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용법
신귀백 지음 / 작가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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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휴일 아침,  (눈길 나서 영화 보기를 포기하고) 영화 읽기를 시작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하늘과 땅의 경계, 차도와 보도의 경계를 지워 나간다. 마치 지금 내손에 들려있는 한권의 책처럼.. 바로 신귀백의 <영화 사용법> 

다른 예술 세계, 음악과 미술에 대해서는 (무지의 탄로가 두려워) 침묵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7의 예술, 영화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나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영화는 팝콘처럼 가볍게 팔려나가고, 누구나 손쉽게 이십자평을 하며, 별 다섯으로 작품의 가치를 매긴다. 그렇다면 이 예술은 이제 대중의 선취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중과 평론가 사이에는 진입장벽이 있다.   

문학과 같은 방식으로 서사를 읽어내는 것으로 족하는 이들의 경계 너머에는 기호학적 개념들과 구조를 통해 영화에 대한 의미 파악을 하는 이들이 있다. 후자가 바로 언어 표현과  영상표현의 복합적인 구성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읽어내는 평론가 집단이다. 그들은 영상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면서 적극적으로 해석을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전문가들이다.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의 욕망,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개념과 신화로 분석 틀을 사용한다. 철학 너머의 철학처럼 현란한 언어로 무의식적 욕망을 읽어낸다. 그곳에 대중이 설 곳은 없다.

그 사.이.에서 독하게 영화를 읽어낸 평론가. 소외된 대중의 언어를 받아와 평론의 장(field)으로 승화시켜낸 신귀백의 글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성을 갖는다. '사이적 존재'로서 영화를 이야기하는 순간, 영화의 용법은 다채로워진다.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사용법'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누구나 쓰지 못하면서, 또 누군가에 의해 충분히 쓰여질 수 있는 현학적인 평론이 범람하는 이 즈음,  신귀백의 글은 담백한 분석의 바탕 위에 때론 냉소와 독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것이 필경 애정이라는 사실에서 웃음이 난다.

서울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지방'이라고 불리는 이 땅에서, 그는 전라도 변방에 중심축을 세웠다. (그의 평론 이력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십여년 역사와 축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학 이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적극적으로 詩와 영화의 연결고리를 이끌어낸다. 그 경계에서 도타운 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한 신귀백 평론가는 마치 - 성석제 소설을 읽는 것처럼 -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넘치는 자신감이 귀엽기조차 하다.   

그의 글은 한 호흡으로 내려쓴 중필처럼 힘이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책을 잡는 순간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게 만드는 저력이 있다. 그의 글에 대한 안도현 시인과 전찬일 평론가의 추천서는 거의 연서에 가깝다. 도반의 정겨운 우정이 묻어난다. 신귀백 평론가에 대한 정보없는 독자의 신뢰는 거기에서 시작해도 충분할 것 같다. 일독을 마친 독자는.. 어디든 새롭게 펼쳐서 사랑, 현실, 인생, 고전에 대한 고민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영화관은 애인이 기다리는 찻집처럼 거부할 수 없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평론가의 다음 글집은 영화평론이 아니라, '영화를 통한 詩 짓기'일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해본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자처하는 모든 분들께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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