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지음 / 현실과과학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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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때 나의 단짝이었던 친구는 화가였다. 너무나 정말이지 너무나 활달했던 그 아이는 별을 참 좋아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자신의 천체망원경으로 한밤중에 학교 운동장에서 보여준 달과 토성의 테는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홍대미대를 진학한 그 아이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 사이에서의 고민에 허덕이다 멀리 부산의 한 복지관에서 자신을 닦아가는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 나를 애타게 찾았다고도 하는데 그때 나는 난장굿을 벌이고 있었다. 그 친구랑 그리 어울려 다니면서도 사실 내게 그림이란 너무나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그아이가 연습장을 빼곡이 매운 만화캐릭터 어느 하나도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미술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도 내가 가장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화가들이다.

그러한 내가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최영미 때문이었다. 최영미가 당시 나로서는 낯선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는 것. 그리고 당시 내가 파헤치고 있었던 김지하가 역시 같은대 미학과 출신이였다는 점. 그것으로 충분히 미학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머리가 좋아(사실은 좀 많이) 서울대 문화에 편승할 처지가 되었더라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서울대 미학과를 택했을 것이다. 이책의 저자인 진중권 역시 같은 과 출신이다. 그들을 통해 난 미학이 중요한 인문학의 한 분야임을 비로서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책의 읽기는 진중권이란 사람에 끌린 관심보다도 미학 그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후설이 있겠지만 진중권이란 사람은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니 말이다. 이책은 미학의 역사를 차분히 따라 내려가며 각 시대별 미학의 주요한 범주들을 꼼꼼히 짚어가는 좋은 미학입문서라 할 수 있다. 처음 미학을 접하는 사람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다만 조금은 낯설은 서술방식으로 처음엔 다소 읽어내리기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조금 읽다보면 익숙해지고, 이책을 통해 다른 미학관련서도 비슷한 과정으로 익숙해 질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생소했던 미학이란 분야가 사실은 철학과 과학과 얼마나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지를 발견해 내게 되고, 그것이 단순히 좋은 그림을 구별해 내는 학문, 좋은 예술을 가려내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 세상의 모든 대상들을 어떻게 미적대상으로 바라보고, 미적태도로 주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작은 모색을 해나가게 된다. 근래들어 많이 출간되는 미술관련 서적들... **의 유럽문화기행이니.. 서양미술기행이니... 하는 기행과 미술이 만나는 출판물의 유행과 더불어 이러한 미학관련입문서들의 숙독은 꽤 괜찮은 교양의 근저를 이루리라 확언한다. 그리고 이책을 통해 에셔라는 생소한 화가를 만날텐데, 그의 기이하고, 신비스런 동판의 세계를 체험해 보기위해서라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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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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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설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난다는 것이다. 이 세계가 나를 감싸안을 수 있길... 내가 그속에 빠져들 수 있길 나는 불륜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전경린, 공지영, 권지예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왜냐고? 굳이 묻는다면, 달리 꼬집어 논리를 세울수는 없다. 어디 그런 것들이 논리로 설 만한 것들이냐? 다만 그 신랄한 일탈이 좋고, 내게 주어지는 신선한 충격이 좋다. 이 책속의 작품들은 죄다 사랑... 그중에서도 적절히 불륜이 뒤섞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반드시 프랑스가 나온다. 처음 두세 작품은 그려려니 했는데, 끝까지 몽땅 그런 얘기니 짜증이 날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얘기를 여러번 다르게 엮어낼 수 있는지 그게 신기할 정도였다. 허나 뒤로 갈수록 꽤 나를 만족시키는 구석이 여럿 있었다. 여러작품들중에 '꿈꾸는 마리오네뜨'와 두 중편 '상자속의 푸른칼','사라진 마녀'가 특히 좋았다. 읽을 땐 뭐 이런 똑같은 소재만 되풀이 되는 소설집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 읽고 보니 분명 각 이야기마다 담긴 다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소설책중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참 드문데, 이책은 꼭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륜을 소재로 한 앞부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얼마전 KBS의 한 드라마가 생각났다. 드라마극장에 <아주 오래된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정말 괜찮게 본 드라마가 있다. 과연 그 사랑을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상자속의 푸른 칼'은 소설적 매력으로서 가장 나를 강하게 이끌었던 작품이다. 어찌보면 무라카미류를 보는 듯한 이 글은 특유의 음산한 매력을 발산한다.

