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성 탐욕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이명재 외 옮김 / 필맥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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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기만과 위험의 금융활극과 시장의 부패"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전염성 탐욕이라는 책의 페이지 수이다. 이 숫자는 두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첫번째는 금융이나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이 책을 기어이 다 읽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월가의 불과 10여년 동안 있었던 탐욕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 이렇게 두껍다는 것이다.

첫번째 놀라움은 그만큼 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고, 두번째 놀라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인재의 아이콘인 월가의 금융인들이 아주 탐욕적이고 기만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의 다른 말이다.

 

탐욕은 전염된다. 기발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에서 부터 아주 단순하게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사람들까지 말이다. 600여 페이지에 걸쳐 생생하게 그려진 이 탐욕의 전염과정은 그 과정에 대한 경계심을 목적으로 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넘어 독자들에게까지 탐욕을 살짝 부추기는 부작용(이렇게 하면 돈 버는 건가? 싶은....)이 있음을 먼저 알려 둔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6가지 제안이 637페이지부터 진행되는 에필로그에 나온다. 이 여섯가지 제안은 아주 명쾌한 것이어서 금융권의 탐욕을 들춰내고,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복잡하게 계산되어 일반인들에게 전가되는 리스크를 모르고 짊어지지 않는 방법인 듯 하다.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파생상품을 다른 금융수단들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파생 금융 상품들은 경제적으로는 다른 금융상품들과 다르지 않지만, 당국의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스톡옵션, 선불스왑, 부외거래, 장외파생상품 들은 다른 거래들에 적용되는 법규의 적용에서 면제되었고 이러한 차별적 취급의 결과는 재무 제표상 인식되는 비용과 경제적 사실 사이의 괴리로 나타났으며, 공시의 의무도 지지 않는다. 비슷한 금융수단들이 서로 다르게 규제되면 시장의 거래 당사자들이 약한 쪽의 규제를 이용해 위험을 숨기거나 재무적 공시 내용을 조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친기업적인 정부들은 <모든 규제 = 나쁜 것> 이라는 등식을 고정시키고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려고 한다.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나쁜 사람들이 있듯이, 중복적이고 탁상행정으로 만드는 규제가 아니라면 그 규제조항이 왜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전횡을 막으려 한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2. 법규에서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장참여자들은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위한 규정을 피해가는 것으로 대응했다. 다들 룰을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하지만 탐욕은 그 룰을 교묘히 피해가는 것으로 룰을 지키는 혹은 룰을 모르는 다수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이익을 챙겼다. 구체적인 법규는 오히려 그 법규를 피해가는 파생상품 등으로 인해 안전한 도피처 기능을 해 주었다. 엔론과 글로벌 크로싱이라는 회사를 수사한 검사들은 구체적인 법규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또 구체적인 법규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능숙하게 회피하거나 악용해온 협애하고 명시적인 법규대신 '정직의 문화'를 조장할 수 있는 좀더 폭넓은 기준(Standard)를 마련해야 한다.(642페이지)

 

3. 감시자들, 특히 신용평가 회사들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회계법인, 법률회사, 은행,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시장의 감시기구 들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이 문제가 된다. 위험을 평가하고 공표하는 역할을 그동안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권한이 너무 크다. (645페이지) 지난 15년 간 감시기구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예롭지 못한 행태를 보였지만, 그들의 평판은 훼손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익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646) 진입장벽이 높아서 감시기구들이 기업경영진을 감시해야 겠다는 동기가 없다.

 

우리가 IMF 시절에 무디스, 피치, 스탠다드 앤 푸어스 같은 신용등급회사의 국가 신용등급에 울고 웃었던 시절을 생각해 보자. 당시에는 이들 회사는 아주 신적인 존재였다. (제길). 이 회사들은 엔론이 망하기 며칠전까지 그들에게 투자 가능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서는 채권시장이 가장 빨리 반응하고, 정보가 적은 사람들 (등쳐먹힐 사람들)이 많은 증시가 그 다음에 알고, 회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신용등급 회사가 반응한다고 한다. 이 회사들은 월가 최고 인재들이 가는 회사도 아니고, 이들의 수입은 너무도 안전하게 국가에서 보증하기에 워렌 버핏은 이런 회사들의 주식을 많이 사들였다고 한다.

