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읽다 - 단숨에 통독하는 사복음서
김동준 엮음 / 두란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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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복음서를 읽다보면, 서로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지만 상호 미묘한 차이를 가지는 부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 겹치지 않고, 각 복음서에 독립적으로 기록된 사건이나 예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복음서가 가지는 나름의 개성이나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에 내용이나 분량, 또는 예수님에 대해 서술하는 시각의 차이 - 이스라엘의 왕, 인자, 하나님의 종 또는 하나님의 아들- 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서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고찰의 의미가 있고, 또한 예수님의 일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과 가르침 등의 의미를 각자의 특성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읽다보면, 특히 주석서나 강해서를 함께 보면서 서로 겹치는 사건들에 대해서 서로 다른 복음서의 내용들을 대하다 보면,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 사건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러한 바람을 알기라도 한 듯, 이 책을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예고에서부터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일대기가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람들앞에 다시 나타나시고 승천하시고,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과 베드로의 설교까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초반부의 내용을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틀을 제대로 잡을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책입니다. 누가복음을 토대로 사건의 순서대로 사복음서의 내용을 중간중간에 삽입하여 예수님의 일대기를 완성하였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는 사복음서 각각의 시각을 불협화음을 느끼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한 점을 생각하면 엮은이의 노고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가는 부분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예수님의 일생을 성경에 의거해 연대기순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엮은이의 의욕에 앞서 먼저 무릎꿇고 간절히 구한 기도가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내용을 보면, 엮은이는 복음서의 내용을 한자도 훼손하지 않고, 내용 그대로를 이용하여 각각의 사건이나 이야기들을 정말로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사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다 이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여 놓았는데, 각 복음서의 몇몇 구절을 조금씩 이어붙여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지만, 그대로 읽어간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가장 세세한 서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각의 복음서가 가진 생략된 부분에 대한 보완이 되어 있다는 면에서는 후에 사복음서 각각을 읽을 때, 일일이 앞뒤를 뒤적이며 보지 않더라도 각 복음서의 특징적인 서술과 생략부분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참고 서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중간에 삽입된 삽화들이 성경 내용에 대한 이해를 더 풍요롭게 이끌어주는 장점도 있고, 성경을 읽으며 가장 난해함 중의 하나일 단조로움(?)이나 긴장감을 벗어나, 똑같은 내용의 성경을 읽으면서도, 한권의 책을 읽는 듯한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무작정 성경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초신자나 비신자, 또는 기존의 성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가 복음이라는 동일한 사실을 근거로 기록된 것이기는 하지만, 나름이 특징적인 면이 있기에, 온전히 예수님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복음서 각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 책이 예수님의 일생을 사복음서를 통해 잘 엮어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복음서을 읽고 묵상할 이유들도 충분히 많을 것입니다. 각 복음서가 지닌 고유의 가치와 의미가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일생을 알기위해서 또는 통독을 위해서 매번 4권의 복음서를 읽어야한다는 부담을 덜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된 내용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성경읽기에 부담을 지니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의 일생에 담긴 복음을 알고 믿고 전하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다 알지 못할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리 책으로까지 만들어내는 삶의 노고를 아끼지 않은 엮은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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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바트 D. 에르만 지음, 박철현 옮김 / 이제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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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역사인가? 사람들 사이의 투쟁과 쟁취의 역사일 뿐인가?'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에 담긴 사실들, 예를 들면 신약성경 27권의 정경으로서의 확정 과정과 여러 위서들의 등장과 그 배경, 여러 기독교 세력의 출현과 소멸, 상호 견제와 투쟁, 그리고 원기독교의 승리로 막을 내린 기독교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 책을 읽노라면, 저자의 말을 듣기 전에 먼저 기독교의 성립과정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기독교 성립에 관여하신 하나님의 역사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여러 기독교 세력들이 정당성을 부여받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과정에서 더 나은 비젼이나 교리를 마련한 세력의 승리였을 뿐이라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기독교 신앙을 배타적이라고 말하는 비기독교인들의 비판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교가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 자체가 이미 그런 배타성을 품고 있는지라 서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을 타협하자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듯이 -물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넘어선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한 그러한 자세가 최소한 정통(?) 