'사라진 마녀'는 이책에서 좀 독특한 작품이다. 우선 유일하게 프랑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단지 아일랜드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륜의 사랑이 그 중심에 있지 않다는 점... 웬지 권지예의 작품같지 않으면서도 정말 권지예의 작품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말 나로서는 제일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여성작가들에게 있어 여성이라는 화두는 상당히 끈질긴 유혹같다..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여성작가도 쉬이 이 화두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또 너무나 당연하다. 왜 여성들은 소설속에서까지 그렇게 힘들기만 한 지 모르겠다. 하긴 현실이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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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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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독자서평이 200개가 넘게 올라간 책은.... 어떤 책일까? 좋다 좋다 말은 듣고 있었지만, 그다지도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책을 접한다는 건 왠지 김새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공인된 책을 들게 되었고 다시 하나의 독자서평을 추가하고 있다. 창가의 토토란 사실 내겐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대안교육'이란, 내가 맹렬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일뿐더러, 몇몇 신선한 기술적 방법들이 반갑긴 했지만, 다분히 나에게선 조금 식상한 얘기이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나의 관심은 고교시절 두레자연학교를 처음 알고 나서다. 세상엔 매일아침 눈뜨자 마자 학교로 달려가, 10시 반까지 자율학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난 얼마나 경이로워 했던가? 그네들을 알고 싶어서 많은 책을 뒤적이다가 결국 난 그런 일탈을 꿈꾸며(물론 꿈만이다... 꿈만..) 제도교육을 박차고 나가는 아이들을 이야기를 쓰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나의 가슴 한켠에 묻어둔 소중한 소망하나는 이 책의 도모에 학원 같은... 딱 그만한 학교를 하나 세워보는 것이다.

이책이 값진 건, 사람들에게 각성의 계기를 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한때 체게바라 열풍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혁명가의 고귀한 삶을 저리 상업주의의 소재로 이용해도 좋으냐는 우려였다. 사실 체게바라평전이 그리 인기를 누린 건 체게바라란 인물의 혁명적 업적보다도 그의 이미지 - 베레모를 눌러쓴 왠지 모험가의 이미지를 풍기는... 게다가 빨간색 예쁜 표지를 보면 누구나 그 책을 사고 싶지 않은가?- 와 갖은 마케팅 전략의 덕분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씁쓸히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체게바라평전이 의미가 되는 건 어찌 되었건 그래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체게바라라는 한 인물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토토 또래의 자녀를 둔 이땅의 젊은 엄마들이 이 책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수백만이 태백산맥을 읽었다는데... 아직도 빨갱이 논쟁이 대선경쟁에서 타후보 깎아내리기용 전략으로 쓰이고, 이땅 30, 40대 남성들의 퇴근시간을 좌지우지했다는 '모래시계'를 본 사람들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사면된다 할때 왜 가만히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허니 나는 또 걱정이 되는 거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내 자식도 도무에 학원과 같은 곳에서 길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는지, 아니 이렇게 해서 어떻게 교육이 돼? 라는 생각을 하였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좋다는 걸 아는 것과, 아는 걸 행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대체 좁혀질 수 없는 걸까? 하긴 그런 걸 바라는 내 기대가 어쩌면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이땅엔 영어발음 교정을 위해 아이들에게 칼을 들이대는 정말 기가 찬 부모들도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열혈부모들이여, 제발 이책 읽고 정 신 차 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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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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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은 이진선이라는 알져지지 않은 한 혁명가의 연희전문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머나먼 역사속의 인물인줄로만 알았던 '윤동주, 이현상, 박헌영, 김일성, 모택동, 주은래, 김정일, 황장엽, 호치민, 등소평...'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가 정말이지 부러웠다. 허나 부러웠다니, 이 얼마나 발칙한 생각인가?

우리가 책속에서만 만났던 역사 '모스크바 3상회의의 왜곡보도, 조선일보의 친일행각, 대구항쟁, 여순항쟁, 4.3항쟁, 조선로동당 창당, 김일성이란 사람, 숭고한 남로당원들, 박정희, 푸에블로호 사건, 68혁명, 김정일의 후계자 집권, 북한의 변화, 월남전쟁, 아웅산테러사건, 남한 수해, 6월항쟁, 임수경, 소련붕괴....' 세기의 가장 가팔랐던 순간순간을 겪어낸 그에게 너무 꽤씸한 생각같아 이내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내가 듣고, 읽어낸 그러한 역사들이 새록새록 내게 현실로 받아들여 질때의 쾌감은 정말 잊혀진 조국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이진선이란 혁명가.... 많은 설명은 못하겠다. 그의 생 자체가 너무나 극적이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그처럼 기가 막힌 생을 살아낸 이도 드물테기에 나는 그저 이책을 읽어보라 전하고 싶다. 한 인간의 60여년에 걸친 생이 담긴 글이라 그안에는 청년의 열정도, 혁명의 불꽃도, 눈물겨운 사랑도, 지식인의 고뇌도 모두 담겨있다. 그가 청년의 열정으로 조국의 그릴때는 나도 함께 불타올랐고, 그가 혁명의 밝은 날을 꿈꾸었을 때는 나도 그와 같은 꿈에 도취되었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서돌(그의 아들)을 눈앞에서 잃는 장면에선 함께 피눈물을 쏟았으며, 그가 참다운 지식인의 고뇌를 읊조릴때, 나는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았다.