 

4. 복잡한 금융부정도 처벌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그른지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이익이 먼저이고, 평판은 행동을 제약하는 데 두 번째로 고려될 뿐이다. (649) 처벌 가능성이나 처벌의 정도가 이익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언제든 부정을 저지를 만한 곳이다. 그러나 미국 월가에서는 복잡한 금융부정을 처벌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메시지가 계속하여 전달되었고, 실제로 고객의 돈 몇억불을 잃은 사람들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방이 처벌에 그쳤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복잡하게 고안된 금융부정을 잡던 검사들은 변호사가 되어 금융회사를 위해 일하는 판이라고 한다.

 

5. 공매도를 장려해야 한다.

 

주가 하락에 베팅할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고 장려하는 조처를 규제당국이 취해야 한다. 금융위기를 낳는 투기의 거품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거품이 생기려고 할 때 명석한 사람들이 금융자산 가치 하락에 베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공매도는 법규상으로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거래방식인데 이러한 제약은 1990년대 주가가 비이성적인 상승 편향을 계속 유지하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651) 주가가 더 정확해지도록 하는 방법은 공매도를 쉽게 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가하락에 베팅하도록 하는 또 다른 방법은 기업 내부자가 자기 회사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외부자에게 알려주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부정적인 정보는 기업 내부에 밀봉된 채로 남아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서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

 

6.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를 스스로 통제하고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주식투자를 고려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다. 그것은 편입종목 변경횟수가 적은 인덱스 펀드를 사는 방법, 주식에 대한 투자를 아예 회피하는 방법, 또는 직접 철저한 조사를 해본 뒤에 업종이 다른 수십 종목의 주식들을 동시에 사는 방법이다. 이 세가지 방법 가운데 궁극적으로 기업들에게 좀더 정직해 지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마지막 방법 뿐이다.(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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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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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환경 경영의 첫 번째 이름, 인터페이스
레이 C. 앤더슨 지음, 김민주.전세경 옮김 / 에코리브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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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생태학 by 폴 호켄! 태어나서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열권 안에 꼽히는 책이라고 호들갑 떨던 바로 그 책!

평소에 생태학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내가 이 책을 고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누구하나 절절하게 추천하는 사람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이 책이 빌미가 되어 나는 에코리브르 또는 녹색평론사라는 출판사의 꽤 많은 출판물들을 사서 읽고 있다.

 

책을 읽고 느끼는 감흥은 취향에 따르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의 주관적 감흥을 비교하면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할 만한 결론이 도출되기도 한다. (간주관성 intersubjectivity 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비지니스 생태학>을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은 한 두명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게 현실에서 정말 가능해?" "누가 그렇게 해 봤어?" 하는 물음 때문일 것이다.

 

이 어려운 질문에 "응 내가 해봤어, 그거 가능하더라구!" 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영웅문에서 악당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악한 행동을 하지 않은자 누구인가? 라고 물었을 때, 구지신개 홍칠공이 "나다!"하고 나선 것 같은 상황이랄까? ㅋㅋ) 바로 미국의 사무용 카펫회사인 인터페이스사를 세운 레이 앤더슨이라는 분이다. 이 분은 <비지니스 생태학>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일궈 온 회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에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는 곧 생태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지긋한 나이에 시작한 이 공부와 실천은 인터페이스라는 회사를 전세계 환경 경영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첫번째 이름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앤더슨씨는 자신의 변화를 7000명에 가까운 회사 직원들에게 설파하기 시작하여 에코센스를 키우고, PLETSUS라는 원칙을 만들어 실천한다. 이 책 말미에 부록으로 제시된  PLETSUS는 Practices LEading Toward SUStainability의 약자로, 사람, 제품,장소에 따라 지켜야할 원칙들을 조목조목 적어 놓고 있다. QUEST는 이 회사의 또 다른 용어인데, Quality Utilizing Employees' Suggestions and Teamwork(종업원 제안 및 팀워크를 활용한 품질)의 약자이다. 그들은 생태학적 노력을 기울인지 3년 반만에 회사의 전세계 사업관련 산업폐기물을 40%나 줄였고, 금액상으로는 6,700만 달러를 절감한 셈이라고 한다.

 

사실 이 책에 생태학에 대한 새로운 앎이 전개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레이 앤더슨씨를 비롯한 인터페이스 社가 행한 생태학적 실천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감흥을 얻을 수 있다.

나이가 든데다 성공한 미국의 백인 남성. 그가 변화해야 할 이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진화한다. 그 변화를 주도하여 성과를 내고, 그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앤더슨씨야말로 대단한 리더십의 소유자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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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 Authentic Happiness (2002)
마틴 셀리그만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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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완전한 행복은 긍정심리학을 새로이 선포하고 있다.

