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노무현과 함께하는 사람들 엮음 / 열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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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때, 선거운동 시기 나는 개탄을 한 적이 있다. 우리네 대통령선거가 이렇다면, 우리네 국회의원 선거가 이렇다면 학벌이니, 지역연고니, 돈이니, 금품이니, 귀에 떡지가 앉을 만큼 들어온 말들. 그런데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이 사람을 믿으니까, 이 사람들의 열정과 정성들을 믿으니까 이 사람들의 희망에 나도 동참하고 싶으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로부터 발내딛었던 순간들. 단 한번이라도 이럴 수 있다면 그런데, 그 말도 안되는 희망이 내 눈앞에 보이고 있다.

경북 의성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현권(39)씨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다. 10년 전 시골로 내려온 뒤로는 서울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묵묵히 땅만 팠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노무현씨가 부산에서 또 떨어지자, 그저 조용히 이름 석자를 가슴에 담아두었다. 그러다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면서 `열병'이 들었다. 국민선거인단 신청서를 받는다고 주변 사람들을 들쑤시더니, 마침내 농삿일은 팽개치고 의성군의 선거인단들을 찾아나섰다. 보름 동안 먼지나는 시골길을 발품팔며 돌아다닌 끝에 선거인단 130여명 중 100여명을 만났다. `노무현 바람'이 표로 굳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는 “`노풍'이 어디에서 불어오나 궁금해했는데, 미쳐서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고는 `아하, 이게 노풍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번 경선을 통해 노무현 승리를 이끈 견인차는 김씨처럼 자발성과 헌신성으로 무장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노 후보 진영에서 이들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선거대책위원'이라고 새겨진 명함 몇통 뿐이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 명함을 내준 사람이 300여명이라 한다. 감격스럽지 않은가? 사람이 좋아서 정말 그 사람을 믿어서 제발로 뛰어든 선거전이란다. 그저 그 이유란다. 아직 나는 이런 걸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노무현이 좋다. 사실 나는 이전부터 노무현이 좋았다는 골수팬은 아니다. 오히려, 신선하지만, 결국은 안될거야... 설마 저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겠어? 회의적인 전망만 가득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바보같은 사람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대체 누가 이 사람을 내려주셨단 말인가? 노사모에 가입한 지 며칠 후 전화가 왔다. '내일 서울에서 마지막 경선이 있는데, 함께 가주실 수 있겠어요?'

야학때문에 안되겠다며 다음엔 꼭 참석하겠습니다. 라며 말하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노무현을 있게 한 힘... 꾸준히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들은 이미 하나였다. 안그래도 자꾸 좋아지는 그사람이. 언론의 한귀퉁이를 부단히 메꾸어갈때, 그 한줄이 한줄이가 또 나를 눈물겹게 설레게 한다.. 대통령 아들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그의 '서민적가족관계' 기사를 보았을 때, 나는 마침내 이 희망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수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둘째 형 건평씨는 “동생이 대통령이 돼도 고향땅에서 소로 늙어 죽겠다”고 말했단다. 소로 늙어 죽겠단다... 하여, 나는 내 사유의 꼭대기에 하느님이고, 부처님이고, 알라신이고 할 것없이 죄다 모셔놓고 기도하는 것이다....'신이이여, 이제 이 희망을 인정하렵니다. 제발 이사람을 이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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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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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란 이름 석자가 내눈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어, 이 사람은 참 내게 각별한 의미가 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미학오디세이'였지만, 그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나 '폭력과 상스러움' 같은 패러디 논평집(?)이다. 김규항과 더불어, 이른바 전투적 지식인이란 상징화된 부류(?)로 구별된 이들은 도통 점잔을 빼는 법이 없다. 그들의 그 시원시원한 독설과 카리스마가, 나를 이제껏 맛보지 못한 흥분으로 몰아넣는 것은 너무나도 황홀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좋다.

이책에는 '진중권의 엑스리브리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엑스리브리스란 우리말로 하면 '...라는 책에서'라는 뜻이란다. 즉 이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인용'과 거기에 붙인 코멘트임을 밝히는 것이다. 이는 잿빛 인문학의 문장들을 뽀얗게 먼지 앉은 낡은 책 밖으로, 상아탑이라는 도서관 밖으로 끄집어내 생동하는 삶과 맞물리려는 시도라고 지은이는 밟히고 있고, 이는 상당부분 성공했지 싶다. 그의 거침없는 독설과 함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이들의 논리속에서 그들을 질타하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다. 시원시원하다 못해, 읽는 사람이 도리어 민망할 정도다. 이는 책의 서문에서부터 극명히 드러난다.

