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재습격 (보급판 문고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가벼운 일상과 용납될 수 있는 정도의 일탈이 교묘하게 반죽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보고 나서 무언가를 끄적이려면 당황스럽다.
펜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마치 필터로 거르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샘솟는 것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아마도 여기에서 연유된 가벼운 흥분이 나의 펜을 멋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리라.

이런 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참 치사하기 그지 없다.” 그의 글은 그렇게 쉽게 쓰여진 것 같은데도 독특하고 기발하지 않은가?


------------흥분을 가라앉히는 시간의 경과--------------

 곰곰 생각해 보니 ‘치사하다’는 단어는 확실히 부러움과 시기의 감정을 담고 있다. 나는 그의 무엇에 대해 치사하다고 표현 했던가? 그렇다! 그의 글에는 어떤 금기에도 묶여있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다. 계몽의 편에서,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를 딛고, 초등학생의 논설문 같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쉬운 내게는 그의 그런 자유로움이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자유로움은 자연스럽기 까지 하다. 자유를 위한 극단의 자유가 아닌(어떤 의미에서 이런 것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에 속박되어 있기에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기발하게 그려내는 그런 자유 말이다.

그런데 자유롭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 이 가벼움은 하루키의 미덕이자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글에서는 역사나 이데올로기,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을 해서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 든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우리의 일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이야기는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없다. 이야기 거리가 되려면 일탈이 있어야 하는데 일탈은 때로 용납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의 경우는 심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일탈의 역치수준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유쾌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은 삶을 관통하는 진중한 시각을 보여주기 보다는 세련된 이미지와 이해할 수는 없고 느낄 수만 있는 행동들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비난 자체가 큰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던 우리 문학에 길들여진 편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취향의 문제니까… )

그렇지만 이 책의 가벼움이 시시껄렁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을 보는 것보다 더 하겠는가? 나 역시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앵앵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커다란 코끼리가 이유없이 소멸하고, 강풍의 뒤편에서, 오누이의 일상을, 한 지적인 부부의 가벼운 일탈을, 없어진 고양이 와타나베 노보루에
대한 기발한 이야기들을 접했다.

물론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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