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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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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라단 신간평가단 8기를 마치며 읽게 된 마지막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는 것이 처음 신간평가단을 했었던 그때의 책임감이 다시 느껴졌다. 머리말인 서곡을 읽으면서 대략 이 책의 내용을 파악하며 가볍게 읽으려고 했으나 서곡과 악장들은 조금 연결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마치 서곡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정리된 생각을 말했다면, 악장들은 독자들이 공감하면 공감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자는 식의 자신의 정리된 생각을 나열하고 있다.  

 

  우리에겐 반드시 사유해야 할 당위성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 '사유해야 한다'라는 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보이는 인간학적 당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당위의 이유와 목적, 원인과 지향, 곧 '왜 사유해야 하는가'라는 어떤 회의와 결단의 물음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7p>

  책의 디자인은 신비로움과 깔끔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500페이지가 넘는 저자의 사유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읽으면서 이해가 되는 말들보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이 더 많았다. 이해가 되는 말들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 동반된 이해였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은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거나 사전지식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인정해주고 싶은 것은 인정해주고 싶다. 그는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분야에 관하여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대상을 향한 자세한 분석과 생각의 산물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비평일수도 있고, 스스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도 있으나 나는 그저 그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현재는 인정하려고 한다. 언젠가 그의 책을 다시 접할 일이 있다면 다시 이 점에 대해 수정되어 논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려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시각을 잘 정리해둔 기록집 같은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닌, 저자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소득이 있는 정보와 지식들을 얻어가겠지만, 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지루해졌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는 깨달음보다는 혼탁한 사유의 악보들이 구독이 만료된 신문사의 무자비한 신문배달 횡포처럼 현관 앞에 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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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1-05-03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비판의 말씀 겸허히 받아들이고 저 또한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의 책은 일단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저자에 의한, 저자를 위한 책일 수밖에 없겠으나, 저 또한 미지의 독자에 대한 크나큰 기대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밝힌 '소수의 독자'란 고정되어 있는 집단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금 창조되고 규합되고 다시 (탈)구성될 수 있는 단수들의 복수라고 생각하고 또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책은 단지 '혼탁하기만' 한 악보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또한 "독자들이 공감하면 공감하는 것이고 아니면 말자는 식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책은 또한 '귀 있는 자 들어라' 혹은 '눈 있는 자 읽어라'라는 방식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책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이 땅에서 이론이 수입되고 유통되는 방식에서 어떤 '식민지적 채무감'을 항상 예민하게 느껴 왔던 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문학이 단순한 정리나 요약(제 어법으로 말하자면 '이유식 인문학')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탈피의 시작이 '진정한 비판'의 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입각하여 책을 읽어주신다면 어쩌면 또 다른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입니다.

EAST-TIGER 2011-05-05 03:12   좋아요 0 | URL
저자인 최정우님이신가요? 저 역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왠지 반갑군요. 저 역시 저 나름대로 온라인상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항상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 달리 독자들은 다른 면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쓴 글에 독자들의 반응이 어떨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는 있으나 장담할 수는 없겠죠. 이 책 역시 그런 점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서평을 한 것이고, 책을 읽어봤지만 거창한 서론에 비해 소통할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많이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독일 대학생들도 처음에 읽다가 덮어버리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역시 자신의 모국어 인데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직 그 책을 읽거 이해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그것에 비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보게 되면 최정우님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러나 대중적인 독자들은 이 책에 큰 호감을 보내진 않을 것입니다. 책이란 일단 다수의 독자들과 소통이 되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도 집필활동을 하시다가 보시면 언젠가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겠지요. 건투를 빕니다.

람혼 2011-05-05 10:10   좋아요 0 | URL
글쓰기와 음악을 동시에 하고 계시군요. 왠지 커다란 동류의식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하나의 글, 하나의 책은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나 서곡에서 밝혔듯이 오히려 그러한 '변주'와 다른 '악보'들을 종용하고 반기는 쪽이고요. 아무튼 저 역시나 저 '소수의 창궐'을, 따라서 단지 소수가 소수가 아니게 되는 어떤 상태, 단수들의 복수화를 꿈꾸는 이들 중 하나이므로, EAST-TIGER님의 소중한 건투의 말씀, 마음속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예리한 비판과 세심한 독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AST-TIGER 2011-05-05 14:59   좋아요 0 | URL
최정우님의 사회적 다양성 추구는 좋은 시도입니다. 저 역시 그 부분에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나중에 만나서도 대화하고 싶군요 좋은 하루 되세요..^^
 
