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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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추석 연휴에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다.

읽는 내내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이 떠올라 엮인글을 쓰려는데, 작은 것들의 신은 설 연휴에 읽었다는 것이 재밌다.

97년과 07년.

10년의 차이를 두고 쓰여진 이 책들은 둘 다 정말 빼어난 작품이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배경도 가깝고, 지독하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비슷하다.

작가가 영어로 책을 썼다는 것도 같지만, 로이는 여자고 호세이니는 남자라는 차이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접전이 있었고, 내전이 지루하게 계속되었으며,

9.11 이후에는 빈라덴의 은신처로 테러와의 전쟁이 있었던 전쟁터였다.

우리 나라와는 선교단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일이 있었던 곳.

나라 이름이 척박한 땅을 뜻한다고 했던가?

내 머릿속에 이렇게 메마르고 건조하게 존재하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이 소설을 만나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마리암과 라일라 두 여인에 의해서 말이다.

 

이 '한'많은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라일라는 나보다 나이가 적다.)

지금 이 순간도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이 애달픈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로켓포가 날고, 살점이 튀는 카불의 낡은 집 속에서는 남성우월주의 문화에서 여자들이 또 다른 전쟁에 희생되고 있다.

평화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가? 우리가 겪는 일상적 전쟁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치밀한 구성과 생생한 묘사, 개성있는 여러 캐릭터들, 게다가 구석구석 배인 위트까지...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미덕을 가진 570여 페이지의 이 소설을 구구절절 소개하고 싶지 않다.

그저 패러디 한 구절을 던진다. 천개의 찬란한 별점과 함께....

 

Just Read It !

아니 Must Read It ! 이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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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옹호 -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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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헐떡이며 가쁘게 달려온 길. 꽤 많이, 더 빨리 왔는데 한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서 이야기 한다.

"이 길이 아니야~! 이 길로 조금 더 가면 낭떠러지가 있다고!" 라고 말이다.

전력질주해서 온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라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해서 달려왔기 때문에.

"에이 거짓말 마쇼~!" 라고 말하며 뒤쳐질까 또 다시 앞길을 재촉하지만, 덥기는 너무 덥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람의 말은 굉장히 신뢰할 만하다. 논리가 정연하고, 증거도 충분하다.

뭔가 가슴이 먹먹하다.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이 길이 아니라니..."

 

홀연히 나타난 그 사람은 녹색평론사 김종철 대표이고, 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논리 정연하게 쓰여진 평론들의 모음은 "땅의 옹호"이다.

아직 그의 평론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산업사회의 끝머리에 투자(실은 투기) 대상으로서의 땅이 아니라, 소규모 농업의 터전으로서의 땅을 옹호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니?"

"너무 촌스럽고, 시대 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한발 빠른 정보를 가지고 투자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도 시원찮을 판에 노동집약적 농업이 왠말이야?"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그 길을 지날 때, 왜 그렇게 더웠는가?

지진과 해일, 홍수와 폭설 등 기상 이변을 만나서 고생하지는 않았는가?

아니, 이런 것보다는....

먼저 빨리 가느라고 마음 터 놓을 친구도 없이 외롭고, 주머니 속의 돈은 다소 늘었으되 마음은 황폐해지고 스트레스만 늘지는 않았는가?

평론집 "땅의 옹호"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이유는 이 책의 관심사가 환경의 파괴에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징후들의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인문학(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답게 그의 초점은 사람의 마음에 맞춰져 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서로 시기/질투하며 못잡아 먹어서 안달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들 말이다.

 

김종철 선생의 정신적 멘토인 이반 일리치의 <환대와 고통>이라는 에세이를 엿보자.

