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개념과 글을 썼다. 그러나 의지가 없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대안들을 숙제로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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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각 나라마다 금융을 중심으로 한 구제 경제 정책으로 파탄에 빠진 국가 경제를 회복하려 했다. 그 과정 중에 많은 세계 지식인들은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고심했고, ‘인간의 탐욕’ 이라는 원초적인 부분부터 실제적인 ‘복잡한 금융 상품들의 부문별한 투자와 이해부족’, ‘중앙 정부의 경제 규제 약화’ 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2011년 현재, 각 나라들은 중앙 정부 막대한 예산으로 인하여 국가 경제를 어느 정도 회복했고, 세계 경제 역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도 코스피 지수가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단기간 내에 다시 2000선을 넘어섰으니 빠른 회복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물가는 올랐고 실업자는 늘어만 갔다. 기업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비율을 늘렸고, 중앙 정부는 여전히 자유 무역을 중시하면서 신자유주의식 경제 운용을 계속 하고 있다. 결국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는 진단을 정부와 언론, 지식인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그의 저서들을 통해 항상 국가 차원의 차등적 보호주의 무역과 정부 주도의 경제 규제 정책 및 적극적인 시민 사회 운동을 지지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가 이전의 저서들에서 말했던 주장과 의견들을 되풀이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어느 때보다 그의 주장과 의견들은 인상적으로 들릴 것이라 생각했다. 친절하게도 책 앞부분에 23가지 주장들 중 연관되는 것들을 관련지어 분류함으로써 독자가 흥미있는 분야를 선택하여 읽을 수 있게 돕고 있다.


  자유 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22p>

  23가지 중 첫 번째로 장하준 교수는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세계 경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그의 주장은 다소 모순적이고 이질적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예를 살펴보면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자유무역은 상대적 국가상황 속에서 공정을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미국TV와 중국TV는 질과 양에서 차이가 나지만,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은 값이 싼 중국TV를 선호한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높은 질이지만 가격이 비싼 미국TV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다소 낮은 질이지만 가격이 싼 중국TV의 수요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국은 자국의 기업과 수출 활동을 보호하고 타국의 기업과 수출 활동을 제재하기 위해 자국 위주의 불공평한 보호 무역 정책을 만들 것이고, 그 정책으로 인하여 중국을 비롯한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들도 앞 다투어 보호 무역 정책을 지향한다면, 무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유 시장은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한 개인이 받는 임금은 그의 가치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임금은 이민 제한 정책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부자 나라의 일부 시민들, 따라서 자신의 가치만큼 임금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마저 그들이 일하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 덕에 그만큼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나 근면성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56p>

  각 나라의 사회와 경제상황에 따라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같은 부자라고 해도 가난한 나라의 부자와 부유한 나라의 부자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동에 비해 공정한 대우와 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다.

  장하준 교수는 이 문제의 첫째 원인으로 각 나라들의 이민정책금지 및 제한에 문제를 두고 있다. 간단하게, 같은 업종의 북한 노동자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일한다면 더 많은 임금과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의 이민정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행여나 이민자를 받더라도 고부가가치 산업의 우수한 노동자들을 받으려 할 것이고, 그 외 산업들은 대부분의 자국인들, 특히 사양산업(斜陽産業)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을 것이다.

  둘째 원인은 각 나라의 부자들이 보여주는 비생산성이다.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회 내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부자들은 혁신적인 투자나 경제 활동보다는 현 상태 유지나 조심스런 투자와 경제 활동을 한다. 이래서는 자국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 부자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면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 역시 돈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부자들의 기대수준과 목표의 방향이 자신의 나라를 벗어나 선진국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그들의 불평은 항상 자신들의 부의 유지와 이익을 위해 자국의 사회와 경제 상황에 불평만 쏟아낼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이나 앞으로나 모든 나라의 경제조건이 같을 수 없고, 제한적인 정책이 동반되겠지만 이민정책이 활성화 되면 아무도 후진국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론적인 가설에서 해답을 찾기 어렵다. 또한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은 아니지만,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 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역시 어려운 일이다. 결국 글로벌 경제정책은 일부 선진국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차등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선진국이외의 나라들에게 다양한 혜택과 조건을 허락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정책은 넓은 땅을 가진 세계 인구 2위의 인도를 후진국으로 만들었고, 조그마한 땅을 가진 대한민국을 G20 의장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가장 최신의 기술이자 가장 눈에 띄는 기술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이미 1944년에 ‘물리적 거리(distance)’가 파괴되고 국경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호들갑을 떨게 만든 기술은 다름 아닌 비행기와 라디오였다. <65-66p>