융 심리학 입문
캘빈 S. 홀.버논 J. 노드비 지음, 김형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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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 대학원에서 칼 구스타브 융에 대해 공부하다가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융의 생애와 그의 주장들을 잘 요약했다. 다만 입문에 충실한 책이라, 구체적인 융의 사상들을 알려면 이 책을 읽고 본격적으로 그의 저작들을 읽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이 책과 더불어 융의 저작 몇 권을 더 구입했다. 참고로 내용에 비해 책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실’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추측이나 단산(斷産)일 뿐이었고, 이론이 현실의 확고한 사실들과 모순될 경우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41p>


  프로이드와 함께 융은 정신분석학계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젊은 시절 프로이드에 영향을 받아 그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1912년 융은 <무의식의 심리학>을 출간하여 프로이드와는 다른 이론들을 주장한다. 당시 프로이드는 융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줄 것을 당부하고 <무의식의 심리학>에서 융이 주장한 이론들을 철회해 줄 것을 부탁하나 융은 거절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융이 프로이드와 결별했다”는 표현을 하는데 나는 오히려 융이 프로이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서상 제자가 스승의 이론을 반박하면 ‘패륜아’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데, 반박을 통해 스승의 사상을 보완하거나 발전시킨다면 이것만큼 ‘청출어람’(靑出於藍)과 잘 맞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나는 융이 프로이드의 사상들을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방법론적인 면에서 프로이드의 획일적이고 단정적인 이론에 비해, 개방적이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이론을 구축한 것이 융의 정신분석학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 본다.



  집단 무의식은 융이 일반적으로 ‘원시적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잠재적 이미지의 저장고이다. <62p>


  집단 무의식은 융이 주장한 이론들 중 하나이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개인 무의식과는 달리 집단 무의식은 개인이 삶에서 경험된 적이 없었던 것들이다. 다만 조상들이 이미 경험한 것들과 그에 따른 반응들이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유전되어 후손들도 비슷한(절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들과 반응들을 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예를 든 것처럼, 어느 세대 또는 일련의 세대에 의해 학습된 뱀이나 어둠에 대한 공포는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유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전 세대들이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반응들을 축적할수록 후세대들에게는 잠재적 무의식이 더 많이 표출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래서 인간에게 만족스러운 환경과 체계적인 교육, 다양한 학습기회가 무척 중요하다.



  융은 프로이드처럼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만으로 국한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이것이 두 사람의 이론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 가운데 하나이다. 융에 따르면 리비도란 정서적인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배고픔, 갈증, 성적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리비도는 목표 지향적이며 갈망하고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 <96p>


  프로이드의 ‘성적 에너지’ 리비도를 융은 ‘정신 에너지’로 확장했다. 이 에너지의 양은 수치상으로 측정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축적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평형의 원리). 그래서 리비도는 인간의 인격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일정한 양의 에너지(잉여 리비도)는 사용되지 않고 남아,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원형을 구체적인 의식으로 발현(개성화)시킨다.

  융은 리비도의 역류를 ‘퇴행’이라고 주장했는데, 인격의 발달은 의식적인 자아가 환경의 실재를 정신 전체의 여러 욕구와 조화시켜 ‘전진’ 할 수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좌절이나 박탈감으로 인해 이 조화가 깨지면 리비도는 환경의 외향적 가치에서 후퇴하여 무의식 속의 내향적 가치로 ‘퇴행’ 된다고 주장했다. 리비도는 욕구의 발현과 축소를 통해 성장하고 빼앗기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융은 인격의 발달이 이러한 ‘전진’과 ‘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결국 융에게 있어서 인간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말하자면, 그림자인 동시에 이데아인 것이다.



  앞서 융의 이론들이 개방적이고 다양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장점은 융 이외의 다른 이론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명확하고 단적인 이론들이 부족하여 다른 이론들과 비교할 때, 자칫 독자성이 결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융의 이론들은 대부분 스스로 임상실험을 통해 체득한 경험의 산물이고, 경험만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론에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잘 정리된 융의 이론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융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곧장 그의 저작들을 차근차근 읽는 것도 좋지만, 입문서를 통해 개론적으로 융의 사상들을 먼저 살펴보고 그의 저작들을 읽는다면, 어렵지 않게 융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인 김형섭은 역자 후기에서 융의 이론들과 개념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는데, 짧은 단락이지만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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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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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내용이 어렵지는 않지만 전자현미경으로 촬영된 삽화는 시선을 머물며 보고 싶지 않다. 책 제목만 보면 삶의 위로가 되어줄 것 같은 제목이지만, 읽어보면 위로보다 절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이 책은 인간과 너무도 가까이에 살지만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곤충들과 보이고 느껴지는 곤충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이런 벌레들은 충격적이게도 인간과 비슷한 면이 있는 동시에 괴물 같기도 한 양면을 지니고 있다. <14~15p>


  책에 소개되는 벌레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손님들이 아니라 거의 주인(?)들이다. 아무리 청결을 유지하거나 결벽을 추구하더라도 집안 곳곳에 이들은 숨어있으며,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다. 

