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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9
손석춘 지음 / 들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집은 이진선이라는 알져지지 않은 한 혁명가의 연희전문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머나먼 역사속의 인물인줄로만 알았던 '윤동주, 이현상, 박헌영, 김일성, 모택동, 주은래, 김정일, 황장엽, 호치민, 등소평...' 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가 정말이지 부러웠다. 허나 부러웠다니, 이 얼마나 발칙한 생각인가?
우리가 책속에서만 만났던 역사 '모스크바 3상회의의 왜곡보도, 조선일보의 친일행각, 대구항쟁, 여순항쟁, 4.3항쟁, 조선로동당 창당, 김일성이란 사람, 숭고한 남로당원들, 박정희, 푸에블로호 사건, 68혁명, 김정일의 후계자 집권, 북한의 변화, 월남전쟁, 아웅산테러사건, 남한 수해, 6월항쟁, 임수경, 소련붕괴....' 세기의 가장 가팔랐던 순간순간을 겪어낸 그에게 너무 꽤씸한 생각같아 이내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내가 듣고, 읽어낸 그러한 역사들이 새록새록 내게 현실로 받아들여 질때의 쾌감은 정말 잊혀진 조국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이진선이란 혁명가.... 많은 설명은 못하겠다. 그의 생 자체가 너무나 극적이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그처럼 기가 막힌 생을 살아낸 이도 드물테기에 나는 그저 이책을 읽어보라 전하고 싶다. 한 인간의 60여년에 걸친 생이 담긴 글이라 그안에는 청년의 열정도, 혁명의 불꽃도, 눈물겨운 사랑도, 지식인의 고뇌도 모두 담겨있다. 그가 청년의 열정으로 조국의 그릴때는 나도 함께 불타올랐고, 그가 혁명의 밝은 날을 꿈꾸었을 때는 나도 그와 같은 꿈에 도취되었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서돌(그의 아들)을 눈앞에서 잃는 장면에선 함께 피눈물을 쏟았으며, 그가 참다운 지식인의 고뇌를 읊조릴때, 나는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았다.
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찼던 그 역사의 무게앞에 힘겹게 맥놀이하는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는 지난 반세기의 질곡을 고스란히 넘어 1998년 10월 10일 이현상이 생전에 넘겨주었던 권총으로 자살함으로써 끝이 난다. 그가 비록 고개숙인 반쪽 지식인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게 단한마디의 추파도 던질 수 없다. 올곧은 생각줄기하나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무얼 씹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언제나 고뇌했고, 의심했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했다.... 수없는 다짐을 하지만, 내가 그의 발끝만치도 미치치 못하고 있는 건 내가 아직 아름다운 집을 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진선이란 인물에게서 정말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여린'이란 아내를 얻을 수 있었던 그였다.여린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정말 저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왜 모두가 고루 잘살자는데, 그걸 싫다 할까요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청산하자는데, 왜 그걸 반대할까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되는 사회, 인민이 중심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죠'
내가 힘겨워할때, 다시 가자고 내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친 나를 다그치는 이런 사람이 내곁에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이책에는 코메디도 나오고(p.372: 일년에 두번 피는 진달래, p.385: 세계5대문명... 정말 웃긴다), 눈물겨운 로맨스도 나온다. 이 로맨스는 정말이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리얼리티로 다가오고, 두여인 사이에서의 한 남자의 인간적 고충도 생생히 그려진다. 마지막 부분의 최진이의 고백에서는 정말이지 한쌍의 연인들의 그 숭고한 인연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덮으며 덜컹 죄스러움이 다가왔다. 이 거대한 한 혁명가의 삶을 과연 우리가 한낱 소설로 읽어도 괜찮은 것일까? 이진선. 그와 함께 한 이땅 민중들의 한은 대체 지금 어디있단 말인가? 그가 평생을 꿈꾼 '위대한 사랑'은 대체 어디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나마 이진선을 목도하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꾸었으면 좋겠다. 조선은 '아름다운 집'이 되어야 한다고. 내 꿈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선 꿈이다. 정말 꿈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