  장하준 교수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이 과연 혁명적이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대한 예로 세탁기와 전보를 인터넷과 비교한다. 세탁기는 가사노동을 단축시킴으로써 여성의 사회참여를 실질적으로 높였고, 전보는 이전의 인쇄문화와 우편운송에 있어서 혁신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인터넷은 세탁기만큼 특정 계층의 노동을 이전보다 월등히 줄이지 못했고, 전보보다 빠른 E-Mail을 만들었지만, 전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현 시대가 효율과 속도 면에서 이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나,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IT산업의 무한신뢰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즉 옛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고, 새것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한창 ‘스마트 폰의 전쟁’ 중인 우리 시대에 생각해봐야 할 논점이다. 사람들은 스마트 폰으로 개인 SNS나 Blog에 빠르게 글을 올리고 다양한 앱을 통해 음식점, 의류점, 대중교통 정보 등을 미리 살펴보며 예약하고 결재 할 수 있겠지만, 단지 빠르게 진행될 뿐 혁신적인 모습은 아니다.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말에 반대의견을 내겠지만, 개인 SNS나 Blog 개인적 유희이고, 예약은 전화로도 가능하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결재를 했다고 물건이 더 빨리 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방해를 줄 수도 있다. 결국 IT혁명은 속도전으로 치우쳐질 뿐, 이전의 산업혁명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 중앙 정부와 기업은 IT산업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고, 사람들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만큼 ‘스마트’한 면을 보여야한다.

  “사회 공동체라는 것은 없다. 오직 남자, 여자라는 개인, 그리고 가족 단위만 존재할 뿐이다.” 라는 대처 여사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없이 고립된 이기적 존재로 살아 온 적이 없다. 우리 모두는 도덕적 규범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 안에서 태어나 그 규범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한다. <80p>

  경제학에 있어서 인간의 이기심은 기초적인 원리의 배경이 된다. 그래서 인간의 경제활동은 이익추구를 위한 행동이고,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런 이익추구를 공정하게, 정당하게 조절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만을 경제학의 원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경제학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제한적이거나 고립된 곳에서 생활하지 않으며, 단 한 곳의 슈퍼나 상점에만 가지 않는다. 그래서 경쟁은 가격과 품질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귀결을 짓는다면 정말 이렇게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경제원리가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최악의 행동으로 규정된다면, 결과 역시 최악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의 탐욕’이었다. 즉 최악의 전제가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기심을 가진 존재를 인정하되, 인간이 가진 이기심외의 다른 본성, 이를테면 선한본성을 경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생각이다.

  자기들의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국경을 허물어서 경제를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키도록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지적 우위를 이용한 이데올로기 공세뿐 아니라 국가 간 원조나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 제공하는 원조에 조건을 다는 방법 등으로 부과되곤 한다.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쓰지도 않았던 정책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 <105-106p>

  오늘날의 강대국들은 거의 보호 무역으로 인하여 부를 축적했다. 보호 무역 정책으로 자국 기업들의 수출을 장려했고, 다른 나라에서의 수입은 철저한 검열과 높은 관세를 붙여 규제했다. 이 결과 내수 시장은 활성화 되어 국민들의 소비는 증가했고, 수입 관세 이익도 늘어나 국가 경제와 산업은 성장했다. 그러나 너도나도 보호 무역 정책으로 수출을 규제하니, 19세 후반부터 강대국들은 쌓여가는 재고품들을 처리하고 더 많은 무역 흑자를 위해 약소국들을 상대로 제국주의 정책을 적용한다. 당연히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에게 낮은 관세의 자유 무역을 고집했고, 원래 가격에 걸맞지 않는 불공정한 거래로 일관했다.

