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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고래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유키와 미즈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나 orz.
아무튼 츠지무라 미즈키의 차가운 학교~ 나, 밤과 노는 아이들로 말미암아 잔뜩 기대를 품고 보았던 책. 역시 재밌고, 그치만 무척 우울한 이야기였다. 말기 암에 걸린 채 사라져버린 아빠, 그리고 하나 남은 엄마마저 말기암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에도 '조금 부재'인 '나'는 유리 다리를 건너듯 조심조심 세상을 겪어간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우울하다. 이 사람이 그려내는 인물상들이 실제 내 자신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 꽤나 많아서 좌절하고 후벼파이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어냈다.
오죽하면 미투데이에 "츠지무라 미유키의 얼음고래를 읽고 있는데 아 짜증난다. 이 사람의 글은 너무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화가 나고 우울해지고 만다. 아침에 출근길에 읽을만한 책은 아니야."라고 올려놨을까.. orz
다 읽고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어서 일단 엄마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줬는데, 엄마도 한 50페이지정도 읽고는 나에게 말했다.“세상 살기도 팍팍한데 이런 우울한 건 읽지마.” “엄마, 끝은 나름 해피 엔딩이야.” “사라진 아빠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니?” “아니,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거야.” 뭔가 대답이 마땅찮은 듯 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우리집 사정이랑 겹치는 부분이 좀 있어서 엄마가 읽기에도, 좀 힘겨울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응. 나도 그래서 읽기가 너무 힘겨웠다.
그렇지만 그래도 살아간다. 열심히. 열심히. 많은 상실과 절망과 괴로움과 '조금 부재'를 이겨내고서 아직 '조금 부재'인 나로선 부럽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기분이다.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읽어내면 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라도 조금쯤은 괜찮지 않을까, 인생이란 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감'으로써 몰랐던 가치를 발견해나가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들, 친구들, 아이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그 인간 군상들에 사실은 모두 의미가 있고 개성이 있고 마음이 있음을 알게되는 장례식 때. 와 눈물났다. 사실은 그렇다. 그들은 '나'를 위한 들러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와 완전히 동떨어진 인간들도 아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기댈 수밖에 없다. 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는 '함께 살아가기'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ps. 왠일로 미스터리가 없을까. 생각했던 나에게 반전으로 뒤통수를 쳐주시는 츠지무라 미즈키님. 이것으로 훌륭한 판타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힌트는 엄마와 나의 대화에서 내가 무척 찔렸다는 사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