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응원하라 - 잘되는 나 실천편 - 나는 오늘도 잘될 것이다!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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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고 불의 능력을 꺾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기도 하고 연약한 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고 (히11:33-34)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자랑스런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지만 현실은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어려움과 갈등 속에 웃고 울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이, 그리 지칭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부딪히는 현실은 녹록치가 않습니다. - 이리 말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부족이라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그러한 현실속에 어깨가 쳐지곤 하는, 그래서 복음성가 중에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등을 시시때때로 읊조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실 속에서 능력있게  창조주를 만나고 표현하며 살 수 있는 당당함을 심어주는 내용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긍정의 힘'이나 '잘 되는 나'를 보며 너무 현세적이고 축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마음 한구석에 가지곤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매번 이리 그분의 책을 읽다보면, 그리스도인들-그의 자녀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나아갈 만한 용기와 담대함을 간직하게 되곤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러한 용기와 담대함에 대한 기억은 나뿐 아닌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이리라는 생각입니다.  

 '긍정의 힘'에 이어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잘 되는 나'의 실천편으로 소개된 이책은 매주 한 단계씩 7주에 걸쳐 매일 소단원 하나씩을 묵상하며 자신의 일상에 하나님의 음성을 적용할 수 있게 구성되었습니다. 한 단원이 4페이지씩이니 잠시 짬을 내서 조용히 들여다 볼만한 분량입니다. 내용의 여러 부분은 모태가 된 '잘 되는 나'의 내용과 겹치기도 하는 듯(?  다시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잘 되는 나'에서 보았던 에피소드들과 겹치는 내용이 있어서) 합니다. 각 소단원의 구성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낙망하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나 예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권면을 담은 'My Problem',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에 입각한 대답과 각 상황에 적절한 말씀을 예시한 'His Blessing' , 그리고 하나님 입장에서 우리에게 하시는 질문과 그에 대한 기도문, 금언과 저자의 권면이 담긴 '하나님의 응원전 Victory'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약간 다르긴 해도, 대부분의 묵상서들이 지닌 형식의 틀을 가졌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특징은 그러한 면에서 찾기보다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묵상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잘 되는 그리스도인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위한 안내서라는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7단계로 나뉜 내용은 나는 잘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의 정비에서 시작해서,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생각의 변화,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한 생각과 훈련, 다른 사람과의 건설적인 사랑의 관계의 회복,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 비전을 이루기 위한 결단, 그리고 실천을 위한 견고한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우리의 삶에 대한 응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천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묵상을 통한 변화와 성장이라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는 배열이겠지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변화가 필요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역사하시는 과정에 대한 깊이있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나 권면이 끊겨서 세상살이에 묻혀 살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결국 조용히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과 발품을 팔아 실천하는 노고를 아끼었던 것에 더 많은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먼저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는 말처럼, 단순한 책읽기가 아닌 꾸준히 이어지는 조용한 묵상의 시간과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열심도 함께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러한 순종이 하나씩 쌓여 7주가 지난 후에는 이제와는 달라진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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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 (양장) - 기독교와 정치에 관한 새로운 비전
짐 월리스 지음, 정성묵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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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종교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에너지원이다. 하나님이 어떤 명분이나 과제를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신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사람(혹은 정부나 종교단체)이 못할 일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에서 비롯한 미움과 학살, 압제의 역사는 실로 엄청나다. 이런 상황을 다루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들이다. / 종교를 정직하고 겸손하고 자비로운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 선지자들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목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불의, 특히 종교의 허울을 쓴 불의의 낌새를 금세 알아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불의도 알아챈다. 선지자들은 위선, 특히 종교적 태도를 취한 위선을 간파해 낸다. - p187. 유진 피터슨, "아모스 개관" <메시지>에서...

