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질주 - 정운영 교수가 천년대의 전환기에 던지는 화두
정운영 지음 / 해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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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적 없는 질주에 대한 카산드라의 경고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때 지금 이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변화의 속도가 놀랍다. 과거 우리 조상은 돌을 깨서 도구로 사용하다가 돌을 갈아 사용하기까지 무려 60여 만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1분 1초가 새롭다. 바로 이시간은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가 쉴 새없이 출몰하고,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투기 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조상들에 비해 몇천배로 압축된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속도 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변화에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 속도에 눌려 아무도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반성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단지 그 속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이런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잘 요약하는 단어는 바로 '질주'이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의 변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것이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에서 미군에게 초콜렛을 구걸하던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초콜렛을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는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물질적인 면, 기술적인 면 만큼 빠른 변화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인 면 역시 엄청나게 바뀌었다. 물질에 의한 계급의 갈등보다 정신에 의한 세대의 갈등이 더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 그간 우리나라의 변화는 보통 질주가 아니다. 질주 앞에 광란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 '광란의 질주'였던 것이다. 이런 질주의 수레바퀴에 치어 아픔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 달콤한 열매를 맛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익숙해져 버려 멈추어있으면 불안한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97년 말 이런 광란의 질주에 제동이 걸린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IMF사태이다. 가는 곳 모르고 질주하던 우리나라가 장애물에 걸려 쓰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질주는 그만하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때라고 여겼는데... 요즈음 우리 나라는 다시 일어나, 또 다시 미친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더욱 방향성 없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산드라(트로이의 목마를 예언한 예언자, 영화12monkeys에도 그녀의 모티브가 나옴)의 예감을 지닌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한권의 책을 냈다. 그 책이 바로 '세기말의 질주'이다.
경기대 교수이자 한겨레 신문 칼럼을 맡아 쓰시던 정운영 교수는 글보다는 말에 능하신 분인 듯 하다. 물론 그 분의 글이 나쁘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며, 그 만큼 말을 잘 한다는 것이다.(과거 모 방송국의 '정운영의 100분 토론'에서 중립적인 사회자로서 말을 아끼시는 그분의 인내력은 높이 살만 하다.) 그의 강연회를 듣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날인가 학교에서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초청강연이 있었는데, “밤새 생각해도 배우는 것 같지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을 되뇌이며, 난 강연회의 맨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수수한 옷차림의 개성이 강한 분이 털썩 앉으셨다. 이 사람이 바로 정운영씨였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그 강연회가 끝나고 나서 나는 이소룡의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것과 흡사한 감흥을 얻었다. 이소룡이 ‘무술의 고수’ 인것 처럼, 그분은 ‘말의 고수’였던 것이다. 물론 그분의 말은 깊고 넓은 사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이만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는 접고 책을 들여다 보자.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가진 이기심만을 그 원동력으로 한 눈먼 자본주의의 방향 모를 질주를 비판한다. 특히 우리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 왔던 IMF사태를 내적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그것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가르쳐 준다. 내적인 요인으로는 ‘기업과 정부의 저효율의 생산 구조’, ‘종합금융 회사 등이 국가간 금리차이를 이용해 벌인 차입과 대출의 농간’ 등을 들고 있다. 외적인 요인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의 ‘국가 경제회의’의 음모론을 들고 이를 파헤친다.

 물론 IMF사태로 인해서 우리는 어떤 고통과 변화를 겪어야 했으며, 우리가 이룩한 부가 어떻게 외국으로 빠져나갔는가 하는 것들도 적절한 숫자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분석들은 경제적 환란이었던 IMF사태를 정확히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실들을 분석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이 책은 딱딱한 경제학 서적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작가의 탁월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지식들은 문명과 역사, 세계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요즈음 한창 진행되는 세계화의 논리를 심도있게 비판하고 있다. 세계화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기준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인가? 세계화 속에서 과연 우리 것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돈의 힘에 의한 허울좋은 세계화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100조 달러에 가까운 투기자금이 국경없이 떠돌아 다니며 경제를 피폐화 시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 생산이라는 고귀한 가치 창출의 행위가 돈의 논리 앞에서 모멸당하는 것 등이 너무나 자연스레 용납되고 있다.

 작가는 강자들 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 자유방임의 논리에 의한 질주는 영화 카산드라 크로싱에서 절벽으로 질주하는 기차와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사고의 도식 위에 쓰여졌다.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현실세계를 압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그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것이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할 신주단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꿔 말해서, 절벽으로 질주하는 기차에 모두가 몸을 싣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기차에 탄 사람들이 기관차에 줄을 매어 멈추려 당기려 하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시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실제로 한 사람의 비판적 경제학자가 자본주의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지만, 기차에서 “이 기차가 절벽으로 달려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소중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 역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소중한 일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이 책에는 우리 문화의 독자성에 관한 논의와 개인적인 글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기지 넘치는 작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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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군데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이런 형식의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세기말은 지났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이 새로운 세기 초에, 사람 갉아 먹는 주식투기를 좀 줄이고 지하철에서 한 칼럼씩 이 책을 본다면 값진 사실과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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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우석균 지음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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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를 찾아 가는 성능 좋은 나침반

