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 -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 후마니타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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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라도 남겨놓자. 영풍문고에서 선 채로 후루룩 읽었던 책. 그렇게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한 사회학 책이다. 논문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 아파트란 무엇인가. 아파트의 커뮤니티와 일반 단독주택이 모인 곳의 커뮤니티는 어떻게 다른가. 왜 우리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현대 문명의 상징처럼, 중산층의 상징처럼 자리잡게 되었나. 왜 이나라에는 아파트가 그렇게나 우후죽순처럼 인기 만점으로 건설되고 있을까.

모든 답변을 주는 건 아니고, 이방인에겐 신기하고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우리에겐 당연한 현상인 것도 있고 해서 새로운 지식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알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외부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파헤치는 행위에는 너무 몰입해 있어서 스스로는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깨닫기 어려운 삶과 현실에 거리를 두고 성찰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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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이
줄리 그레고리 지음, 김희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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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아리에서 원흉이된 미미코는 여기 나오는 줄리 그레고리와 같이 대리자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피해자였다. 얼론에서도 이유없이 아이가 줄곧 아프니까, 여주인공도 뮌하우젠 증후군으로 의심받는데... 마침 이런 책이 보여서 얼릉 집어들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가 우울해졌다.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 무관심 속에서 자란 아이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몸집만 크고 나이만 먹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사회적 무관심이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도. 실화가 아니라면 좋겠지만 실화이다. 이것은 미국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학대 받고 자란 아이는 자기 아이를 학대한다. 그것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잔혹한 저주인지. 그것을 끊으려면 사회의 관심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실화라는 게 더 무섭다. 사회복지, 그리고 자녀양육권에 대한 법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가족내의 일은 거의 밖으로 알려지는 법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에 대해 더욱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거 같다. 내 생각엔 의외로 많을 것 같은데.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나쁘고 솔직히 실제로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려 해도 그냥 약만 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니, 이렇게 어린 시절의 상흔으로 말미암은 정신질환의 경우에는 거의 도움이 안될 거 같다. 사람은 살아가며 여러가지 상흔을 얻게 되지만 가족 안에서 얻은 상흔, 어린 시절에 얻은 상흔은 정말이지 문신처럼 떼어지지 않곤 한다. 비뚤어지고 일그러져버린 줄리의 엄마를 보며 나는 슬퍼졌다. 그 사람은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줄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야말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사람이었다. 전에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도 어딘가 단단히 망가져버린 헬렌을 보며 나는 그 사람이 너무나 불쌍해보였다. 너무나 망가져버려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조차 상처입히며 자기 자신도 점점더 일그러져가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버려두고 무시해놓고 이제와서 그들을 어떻게 비난하겠다는 걸까. 그저 치료가 필요할 뿐이지.
분노할 수 있는 건, 아니 분노해야만 하는 사람은 바로 그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분노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엄마한테, 그리고 사회한테. 그리고 그 분노를 바탕으로 일어서야 한다. 엄마한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야한다. 그것이 자신을 치료하는 과정이 되기도 할 테니까. 아마도.
착신아리를 보았을 때도 그렇고 언제부터인지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꾀병이지만 사실 그냥 애들의 꾀병 수준을 넘어서니까 질환이라고 부르는 거지. 자해를 하고 약을 먹고, 과장을 하고.. 기타등등. 대리자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자신의 아이나 친인을 아프게 하거나 거짓병을 꾸며내어 간병인으로서의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거. 그리고 그런 대리자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의 피해자는 대부분 어린 나이에 사망한다고 한다.