 책을 읽는 내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고 성취했지만, 예언자적인 정신과 소명을 잃어버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에 대한 부단한 일깨움과 회심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신앙은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다'는 지적안에 담긴 목소리를 통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갇혀버린 신앙인들과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는 갈등의 소리를 새삼스럽게 듣게 되고, 그러한 갈등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까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신앙을 탈피하지 못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들이대며 자신의 종교를 은연중에 과시하거나 최소한 포장할려고 하였던 결과물들로 인한 소란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는지..... 새로이 기독교인 대통령이 들어섰다고 교회가 무슨 큰 면류관을 얻은 듯이 -실제로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더 큰 의무와 책임이라는 짐을 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심 그 뒤로 줄서기를 하느라고 잃어버린, 다윗의 죄악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과 의를 설파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나단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 편에 서서 권력자와 세상을 책망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러한 살아있는 정신의 상실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꾸준히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고, 요즈음은 좀더 직설적으로 지적당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다시 한번 각성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책망의 손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치와 종교.... 현대의 민주국가에 이르러서는 이 두가지가 당연히 분리되고 서로를, 특히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금기시 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국교를 가지고 강제하는 나라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이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형식의 문제를 떠나 실질적인 내용의 문제로 넘어간다면 이러한 이야기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겠고, 이 책은 그런 면에서의 하나님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하여. 우리 사회와 정치적인 이슈와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의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과 그 과정을 담은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대통령이 '내가 기독교인이니까 교회에 많은 지원을 하고 편의를 봐 주라'라는 식의 단세포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모습이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실제로 이러지는 않았겠지요-, 공적인 영역에서의 여러 사회 문제와 정책들에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반영하고, 의를 이루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책이요, 각개 신앙인들의 경우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전도할 것인가 하는 신앙적인 면에 대한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이나 사회 문제를 대할 때 자신의 신앙적인 가치관을 어떤 형태로 반영하여 표현하며, 그러한 의견의 기초가 될 신앙적인 기반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주된 목소리는 현재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들어선 이후로 빚어지는, 말로는 여러가지 신앙적인 가치를 들먹이며 하나님의 선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성경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발생하는 여러가지 영적인 가치와 정치 영역의 갈등과 바르지 못함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 주된 부분은 9.11 사태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바르지 못함에 대한 책망, 그리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 등에 대한 비판 등인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저자 및 그와 함께한 이들이 교회와 신앙안에서만 자신의 의견을 소극적으로 개진하고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과 정신에 기초한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그것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노력하고 현재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올바른 목소리가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면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신앙안에서의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의 예를 보여주는 면이 현재의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이 부딪힌 벽을 보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노력과 각성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깨달음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현대에 이르러서 성경이 말하는 공적인 의를 이루기 위한 예언자적인 삶을 산 표본으로 꼽는 현실 정치인들로는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 인도의 간디 등을 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들의 삶과 이상을 바라보노라면 우리의 종교가 무엇이든, 우리의 가치가 무엇이든 모두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 인류가 소원하는 평화와 사랑, 자유와 평등 등의 소중한 이상과 합치하는 것이었고, 또한 그들의 삶이 그러한 이상을 이루기 위한 고뇌와 투쟁,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말하는 의와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앞의 예에서 간디의 경우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관점에서는 예외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이라는 맥락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속의 정치인의 예를 차치하고서라도, 차분히 생각하고, 다시 성경을 들여다 본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성경에 수도 없이 언급되고 있고, 그 일례로 미가 선지자를 통해 우리를 향해 이리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어찌보면 저자가 말하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살아있는 영적가치의 발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리 간단한 말씀 속에 다 담겨있는 오묘한 깊이는 사람이 다 할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편으로 줄세우기한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으로 인한 것은 아닐는지....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우리의 사회와 정치와 경제 문제에 이르는 공적인 영역에 적용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가치들에 대한 선지자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책들과 계기를 통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평화의 하나님이 또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하나님 임을 나를 비롯한 모든 신앙인들이 붙들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신앙인들이 그 분의 편에 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소경이 보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고 '다시는 군사 훈련을 하지 않'고, 어린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물리지 않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진정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세상을 선포한 이사야의 이상을 우리의 현실에 심어가는 작은 밀알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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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목사님? - 아무도 몰랐던, 목사님 바꾸기 비밀 프로젝트
여성훈 지음 / 넥서스CROSS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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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듯이, 아마도 세상에는 나쁜(?!) 목사님들도 있을 것입니다.-이리 쓰면 불경스런 고백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목을 '나쁜 목사님(?)'이라고 대놓고 달려드는 책을 보니, 좋은 의미로 제목을 붙였더라도 저자가 얼마나 돌팔매를 당할까? 하는 염려가 먼저 생깁니다. 내게는 흥미로운 제목이었지만, 아무래도 평상시 느끼던 교회의 경건함이나 격식을 차리는 모양새와는 다른 투의 제목 붙이기니.....

