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Ida (이다)(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Music Box Films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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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과의 조우 <이다>(Ida>, 2013) &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

 

이미 죽어버린 은유지만, 인생은 여행길이다. 어떤 사태에 직면하게 될지는 예측불허, 그래서 삶은 의미를 갖는다. 봄과 눈의 결합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듯, 평범한 일상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불운을 가져오는) 진실과의 조우는 이전과 이후의 삶을 분절하는 명확한 기준점이 된다. 로드무비는 공간 이동의 과정에서 시간을 회귀한다. 사람과 사태에 직면하여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여정의 틀을 무한 변주한다. 이번에 소개할 두 편의 영화는 현재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잃어버린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이다>(Ida, 2013) 감독 : 파벨 포리코브스키 주연 : 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안나), 아가타 쿠레샤(완다 루즈), 조안나 쿠릭

 

<이다>196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다. 가톨릭 수녀원에서 자란 고아 소녀 안나는 정식 수녀로서 인정받는 서원식을 위하여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근원을 알게 된다. 본명은 이다 레벤슈타인, 부모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살해당한 유태인. 탈속과 세속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두 사람의 삶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고아로 자란 이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과 함께하며 금욕적으로 살아왔다. 격리된 채 잘 짜인 공간에서 생활한 이다와 달리, ‘피의 완다라고 불렸던 이모는 공산정권이었던 폴란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사형으로 내몰았던 검사 출신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과거를 잊기 위해 퇴폐적으로 살아가는 이모 완다에게 불현 듯 나타난 이다는 과거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동기가 된다. 이다 역시 완다가 묻는 결정적인 질문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게 된 두 사람은 상반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축에 위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러닝타임 82, 단순한 서사 구조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은 만만치가 않다. 관객은 신기한 콤비가 된 두 사람이 이다의 부모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한다. 부모의 시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처음으로 수녀원을 벗어나 폴란드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이다는 자신이 수녀원에서 쌓아올려 왔던 존재와 세계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다. 이다는 혼란 속에서 그동안 구축해 왔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이모를 만나고 온 후, 이다는 수녀원 식사 중에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수녀원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폴란드 현대사를 통하여 우리가 만나는 것은 이다와 완다의 실존이다.

 

사랑을 나눈 침대에서 섹소폰을 부는 남자와 이다가 나눈 대화는 이다 자문자답이기도 하다. 함께 바다를 보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앞으로 이어지게 될 예측 가능한 삶의 끝에서 이다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나선?”

 

<이다>를 한편의 시로 만든 것은 흑백 영화 특유의 절제미와 최소한의 대사에 있다. 감독은 (우리가 익숙한 1.86 : 1 비율 대신 1.37:1의 화면 비율을 고수하는) 작은 화면 비율과 흑백 톤의 영상에 절제된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을 담는다. 카메라는 인물을 화면 정면에 담지 않고, 클로즈업조차 차창과 같은 여과 장치를 투과하여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앵글 중심에서 비켜 있는 인물은 여백의 미를 살리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다. 인물이 스크린의 측면에 놓이거나 걸쳐 있을 경우, 영상은 인물의 드러나지 않는 내면과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완다의 상실감이 극에 달했을 때, 카메라는 턱선 위쪽만 담아낸다. 롱테이크와 고정된 카메라는 고요함과 공허함을 표현한다. 이와 같은 낯선 연출은 관객과 화면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엔딩 씬의 유일한 핸드 헬드 촬영은 이다의 확고함을 표현하는데 최선의 선택이다. 그녀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앵글에 위태롭게 갇혀 있던 이다가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온 느낌이 배가된다. <이다>는 영상으로 캐릭터를 완성해 가면서, 어떻게 내면을 시각화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감독 파벨 파블리코브스키는 십 때 이후 영국에서 성장하며 영국 영화를 만들어왔다. 대표작인 <사랑이 찾아온 여름>에서도 국적이 드러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고국에서 폴란드에서 영화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기획의 성과가 영화 <이다>이다. 영화 속에서 이다와 완다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험과 성격을 드러내지만, 실제 배우로서의 커리어 역시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다를 연기한 아가타 트르체부코브스카는 우연히 캐스팅 된 대학생이다. 반면 완다 역의 아가카 쿨레샤는 20년 경력의 폰란드를 대표하는 여배우다.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다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완다 역으로 더없이 적절했다.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0) 감독 :드니 빌뇌브 주연 : 루브나 아자발(나왈 마르완)

 