 

작고한 추기경 쟝 다니엘루가 들려준 경험은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진실을 간단히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중국인 친구 한 사람이, 기독교도가 된 다음에, 북경에서 로마까지 걸어서 순례를 행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 그는 규칙적으로 환대를 받았다. 슬라브 국가들 속으로 들어가서는 그는 이따금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서방 교회 지역에 도착한 뒤에는 그는 구빈원에서 잠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각 가정의 문들은 낯선 이들과 순례자들에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114페이지)

 

인간의 오랜 전통이자 기독교의 핵심이었던 자발적 환대의 정신(네 이웃을 사랑하라~!)은

서구 근대국가의 발전과 그로 인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해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세계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과 그들에 봉사하는 범지구적인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낭비적인 소비문화의 확장을 위해서

다수의 삶이 끝없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구조화된 '폭력의 경제' 속에 갇혀있다. (116페이지)

초강대국 미국의 생활방식(세계인구의 1/20이 세계 자원의 50%를 낭비적으로 소모하고 있는...)을 추구하는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소규모 공동체가 가진 미덕을 되살려야 한다.

인류가 당장의 욕심을 접고 공생공락하는 지속가능한 생활은 오직 소농들이 번창하는 농촌 공동체의 활력이 보증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인류의 욕심은 지구를 점점 갉아먹고 있는데, 그래서 아파진 지구는 열이(온난화 현상) 난다.

이제 미열의 시기는 지나고 고열의 시기가 오고 있다. 여차하면 열병에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순간적인 욕심이라는 열기에 휩쌓여 눈이 멀어 있다.

 

부의 공평한 분배나 경제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다급하고 절실한 것은,

미국적 생활방식 혹은 근대문명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묻고, 그 너머를 내다볼 수 있는 급진적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는 한 우리는 저항한다고 하면서 실은 비인간적 체제의 영구화를 돕는 신민 혹은 노예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개안 혹은 회심이다. (178페이지)

정말 문제는 한미 FTA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돈을 벌고,

'성공'을 해야 한다는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밑도 끝도 없는 욕망이다.(204페이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압도적인 지배 하에 들어가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진정한 반대개념은 정치적 독재가 아니라,

경제성장이라고 해야 옳을 지도 모른다. (208페이지)

 

현대인들의 마음을 갉아먹는 불안과 공포,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은 물질적인 성공이라는 한가지 기준에만 맞춰져 있다. 

전 지구적으로 모두가 물질적으로 함께 풍요로울 수는 없다.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속임수이다.

모두가 같이 행복하게 살려면, 물질적으로는 같이 다소 가난하게, 정신적으로는 같이 풍요롭게 살아야 한다. (377페이지)

 

"이 길이 아닌갑다~" 하는 이야기들은 열심히 길을 향해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이 가난하게 살자는 충고에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마음으로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나혼자 뒤쳐지면 어떻해?"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해결책이 만만찮다. 욕심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한 이유다.

 

그래도 일단은 눈을 뜨고,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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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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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가 4권 괴물의 탄생으로 완결되었다.

한창 때 슬램덩크를 기다리는 것 마냥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는데, 역시나 우석훈표 공포경제학이 펼쳐지고 있었다.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 이 네 권의 시리즈의 완결편답게,

앞선 세 권에서의 명랑하고 신랄한 문제제기에 대한 해결책이 217페이지에 볼드체로 나와 있다.

이 시리즈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다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

 

심플하다.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받는 삶'이라고 했던 러셀의 삶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심플하고 명쾌하다.

게다가,

우석훈이라는 경제학자를 접하기 전부터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방향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내 마음에 와 닿는 면적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유한한 속성의 에너지와 자원을 줄이고, 무한한 속성의 지식과 문화의 투입을 늘리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도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이다.

생태학적으로도 지속가능하고, 뭐 굳이 경쟁력을 따지자면 지금의 토건경제보다 한 두 단계는 위다.

 

괴물의 탄생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자는 세계의 정치경제학을 일별하고, 한국만의 특수한 경제사를 살펴준다.

사람들의 행복을 앗아가는 괴물(잘못된 경제시스템과 프로세스)은 한국에서 이미 태어났다.

주요 경제 주체인 국가와 기업 간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생겨나는 괴물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굵은 글씨로 써 있는 위의 문장은 이 책의 앞부분에서 탄생한 괴물을 해체하기 위한 열쇠이다.

(오나라에 장가갔던 유비를 무사하게 귀환시키기 위해 제갈량이 써준 복주머니 속의 문구와 같은....)