  엄청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인류 문명 이전부터 살고 있었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끈질기게 유지했고 외형적 변화가 아닌, 강한 내성을 가진 곤충으로 진화했다. 가끔 우리 주변의 사람들 중에 유별난 사람들을 벌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별로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책을 읽어보면 공감이 간다. 책에 소개되는 벌레들은 각각의 개성이 있고 때로는 사람보다 지혜롭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많은 파리들을 가로, 세로, 높이로 1인치인 정육면체 안에 넣고 1,000마리씩 단단하게 밀착시켜 덩어리를 만들면 지구에서 거의 태양에까지 이를 만큼 많은 덩어리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93~94p>


  책에 소개된 곤충들 모두 싫어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것은 파리이다. 이제 곧 다가올 여름이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거슬림을 넘어선 자극적인 날개소리와 잠시라도 틈을 주면 어디든 착륙하여 혀를 비벼대는 민첩함은 죽이고 싶은 충동이 아닌 이성적 살의를 가지게 만든다. 

  문제는 아무리 죽여도 파리들은 지구상에서 살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로 책에 짤막하게 속대된 1954년에 있었던 실험내용은 파리의 엄청난 번식력을 보여준다. 아마 지구의 종말 이후에도 어느 행성에 정착하여 계속 번식하며 살지 않을까? 끔찍하다.



  번식력이 무척 왕성한 바퀴벌레는 끈끈이나 미끼를 이겨내고 생존할 방법을 찾아낼 때마다 획득한 저항력이 유전자에게 삽입된다. 이 ‘기억’은 후손에게로 전달될 것이고, 따라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끈끈이, 분무약, 미끼, 가루약, 이 모든 방법이 효력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또한 바퀴벌레는 놀라운 후각 능력 덕분에 살충제가 살포된 곳을 피하는 법도 상당히 빠르게 습득한다. <117~118p> 


  지구가 생겨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이후에도 종족을 이어갈 “살아있는 화석”인 바퀴벌레. 그들의 생존은 경이롭다. 책을 읽어보니 경이로운 생존의 비밀은 놀라운 적응력과 지능적인 진화였다. 

  정자 없이 알을 날 수 있는 암컷 바퀴벌레의 미친 번식력, 자기 주변의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여 순식간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거나 저항하는 지능, 무엇보다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경험(?)을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교육정신은 바퀴벌레가 혐오스러운 벌레이지만, “신이 만든 피조물들 중 가장 영리한 피조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바퀴벌레는 과학이 발달하든, 인간 스스로 박멸하든 할 수만 있다면 파리와 함께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책이 지루한 내용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래서 빠르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나 다시 볼만큼의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항상 집안을 깨끗하게 하려는 가족차원의 담합으로 책에 소개된 벌레들을 거의 볼 수 없지만, 혹시라도 집안 어디선가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아마 벌레퇴치회사인 세스코(CESCO)만 책에 소개된 벌레들이 지구상에서 살아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잠시 든 생각인데, 인간은 살아있는 세균이자 병균이 아닐까? 책에 소개된 벌레들 중 눈에 보이지도 않은 벌레들은 일상생활에서 먼지처럼 내려앉아 바람결에 입으로 들어가 먹기도 했을 것이고,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몇몇 식품회사들의 비위생적인 생산과정이 고발되었듯이, 식료품을 통해서 혐오스러운 벌레들도 몇 번(?)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세균들과 병균들을 가진 벌레들의 사체가 지금 인간 안에 있다. 설마 자연사로 죽는 인간은 노화가 아닌, 세균들과 병균들의 축적으로 평생 그들의 먹이가 되어 죽는 것일까? 제발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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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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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군가의 평전을 읽을 때마다 잠시 동안 망설이는 것은 “평전으로 기록된 대상에 대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전으로 기록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알기 전에 그들이 남긴 유산들을 살펴보아야 삶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엄청난 평전이다. 그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한 채 이 책을 읽는 것이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고, 내 스스로는 자책할 일이었다. 하지만 잠시 그의 삶을 먼저 아는 것은 이해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만날 그의 유산들의 실마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도스또예프스끼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더 원시적이고 더 근원적인 지역이다. 그것은 낭만파들의 인공적인 황무지도 아니며 더욱이 프랑스의 고전주의 시대 또는 영국의 어거스틴 시대의 잘 가꾼 정원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기의 접경기에 해당될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이 통제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어두운 힘들의 숲 속에 트인 작은 공터다. 이 미지의 숲 속을 도스또예프스끼는 반쯤 놀란 눈으로, 그러나 통찰력을 가지고 쏘아보고 있다. <380p>