심리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둡고 우울한 측면들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세븐'이나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에서 정신분석학을 통해 연쇄살인범들을 잡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입은 씻기 힘든 외상(트라우마)을 다루고, 세상의 온갖 괴팍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공격/폭력성이나 성적인 무의식들과 같은 의식의 저편에 축축하고 음울한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 셀리그만을 통해, 건조한 대기에서 따뜻한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마른 하얀 이불같은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정적인(negative) 정서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측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었다. 셀리그만은 행복, 기쁨, 지지 등등의 긍정적인(positive)한 정서와 행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자신의 정서 상태를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문화권에 사는 한국사람들에게 셀리그만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약간 낯간지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리학을 전공한 내게는 셀리그만의 논의들이 지나치게 미국식 심리학의 방법론에 의지한 채 진행되는 것도 약간 못마땅 했다. (예를 들면, 행복이라는 것을 조작적으로 정의하여 측정하고 그 점수로 다른 변수와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하는 등의 방법론들은 철학자 러셀이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행복의 정복"이라는 수필보다 오히려 설득력이 적어 보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심리학은 왜 100여년 동안 인간의 반쪽 영역을 무시해 왔는가? 그것도 훨씬 유쾌하고 기분좋은 반쪽을 말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 강점을 키워 나가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서 이미 저질러진 여러가지 부정적인 행동들을 교정하는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임에 틀림없다. 행복한 삶은 부정적인 정서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강화해 나가는데 있는 것이다.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쾌락적인 삶은 오로지 긍정적 정서를 되도록 많이 느끼는 데 열중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행복한 삶은 자신의 대표 강점을 잘 발휘하여 참되고 풍요한 만족을 얻는데 열중하는 것이다. 의미있는 삶은 행복한 삶보다 한가지 특징이 더 있다. 바로 자신의 대표 강점을 자신의 존재보다 더 큰 무엇에 이바지하는데 활용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아우를 때 완전한 삶이 된다. (362페이지)

 

이 세 줄만 보면 뭐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말씀이다. 그래도 네 아이를 키우며, 미국 심리학회장을 지냈고, 스스로 신경질적이었다고 고백하는 삶에서 우러나온 그의 이야기들은 일과 사랑, 육아와 같은 삶의 현장에 대한 긍정심리학적 통찰들을 책 전체에 걸쳐 골고루 할애하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www.authentichappiness.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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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 / 평사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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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만한 '나만의 보물'과 같은 책을 소개받고자 노력한다. 좋지 않은 책을 사서 읽는 금전과 시간 측면에서의 잠재적인 피해를 피할 수 있는데다가 추천자를 더 깊이 이해하는 좋은 단서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자님 말씀에 혼자서 끙끙대며 생각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최고라는 구절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공자님 시대보다 정보와 다른 유혹이 엄청나게 많아진 이 시대에서는 더욱 중요해 졌다. 이 '신뢰할만한 추천' 과정이 바로 선생과 선배의 역할이다. 자신이 먼저(先) 해본 것을 토대로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선생과 선배 아니겠는가?

 

다니엘 퀸의 '고릴라 이스마엘'을 추천한 사람은 바로 환경경영의 실천자 레이 앤더슨 씨이다. 그는 이 책을 600명 이상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600명이라... 나는 곧 검색에 들어갔고, 번역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사서, 읽었다.

 

다니엘 퀸이라는 분은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이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재조합하여 전달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실제로 이책을 쓰기 위해 15년 이상의 준비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을까?

 

인간중심의 역사에 대한 반론이다. 인간이 세계에 속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가 인간에 속해 있는 것인가? 현재의 인간 문명이란 것이 인간의 이기주의 혹은 환상 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누가? 화자는 고릴라 이스마엘이다.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못마땅하셨는지 고릴라가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500킬로 그램이 넘는 거대한 고릴라 이스마엘은 인간의 역사에 능통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대단하다.)

 

일종의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문학적으로 대단한 구성은 아니다. 세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고, 인간은 그 세계를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간의 착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대화의 형식을 채택했다. 책에 나오는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 내게 가장 와 닿는 이야기는 앤더슨씨와 같았던 듯 하다. 바로 사람들이 하는 "비행과 추락의 착각"에 대한 에피소드 말이다. (농경문화와 수렵문화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긴 했다.)

