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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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그리 대단한 거라 생각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건, 내게 일상이란 이름으로 단조롭다.
그래서 눈물겨운 아픔도, 소름끼칠 전율도, 뚜껑 열리는 격분도 내겐 순간의 단상들일 뿐이다. 사는 게 참 유치하다는 건 언제나 나의 생을 관통하는 큰 화두이니까 말이다. 허나 그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끔 나를 고요히 내버려두지 않는 건 그나마 세상이 나를 살게 끔, 지치지 않고 살게끔 하는 힘이 된다. '민중'이란 제법 그럴 듯한 테제가 내안으로 들어온 후 그건 더욱 명백해진다. 그리고 그 수많은 눈물겨운 사연들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스스로 부딪쳐 몸으로 겪어냈을 때의 감회는 더욱더 나를 갈갈하게 한다.

사람속의 사람....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매혈기'에서도 보여지듯이 위화의 소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쉽고 간결하다. 하지만 그것이 함정이다. 그속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너무도 선연한 삶의 절박함, 절실함을 발견해 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복귀란 인물. 그를 통해 보이는 민중의 삶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성스럽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한 민초를 중심으로 한 잔잔한 삶의 모습들은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본질을 깨닫게 한다.

참혹한 전란의 시대, 문화대혁명을 거치는 격변의 시기를 혁명가들에 의해 보여지는 전면적 삶이 아니라 순수한 대다수 민중들의 입장에서 일상적 삶의 모습으로 너무도 생생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충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어머니가 쓰러져 의원을 모시러 가던 중에 난데없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어이없는 역사속에 한 개인으로 감내해야 할 가늠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그들 민중이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여내는지 이 소설은 기가막히게 묘사해낸다. 이리하여 이 작품은 복귀를 제외한 주요등장인물이 죄다 죽어가는 다소 비현실적인 줄거리지만, 운명과 역사의 동일시라는 큰 흐름속에서 충분한 개연성과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복귀의 삶을 역사속에서 따로 떼에놓고 살펴보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소설속 주인공들의 눈물이 과장없이 그대도 나의 눈물이 되고, 그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경험은 그래서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삶이란 누구하나에게 전적으로 행복하게 주어지거나 전적으로 불행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그래서 과도한 욕망으로 어리석게 집착해야 할 것도, 순수한 정성들 없이 순순히 내주고 포기해야 할 것들도 없다는 것, 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는 소리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서 인정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많은 말이 있지만 그래도 삶이 소중하다는 건 위화가 소설을 쓰며 깨달았다는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속에 극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많은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 말자. 그리고...내가 혹여 낭비한 삶의 모서리들.. 혹은 앞으로 초라하게 내팽개쳐 버릴지도 모를 삶의 조각들을 소중히 추스려보자. 어떤 사람같지 않은 인간들이 나를 또 절망시켜도 아직 내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눈부신 민중의 곁에 나를 두자고 나는 또 다짐한다. 내가 세상에 대한 가당찮은 독설을 퍼붓고 있을때도, 복귀는 동전의 지혜를 배우며, 허삼관은 묵묵히 피를 팔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이와같은 후일담문학의 미덕.. '태백산맥', '살아간다는 것', '전쟁의 슬픔'등의 소설이 의미가 있는 건 그들이 각기 '조선', '중국', '베트남'이라는 각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얼마나 생생히 그려내고 있는지, 혹은 그 역사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를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물결에 그 땅의 민중들이 얼마만큼 의연히 대처해 나갔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의미에서 위화의 소설은 정말 최고의 미덕을 지닌 작품들이 아닐까 싶다. '살아만 있다면 내일 말할 수 있다.' 문득 요시모토의 이말이 가슴에 깊이 남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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