답은 건전한 공공성의 회복이다. 시장에만 맡기면 공공성은 사라진다. 그렇다고 정부에만 맡기면 부패하거나 복지부동하게 된다.

건전한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움직이는 제 3영역이 커 나가야 한다.

생협이나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의 제 3영역은 기업과 정부의 중간쯤에서 효율성과 공공성의 절반쯤의 위치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 제 3영역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계책은 마치 제갈량이 천하를 삼분하여 솥발의 형태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유사하다.

정부와 기업의 두발만 가지고는 균형을 잡기 힘들지 않은가?

정부쪽으로 기운 사회주의건 기업쪽으로 기운 시장맹종주의(신자유주의)이건 쓰러지기 십상이지 않은가?

 

자율과 자치, 창의와 문화, 견제와 균형을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이루자는 것이 공포 경제학자 우석훈의 주장이다.

이 맥락없는 주절거림에 의해 생겨날 의아함은 이 시리즈 네권을 몽땅 사서 세세한 내용을 통해 이해하시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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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89
김성윤 지음 / 살림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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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지식총서는 내게 있어 꽤나 유용하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 금액을 맞춰야 할인이 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꼭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럴때 살림 지식총서를 뒤적여서 맘에 드는 2천 몇백원 짜리 책을 고르곤 한다.

김성윤의 커피이야기도 바로 그런 책이고, 스타 뷁스의 제일 싼 커피 한잔 값에도 못 미치지만 내용은 꽤나 알차다.

 

카베 카네 (Kaveh Kane)! 다시 말해 '커피집'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15세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지금 커피 체인점이 갖는 똑같은 인테리어에 딱딱한 의자가 아니고, 문화가 넘치는 곳이었나 보다.

경쟁이 심해지자 이야기꾼 춤꾼을 고용했다고도 한다.

(커피는 중동에서 시작되었다.)

 

커피 믹스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는 걸쭉한 다방 커피에 달콤 쌉쌀함에 중독이 되어 있는데....

(저자는 커피하나 설탕셋 크림둘의 공식을 책에 적어 놓기도 했다.)

이 다방 커피가 과연 촌스럽기만 한 건지는 되돌아 봐야 한다.

(물론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기때문에 건강에는 좋아보이지 않긴 하다.)

 

나는 커피 애호가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언어에 숨겨져 있는 뜻을 알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모자 따위의 챙이 가릴차에 볕양에서 비롯된 차양에서 줄여진 말이라거나,

W가 U가 두개 있어서 double U 인거나, 달걀이 닭의 알에서 줄어든 것이라거나,

맨홀이 사람이 드나드는 구멍이라서 Manhole 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곧잘 알아내곤 한다.

(이 예들이 너무 다들 잘 아는 평범한 것이면 안되는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즐겁게 읽은 것은 74페이지 부터이다.

 

- 카페라테 (Caffe Latte) : 라테는 이탈리아어에서 우유를 의미한다.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을 1:4로 섞어 부드럽다.

                                    프랑스의 카페오레(cafe au lait)와 같다.

  = lacto가 젖이나 우유같은 것을 뜻하는 라틴어 인것을 알았었다. 유제품만 먹는 채식주의자를 락토-베지테리안이라고 하잖은가?

    latte나 lait나 이탈리아어와 불어의 차이였었는데, 난 두가지 커피가 다른 것인줄 알았다.

 

- 카푸치노 (cappuccino) :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1:2의 비율로 섞은 커피.

- 마키아토 (macchiato) : 에스프레소에 15ml 또는 1티스푼의 우유로 점을 찍는다(marking)는 의미.

- 카페모카 (caffe mocha) : 카페라테에 초콜릿을 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됨. 우유를 증기로 데우는 과정에서 코코아 가루를 넣은 것.

- 카페 아메리카노 (caffe americano) :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더해 75~90ml 분량으로 만든 커피.

                                                     미국인이 많이 마시는 묽은 커피맛과 비슷해서 지어진 이름.

                                                    그러나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가 드립커피인 반면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더한 것이 차이.

