다. 그때부터 내가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가 되었다. 결벽증도 심해졌다. 친구의 도시락 반찬도 먹지 못하고, 아무 곳에서나 화장실을 가는 것도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이

 

한 번의 사건으로 불안증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역시 초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이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소변이 마려웠다. 백번쯤 망설이다가 담임선생님께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은 곧 수업이 끝날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사실 소변을 참느라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시계 초침 소리가 심장에 새겨지는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으나, 이미 일어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겨우 일어나려는 순간, 바지에 소변을 보고 말았다. 오줌싸개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집에 전화하고, 엄마 가 와서 조퇴를 했다. 한 낮의 밝은 햇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나는 수년 동안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다음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약도 꽤 오래 먹었으나, 효과는 없었다.

 

역시 또 같은 시기였다. 면 동네에 살던 나는 엄마와 자주 전주에 나갔다. 시장에서 한 눈 판 사이에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엄마를 찾아야하는데, 한참 어린 나는 발자국 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발을 떼는 순간 엄마와 영영 이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때 내 나이 여덟 살, 삼십 초반이었던 부모님은 거의 매일 싸웠다. 두 분의 성정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사는 일이 고단하고 강팍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밤낮없이 일을 다니셨다. 하루걸러 하루씩 부모님이 싸우면, 나는 매일 밤 불안했다. 두 분이 헤어지면 누구를 따라가 살지 어린 나이에 고민이 많았다. (당장이라고 이혼할 것 같았던 두 분은 47년째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 사춘기부터 나는 동생들과 전주에서 자취를 했는데, 먹고 사는 일로 바빴던 부모님은 밤늦게 잠시 들러 음식만 주고 지체 없이 시골집으로 가셨다. 나는 부모님이 다녀가신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혹시 사고라도 나서 두 분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까하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불안으로 위로 받는 것은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내가 자꾸 걱정을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성장하면서 나의 걱정과 불안은 점점 강화되었다. 걱정을 하면 할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상 심리 같은 것이었다. 혹은 최악의 상황에 미리 적응하고 싶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최악만은 막아야 한다는 자세로 일한다.

    

마지막 반전이라니. 불안의 긍정 효과

 

불안은 창의성의 토양이다. 불안 없이 예술, 운동, 창작, 성취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불행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삶을 풍부하게 살아가야 한다. 일단 30년 전만해도 불안이라는 병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서 Freud에게 감사하다. (내가 가장 몰두하는 주요 환자는 나 자신일세.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빌헬름 플리스에게(1897. 8. 43) 또한 자신의 삶 자체를 임상으로 제공한 저자에게 감사하다. 그는 기대 이상의 위로를 독자에게 제공했다. 불안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을 아는 일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나 또한 느끼고, 깊어지기도 전에 정리되었던 몇몇 사랑에 대해서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의 특별한 경험이 때론 누구나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평생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지 싶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현란한 지적 삶을 사는 것이 유희나 목표가 아닐 것이다. 나를 알고, 세계를 좀 더 이해하는 것, 그것이 사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글을 쓰는 행위는 적당한 두려움과 떨림을 수반한다. 이를테면 불안 그 자체이지만, 꽤 근사한 흥분 상태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끊임없이 메모하고, 그때그때 문장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다. 읽을거리가 없으면 불안해하던 과거의 나, 다시 그때의 내가 된 설렘이 있다. 요즘 도서관 책의 강점도 알게 되었다. 밑줄 긋는 즐거움을 포기했더니, 약속한 기일 안에 읽어내는 부지런함이 발휘된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적당히 불안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53)”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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