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던 그 역사의 무게앞에 힘겹게 맥놀이하는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는 지난 반세기의 질곡을 고스란히 넘어 1998년 10월 10일 이현상이 생전에 넘겨주었던 권총으로 자살함으로써 끝이 난다. 그가 비록 고개숙인 반쪽 지식인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단한마디의 추파도 던질 수 없다. 올곧은 생각줄기하나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무얼 씹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언제나 고뇌했고, 의심했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했다.... 수없는 다짐을 하지만, 내가 그의 발끝만치도 미치치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아름다운 집을 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진선이란 인물에게서 정말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여린'이란 아내를 얻을 수 있었던 그였다.여린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정말 저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왜 모두가 고루 잘살자는데, 그걸 싫다 할까요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청산하자는데, 왜 그걸 반대할까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되는 사회, 인민이 중심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죠'

내가 힘겨워할때, 다시 가자고 내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친 나를 다그치는 이런 사람이 내곁에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이책에는 코메디도 나오고(p.372: 일년에 두번 피는 진달래, p.385: 세계5대문명... 정말 웃긴다), 눈물겨운 로맨스도 나온다. 이 로맨스는 정말이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리얼리티로 다가오고, 두여인 사이에서의 한 남자의 인간적 고충도 생생히 그려진다. 마지막 부분의 최진이의 고백에서는 정말이지 한쌍의 연인들의 그 숭고한 인연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덮으며 덜컹 죄스러움이 다가왔다. 이 거대한 한 혁명가의 삶을 과연 우리가 한낱 소설로 읽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진선. 그와 함께 한 이땅 민중들의 한은 대체 지금 어디있단 말인가? 그가 평생을 꿈꾼 '위대한 사랑'은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나마 이진선을 목도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꾸었으면 좋겠다. 조선은 '아름다운 집'이 되어야 한다고. 내 꿈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선 꿈이다. 정말 꿈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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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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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그리 대단한 거라 생각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건, 내게 일상이란 이름으로 단조롭다.
그래서 눈물겨운 아픔도, 소름끼칠 전율도, 뚜껑 열리는 격분도 내겐 순간의 단상들일 뿐이다. 사는 게 참 유치하다는 건 언제나 나의 생을 관통하는 큰 화두이니까 말이다. 허나 그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끔 나를 고요히 내버려두지 않는 건 그나마 세상이 나를 살게 끔, 지치지 않고 살게끔 하는 힘이 된다. '민중'이란 제법 그럴 듯한 테제가 내안으로 들어온 후 그건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고 그 수많은 눈물겨운 사연들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스스로 부딪쳐 몸으로 겪어냈을 때의 감회는 더욱더 나를 갈갈하게 한다.

사람속의 사람....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매혈기'에서도 보여지듯이 위화의 소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쉽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것이 함정이다. 그속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너무도 선연한 삶의 절박함, 절실함을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복귀란 인물. 그를 통해 보이는 민중의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성스럽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한 민초를 중심으로 한 잔잔한 삶의 모습들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본질을 깨닫게 한다.

참혹한 전란의 시대,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격변의 시기를 혁명가들에 의해 보여지는 전면적 삶이 아니라 순수한 대다수 민중들의 입장에서 일상적 삶의 모습으로 너무도 생생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충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어머니가 쓰러져 의원을 모시러 가던 중에 난데없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어이없는 역사속에 한 개인으로 감내해야 할 가늠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그들 민중이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여내는지 이 소설은 기가막히게 묘사해낸다. 이리하여 이 작품은 복귀를 제외한 주요등장인물이 죄다 죽어가는 다소 비현실적인 줄거리지만, 운명과 역사의 동일시라는 큰 흐름속에서 충분한 개연성과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복귀의 삶을 역사속에서 따로 떼에놓고 살펴보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소설속 주인공들의 눈물이 과장없이 그대도 나의 눈물이 되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경험은 그래서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삶이란 누구하나에게 전적으로 행복하게 주어지거나 전적으로 불행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과도한 욕망으로 어리석게 집착해야 할 것도, 순수한 정성들 없이 순순히 내주고 포기해야 할 것들도 없다는 것, 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는 소리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서 인정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말이 있지만 그래도 삶이 소중하다는 건 위화가 소설을 쓰며 깨달았다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속에 극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많은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 말자. 그리고...내가 혹여 낭비한 삶의 모서리들.. 혹은 앞으로 초라하게 내팽개쳐 버릴지도 모를 삶의 조각들을 소중히 추스려보자. 어떤 사람같지 않은 인간들이 나를 또 절망시켜도 아직 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눈부신 민중의 곁에 나를 두자고 나는 또 다짐한다. 내가 세상에 대한 가당찮은 독설을 퍼붓고 있을때도, 복귀는 동전의 지혜를 배우며, 허삼관은 묵묵히 피를 팔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이와같은 후일담문학의 미덕.. '태백산맥', '살아간다는 것', '전쟁의 슬픔'등의 소설이 의미가 있는 건 그들이 각기 '조선', '중국', '베트남'이라는 각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얼마나 생생히 그려내고 있는지, 혹은 그 역사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를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물결에 그 땅의 민중들이 얼마만큼 의연히 대처해 나갔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위화의 소설은 정말 최고의 미덕을 지닌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살아만 있다면 내일 말할 수 있다.' 문득 요시모토의 이말이 가슴에 깊이 남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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