  이러한 상황은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 시대인 현 시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크게는 EU, OPEC, NAFTA 등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FTA이다. 대륙 간 무역 블록화 현상으로 인접 국가들의 상호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FTA를 통해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나라마다 경제 규모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무역 협정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특히 FTA는 양 국가가 수입과 수출량을 고정하고 관세와 규제를 철폐할수록 강대국은 약소국에 비해 상당한 이익을 얻고 경제 규모와 수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약소국은 강대국을 상대할만한 국가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자유 무역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아프리카나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나 현재 역시 가난한 이유는 자유 무역과 시장 정책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강요하여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경제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는 약소국들이 강대국들에게 국가 전체를 착취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임금 격차에 대한 문제도 지적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라도 임금은 강대국 노동자와 약소국 노동자 간에 천지 차이이다. 그래서 약소국의 노동자들은 강대국으로 이민이나 취업 비자를 받아 높은 임금을 받기를 원하지만, 강대국의 이민정책과 외국인 노동자 차별로 인하여 수월하지 않다.

  결국 강대국들은 보호 무역과 더불어 자국의 이익이 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고수했기 때문에 지금의 선진국이 된 것이고,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뒤늦게 개발도상국이 되거나 아직까지도 후진국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과거 자신들이 부를 축적했던 정책들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는데도 개발도상국들과 후진국들에게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을 주장하고 있다. 억울하게 느끼는 개발도상국들과 후진국들이 반발해도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니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장하준 교수의 표현은 아주 탁월하다.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7p>

  1960~197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무역과 대기업 위주의 정부 주도 계획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성장과 분배에 있어서 성장을 선택한 것이다. 흔히 ‘일단 파이를 크게 만들어서 나중에 분배하자’라는 논리인데, 문제는 분배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성장만을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을 목표로 하는 동안 사회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너무나 커졌고, 양극화는 가속화되었으며, 한해에 많은 중소기업들이 파산을 한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여전히 수출주도형 무역과 대기업을 보조하는 경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중앙 정부는 국내 경제의 회복보다 세계 경제 회복으로 인한 수출 증대를 더욱 바라고, 중소기업 백 개 파산하는 것보다 대기업 하나가 파산하는 것을 더욱 우려한다.

  근래에 복지에 대해 보수 세력은 저소득층부터 복지를 실시하자고 말하고 있고, 진보 세력은 전면 무상 복지내지 광범위한 복지로 맞서고 있다. 나는 어느 쪽에 특별한 지지를 보내고 싶진 않지만,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에 큰 환영을 표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선거나 정치적 선전용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실천과 확실한 보장이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여 중앙 정부가 말하는 성장 정책에 인생을 다 바쳤거나 바치고 있는데, 아무런 혜택과 보장이 없다면 도리어 사회적 반감과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30년 이상 파이를 키웠는데 지금도 나눠줄 것이 전혀 없다면 이상하지 않는가? 일부에서는 성장으로 인하여 국가 경쟁력이 상승하고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여전히 분배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배는 항상 특권층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성장의 혜택을 받은 부유층과 대기업들은 스스로 금고를 열어 사회 복지 사업을 추진 및 확대해야하고, 중앙 정부는 복지 정책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이나 생계형 범죄를 언론 매체에서 보고 싶지 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 진학률 10~15퍼센트로도 세계 최고의 국민 생산성을 기록한 스위스의 사례를 고려할 때 그보다 더 높은 대학 진학률은 사실 불필요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설령 지식 경제의 부상으로 기술 요건이 많이 올라 스위스의 현재 대학 진학률 40퍼센트 대를 하한선으로 친다 하더라도(나는 이 하한선 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미국, 한국,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 교육의 절반 정도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분류’ 과정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들의 고등 교육 현실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서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말이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이 이제 화면을 더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248-249p>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 가난하더라도 자식들 공부는 꼭 시키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전통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가정에서 사교육비 지출 역시 높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실업계 고등학교나 전문대는 졸업하기만 하면 취업을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그때는 대부분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었고, 학생들은 특목고나 서울에 있는 중위권 이상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를 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전국에 대학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늘어나 대학을 가는 것보다 어느 대학을 가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청년실업이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취업할 일터는 적어지고 채용 규모 역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공급은 많은데 수요가 적어져 재고가 쌓인 상황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은 대학 입시생들이 의학계 학과와 법학, 사범계 학과로 몰리게 만들었고, 대학 졸업생들을 공무원 입시생들로 만들었다. 즉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자신의 학과와 취향에 맞지 않은 소위 안정된 소득과 정년을 보장 받는 직업으로 선회하게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직업의 서열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특히 비정규직은 취업 기회를 준다는 말과 함께 ‘인턴’이라는 그럴듯한 말을 써가며 취업 준비생들의 애간장을 타게 할 것이다.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큰 손해이다. 다양한 직업에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야지, 특정한 직업에만 다양한 학생들이 몰리면 그만큼 사회 전 분야의 후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학 가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과 진단,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장하준 교수의 소신을 알 수 있었다. 언론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는 우리나라에서 좌파 진보 지식인으로 분류되지만, 나는 그를 소신 있고 양심적인 지식인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거짓말과 위선적인 행동을 아직까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에서 항상 일관된 주장과 의견들을 제시하기에 상투적인 내용이지만 설득력이 강하다.