 "따끔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담은 책".....  "현대 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짚어주는 책"..... '나쁜 목사님'을 이야기하는 이 책에 추천사를 쓰신 유명하신 목사님과 신학대 총장님의 글제목입니다. 책의 서술형식이 서로 이야기를 하듯이, 가릴 것은 가리고 꾸밀 것은 꾸미는 가식을 버리고 툭 터놓고 서로 이야기 하듯이 전개되는 모양새가 듣는 이로 가슴이 시원하게, 십년 묵은 뭐가 내려간다고, 교회안에서 때때로 느꼈을 답답함을 확 뚫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이 책을 두분께서는 이리 칭찬하고 있습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위기라고 진단받는 현대 우리의 교회에 대해서 따끔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담아 던지는 이야기, 우리에게 있는 중요한 문제와 해법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이라는 칭찬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신앙인으로서 우리에게 사랑과 관용의 정신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에 대한 따끔한 지적과 그러한 냉랭함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이 책의 내용과 저자의 통찰력,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풀어내는 글솜씨에 대한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여기저기 귀기울다보면 현대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글과 주장들이 넘쳐나는 듯 합니다. 비단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교회를 향해, 신앙인들을 향해 돌팔매를 서슴치 않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초기 교회가 소수로서의 핍박당함이었다면, 지금의 외부 압박은 많은 기득권을 지닌 교회에 대해 겸손하기를, 자신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며 몸을 낮출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넘치는 글과 비난만큼이나 많은 이런 저런 해법과 지적, 그리고 분열과 정죄의 모습들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의 결말은 대부분 그리 아름답지 못하게 마무리가 되는 듯 해 보이고, 결국 위기를 말하며 더 큰 갈등의 불씨만을 만들어 놓곤 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갈등과 분열의 모습은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 내부의 전반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커다란 문제를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간의 관계로 좁혀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목사님을 목사님답지 못하다고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교인들, 목사님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어이 들춰내서 목사님의 기를 꺽어버리는 교인들, 율법의 잣대로 목사님의 행동을 일일이 체크하며 등 뒤에서 불평하는 교인들 등등.... 에게 저자는 툭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도 사람이라서 실수할 때도, 화를 낼 때도,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도, 숨고 싶으실 때도....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 있는 그대로 인정해 드리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좋은 목사님으로 만들어 가는 법을 배워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 방법이란.....  저자가 말하는 여러 유형의 나쁜 목사님의 카테고리에서 우리들의 목사님을 빼내 좋은 목사님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방법이란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고 예수님의 삶이 말하는 사랑과 관용..... 결론은 바로 거기에 이르는 듯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다른 목사님'과' 바꿔주세요!"가 아닌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다른 목사님'으로' 바꿔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다른 목사님'으로' 바꿔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조용히 뒷방으로 불러 "너희 목사님을 자꾸 바꾸려 하지 말고 너를 후딱 바꾸거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만한 귀를 지닌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적인 저자의 말속에, 우리의 교회와 한국 교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위기와 갈등과 분열을 이겨내고 성숙할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과장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학적인 지식과 현란한 혀가 아니라 죄인이라 불리던 세리를 비롯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정죄당하는 그들을 옹호하시던 예수님의 마음,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데려온 이들을 '죄 없는 이가 먼저 돌로 치라!'는 한 마디로 물리치시고 여인을 용서하셨던 마음, 자신을 세번 이나 부인할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거듭 '네가 날 사랑하는냐?'고 물으셨던 마음, 죄인 취급을 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온갖 고난과 희롱을 참고 참으셨던 마음..... 그러한 마음이 아닐는지.....