기독교가 말하는 신앙적 가치안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의 자세에 따라서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이 천양지차의 간극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저자의 기독교 초기 역사에 대한 접근법은 신앙이라는 관점보다는 인문학에서의 눈높이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즉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서 승인되는 과정, 에비온 파나 마르시온 파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적인 사상으로 몰리고 원정통 기독교가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얻게 되는 과정, 승자로서의 원정통 기독교가 교리를 더 다듬고 논리적인 틀을 형성해 가면서 저지른(?) 것으로 생각되는 여러 논증이나 공격, 위조, 변조 등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저자는 원정통 기독교 나름의 그만한 세력과 권위를 얻을 만한 장점이 있었다는 인정을 해주기는 하지만, 순전히 세력과 세력의 다툼과 투쟁의 역사에서 승리한 결과로서의 기독교, 처음부터 정통성을 지닌 것이 아닌 단지 한 정파였을 뿐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수완을 발휘하여 반대 정파들을 하나씩 제압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더 완벽한 틀을 만들어가는 승자로서의 역사가 현재의 기독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자의 관점안에는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기독교라는 관점은 당연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이 책을 읽다가 발을 헛디디면, 자신의 종교와 믿음의 근본 바탕에 대한 시험의 순간이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이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고, 그런 시간 뒤에는 좀더 깊이 있고 폭이 넓어진 신앙으로의 과정이 뒤따를 수도 있으리라는 점은 인정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저자의 관점을 따라가며 숙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적으로 하나님께서 관여하신 역사의 과정이라는 시각으로 다시 해석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단과 정통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서는 저자의 말처럼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이단인 것이 아니고 원정통 기독교가 권위을 획득하면서 그외 다른 정파들이 이단시 되었지만, 현재는 분명 교리에 비추어 보아 이단적인 정파들이 주위에 많습니다-에 대한 이해, 예수의 인도 고행설이나 막달라 마리아와 은밀한 관계였다는 낭설, 또는 예수가 동성애자였다는 이야기들의 출처와 그것들이 유통되게 된 기제에 대한 이해, 현재의 기독교 교리들에 대해 단순한 교리공부 이상의 의미를 알게 한 형성과정과 그러한 과정에 담긴 의미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만남..... 이 책을 순전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 인본주의적인 관점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저자의 여러 자료를 통한 고찰과 주장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던 내용들입니다. 단순히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던 나의 종교를, 신앙을 배제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과 성취의 과정을 담은 역사로서 대한다는 것은 조금 당혹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처 알지 못하거나 소홀히 했던 사실들, 또한 그러한 과정에 담긴 역사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신앙적인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잃어버린 기독교들이란 신앙인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 본다면 정당한 권위를 지닌 올바른 기독교의 성립을 위한 하나님의 연단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는 않을는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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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임재 연습 월드 클래식 시리즈 2
로렌스 형제 지음, 배응준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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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복과 물질적인 성공.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그가 비록 신앙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꾸려나가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경제적인 능력이 중요시되고, 그러한 경향이 더 강화되는 사회적인 흐름속에서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홀로 독야청청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삶이 아닌 이상은, 큰 용기와 결단과 인내가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중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부의 축적이나 세상에서의 성공, 질병의 회복이나 일의 성취 등을 들어가며 그러한 경향을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분명 성경을 보더라도 신실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물질적인 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욥과 아브라함, 야곱과 요셉, 그리고 그 이후의 다윗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축복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모두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삶을 얽매는 일이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러한 축복이 주어졌을 때 감사를 드렸겠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축복 이전부터 그들은 삶의 순간순간을 하나님 앞에 깨어서 마음과 귀를 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로렌스 형제가 그랬던 것처럼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런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중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생 수도원의 평수사로 지냈고, 주방에서 접시를 닦고 음식을 만들고, 샌들을 수선하면서 살았던 사람..... 바로 주인공 로렌스 형제의 이력입니다. 그는 남들이 하지 못한 고행을 한 것도 아니고, 학문적인 업적을 이루거나 물질적인 성취를 이룬 사람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는 수도원의 주방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것보다 더 비천(?)하거나 하찮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하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 누구도 그를 눈여겨 보거나 관심을 가지거나, 그의 말에 귀기울여 줄만한 구석이 없었던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향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연습을 통해서 다른 어떤 대단한 사람들이 지니지 못한 하나님의 향기를 자신의 삶속에 지닌 사람 말입니다. 영적 거인이라는 표현이 요즈음 식으로 말하는 버릇에 물든 내겐, 뭔가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느끼게 만드는 면이 있지만, 그러한 편견을 조금만 뒤로 한다면 그를 진정한 영적 거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더라도 남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고, 기도를 하더라도 거창한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은연중에 고집하는 내게는, 자신의 삶속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내용이 어찌되었든지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감당하는 단순한 믿음에 바탕을 둔 로렌스 형제의 모습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말로만 너무 쉽게 살았던 건 아닐는지..... 