  나는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이 양심과 소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가 있다면 대중들에게 사과하고, 대중과 언론의 질타와 비판에 인정할 것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왕정시대부터 현대사회까지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은 안일한 말로 왕을 현혹하고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수탈했다. 생각해보라. 어느 시대 때 왕이 신하들의 눈치나 수구적 간언을 극복하고 개혁과 진보적 정치를 지속 했었나? 또한 어느 시대 때 나라가 편안하여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외치며 억울한 고통과 죽음을 잊고 살았나?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왕과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은 백성들의 봉기에 두려워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국민들은 중앙 정부와 사회 지도층 지식인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있으며, 시민 의식이 성장하여 언제든지 거리로 나와 투쟁하거나 온라인 상에서도 탄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개념과 글을 썼다. 그러나 의지가 없으면 아무도 할 수 없는 대안들을 숙제로 남겨 주었다. 책을 읽고 크게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적극적으로 대안을 실천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적용된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23가지의 오류들은 개선되지 않으면 공공의 비밀이 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나부터가 먼저 실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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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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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어려워져서 가격은 계속 오르지만, 경제가 좋아졌다고 내리진 않는다. 더욱 흥미롭고 짜증나는 것은, 가격이 오르면 품질도 그대로 유지하거나 좋아져야하는데,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대형마트나 소매상에서 포장은 커졌는데 내용물이 작아진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았다. 그리고 식료품회사들은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신제품들을 만들어내어 “명품”내지 “웰빙”이라는 말로 가격을 약간 올려 판매한다. 이런 상술은 너무 익숙해서 이젠 아무런 기분도 들진 않지만,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진 않는다.  


  이 책은 나의 이런 고민들을 해결해 줄 책이라 본다. 출간 당시 보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제품의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고 가격을 보고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행동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넛지> 이후 읽게 되는 행동심리학적 관점의 책들은 일상생활에 잊고 있었던 감각들을 일깨워준다. 
 


  가격이란 우리가 언제나 확신할 수만은 없는 그런 숫자들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18p>

  저자는 “가격을 매긴다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행동 속에서 우리는 마음속의 욕망을 숫자라는 대중의 언어로 바꾼다”고 말한다. 인간의 감각은 가격을 단순한 숫자로 보지 않았고, 복잡한 감정으로 이끈다. 이 감정은 상황만 달라지면 똑같은 가격이 할인된 가격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바가지요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가격의 변화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포장의 크기나 가격의 끝자리를 9로 맞춰 눈속임을 하는 것 등은 보기 좋은 속임수이다.

  절대적인 가치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절대적 가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 가치를 측정할 때 사람들은 암시의 힘과 대비 때문에 나타나는 환상에 의해, 그리고 앵커링이라는 속임수에 의해 쉽게 휘둘리곤 한다. <67p>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하지만 절대적 가격이 아닌 상대적 가격에 집중한다는 것이 ‘일관된 자의성’이라 불리는 새로운 가격설정이론이다. 즉 인간은 상대적인 가치평가에는 나름 체계적이지만 절대적인 가치평가에는 일정한 기준이 없다. 가격을 올리면 구매가 어렵지만, 가격을 그대로 두고 내용물의 부피를 살짝 줄이면 의심 없이 구입한다는 것이다.