  나는 그의 대작 <까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흥미롭게 읽었다. 친부살해라는 충격적인 사건과 아버지의 죽음 후 세 아들이 겪는 적대감과 내면적, 외면적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해 고민하게 되는 “인간이란 무엇일까?”의 진한 고민들.. 도스또예프스키는 인간의 어느 면을 보고 그런 고민을 하며 이 책을 썼을까? 그의 평전을 읽다보면 그가 활동한 암울했던 시절과 생활에 그만 마음이 숙연해진다.  



  19세기 말 만 러시아에 만연했던 계급 간 갈등과, 갈등 해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지식인과 종교인은 <죄와 벌>과 <까리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의 전형적인 등장인물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사정없이 비판하며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들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조국 러시아의 사회통합을 위해 화해와 참회를 주는 결말은 지금을 사는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평생 지병인 간질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역작들을 쏟아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도스또예프스키, 나는 그를 언젠가 넘어야 할 산으로 바라보고 있고, 한편으로는 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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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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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등학교 때 이과에서 공부를 했고, 수능도 이과로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나의 문제점은 수학을 잘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를 볼 때면 항상 수학에서 점수를 잃었고, 다행이 다른 과목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아 그럭저럭 이과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수능 때 수학을 못 본 것은 치명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수학 때문에 인생에서 첫 쓰라린 패배를 느꼈다. 그만큼 수학은 내게 익숙한 것도 아니었고, 좋아할 수 없는 학문이었다.

  그런 내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전역한 이후다.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간단한 이유는 수학적 능력이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하게 인문학도가 되어 있었고, 인문학도에게 수학적 복잡함은 필요 없는 부가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나 수학적 능력도 필요하다는 무언의 끌림이 있었고, 급기야 고등학교 때 보았던 ‘정석’책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교과서로 바뀐 지금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책을 다시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접하게 되었을 때, 책의 대강을 살펴보면서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익숙한 말만 찾다보니 제대로 읽을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정독을 해야 했다. 정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책이 보기보다 어려운 부분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칭은 자연에서 그렇게도 흔할까? 이것은 단순히 미적인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수학자들에게, 자연 속 대칭은 하나의 언어이다. 그것은 동식물들이 우성 형질에서부터 영양 정보에 이르기까지 다량의 정보들을 전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대칭은 흔히 의미 기호로 간주되어 매우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의 의사전달로 해석되기도 한다. 벌과 같은 곤충들에게 대칭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25~26p>

  영국의 젊은 수학자인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는 자신이 여행했던 장소들에서 겪었던 경험들과 예전의 추억들을 되살리며 대칭에 관한 재미있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얼굴 대칭에 대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폭발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인기 연예인들의 얼굴과 일반들의 얼굴 등 정면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대칭을 살펴보고 비대칭한 얼굴들에게는 구설수를 선물로 부여했다.

  왜 사람들은 대칭에 민감한 것일까? 짝짝이 신발이나 패션은 보는 이들에게 불안정한 느낌을 주고 한쪽이 없는 것보다 양쪽이 없는 것에 더 안정감을 느낀다. 사실 그게 더 손해일 때가 더 많은데도 그렇다. 저자는 그것이 대칭이 가져다주는 매력으로 보고 있고, 대칭은 인간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실생활과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큰 영향을 준다.

  이외에도 다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수에 대한 증명도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대수학 같은 대학교 수준의 수학을 공부를 한 사람에게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좋아했던 학문이다. 의문투성인 세상에서 진리를 찾아 한 평생을 바치던 철학자들은 ‘수’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고대 이오니아인들 중에 피타고라스는 동료 철학자들이 흙, 공기, 불, 물 등의 물질적 원소들로써 설명에 집중했던 것과는 달리, 실재의 본질이 비물질적인 ‘수’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가 수의 속성들 및 그들 간의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고, 수를 가지고 독특한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를 결합하여 종교적인 위치까지 올려다 놓았다. 피타고라스보다 후세의 사람인 회의주의자 데카르트도 “오직 명증할 수 있는 진리는 수학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의 개념과 비율은 불변하고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려는 철학자와 사람들에게 당연히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본 수학은 내가 고등학교 때 보았던 수학책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갑자기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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