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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우석균 지음 / 민음사 / 2000년 4월
평점 :
품절
라틴아메리카를 찾아 가는 성능 좋은 나침반
음습하고 지저분한 거리, 끈적하고 느끼한 사람들, 정열적이고 외설적인 태도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삶, 그리고 축구……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나의 표상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긴 역사나 독특한 문화, 엄청난 크기의 땅과는 상관없이 나의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표상은 너무나 단순했다. 라틴아메리카는 내게 있어 물리적으로 먼 것 만큼이나 심리적으로도 먼 곳이어서 개성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사는 곳이라기 보다는 그저 멀찍이 떨어진 하나의 관념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 것의 성장과정은 분열과 통합의 연속이다.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구체적인 생명체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지식과 생각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을 읽기 전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나의 표상은 분열이 전혀 없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했다. 더구나 명확하지 않은 근거에 의한 부정적인
성격의....
단순함이 미덕으로 분류되는 요즘이지만, 단순함에 관한 관념도 역시 분화되어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장의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단순함과 분열에 이은 새로운 통합을 이룩한 단순함은 다른 것이다.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가 갖는 단순함이 아메바나 짚신벌레의 단순함과 같지 않듯이… ‘함축이 있는 단순함’만이 미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단순한 표상은 세포 분열하듯 점차 분열하기 시작했고, 파편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지식들이 서로 일관되게 연관성을 맺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만하면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로의 항해에 있어서 훌륭한 나침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분화되고 그것들이 다시 통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옥수수가 만든 그들의 불가사의한 문화 유적, 콜럼버스의 발견으로 시작된 수탈의 역사,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어떻게 정복했는가? 유토피아의 대상이었던 바로 그곳을. 탱고와 가우초, 까뽀에이라와 깐돔블레의 숨은 진실들.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올리버 스톤의 스승 격인 영
화감독 산티아고 알바레스, 피델 카스트로가 진행한 혁명의 의미들....
이제 나에게 있어 더 이상 ‘라틴아메리카’는 월드컵이 열리는 4년마다 한번씩 의미를 되찾는 곳이 아니다!
이렇게 무지한 대상에 대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생각을 분화시켜 주는 것 만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는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그들의 시각’으로 ‘그들의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나의 머리 속에 잠복해 있던 양키(洋氣 : 서양의 기운)를 만나야 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가 취해야 하는 시각은 착취했던 서구인의 것이 아니라 착취당했던 라틴아메리카인의 그것이어야 적절할 것 같은데....
일말의 성찰도 없이 무조건 서구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문화변동에는 뭔가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가 라틴아메리카 사회에 대해 막연한 우월감을 가지는 근거는 몇몇 경제적 지표일 뿐! 우리는 그들의 갖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우리의 마음 속에 제국주의적 폭력의 감정이 얼마나 보편화되어 존재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