 

이 이야기는 이렇다. 사람들은 하늘을 날고 싶어했고, 비행기라고 하는 것을 만들었다. 온 인류가 타고 있는 거대한 비행기. 그런데 이 비행기의 비행이 시작된 지점은 굉장히 높은 언덕이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사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근시안을 가지고 보면 이 비행기는 잘 날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비행기는 비행이 아닌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추락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사람들은 그 속도에 취해서 비행이 성공적이라는 착각을 더 하게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가까와 오는 땅바닥을 보고 소리친다. "우리는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는 것이었어! 우리는 곧 땅바닥에 부딛혀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꺼야!" 많은 사람들은 태연하다. 수많은 시간동안 우리는 잘 지내왔고, 내가 죽기 전까지는 괜찮아 보이기에... 더욱더 신나게 가속 페달을 밟을 뿐이다.

 

이제라도 유체역학과 양력의 성질들을 고려한 날개를 만들어 진짜 비행을 할 것인가? 아니면 쾅! 할 때까지 추락할 것인가?

 

고릴라의 모습을 한 현자인 이스마엘은 여러가지 생태학적인 화두를 던져놓고, 제자의 사랑이 담긴 담요를 남겨둔 채 폐렴으로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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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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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는 말이 있다. 얼핏듣기에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이 이루어져야 계급간의 불평등이 줄어들고, 이 불평등이 줄어들어야 장기적으로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다. 수긍할 만한 간단한 논리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다. 노동이라는 말은 북한의 미사일이나 파업을 하는 시위자들의 붉은 머리띠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붉은 색은 금기의 다른 말이다. 월드컵 당시 국민 모두가 붉은 옷을 입고 거리를 가득메우는 것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가 조금은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몇십년간 지속적으로 주입한 이 금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의 하종강 소장인데, 그는 노동문제에 대해 20년 넘게 1년에 300번 이상의 강의를 하는 교육자이다. (www.hadream.com) 못생겨서 죄송하다는 고 이주일씨와 달리, 누가 봐도 훤칠한 미남인 하종강 소장은 잘 생긴 것이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분이다. 명강사로 소문이 자자한 이 분은 글도 잘 쓰신다. 이 분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진정한 파수꾼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포털 네이버의 오늘의 책에 선정된 하종강의 책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을 읽다 보면, 우리가 정보를 취하는 방식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 그 정보들이 스르르르 우리의 머리 속으로 들어와서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정의와 평등, 공공성에 대한 다른 시각을 원한다면 쉽게 쓰여진 이 책을 읽어보자.

 

우리 나라처럼 '노동'이라는 단어가 모멸받고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우리 나라에서의 불로소득은 아주 정의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막강한 경쟁력의 결과물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모든 월급장이(노동자)들의 1년간 급여 총액이 1년간 오른 땅값(아파트값) 상승 총액보다 적다는 조사가 있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한 채 투자를 통해 돈을 버는 행위를 완전히 부정할 수야 없지만.... 이런 식이라면 내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사회와 관계맺는 행위(노동)가 너무나 초라해 지지 않는가? 가만히 앉아서 운좋게 클릭 몇번으로 번 주식거래 차액이 하루종일 골머리 썩어가며 일하는 것보다 크다면 일할 맛도 안날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증가하면, 임금이 상승하고 그렇게 되면 경쟁력을 잃어 다 같이 가난해 진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당연한 명제를 공박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먼저 누구나 적게 일하고 많은 보수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데에서 시작해서,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경제 성장을 결정 짓는 가장 큰 변수는 소비라고 한다. (여기에 생태학적인 원칙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은 차치하자.) 소비의 성장기여율은 약 66%이고,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정도도 투자나 수출보다 소비가 훨씬 높다고 한다. 양극화된 사회에서의 부유층의 소비는 한계가 있고, 사치재들이 많은 반면, 진정한 소비는 국민 전체에서 골고루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74페이지)

 

흔히 말하는 자본주의 선진국들(특히 유럽)의 노동교육 현실에 대한 글을 보았을 때 다소 놀랐다. 그들은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에 충실하게도 학교에서 노동에 대한 교육을 매우 체계적으로 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가 지독한 파업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오히려 성숙한 노사문화의 형성이다. 말로만 신성한 '노동'이 아닌 '노동'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건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자유가 우리의 앞세대를 살아오신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권리도 앞선 세대 혹은 동세대의 타인들에 의해서 '당연해진'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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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 오셨던 적이 있어서, 이분의 강의를 들었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 좀 멀게 느껴진 노동 개념을 이분이 가까운 것으로 끌어내려주셨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네요. 정말 잘생기기도 했었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