'.... 내글에 비난을 퍼부은 그 잡지의 독자들에게는 이 사건으로 인한 내 불쾌감이 해소될 때까지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ㅋㅋ 멋지지 않은가? 김규항이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김규항 저리가라다. 그의 독설은 통렬하다 못해 쩌릿쩌릿한 카타르시스를 내뿜는다.

진중권을 빛나게 하는 건 시인 노혜경씨의 말처럼 그가 참 윤리적인 인간이라는 점이다. 언제나 아닌 건 아니라고 과감하게 말할 줄 알고, 그가 내뱉는 말한마디에 책임을 질 줄 알고, 이리저리 재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는 일단 부딪힌다... 그가 소유한 사유의 영역은 언제나 이땅의 가장 보편적인 담론들을 '상식'적으로 풀어내려 하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땅에서 그는 언제나 '미친놈'이어야 했다. 정말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이해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당하는 어쩌면 질려버릴 것 같은,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은 현실에서 허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한 그의 생각의 고리들이 눈물겹도록 반갑다. - 특히, 그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성' 편), 조선일보에 대한 입장('민족' 편), 이문열에 대한 입장('프랙털' 편)은 정말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그는 계속해서 가고 있다. 끊임없이 민주노동당 당비 2만원의 책임을 다하며, 오마이뉴스 기자로 활약하며, 온갖 지성과 감성의 해부학적 구조가 영 해괴한 분들의 정신개조작업을 위해 열심히 열심히 그들을 씹어댄다. 그가 이책을 통해 씹어댄 사람들을 헤아리자면, 두손이 분주해진다. 그들이 한 말같지도 않은 말들을 묶어내면 바보사전이 될테다. 우리나라 지식인 중에 이다지도 한심한 인간들이 많다는 게 허탈해질 뿐이다. 이땅의 수구세력, 보수언론들은 어쩌면 그렇게 명확하게 바보같은 소리들만 그토록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답답하다 못해 이건 코메디가 되어간다.(p.216 참조) 미공화당 부시 후보의 연설을 담은 테이프를 부록으로 끼워파는 잡지(월간조선)가 이땅의 정론지로 대변되는 이 사회에서 하긴 제대로 된 상식을 지닌 이를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원한 일이긴 한 것 같다.

그는 말한다. '가끔 글을 쓰면서 이성의 스위치를 내리고 머리를 스치는 헛소리들을 떠오르는 대로 받아적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미친것이 정상적인 곳에서 정상적이려면 미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당신이 이책을 읽고 그의 논리를 상당부분 인정한다면 나도 기꺼이 당신을 '미친놈'으로 인정해 드리겠다. 그래 우리는 다들 미쳐가고 있다. 다만 방향이 틀릴 뿐, 그들은 저쪽으로, 우리는 이쪽으로. 택일하라.. 그대는 어느쪽으로 빌붙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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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열네 살 선영이에요
김기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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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80년대 대학가에서 한번쯤 마주쳤을 만한 꼭 그만한 학우였다. '그래, 나는 비로소 살아있다. 투쟁속에서, 이 살아있음의 감격과 해방감을 지켜내기 위해, 나는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혼과 몸을 다해.' 그맘때쯤 누구나 한번 품었을 고민들, 번뇌들을 안고 그는 현장으로 뛰어든다.. 다만 그는 숨죽이지 않았고, 턱까지 숨이 차오르자, 자신의 목숨으로 항거했다.

눈물겨운 건 박선영의 숭고한 죽음이 아니었다. 이땅의 수많은 열사들. 그들과 어깨 겨루자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를 눈물겹게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 아무런 준비없이 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던 역사의 무게, 마스크와 치약을 들고 최루탄을 쫓아 다니는 그 어미의 호소력 짙은 삶이었다. 자식이 지 목숨보다 소중한 조국을 남겨두고 갔다고.. 그 약속을 잊지 않겠다고.. 민주화는 안방에서 오는 게 아니라 대가리 하나라도 모타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절규하는 그 어미를 위해 나는 울었다.