 옹졸한 마음을 지닌 우리의 불평과 불만속에 나쁜 목사님이 되어가는 우리의 목사님을 우리가 원하는 좋은 목사님, 훌륭한 목사님으로 만들어 보자는 저자의 시원스런 이야기들 속에, 나와 우리 가정, 우리 사회와 우리 나라까지도 더 성숙하고 건강하게 자라게 만들만한 귀한 싹을 볼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비록 현학적인 지식으로 뽐낸 것이 아니고, 화려한 문체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한 번 읽고 없어지는 책', '세상에 있으나마나한 책',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이 아닌 어느 순간 생활이 팍팍할 때 생각나는 책, '더 좋은 것을 더해 주는 책', 잊고 살다가도 어느 날 책꽃이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다면 반갑기 그지없을 그러한 책..... 그리고 마음 속에 나쁜 목사님, 나쁜 직장 상사, 나쁜 친구 등등 나쁜 ** 라는 카테고리를 담고 계시는 분들께 한 번 꼭 들려주고 싶은 책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씀에 한번쯤 진한 감동을 먹으셨을 모든 분들이 주변의 좋은 **과 함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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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콘서트 - 창세기 1장이 가슴 벅차게 믿어지는
이재만 지음 / 두란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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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 TV의 과학관련 채널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도 두 진영의 주장과 이야기를 꾸준히 방송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 프로그램이 주의를 끌었던 것은 대학생이 된 미국의 독실한 크리스챤 가정의 청년-가정의 분위기 못지 않게 신앙에 충실하려고 하는 젊은이였습니다-이 학교생활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창조와 진화에 대한 갈등을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이 신앙안에서 믿어왔던 것과 상반되는 증거와 자료를 담고있다고만 생각해온 진화론자들의 의견, 하지만 진화론자들의 주장속에도 일견 타당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자신의 신앙안에서 그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고자 고심하던 청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언쟁을 하면서 진화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강한 주장에 대해, 거기에도 뭔가 합당한 이야기와 주장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수용하고 싶다는 청년,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진화론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자신의 대화속에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아버지와 다르게, 프로그램 중에는 창조주를 믿으면서도 진화론을 옹호하는 교수에 대한 소개도 있었는데, 그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의 몇가지 첨예한 대척점을 보류한다면 창조론 안에 진화론의 성과들을 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었던 듯 합니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진화론 자체의 논거가 창조론과는 양립할 수 없는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청년이나 그 교수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내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신앙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를 보더라도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내 안에 분리되어 존재하면서, 교회안이나 일상의 정서적인 측면의 일들은 창조론에 입각한 사고방식이 우위를 점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 그러니까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그리고 인류의 기원 등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을 따질 때면 어김없이 창조론적인 관점은 수그러들고 그동안 학교에서 그리고 각종 서적들을 대하며 익혔던 진화론적인 사고가 자동적으로 작동하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보다는 공룡들이 노닐던 쥐라기나 백악기의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성경이 말하는 천지창조에 대한 기록보다는 과학책이 말하는 우주와 지구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사실적으로 생각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면에서 그 청년의 고뇌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직까지 그처럼 현실세계속에서의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충돌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한데 이러한 자각에 더하여 그동안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하고 살던 창조론에 대한 믿음을 현실세계에 적용하여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말 것을 외치는 음성을 이 책 <창조과학 콘서트>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단순한 창조론의 틀안에 진화론의 타당한 부분을 받아들여 포용하자는 타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노아의 홍수로 이어지는 사건을 철저히 창조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그러한 사건이 단순한 신화적인 기록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을, 천지만물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설명하였을때 어색하거나 실제와 부합되지 않지만 성경적인 창조론에 입각하여 설명하였을 때 더 완벽하게 이해되는 것들에 대한 사실 중의 몇가지 흥미로운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진화론에 바탕을 둔 지질학에서 지구의 역사를 말할 때, 이제는 당연한 진실이 되어버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으로 표현하는 지질학적인 연대와 단순한 무척추 동물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고등동물의 화석까지 순서대로 나열한 지질주상도의 수직적인 배열의 진실성에 대한 것인데, 실제로 그 순서대로 지층이나 화석이 발견되는 곳은 지구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고, 실제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은 그러한 수직적인 순서보다는 다분히 수평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지질주상도를 이루는 화석 가운데 빠진고리가 발견된 적이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 많은 화석이 진화론적인 순서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의 순서에 따라 그 자리를 정해놓은 것뿐이라는 것, 즉 진화의 증거가 먼저가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가설에 대한 믿음이 먼저였고 그 믿음에 따라 모든 화석들을 재배열하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오류나 빠진 고리들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오류들은 노아의 홍수 등의 대격변으로 설명한다면 훨씬 타당하게 설명되며, 그랜드캐년의 지층 구조를 통해 태초에서 삼일째 만들어진 창조시의 땅과 홍수이후의 땅으로 나누어 지질학적인 특성이나 화석의 분포등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러한 주장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퇴적암이나 화석의 생성에 대한 고찰을 하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랜세월에 걸친 퇴적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 환경의 격변에 의해 생성된 것이며, 화석도 죽어서 묻히는 긴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었다는 진화론적인 설명이 아닌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격변의 과정속에서 살아서 묻혀서 생성된 모습들이라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고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공룡의 화석이나 멸망에 대한 창조론적인 해석도 담겨 있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진화론에 세뇌된 내 뇌는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정말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왜 고등동물이나 인간의 화석은 그리도 드물게 발견되는가에 대한 설명도 홍수상황에 대비하여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아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창조론은 신앙적인 믿음과 연관된 문제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틀안에서 증명된 객관적인 사실들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에서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진화론에 