  행동주의적 가격 설정 방식의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는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220p>

  흥미로운 말인데,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치 명품 매장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의 상품들이 소비자들을 유혹하게 한 다음, 명품 매장 내에 다른 상품들이 그에 따른 효과를 보아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비싼 상품을 전시하여 다른 모든 상품들의 가격이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대비효과를 노린 것이다. 일종의 속임수이지만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전략이다.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가격, 그리고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 속임수를 지녔는지 보여준다. 가격은 기업이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교묘한 속임수이지만 기업의 이러한 의도를 잘 모르면 소비자는 항상 피해자가 되거나 알고도 사야하는 멍청이가 된다. 책에는 심리학적 이론들이 많이 나와서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책을 읽기가 어렵지만, 시간을 두고 한 번에 다 읽기 보다는 천천히 챕터별로 읽으면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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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한때 경제학은 경제학도들이나 금융전문가들만이 공부하는 학문이었지만, 근래에는 일반인들도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마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에 따른 세계금융위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심각성보다는 막연하게 “이제 물가가 오를 것 같으니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겠군!”이라고 느끼는 국민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게 왜 그렇게 큰 문제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 그것에 관련된 강연들을 들었을 때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제를 공부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경제현상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경제수업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의 <달러제국의 몰락>은 최근에 나온 경제학 관련 도서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고, 책을 읽음으로써 경제에 대한 자기주도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 내용은 한국어판 서문에 요약되어있다. 그래서 정독이나 속독하기 싫다면 서문만 읽고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어떤 통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발행국이 크고, 부유하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강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6p>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영국을 누르고 세계 패권을 차지한 후, 1971년 브렌튼우드(Brentwood)체제($:Gold, 1:1)로 세계 경제를 손에 넣었던 일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역사의 비극적인 순간이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행보를 전 세계가 긴장하며 별 다른 대책 없이 지켜봐야했다. 미국은 해외부채나 자국의 경제위기를 겪어도 IMF의 경제구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국제통화인 달러($)를 언제든지 발권하고 제한 없이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미국을 저지할 수 있는 나라는 예전에도 없었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늘날도 없다.


  달러는 현직 프리미엄을 누린다. 어떤 통화로 가격을 매길지 고민하는 수출기업들을 생각해보라. 수출기업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경쟁상품에 대비하여 가격 변동을 되도록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기업들이 달러로 거래를 하면 따라 하는 것이 이득이다. <215p>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도 이러한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체제가 낳은 질병이었다. 시장자유주의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미국의 경제정책은 별 다른 규제 없이 은행과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투자와 담보대출을 도왔고, 유동성 과잉은 미국과 함께 세계 국가들의 기초경제체력을 고갈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벌여졌고 전 세계의 언론들은 일제히 자본주의의 종식 내지 위기를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은 망하지 않았고 달러는 여전히 국제통화의 위치에 있으며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국가정책을 세운다. 그만큼 미국이 가진 국가경쟁력은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유로가 달러와 어깨를 견주려면 둘 중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보다 강한 결속을 이루고 미 국채시장과 비슷한 수준의 유동성을 가진 유로 채권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경제정책에서 큰 실책을 저질러서 달러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이다. <230p>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미국인 저자가 미국만을 찬양하는 책을 만들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국은 금융위기를 자초했고, 그로 인해 세계 경제 역시 불황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다. 저자 역시 달러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국제통화인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유로와 위안 그리고 금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가까운 시기에 셋 다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 저자의 의견을 들어보면, 유로는 유로존에서만 영향력이 있고 단일 발권국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를 보더라도 유로존 나라들의 경제수장들이 몇 번이나 긴급경제회의를 했어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다. 즉,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속도가 느리다. 중국의 위안 역시 중국의 국가체제 특성상 자유경제체제로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금은 금융 위기 시 일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국제통화가 되기에는 금의 한정적 성격과 달러, 유로, 위안 등 통화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금융시장의 깊이와 유동성을 확보하려면 경제규모가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생활수준이 수렴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인구가 경제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가 될 것이다. <256p>