 

커피에 얽힌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꽤 많지만 위의 것들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출퇴근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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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챙과 맨홀은 몰랐어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 FTA의 지구정치경제학
홍기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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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외치는 오마바 씨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영화에서 가끔 현실성없이 등장하는 흑인 대통령(사실 반은 백인이지만...)~!

오만함에 눈이 먼 미국이란 나라의 실력 좋은 안과 의사가 되길 바란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한국의 보수층/신자유주의자들은 난리가 난 것 같다. FTA 때문이다.

비준한다 만다 다시 화제로 떠오른 한미 FTA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홍기빈 씨가 지은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라는 이름의 책이다.

이렇게 딱딱한 제목의 책을 감히 어떻게 읽게 되었을까? 일단 녹색평론사라는 출판사를 믿고 구입했다.

사 놓고도 한참을 책장에다 숙성시키다가 문득 손이 가서 펼쳐들게 되었다.

그런데.... 불과 이틀만에 다 읽을 만큼 쉽게 씌여져 있는데다, 정말 중요하게 생각할 문제들이 가득하다.

(안타깝게도 제목 덕분인지 2년 전에 출간되었고, 올해 구입했는데도 초판 1쇄이다.)

 

투자자 - 국가 직접 소송제도는 말 그대로 FTA를 맺은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송이다.

자본가가 상대방의 나라에 많은 돈을 들여서 투자를 했는데, 상대방 국가에서 그 자산을 국유화 해 버린다면 투자자는 손해를 보게 된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방 국가를 상대로 직접적으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굉장히 상식적이고, 올바른 제도 인 것처럼 보이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이 책을 보니 그것이 그렇지만은 않다.

 

이 제도는 신자유주의적인 기초 위에서 태어났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와 기업 중 기업의 힘이 강하고, 정의나 공공성 보다는 돈과 사적 이익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이렇게 강해져 버린 투자자들은 이 제도를 통해 보호받기 보다는 이 제도를 가지고 국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책에서 나온 예를 살펴보자.

나프타에는 국가 소송제가 포함되어 있다. 당하는 쪽은 물론 멕시코나 캐나다이다.

멕시코의 한 마을...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에 미국 투자자가 투자를 했다.

독성 폐기 물질을 묻거나 하는 시설인데 당연히 주민들은 반대했고, 지방 정부도 이 시설에 대한 허가를 거부하였다.

미국 투자자는 자신이 지은 시설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피해에 대해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중재 결과는? 멕시코 정부는 이 미국 투자자에게 1,6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환경 문제는?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중재심판소는 '환경이나 지역주민의 이익은 본 심판소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단지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했는지를 판단한다."고 했다.

 

국가가 투자자의 자산을 수용해 버리는 것을 막아 준다는 이 제도는 사용 여부에 따라 무시무시하게 변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자의 '자산'은 장기적인 이익과 관련된 모든 관계들을 일컬으며, '수용'이라는 개념도 굉장히 포괄적으로 적용한다.

국가는 투자자를 향해 소송을 할 수 없고, 국내법보다 우월하게 작동되기에 주권을 넘겨주는 꼴이 된다.

이 심판소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법정과는 달라서 매우 비밀스럽게 작동하며, 판례라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다.

투자자들은 소송비용만 감내하면 상대방 국가로부터 엄청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제도이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여러 주체들이 달라붙어 소송을 벌일 수 있고, 소송에 유리한 지역을 지배구조에 따라 선택할 수도 있다.

소송 의향서만 보여줘도 알아서 투자자에게 불리한 규제를 푸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조항은 한미 FTA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 투자자에게도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본의 힘이나, 협상의 힘, 네트워크의 힘 등등 뭐하나 미국보다 앞설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직시하면, 이 제도는 재앙에 가까워 보인다.

 

호주는 미국과의 FTA협상에서 이 제도를 제외시켰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투자자들을 보호해 줘야 외국인들이 투자하지..." 혹은 "원래 제도의 취지대로 돌아갈꺼야...."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체코와 아르헨티나, 캐니다, 멕시코가 당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배상금, 공공성을 위한 정책의 실종, 주권의 상실에 준하는 수많은 소송 사례들은 우리 정부의 생각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지를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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