 오래된 신앙서적에 붙이는 상투적인 표현일수 있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이 책을 본다면, 수도원 생활을 하며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산 로렌스 형제의 삶을 문자적으로 우리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분명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삶의 모양새는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그 삶을 채우는 중심 -하나님 한분만으로 자족할 수 있는 마음-만큼은 신앙인으로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근본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거기에 비추어 본다면, 이 시대를 사는 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신앙인들이 그 마음속에 너무도 많은 자신의 계획과 요구 목록들을 담고 있어서 정작 하나님이 거할 중요한 공간을 가지지 못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물어볼 일입니다.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집안 벽장이나 베란다 끝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옹색한 자리 하나를 마련해 두고, 믿음을 고백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찌보면 물질적으로 풍부해진 현대의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과 염려의 목소리가 더 많아지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중심의 변질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과 함께한 이 기록들은, 비록 현대의 신앙서들이 지닌 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문구들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밋밋하고 지루함(?)마저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 그리고 현재의 삶속에서 누리는 천국의 삶 등에 대한 신앙인으로서의 귀한 모범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나 격려, 위로가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으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질 수 있기를..... 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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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합니다 - 고단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기도문 133편
조성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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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른 아침에 잠을 깨어  / 이슬을 머금은 풀밭을 거닐면서도 /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기 보다는 / 그 안에 담긴 당신의 섭리를  먼저 알아볼 수 있는 자가 되기를 / 나는 소망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외면하는 곳에서도 /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심을 / 다른 이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계심을 / 또한 내 작은 마음에 들어와 사랑을 알게 하심을 / 내 영혼이 알기를 / 나는 소망합니다.... 

 한껏 멋을 부려 보지만 헨리 나우웬의 '나는 소망합니다'에 담긴 깊은 영적인 울림을 따라가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짐이 있고, 자신만의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와 울림은 그 사람의 삶이 지닌 순종과 묵상과 인내의 폭만큼만 허락하는 것인것 같습니다. 주님! 저도 그리 하고 싶은데.... 매번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어인 연고입니까?.......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나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는 꼭 신앙인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이들이 은혜스럽게 받아들이는 글들입니다.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배우게 하는 글들이라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장 관심있고 감명깊게 대했던 기도문은 아마도 한 소방관의 희생에 바치며 한 신문에 실렸던 '소방관의 기도'라는 기도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나를 우선시하고, 함께 누리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누리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 '우리'와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는 기도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도 삶의 어느 순간엔가는 그리 기도 드렸을 것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기도문의 기록들입니다. 사람에 따라, 또한 현재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서로 영향받고, 은혜받는 부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각각의 저자들 모두 자신만의 절실한 상태와 환경하에서 드린 기도들이기에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묵상한다면 그 안에 담기 깊은 신앙적인 의미들을 묵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스스로도 여러 기도문을 나의 상태에 어울리는 것과 조금은 실상과 먼 내용들을 구분하듯이 많은 이들이 제각각 호불호를 달리하기는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통하였다는 것이겠지요..... 

