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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감옥보다 자유롭지 못한 정신병원을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1975)는 정신병자로 호명되는 순간, 주체적 결단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권위 있는 의사는 정상과 비정상의 판별 기준을 제공하고, 그들을 일상생활에서 격리하고, 치료라는 미명하에 죽은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를 만들어간다. ‘정상인’으로 만들겠다고 끊임없이 주입되는 주사와 알약, 뇌수술은 그들이 정신병자임을 각인하는 도구가 되고,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공포가 되는 상황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 주인공 맥머피(잭 니콜슨)가 요구하듯 - 정신병원을 탈출하기 위한 “산처럼 큰 자신감”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낚시 여행이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자에게 가장 해악한 곳이 어쩌면 정신병원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미셸 푸코(M. Foucault)는 그의 책 『감시와 처벌 : 감옥의 역사』에서 근대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통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분법의 가치 기준은 ‘이성’이라는 기준에 대립 항으로 ‘비이성’을 세우고 이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를 배제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 기준을 적용한다. 정신병원은 감옥과 마찬가지로 보다 효율적으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유용한 공간이다.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인 병원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이다. 정신병원은 감옥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수형자(정신병자)의 신체는 처벌을 통해서 유순하고 순종하는 신체가 된다. 끊임없는 감시와 규범화 된 제재를 요구하는 훈육 방법이 동원되고, 얼마나 정상(!!)적인 생각으로 변화하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인터뷰와 시험이 계속된다.

 

 

 

 

 

꽃니, 박사, 그리고 박대령 아저씨.

 

개그콘서트 한 꼭지인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우선 개그우먼 김지민이 정상인이 거지들을 대하는 태도다. 예의와 염치를 모르는 거지들을 향해서 “거지 주제에...”라는 말을 던지며 화를 내지만,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거지들을 대하며, 궁금함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대가로 “500원”을 내준다. 참 낯선 풍경이지만, 이십여 전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덤볐던 작품 제목이 <꽃니와 박사>였다.

우리 마을에 5일 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꽃니’라는 실성한 여자가 구걸을 하기 위해서 장에 나왔다. 십 원짜리 동전 하나에 순하게 웃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 친구들과 함께 “화천리 꽃니”라고 외치며 뒤쫓아 다녔고, 다리를 절던 그녀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거기에 도덕이라는 판단 기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 꽃니가 5일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그녀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그녀의 이름이 왜 꽃니인지 훗날에야 알았다. 꽃니가 살던 동네가 화천리, 우리말로 꽃 내, 꽃처럼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는 마을이다. “꽃 내에 사는 여자” 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꽃니가 되었다. 내 나이 스물이 넘어서 글 밥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했을 때도, 어릴 때 친구처럼 놀았던 꽃니에 대한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친구들이 예쁜 옷을 사 입고 오면, 나는 “꽃니 같다.”고 말해준다. 친구들은 꽃니가 누구냐고 묻고, 나는 우리 동네에 살았던 사람만 아는 여자라고 답한다. 유년의 기억에서 절대 기울 수 없는 그녀가 자주 그립다.

 