음습하고 지저분한 거리, 끈적하고 느끼한 사람들, 정열적이고 외설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삶, 그리고 축구……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나의 표상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긴 역사나 독특한 문화, 엄청난 크기의 땅과는 상관없이 나의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표상은 너무나 단순했다.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있어 물리적으로 먼 것 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먼 곳이어서 개성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곳이라기 보다는 그저 멀찍이 떨어진 하나의 관념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 것의 성장과정은 분열과 통합의 연속이다.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구체적인 생명체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지식과 생각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을 읽기 전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나의 표상은 분열이 전혀 없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했다. 더구나 명확하지 않은 근거에 의한 부정적인
성격의....


 단순함이 미덕으로 분류되는 요즘이지만, 단순함에 관한 관념도 역시 분화되어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장의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단순함과 분열에 이은 새로운 통합을 이룩한 단순함은 다른 것이다.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가 갖는 단순함이 아메바나 짚신벌레의 단순함과 같지 않듯이… ‘함축이 있는 단순함’만이 미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단순한 표상은 세포 분열하듯 점차 분열하기 시작했고,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식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관성을 맺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만하면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로의 항해에 있어서 훌륭한 나침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분화되고 그것들이 다시 통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옥수수가 만든 그들의 불가사의한 문화 유적, 콜럼버스의 발견으로 시작된 수탈의 역사,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어떻게 정복했는가? 유토피아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곳을. 탱고와 가우초, 까뽀에이라와 깐돔블레의 숨은 진실들.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올리버 스톤의 스승 격인 영
화감독 산티아고 알바레스, 피델 카스트로가 진행한 혁명의 의미들....
 이제 나에게 있어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는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한번씩 의미를 되찾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무지한 대상에 대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생각을 분화시켜 주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그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잠복해 있던 양키(洋氣 : 서양의 기운)를 만나야 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시각은 착취했던 서구인의 것이 아니라 착취당했던 라틴아메리카인의 그것이어야 적절할 것 같은데....


 일말의 성찰도 없이 무조건 서구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문화변동에는 뭔가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대해 막연한 우월감을 가지는 근거는 몇몇 경제적 지표일 뿐! 우리는 그들의 갖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우리의 마음 속에 제국주의적 폭력의 감정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존재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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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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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민감하게 해주는 과장과 유머 섞인 독설


"움베르토 에코! 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천재는 얼마나 삶이 고달플까? 그 천재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바보처럼 보일테니까 말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상의 바보들이 갖는 삶의 편안함을 놓치고 있는 그야말로 바보일 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초반에 든 생각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남들은 볼 수 없는 그런 시시콜콜한 모든 바보같은 일상에 하나하나 반응해야 하는 그의 삶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이러한 생각은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천재임에는 틀림없었는데, 그의 진정한 천재성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웃으면서 화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웃으면서 화를 낸다....` 일견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이 표현은 그의 과장과 유머가 가득한 독설을 통해 실현된다. 이런 방법으로 세상의 은폐되었던 허구와 거짓들, 바보같은 관습들은 웃음과 함께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세상의 거짓들에 대한 에코의 공박이다.

- 신안상품을 구매하는 방법 : 바보같은 신상품에 대한 날카로운 비웃음.
- 도둑맞은 운전면허증을 재발급 받는 방법 : 이탈리아의 관료제도도 우리와 비슷한듯...
-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 획일성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 셰틀랜드의 가마우지를 가지고 특종기사를 만드는 방법 : 환경오염만큼 우서운 마음의 오염.
- 시간을 알지 못하는 방법 : 본질을 벗어난 허구에 대한 질책.
- 서부 영화의 인디언 역을 연기하는 방법 : 서구 중심주의는 이미 남의 것이 아니다 !
- 죽음에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 : 재미있는 발상과 기발한 끝맺기.

모든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을까? 그는 세상을 겹겹, 층층의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파리나 잠자리의 겹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지 않고 생물학적으로 그냥 사람의 눈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세상을 낯설게 보는 시각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했
을까?

