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4일 추석 연휴는 길었다.

종일 책을 읽고, 어깨 빠지게 일을 했다.

동물원과 박물관에 갔고, 바다를 보았다.

몸살을 앓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골집에서 책 무덤 같은 서재에서 추억과 조우했다.

바라고 바랐던, 정규직의 삶이 허락 되었을 때,

집을 살 적금도, 미래를 위한 저축도 하지 않았다.

돈이 모이면 여행을 가거나, 여행을 못가면 몇 십 만원어치 책을 샀다.

잘 빠진 책들은 일용할 양식이었다.

때론 명품 백처럼 끼고 살면서 영혼의 허영을 누렸다.

오랜 시간 책갈피에 끼워져 있었던 쪽지와 메모들.

정성스럽게 그어져 있는 밑줄들로 인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책이 되었다.

 

서가에 선 채로 책을 읽다가, 딱 한권 배낭에 넣어 왔다.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 스트리트

한 시절, 눈물겨운 우정으로 환대해주셨던 정은정 선생님이 권하셨던 책.

(선생님은 여전히 안녕할까?)

책을 읽던 당시, 내겐 집다운 나만의 집이 필요했다.

남자보다는 집이었다.

수북이 먼지가 쌓일 때까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달팽이집이 필요했다.

숨어있기 좋은 집, 말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시스네로스는 여성, 이민자, 하층민이라는 3중의 마이너리티다.

으로 인해 상처 받았던 나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를 떠올린다.

그녀의 글에서 위로 받는다.

내게 은 조금 편안한 호흡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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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집

 

허름한 집은 안 된다. 뒷골목에 있는 공통주택도 안 된다.

남자들을 위한 집도 안 되고, 아빠의 집도 안 된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집.

나를 위한 현관과 나만을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튜니아가 있는……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침대 밑에는 늘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누구도 내 평화를 흔들어대지 않는…….

언제나 눈처럼 조용한 집.

나만을 위한 공간.

시를 쓰기 전의 깨끗한 종이 같은…….

 

(망고 스트리트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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