겨울 장은 짧은 해 때문에 일찍 파했다. 장꾼들이 다음 장으로 떠나면서 5일 후에 필요한 물건들을 비밀 포대와 천막으로 묶어 놓은 짐들이 장에 놓여 있다. 그 사이에 구덩이를 파고 동사(凍死)를 면하려는 거지들이 모여 들었다. 겨우 내 한 곳으로 찾아드는 거지들 중에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박사’라는 호칭으로 불린 남자가 있다. 냄새나고 더럽고 무섭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번 겨울에 얼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밥을 챙겨주었다. 저렇게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왜 미쳤을까, 분명 애잔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비슷한 마음으로 경외감까지 생겼다. 정말 공부를 많이 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영화 의 수학자 내쉬처럼, 박사에게도 그런 천재성이 깃들여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와 다른 그의 정신세계는 신비화되면서 아름답거나 혹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정신병자 중에는 박대령 아저씨가 있다. 종대 아저씨라고 불리기보다는 ‘박대령’으로 불렸다. 군대 가기 전까지 홀어머니와 둘이 사는 효자 아들이었는데, 60년대 말에 군대에 가서 매를 맞고 미쳤다고 한다. 화장실 밖에 모자를 벗어 두고 볼일을 보고 있던 종대 아저씨는 비상 점호 사이렌이 울리자 급하게 나왔고, 자신의 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아무 모자나 쓰고 점호에 섰는데, 하필 대령 모자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선임들에게 많이 맞았고, 결국은 조기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박종대라는 이름 대신 그를 박대령이라고 불렀다. 한동네에서 나고 자랐던 마을 사람들은 꽃니, 박사와 종대아저씨를 다르게 느끼게 했다. 아저씨는 친인척처럼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었고, 돌아가실 때까지 기세등등했다.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제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았던 정신병자들은 이제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모든 정신병이 배제되고 분리될 만큼 정신병은 끔찍한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오랜 세월 동안 ‘조용한 광기’는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이처럼 은근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 내재해 있는 대부분의 정신병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책이 바로 대리언 리더(Darian Leader)가 쓴 『광기』다. 정신분석가인 대리언 리더는 프로이트 분석연구 센터의 일원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정신병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그는 에메, 늑대인간, 해럴드 시프먼의 사례를 통해서 정신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작업하는지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대리언 리더는 정신병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선택한 방식이라고 본다. 정신병이 발병 원인은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진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기질만을 정신병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일례로 우리는 부모에게 유전되는 생물학적 기질만을 물려 받지 않는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변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인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다. 부모의 양육 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결함’일 수 있다. 또한 히스테리, 강박과 같은 억압의 기제는 방어의 형태이다. 기억상실과 대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제다. 편집증과 정신분열 역시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 선택이다. “편집증자는 타자를 온전하게 만들려는 열망을 품고, 정신분열증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125쪽). 정신병자에게 타자는 너무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위협적인 외부이다.

 

치료자는 “소외된 주체의 비서”

 

“정신병을 대하는 태도가 정신병을 다루는 방식을 형성했다.”는 대리언의 말처럼, ‘최신’이라고 믿는 정신병 치료법은 우리가 정신병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방식은 정신병자를 우리와 다른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치료해야 할 질환을 가진 비정상인으로 규정한다. 정신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할만한 간단한 기법이나 공식이 없고 case by case로 접근해야함에도 정신병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럼에도 성공적인 치료의 기저에는 환자와 같은 수준에 서려는 치료자의 노력의 있다. 환자와 함께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치료자는 권위를 부리지 않고, 환자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의 이분화된 위치를 거부하고, 정상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개선한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치료자에게 요구되는 태도의 숨은 의도를 지적한 것도 매우 유의미하다. 치료자는 남을 돕고 치유한다는 자기 환상을 점검해야 한다. “인간을 돕는다.”는 말은 세 개의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첫째, 환자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둘째, 환자를 지배하고 조종하여 미리 규정된 행동방식에 따르게 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 셋째,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벌함으로써 자신은 환자와 다르다고 생각하려는 동기를 숨기면서도 지시할 수 있다.”(393쪽) 문제는 이러한 치료자 자신도 이성적으로 잘 모르는 이러한 의도를 정신병자는 너무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자는 “소외된 주체의 비서”라는 라캉의 표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 책은 ‘광기’ 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성찰하게 한다. “미친 것과 미치는 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광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선에서 미치는 과정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이 정신병적 구조를 가지지만, 정신병이 생기지 않은 채 살아간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219쪽) “구멍이 열린다.”는 지점까지 가지 않을 때, 우리는 미치기 전의 잠재 상태를 유지한다. 『광기』는 - 마치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 이해의 지점에 닿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수십 걸음 앞으로 달아나 있는 라캉을 이해하기 곤혹스런 독자들에게 제법 유용하다. 라캉의 정신분석으로 가기 위해서,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데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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