입각한 세상에 대한 설명도 객관적인 사실이 먼저가 아니라, 세상의 생명이나 우주의 시작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긴 세월의 흐름속에서 발전해 왔으리라는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신앙과 과학의 대립이 아닌, 세상의 처음이 어떠하였느냐에 대한 믿음, 세상의 질서가 어찌 형성되고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믿음의 대립이라는 점을 확실히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 논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리학이나 화학 등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확증된 사실들을 보일 수 있는 과학의 영역과 진화론이나 우주의 빅뱅 등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확증된 것이 아닌 가설에 의한 설명들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질학자인 저자의 입장에서는 진화론과 동일 과정설 -옛날의 지구도 현재와 동일한 자연과정을 겪었을 것이다는 가설-에 기댄 현대 지질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창조론과 노아의 홍수 등 성경적인 기록에 의거해서 설명한다면 훨씬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사실도 창조론의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신앙인 자신들도 자라면서 매일 보고 듣는 것이 진화론이다 보니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백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조과학이 과학적인 접근을 추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성경을 완전히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믿음의 문제가 더 중오해진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새겨야 할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창조론에 입각한 세상에 대한 해석방법은 천지만물의 시작이 창조주의 의지로 시작되었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남기신 증거들을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차분히 확인해나가려는 연역법적인 자세라면, 진화론은 천지만물의 시작을 현재의 모든 만물과 지구나 우주라는 공간에서 찾은 단서들을 재배열하여 세운 과거에 대한 가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정해가는 귀납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본적인 시작의 차이는 세상에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사실에 있고, 여기에 대한 대답이 세상 만물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이해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이 책의 내용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아마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던 진화론 안에 담긴 헛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새겨진 여러가지 창조주의 흔적들을 단순히 '믿음으로'라는 구호로 믿기를 강요하기보다는 흥분하지 않고 조리있게 그것들이 창조의 흔적임을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에 대한 증거임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진화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하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창세기 1장의 내용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믿는 자들에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진실과 '태양이 없어도 하나님의 섭리안에서라면 인간이 살수 있다'는 고백이 공허한 외침이 아닌 삶의 현실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진실과 고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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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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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가끔씩,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을 때, 또는 성경강좌에 참석하거나 강해서나 주석을 읽을 때면 성경말씀 한구절이나 단어 하나안에도 깊고도 풍부한 수많은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신기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언어로 옮겨적고 그것을 다시 사람의 말로 풀어서 설명하거나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을 통해서 한 권의 반듯한 책으로 나온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다시 대하고 보니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신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말씀의 일면을 보게 되는 듯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더 넓게 적용되어져야겠지만, 결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샘물처럼 성경 한구절 한구절에 담긴 깊이와 의미에 대한 새삼스러움을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요. 물론 48글자로 이루어진 이 구절은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듣고 외웠을 것이고, 또한 많은 순간 위로와 은혜를 받았을 말씀이기에, 각자 나름대로의 신앙의 간증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대해 할말들이 많이 있을 만한 구절입니다. 하지만 한권의 책으로 자신의 깊은 묵상을 기록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많지는 않겠지요. 하나님의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저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주셨으니, 우리가 믿으면,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는 네가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믿는 것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여러가지 말씀과 예화 등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갖게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과 소망의 메시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따라가다보면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과 머리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속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고, 내가 형식적으로만 인정하며 생활했던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됩니다. 물론 너무 많이 듣고 암송하였기에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 구절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이 말씀의 의미와 중요성을 얼마나 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포함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책 속에서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찾은 보배도 중요하지만, 다시금 이 구절을 반복하여 외우며, 내 심령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맛보는 것이 아마 이 책을 읽고 얻어야할 가장 중요한 보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또한 이 책을 사용하셔서 다시 자신의 사랑고백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모습이겠지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굳은 살이 박힌 세상 사람들인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도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10)

 그리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이리 기뻐하십니다.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3:17)

 이 순간 우리의 고백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이 책을 통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이 나를 비롯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눈앞의 비늘이 벗겨지듯이 온전히 전해져서, 마냥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성경구절이 아닌 살아서 골수를 쪼개는 생명력이 있는 온전한 축복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속에서 행해지는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 그리고 행동이 귀히 드려지는, 열납되는 제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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