애들 보고 읽어보라고 하면 좋을 듯 하다. 자기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해주는지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알게 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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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용후기 - J. 스콧 버거슨의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 갤리온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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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한국학도 재밌게 읽었었다. 이 떠돌이 아저씨는 다양성, 그리고 다양성의 존중을 최고로 치는 멋진 아저씨라고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부분들을 좋은 면이라고 생각하는 독창적인 면도 있다. 안그래도 획일적이었는데 더 획일화되어가는 대한민국을 보며 통탄을 하는 그의 모습이, 좋아라 세계화하고 있는 한국을 보며 아이고, 아이고, 하고 흥분하며 난리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이사람은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은 나랑 좀 다른 듯 하지만. 나는 지금 변화하는 모습에서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다. 온갖 나라의 것이 모여들어 잡탕이 되는 건 왠지 좋다. 나는 좀더 이 나라가 잡탕 찌개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인사동의 옛가게들이 없어진 건 아쉽지만 이상하게 생긴 건물들이 생긴 건 괜찮다. 네모반듯한 건물이 아닌 게 여러 개 생기는 게 좋다. 낡은 한옥 투성이인 가회동에 사람들 발길이 닿는 게 좋다. 조금 우리 동네가 아닌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지만...(고향에 10년만에 돌아갔는데 너무 많이 바뀌어서 길잃은 사람의 기분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그런 만큼 종로가 강남화 되는 것은 나도 반대다. 종로는 종로대로 다운타운스럽게 남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길가기 불편할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있는 노점상, 뒷골목의 작고 허름한 식당들, 천박해보이기까지 한 네온사인, 군데군데 끼어있는 오래되고 고아한 흔적... 르메이르 따위가 세워져서는 안된다는 것에 100% 동감이다. 종로 토박이로서 하는 말이다. 그건 종로가 아니다. 이 동네는 촌스러운 게 어울리는 동네다. 르메이르같은게 쑥쑥 올라가면서 노숙자 아저씨들이 더 늘어난다. 둘이 꼭 연관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제는 성장했는데 일인당 국민소득은 왜 떨어진 걸까. 작은 가게들이 쫓겨나고 르메이르처럼 커다랗고 획일화된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돼서 그런 건 아닐까. 작은 가게를 하던 아저씨들의 길거리로 나앉게 된 건 아닐까. 월세내가며 장사했을 텐데, 그럼 이사비용밖에 못받았을 텐데. 도대체 어디로 가라고. 그 뒷골목에서 장사하던 거랑 지하 아케이드에서 장사하던거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 아아. 우울해. 나는 세키구치 같은 소리를 지껄이고 만다. 이 아저씨 화낼 만 하다. 잔뜩 열 받아서(여자친구한테 차인 분까지 포함해서) 열심히 글을 갈겨 썼다. 어쩐지 정말로 이 나라를 사랑한 모양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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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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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찔렸다. 푹하고 꽂혔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 나에게 딱 꽂히는 글이었다. 나는 무엇에도 푹 빠지지 못하는 성질이다. 그나마 계속 근근히 유지해온 거라고는 글을 좋아한다는 것 밖에 없다. 아니 사실은 그림, 음악, 글.. 모든 걸 좋아하고, 내 능력이 된다면 그 중 어느쪽에서라도 그 창작활동의 한편에 서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족하나마 내가 일을 돕고 있는 어떤 교수님의 꼬드김에 대학원 생각도 들었다. 논문 쓰는 건 정말로 싫지만 공부란 것의 매력, 책에 파묻혀 사는 것의 매력은 떼어놀 수 없다. 나는 종이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니 그 답변하신 분이 비판하는 이십대 백수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많이 찔렸다. 계속 고민만 하고 있으니까 더 찔렸다.

어 그치만, 난 고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나아갈 길을 살피는 그 일련의 작업이 좋다. 고통스럽고 눈물날 만큼 우울해질 때도 있지만, 고민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은 그러한 고민들과 사유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무섭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 망설인다. 푹 빠지지 못하는 내 성격은 시도 때도 없이 내가 하는 모든 취미활동과 생활과 공부와 기타등등에 설명을 요구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가.', '넌 정말 이것이 좋은가.' '이길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기타 등등... 항상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이런 의문들은 가끔 나를 너무나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러면 안간힘을 다해 그런 회의와 고민들을 향해 외친다.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걸 좋아하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거를 한다. 그렇게 내자신에게 설명을 하면서 나는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본다.

나란 인간은 한 없이 약해서 그렇게 고민하면서 밖에 살지 못한다. 나는 그 고민들을 통해 내가 버려야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다짐해야할 것을 다진다. 난 내가 버린 것들, 내가 지나쳐온 것들을 생각하기에 비로서, 내가 달려갈 방향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내달리는 사람이란 얼마나 독선적인가. 자신이 무엇을 밟았는지, 무엇을 지나쳐왔는지 망설이지 않으면서도, 고민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향해 달리는 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일까.

난 뭘 선택해도 계속 망설이고, 계속 고민할 거다. 틀림 없다. 그렇지만 그 고민들이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감이나 자부심을 무너뜨리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 질문한 사람도, 그리고 대부분의 20대 젊은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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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길게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고를 한 다섯번 반복했다. 세시간동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것도 결국은 고민과 후회, 망설임의 흔적이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 시절은 그 세가지의 뒤범벅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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