  저자는 “달러, 유로, 위안이 주요 국제통화로 나서겠지만 시장을 전부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달러가 가지는 국제통화의 위상과 영향력은 여전할 것이지만, 세계경제의 상황에 대응하는 미국의 경제정책이 앞으로의 달러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라 본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노동력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듯한데, 인구가 미래의 국제통화의 변수가 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노령화되는 추세에 노동력은 국가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유리한 것은 중국으로 본다. 현재는 이질적이고 비호감인 중국이 어느 순간 미국보다 국제경쟁력이 앞서는 날이 올 것인가? 저자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인도도 포함된다. 
 


  부가적으로 이 책은 달러가 국제통화가 되기 전의 상황과 된 이후의 상황을 잘 정리하였다. 다소 역사적인 서술들이 많아서 지루할 수도 있으나 관심 있게 읽으면 역사는 돌고 돌기 때문에 앞날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경제 인사(人士)들에 대한 저자의 인물평을 볼 수 있는데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나름 유익했다. 또한 도표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책 제목처럼 달러제국이 몰락할 것 같진 않고 그런 극단적인 내용과 해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하고 가능성은 염두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현재 잘못된 경제정책을 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보완 및 수정이 없이는, 미국 스스로 달러가 가진 국제통화의 영향력을 잃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나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속히 극복되는 것을 원하지만, 미국중심의 경제정책은 반대한다. ‘몰빵’은 항상 엄청난 위험부담을 담보한다. 세계국가들은 미국에게 ‘몰빵’을 해줬고, 어느 정도 이익을 얻었겠지만 지금은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며 근거 없는 희망을 제시하여 다시 ‘몰빵’을 하라고 한다면 단호히 거부해야한다. 미국 하나만 망하면 상관없지만, 미국 때문에 세계 전체가 망하는 것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그러므로 각국은 확실한 금융규제와 점진적인 탈 미국화를 준비해야하고, 무엇보다 미국과 함께 동반으로 몰락하지 않으려면 국가기초경제체력을 회복하거나 강화 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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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스웜 -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세상을 뒤바꾼 가장 영리한 집단
피터 밀러 지음, 이한음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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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위대한 역사가 있다면 자연의 끊임없는 생존이다. 자연은 인류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인류의 문명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졌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그것을 비웃을 것이며, 자칫 인류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명은 자연 앞에 유한한 조형물이고 연약하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이를 일부 증명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있다는 점이다. 그 증명은 자연의 맹목적인 위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생존원리를 교훈삼아 인류의 문명발전과 관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연, 특히 군집(群集)을 이루는 동물과 곤충들을 살펴보면서 얻은 지혜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있다. 마치 <파브르의 곤충기>의 현대판을 보는 듯하다.

 

 

  다시 말해 개미 군체는 두 지점 사이의 가장 짧은 경로를 파악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진화시켰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스스로 판단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개미도 두 다리의 길이를 독자적으로 비교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군체가 집단으로서 최상의 해법을 내놓는다. 한 마리 한 마리가 페로몬을 이용하여 초기의 성공 사례들을 ‘증폭시킴으로써’ 인상적인 자기 조직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37p>

 

  개미는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효율적인 집단유지를 한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을 하지 않지만, 그 밑으로는 생존을 위해 단순하면서도 변함없는 생산과 유지활동을 한다. 이 활동에는 수장이나 리더가 없다. 개미들은 자기들이 부여받는 본능적인 규칙만을 지키고, 그 규칙들을 지키는 것은 전체의 생존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협동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거나 차선을 선택하여 그들이 원하는 목적을 이뤄낸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화한 개미들의 지혜이다.

 

  이런 개미의 행동은 고비용으로 저효율을 달성하는 기업이나 단체에게 좋은 지혜를 준다. 책에서 관련 전문가들이 개미의 자기 조직화를 시뮬레이션으로 설정하여 기업과 단체에게 이윤창출을 위한 최상의 방법을 제시한 예들은 인상적이었고, 방법을 적용한 기업과 단체의 경제적 효과는 컸다. 특히 복잡한 유통체계에서 개미의 자기조직화를 적용한다면 큰 효과를 거뒀다.