사진 작가 김희중씨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진기라는 또 다른 눈이 그를 천재 저널리스트로 만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시각. 그리고 그것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태도야 말로 진정한 천재의 풍모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천재가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버스 밖으로 배경으로만 지나가던 세상이 이제는 약간씩 전경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바보스런 세상을 발견했다. 이제 웃으면서 화내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쉬울 지는 아직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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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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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행복한 삶의 심리학 강의

 25550일! 운좋게 70년을 살아간다면 보낼 수 있는 나날을 계산한 숫자이다. 몇 억이니 몇 백억이니 하는 숫자가 그렇게 귀에 익은데 우리가 살아가는 날은 불과 2만 5천 날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잠자는 시간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자투리 시간, 너무나 어려서 자의식을 갖지 못하는 시간, 늙어서 몸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지도 모르는 시간을 빼면, 인생이란 그냥 그렇게 보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 ‘일상의 구조’에서 이렇게 겁을 준다. 귀를 기울이게 하는 데는 적절한 경각이 필요한 법이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심리학자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언급한 이야기는 반드시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을 값지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저자가 명쾌하게 제시하는 해답은 바로 ‘몰입의 경험’이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의 의지가 들어가 조절 가능한 것은 바로 주관적인 시간의 경험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몰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밀도있게 향유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일과 놀이 인간관계라는 일상의 중요한 모든 영역에서 몰입의 경험은 행복과 자기 발전을 보장하는 핵심이며, 그 자체로 행복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 몰입이 가진 다른 면을 간과한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예를 들면 몰입이 가지는 부정적인 측면 말이다. 몰입은 자아를 망각하는 도피처로서의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현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고독의 시간들을 두려워 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역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는 대가였다. 몰입의 경험의 중요성만큼이나 몰입의 능동성이나 방향성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나 고독을 감내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으며, 몰입의 종류도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인 것을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TV를 보는 행위는 어떠한 노력도 필요없이 몰입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수동적 몰입이다. 이런 수동적 몰입은 자기 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그 자체로 행복감을 주지도 못한다. 이 책은 인생에서 헛되이 흘러가는 시간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알려주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데 구구절절 옳은 이 책은 한편으로는 그 논의가 지나칠 정도로 건강해서 이 책으로 몰입하는데 방해요소가 되기도 했다. 옳은 것은 알지만 행하기 쉽지않은 것들을 강조하는 것이 독자들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능동적 몰입의 경험은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바로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누구나 몰입의 경험을 잘하고 있다면 이런 내용의 책이 나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은 이 책의 내용이 적용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비교적 획일적인 가치가 추구되는 문화에서는 내적인 동기가 중요한 ‘몰입의 경험’에 있어서 경쟁이라는 외부 요인이 끼어들기 쉽다. 다 똑같은 것에 몰입한다면 그 대상이 지닌 한정된 가치를 놓고 다투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음 놓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도록 사회의 가치가 다원화되고, 기본적인 복지가 수행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몰입이 행복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라가 행복한 나라일 테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말 .......

‘Csikszentmihalyi ’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난감한 이름을 가진 이 책의 저자는 개인적으로 내게는 ‘학문적 할아버지’이시다. 어느 날인가 이 분의 다른 책인 ‘The meaning of things’를 앞에 놓고 저자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분분한 의견이 날아다녔는데, 그 언쟁에 종지부를 찍는 선배의 한마디. 

“칙센미하이가 맞아! 야 너희들은 어떻게 지도교수의 지도교수를 모르냐?” 

이분은 나의 지도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이었다고 하니 내게는 ‘학문적 할아버지’가 분명하다. 「몰입의 즐거움」을 읽는 동안 알게 모르게 내게 존재하는 이 분의 생각을 발견하는 일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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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보급판 문고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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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일상과 용납될 수 있는 정도의 일탈이 교묘하게 반죽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보고 나서 무언가를 끄적이려면 당황스럽다.
펜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마치 필터로 거르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샘솟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연유된 가벼운 흥분이 나의 펜을 멋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리라.

이런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 치사하기 그지 없다.” 그의 글은 그렇게 쉽게 쓰여진 것 같은데도 독특하고 기발하지 않은가?


------------흥분을 가라앉히는 시간의 경과--------------

 곰곰 생각해 보니 ‘치사하다’는 단어는 확실히 부러움과 시기의 감정을 담고 있다. 나는 그의 무엇에 대해 치사하다고 표현 했던가? 그렇다! 그의 글에는 어떤 금기에도 묶여있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계몽의 편에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를 딛고, 초등학생의 논설문 같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쉬운 내게는 그의 그런 자유로움이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자유로움은 자연스럽기 까지 하다. 자유를 위한 극단의 자유가 아닌(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에 속박되어 있기에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기발하게 그려내는 그런 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롭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 이 가벼움은 하루키의 미덕이자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역사나 이데올로기,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해서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우리의 일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이야기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없다. 이야기 거리가 되려면 일탈이 있어야 하는데 일탈은 때로 용납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의 경우는 심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일탈의 역치수준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유쾌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은 삶을 관통하는 진중한 시각을 보여주기 보다는 세련된 이미지와 이해할 수는 없고 느낄 수만 있는 행동들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비난 자체가 큰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우리 문학에 길들여진 편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취향의 문제니까… )

그렇지만 이 책의 가벼움이 시시껄렁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보는 것보다 더 하겠는가? 나 역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앵앵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커다란 코끼리가 이유없이 소멸하고, 강풍의 뒤편에서, 오누이의 일상을, 한 지적인 부부의 가벼운 일탈을, 없어진 고양이 와타나베 노보루에
대한 기발한 이야기들을 접했다.

물론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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