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의 질주 - 정운영 교수가 천년대의 전환기에 던지는 화두
정운영 지음 / 해냄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목적 없는 질주에 대한 카산드라의 경고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때 지금 이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변화의 속도가 놀랍다. 과거 우리 조상은 돌을 깨서 도구로 사용하다가 돌을 갈아 사용하기까지 무려 60여 만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1분 1초가 새롭다. 바로 이시간은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가 쉴 새없이 출몰하고,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투기 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를 파탄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조상들에 비해 몇천배로 압축된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속도 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변화에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 속도에 눌려 아무도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반성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단지 그 속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이런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잘 요약하는 단어는 바로 '질주'이다. 특히 우리나라, 한국의 변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놀라운 것이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터에서 미군에게 초콜렛을 구걸하던 사람들이 아직 생존해 있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초콜렛을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는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물질적인 면, 기술적인 면 만큼 빠른 변화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인 면 역시 엄청나게 바뀌었다. 물질에 의한 계급의 갈등보다 정신에 의한 세대의 갈등이 더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 그간 우리나라의 변화는 보통 질주가 아니다. 질주 앞에 광란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인 '광란의 질주'였던 것이다. 이런 질주의 수레바퀴에 치어 아픔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 달콤한 열매를 맛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익숙해져 버려 멈추어있으면 불안한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97년 말 이런 광란의 질주에 제동이 걸린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IMF사태이다. 가는 곳 모르고 질주하던 우리나라가 장애물에 걸려 쓰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질주는 그만하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 볼 때라고 여겼는데... 요즈음 우리 나라는 다시 일어나, 또 다시 미친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더욱 방향성 없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산드라(트로이의 목마를 예언한 예언자, 영화12monkeys에도 그녀의 모티브가 나옴)의 예감을 지닌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한권의 책을 냈다. 그 책이 바로 '세기말의 질주'이다.
경기대 교수이자 한겨레 신문 칼럼을 맡아 쓰시던 정운영 교수는 글보다는 말에 능하신 분인 듯 하다. 물론 그 분의 글이 나쁘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며, 그 만큼 말을 잘 한다는 것이다.(과거 모 방송국의 '정운영의 100분 토론'에서 중립적인 사회자로서 말을 아끼시는 그분의 인내력은 높이 살만 하다.) 그의 강연회를 듣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어느날인가 학교에서 '노사정 위원회'에 대한 초청강연이 있었는데, “밤새 생각해도 배우는 것 같지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을 되뇌이며, 난 강연회의 맨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수수한 옷차림의 개성이 강한 분이 털썩 앉으셨다. 이 사람이 바로 정운영씨였다.

 3시간 동안 진행된 그 강연회가 끝나고 나서 나는 이소룡의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것과 흡사한 감흥을 얻었다. 이소룡이 ‘무술의 고수’ 인것 처럼, 그분은 ‘말의 고수’였던 것이다. 물론 그분의 말은 깊고 넓은 사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이만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는 접고 책을 들여다 보자.

 그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가진 이기심만을 그 원동력으로 한 눈먼 자본주의의 방향 모를 질주를 비판한다. 특히 우리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 왔던 IMF사태를 내적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그것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가르쳐 준다. 내적인 요인으로는 ‘기업과 정부의 저효율의 생산 구조’, ‘종합금융 회사 등이 국가간 금리차이를 이용해 벌인 차입과 대출의 농간’ 등을 들고 있다. 외적인 요인으로는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의 ‘국가 경제회의’의 음모론을 들고 이를 파헤친다.

 물론 IMF사태로 인해서 우리는 어떤 고통과 변화를 겪어야 했으며, 우리가 이룩한 부가 어떻게 외국으로 빠져나갔는가 하는 것들도 적절한 숫자와 함께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분석들은 경제적 환란이었던 IMF사태를 정확히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실들을 분석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이 책은 딱딱한 경제학 서적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작가의 탁월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추상화의 과정을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지식들은 문명과 역사, 세계관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요즈음 한창 진행되는 세계화의 논리를 심도있게 비판하고 있다. 세계화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기준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인가? 세계화 속에서 과연 우리 것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돈의 힘에 의한 허울좋은 세계화의 논리가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100조 달러에 가까운 투기자금이 국경없이 떠돌아 다니며 경제를 피폐화 시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 생산이라는 고귀한 가치 창출의 행위가 돈의 논리 앞에서 모멸당하는 것 등이 너무나 자연스레 용납되고 있다.

 작가는 강자들 만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 자유방임의 논리에 의한 질주는 영화 카산드라 크로싱에서 절벽으로 질주하는 기차와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사회주의라는 사고의 도식 위에 쓰여졌다.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현실세계를 압도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그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것이 우리가 받들어 모셔야 할 신주단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꿔 말해서, 절벽으로 질주하는 기차에 모두가 몸을 싣고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기차에 탄 사람들이 기관차에 줄을 매어 멈추려 당기려 하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시도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실제로 한 사람의 비판적 경제학자가 자본주의의 질주를 막을 수는 없지만, 기차에서 “이 기차가 절벽으로 달려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소중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 역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소중한 일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이 책에는 우리 문화의 독자성에 관한 논의와 개인적인 글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기지 넘치는 작은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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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군데 기고한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이런 형식의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세기말은 지났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이 새로운 세기 초에, 사람 갉아 먹는 주식투기를 좀 줄이고 지하철에서 한 칼럼씩 이 책을 본다면 값진 사실과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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