 

  다양성, 독립성, 관점들의 조합. 이 원리들은 친숙하게 들릴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꿀벌에게 배운 교훈들의 다른 형태이다. 그것은 ‘지식의 다양성을 추구하라. 생각들의 우호적인 경쟁을 장려하라, 선택을 좁히는 효과적인 매커니즘을 이용하라’ 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꿀벌에게 통용된다면 인간 집단에게도 통용된다. 꿀벌처럼 능률적으로 결정을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은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능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멋진 체계를 빚어냈다. 우리가 그들처럼 할 수 있다면, 즉 다양성을 활용하여 우리의 나쁜 습성들을 극복할 수 있다면 아마 사람들은 우리가 여전히 동굴인의 뇌로 생각한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76p>

 

  꿀벌들의 8자 비행은 그들만의 언어이다. 꿀벌들은 그것으로 의사표시를 하고 다른 꿀벌들은 다수의 움직임을 통해 선택을 한다. 즉 다수를 움직이는 소수의 꿀벌들의 선택양이다. 신뢰는 소수의 꿀벌들의 선택 중 더 많은 꿀벌들이 선택한 것으로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꿀벌들 간에 자연스러운 경쟁이 발생하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서 적절한 결정이 내려진다.

 

  책을 읽으면서 꿀벌들의 이런 행동에는 상당히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익과 편리를 위해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은 제공받은 사람들에게 있다. 하지만 정보의 신뢰여부는 선택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선택의 실마리는 다수가 선택한 결과에 집중되고, 이후 사람들은 다수 사람들의 선택을 무의적으로 따르거나 면밀히 검토한 후에 결정된다. 선택의 안전성은 다수의 선택에 대한 결과에서 근거를 찾는다. 그리고 개인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어 앞으로의 유사 선택결정에 있어서 판단의 속도를 빠르게 한다.

 

  개인의 선택과 더불어 기업과 단체는 다양한 리서치 활동을 통해 활동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기업과 단체는 소비자들의 의견과 조언을 면밀히 조사하여 앞으로의 활동을 설정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익과 목적달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리서치들의 결과는 이후 전례가 되어 기업과 단체의 판단에 지속적인 도움을 준다.

 

  발전회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얽히면서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망이라는 복잡한 망을 자아낸 것처럼, 흰개미들도 기체와 수분을 유통시키는 둔덕이라고 부르는 복잡한 구조를 자아낸다. 개인과 민간 기업이 서로 얽혀서 월드와이드웹이라는 디지털망을 만들고, 공유된 구조에 새 사이트를 추가함으로써 그것을 매일 같이 엄청나게 성장시키고 있는 것처럼, 흰개미 일꾼들도 서로 얽혀서 성에 벽과 통로를 만들고 자신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그 공유된 구조에 새로운 부분은 덧붙인다. 하지만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우리 시스템과 달리, 흰개미의 시스템은 튼튼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흰개미들이 끊임없이 자가 치유를 하는 둔덕을 짓는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145p>



 

  흰개미들의 행동들은 정보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저자가 제시한 성공사례가 인상적이었는데,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http://www.wikipedia.org)는 흰개미들의 특징을 적용하여, 기존의 전문가와 개발자들만이 구축했던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 사용자들도 구축가능하게 만들어서 다양성을 창출하였다. 게다가 상시로 지식과 정보의 편집도 가능하니, 기존의 책으로 출판된 백과사전보다 효율성과 활용도 면에서 유용하다. 결과적으로 부분의 참여가 전체의 결과를 만들었고, 전체의 결과는 부분의 지속적으로 수정으로 인하여 계속 변화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슷한 비유로는 인간의 몸이 가지는 항상성이 있다.