 페이지마다 박힌 색색의 책갈피를 보면서 믿음의 선진들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의 제목들을 다시금 되새김하게 됩니다. 하나님안에서의 소망과 희망, 절망뒤의 승리, 실패뒤의 사랑 등을 절절히 고백했던 선진들의 진솔함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기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내안의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오로지 나의 능력과 소망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은...... 그런 깊은 묵상을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기도문을 통해 나우웬은 이리 고백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타인의 죽음을 볼 때마다 내가 작아질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때문에 /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 내가 그에게 베푸는 사랑의 기준이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모두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기를 / 그러나 나  자신만은 그렇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용서를 구할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기를 / 그러나 그런 사람을 애써 찾아다니지를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 그러나 그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사랑하는 삶이 언제나 나의 목표가 되기를 / 그러나 사랑이 내 우상이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 하지만 난 그러지 못하였답니다... 주님.....하지만.... '내 인생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변화시켜주시옵소서 제발'.....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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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다 성경암송
한명철 지음 / 두란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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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 딤후3:16-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히4:12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항상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선포하는 위와 같은 성경구절을 읽거나 볼 때면, 나를 비롯한 많은 크리스챤들은 말씀의 온전함과 생동감 있는 능력, 중생의 능력 등 살아있고 내면에 역사하고자 하는 말씀의 능력을 느끼곤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의 중심에 적어도 하나 둘 쯤의 성경구절을 새기고, 시시때때로 그러한 말씀을 통해서 스스로를 바로잡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용감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도, 때로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이키기도 할 것이고, 그러한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성경 말씀이 살아서 내 안에 역사한다는 사실, 성령께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신앙적인 체험을 순간순간하며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말씀의 능력을 성경 암송이라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말씀을 잇고 엮어서 체계화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극대화시키고, 훨씬 생동감 있는 말씀으로 사는 삶을 제안하는 책입니다. 먼저는 저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생기있고 능력있는 하루하루를 살게 한 성경 암송을 통한 축복의 고백으로 처음을 시작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어떤 관성에 사로 잡혀 흘러가고 있는 내 신앙생활의 단면을 반성하고 새롭게 말씀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극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두번째 부분은 저자가 성경 암송을 통해서 받은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들에 대한 부분인데, 신앙인이라면 모두가 흠뻑 젖어서 누리고 싶은 능력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매력적인 능력들에 대해 저자는 그런 능력이 성경 암송을 통해 순간순간의 말씀 적용속에서 찾아오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능력이나 권세를 지닌 사람이 아니더라도 평범하지만 말씀안에서 겸손히 길을 찾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이고 살아있는 삶의 모습인 중보와 역전, 회개와 생명, 용서와 신유, 형통과 전도, 그리고 화목과 기도의 능력이 언제든지 그들의 삶 가운데 주어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 부분은 성경암송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과정에서 시작하여 말씀을 잇고 엮는 방법, 그리고 무작정 외우기를 시도하기보다는 기도하며 엎드리는 겸손함의 필요성 등 성경 암송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성적인 말씀 암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는 기도의 시간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많은 성경구절에 대한 암송의 기회가 주어지고, 또한 잘 실천했을 때는 많은 칭찬과 상품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부모의 한사람으로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 아이가 제법 잘 외울때면 신앙적으로 한뼘이나 더 자란 아이를 생각하며 기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성경 암송을 너무(?) 강조하는 모임이나 단체들을 접하게 될때면, 그리고 사람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외우고 있는 말씀으로 즉석해서 권면을 해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상당한 불편감을 느끼곤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나의 시각에는 성경 암송이라는 것이 무조건 마구잡이식으로 성경을 암송하여 자신의 이해력 안에서 꿰어 맞추는 것 -신앙적으로 생각한다면 성령님께서 질서있게 정리해 주신다고 해야할 것이지요^^- 이라는 교만섞인 편견이 끼어 들어 있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이해하는 방식은 선호하지만 우선 외우고 보자는 방식을 상당히 싫어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신앙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서 권장되는 성경 암송이라면, 더 성숙함을 이루어야 하는 어른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한 것이지 않은가라는 매우 단순한 물음이었습니다. 결국 방법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의 자세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성경 암송이라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기 위한 삶의 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나의 삶을 말씀속에 푹 담굴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는 부분에까지 생각이 이릅니다. 점점 더 타성적이 되어가는 내 신앙생활을 생기있는 말씀 안으로 맞아 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하나를, 내 안의 편견으로 마음 한켠에 밀려나 있던 의외의 곳에서 발견한 것 같습니다. 나도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저자가 말하던 능력있는 삶의 첫걸음이 될 수 있기를.....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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