<그을린 사랑>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전쟁 이야기다. “세상을 등질 수 있게 시신을 엎어 놓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한 여인이 죽었다. 비밀스런 여인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평탄치 않았을 삶을 짐작케 하는 유언이다. 영화의 열쇠는 이 세상과 영원히 작별하고 싶은 그녀의 서사다. 나왈의 상사이자 공증인인 르벨은 쌍둥이 자녀 잔느(멜리사 드소르모-풀랭)와 시몽(막심 고데트)에게 유언장을 공개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는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잔느와 시몽은 당황한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질 때 무덤에 비석을 세워다오.”라는 말속에서 남매가 만나야 할 가족사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여권과 흑백 사진 한 장을 단서로 - 캐나다에서 거주하던 - 남매는 중동 출신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낯선 지형을 통과하는 긴 여행에서 어머니의 진실과 직면한다.

 

이 영화는 분노, 진실, 사랑에 관한 영화다. 잔인한 운명은 매순간 강한 두려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분노 혹은 침묵 이면의 어두운 진실과 상처를 깊게 응시하게 한다. 수학공식처럼 난해하여 해답을 구할 수 없는 이 여정을 지탱하는 사람은 공증인 르벨이다. 그는 죽은 나왈을 대신하여 남매가 여행길에 올라야 하는 당위를 부여한다. 전혀 몰랐던 어머니의 과거는 마주할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게 한다. 르벨은 잔느와 시몽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과거로의 회귀를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공증인의 임무 중 하나는 고인의 유지와 그들의 성스러운 비밀을 돌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증인은 마치 스틱스 강을 건너는 배의 사공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르벨은 죽은 나왈과 살아있는 남매를 연결하는 고리다.

 

퀘벡에서 명성을 쌓아올린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단편 <Next Floor>와 장편 <폴리테크닉>으로 주목 받았다. <폴리테크닉>은 평화롭기만 한 몬트리올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폴리테크닉 학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8912월 몬트리올의 에콜 폴리테크닉 공대에서 마크 르팽이라는 기계공학도가 여대생만을 대상으로 무차별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14명의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드니 빌뇌브는 아이러니한 흑백의 아름다운 화면을 통해 이 사건을 돌아봤고, 캐나다의 권위 있는 영화상 지니 어워드에서 최우수영화상을 비롯해 9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폴리테크닉>에서 살인자로 분한 배우 맥심 고데트는 <그을린 사랑>에서 쌍둥이 중 시몽으로 출연했다. 그에 이어 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그을린 사랑>은 베니스, 토론토 등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수상하였고, 2010년 부산영화제 화제작이기도 했다. 중동 내전으로 고통 받는 한 여인의 역사를 지극히 영화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주제를 깊이 있게 담아냈다.

 

영화의 원제는 Incendies, 불어로 화재, 큰불, 넓게 퍼진 붉은 광채, 공란, 전란의 뜻을 담고 있다. 전쟁의 참상에 현미경을 들이대어 밀도 있게 보여주지만, 통곡에 젖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을린 사랑이라고 옮긴 우리식의 표현 또한 적절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명은 지구상에 실재하지 않는다. 감독은 구체적인 지명이나 나라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가상의 지명을 사용했다. 전쟁의 잔인함을 이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비극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전쟁 자체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강한 설득력을 유지한다. 이는 캐나다와 중동의 지역 색을 강조하지 않는 감독의 의도에서도 알 수 있다. 캐나다의 회색빛 겨울과 뜨거운 중동의 갈색 풍경을 매우 중립적인 채도로 설정하였다. 카메라 프레임의 여백은 대사보다는 공간과 인물의 감정이 흘러가는 분위기가 훨씬 더 격렬함을 사유하도록 한다. 폭력은 한결같이 고요한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보편성을 획득한다.

 

두 편의 영화 모두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모르는 기억과 만난다는 면에서 닮아 있다. 사건의 비밀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형식에서 동일하다. 세상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도 비슷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운한 과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다>는 폴란드에서 흔하게 불리는 이름인 이다와 완다를 사용한다. <그을린 사랑>은 세상에 없는 지명을 사용하여 특정 지역에 고정하지 않고 사태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두 편의 영화 모두 우리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반면 <그을린 사랑>이 플래시백을 주로 사용하여 과거를 끌어온다면, <이다>는 플래시백 없이도 과거와 현재를 접합한다.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표현하는 직접적인 연출은 없지만 끝없이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간결하고 시적인 <이다>와 달리 <그을린 사랑>은 무겁고 독하다. 이미 봄은 왔으나, 꽃샘추위도 다녀가고, 한번쯤 더 늦은 봄눈이 다녀갈지도 모른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사이사이 어떤 독한 사건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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