 



  순록과 늑대의 만남을 압축한 듯한 이 장면은 적응 모방의 기본 원리 세 가지 모두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무리의 움직임을 조정(coordination)하여 매의 공격을 따돌리는 로마의 찌르게기 떼처럼, 순록 떼도 마치 전체가 한 마리인 양 함께 질주함으로써 늑대의 공격에 대처했다. 게다가 달리고자 하는 처음의 충동은 라다코프 실험에서 동요의 물결이 은빛 물고기 떼 전체로 퍼지듯이 무리 전체로 빠르게 전달되었다(communicated). 마지막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들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행동을 모방함(copying)으로써, 각 순록은 무리의 수많은 눈으로부터 혜택을 본다. <243p>

 

  포식자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동물이나 물고기의 행동은 민첩하다. 그리고 그들이 무리를 지어 행동하게 되면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가끔 공원을 걷다가 비둘기 떼나 참새 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움직임은 소수일 때보다 다수였을 때 더 민첩하다. 즉 다수였을 때 군집범위가 넓어지고 그에 따른 정보의 획득과 움직임도 많고 빨라지는 것이다. 또한 본능적으로 어떤 한 개체의 움직임이 다수의 선택을 빠르게 유도할 수 있는 능력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에는 평화와 위험은 늘 같이 있다.

 

  무리의 반응은 우리 사회의 군중심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언론이나 사회 유력자의 광고나 조언은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집단의 판단을 좌지우지한다. 좋은 판단을 내리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니 신중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언론조작이나 사회 유력자들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다. 이것에 관한 책으로는 스테디셀러인 <넛지>가 잘 표현했다.

 

  군중의 재난을 예방하는 열쇠는 밀도가 임계 수준 아래에 머물러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키스 스틸은 무엇보다도 군중이 모이는 경기장 같은 구조물을 최대 수용 인원을 처리할 수 있도록 지적으로 설계함으로써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개인들에게 자신의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군중을 진정시킬 수도 있다. “군중 자체는 시야가 한정되고 이동 능력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위험이나 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군중 한가운데 있으면, “당신은 군중에게 속박됩니다. 자신의 본래 걸음걸이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속박되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예상할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자기 통제력을 잃고 폭도의 일원이 될 수 있다. <277~278p>

 

  무리를 이루는 동물과 어류, 곤충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수가 넓은 영역에 있으면 그만큼 다수를 통해 개개인이 얻게 되는 정보와 지식의 양이 많아지게 되어 판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학습화되어 더 빠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많은 양의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신뢰하고 선택하느냐가 문제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메뚜기 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정보와 지식의 양이 부족하여 불안정한 상황이나 심리상태가 되거나, 소속집단의 구성원이 너무 많아 최대치를 갱신하면 서로를 파괴하게 된다. 인간 역시 불안한 상황과 심리상태에서는 소속집단의 구성원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폭력적이고 일탈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의 원활한 소통과 적절한 집단구성원의 유지가 필요하다.

 

 

  책에서 제시한 동물과 곤충은 이전에도 한번쯤은 사용되었던 예들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아는 것만큼만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상당히 정확하다. 저자는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방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적용하길 원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기계적이지 않다. 수많은 이성적 사고와 감정적 행동을 통해 움직임으로 변수는 너무 많다. 그러나 그것을 최소화하여 소기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책의 내용들을 참고할 필요는 있다.

 

  자연은 인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 땅에서 보냈다. 그들 나름대로 생존을 거듭했고, 인간의 파괴만 아니었다면 자연의 세계는 오늘날의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보다 우월하고 말하면서 탐욕적이고 파괴적인 인간이 파괴의 대상이었던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면 어떨까?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연은 인간보다 지혜롭고 인내심이 많다. 무엇보다 여유롭고 서로가 신뢰적인 협동관계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경험과 난관을 겪고 진화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처세나 경영원리, 합리적인 행동과 의사결정에 관한 책들은 서점가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려왔고 그 주제나 소재 역시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좀 상투적일 수도 있으나 내용이 최신자료이기에 새로운 면은 어느 정도 있다. 만약 자신 스스로가 어느 정도 집단의 컨트롤 하거나 할 능력, 자질이 있다면 책의 내용이 이미 알거나 체득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 책은 충분히 도움이 된다. 이 책을 통해 개인과 기업, 단체가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우리보다 인생의 선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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