자신의 억지주장으로 서울교대에 입학해 그 험한 꼴을 당했다고, 그 완고하기만 하시던 아버지는 전교조 지역대표로, 한겨레신문 후원모임을 이끄는 원로로 곡절많은 세월을 보낸다. 큰언니 화진은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유가협 활동, 동생 추모제를 비롯한 집안 대소사를 치러내며, 큰오빠 종욱은 제대후 곧바로 발령을 받고 전교조활동을 시작하여, 전교조 중앙위원, 고흥지회내 문화 분과대표로 활동하는 중이면서 전남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부자간에 전교조 활동을 하는 최초의 가정이란다. 동생 의석은 미국 신시네티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가기전 남은 8개월 동안 제 누이의 안식을 기릴 '소의재' 건립에 앞장선다.

꽃다운 스물의 혈기로 쓰러져 간 박선영. 그의 죽음은 한 민중의 딸의 죽음이 어떻게 한 가족을 역사의 소용돌이로 휩쓸리게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준다. (본문 中 '너는 이렇게 죽었어-아버지'편을 눈여겨 보라.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맘껏 울어주길 바란다..) 온가족이 이제는 투사로 전사로 탈바꿈한 이 가정을 지켜보며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씁쓸한 현대사.. 그 비애의 단면을 실감하게 된다. 하여 박선영이란 개인의 투쟁의 일면들을 살펴보는 것보다 그 가족의 현재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으로 우린 더 큰 상처를 보듬게 된다.

1997년 가을.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박선영 열사 기념관 '소의재'가 건립되었다. 허나 그녀는 거기 있지 않았다. 얼마전 다녀온 광주에서 나는 박선영을 보았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구묘역 민중민주열사묘역, 이한열 열사 바로 옆에 박선영은 누워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아직은 끝난 게 없다고 그는 부릅뜬 눈으로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박선영처럼 살고자 했다. 정말 그랬다. 나도 그처럼.. '뛰면서', '바쁘게', '고달프게', '아프게' 살고 싶었다. 아직은 진행형이란 게 겨우 위안이 될 뿐 언제나 반성의 자리에선 자신을 힐책하게 된다.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데, 난 벌써 저만치서 팔짱끼고 서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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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
조병준 지음 / 그린비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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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돼 있는 동호회의 한 회원이 추천해 준 책이다. 개인적으로 조병준님을 잘 아는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책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추천하길래 들여다 보았더니, 정말 좋은 책이었다. 이책은 그가 세계를 떠돌며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같은 제목으로 두군데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둘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출판사에 있어서) 각기 9명씩의 이야기분을 담고 있다. 처음 몇 사람의 이야기는 그저 그런 얘기로 들렸다. 요즘 착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책이 나를 끌리게 한 건 그가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그 눈부신 희생이 아니라, '친구'라는 말이 주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국경'을 넘어, '성별'을 넘어, '나이'를 초월해 펼쳐지는 우정의 잔치를 그는 이책을 통해 너무도 기분좋게 풀어놓는다. 특히나 '잘받는 것도 주는 것만큼 소중하다'는 그의 메시지는 나에게 너무도 절실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그가 왜 캘커타를 가는지,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이책에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한 생각들은 상당히 단편적이 될 수 밖에 없다. 허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좋은 사람을 또 한명 알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조병준이란 사람은 이제 퍽 유명해졌다.. 책도 벌써 서너권내고, 번역도 많이 하고.... 그래도 그는 캘커타로 외틀링엔으로 프렘단으로 떠난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천국일 것이다. 그 친구들이 그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돌아보자. 우리가 손내밀어야 할 친구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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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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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말이 있다. 세세한 부분들은 잊었지만, 어쨌든 요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왜 반역자(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들을 살려두면 안되는가 하는 부분들이다. 경제론적인 측면에서도 반역자의 확실한 처단은 너무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아, 괜히 친일파 친일파 하는 게 아니었구나.' 보통사람들은 친일파 처벌의 문제를 단지 과거사청산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사회전체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속성들이 담겨져 있고, 우리는 그걸 떠안고 계속해서 바보같은 되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절한 정원'은 무척이나 가벼운(?) 소설이다. 적어도 그 외형적인 모습에서는 말이다.
큼직한 글씨에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 한시간이면 마지막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이 작은 소설에 얼마나 큰 감동이 담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의 감동은 일순간에 격정적으로 오고, 온몸을 타고 순환하다 이성의 정거장에 제 때 머문다. 그리고 그 마지막 생각이 머문 자리에서 우리는 돌아보게 된다. 짓눌리는 역사의 무게 앞에 저 여린 인간들의 처연한 삶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이책의 감동은 마지막 몇페이지(개인적으로는 105페이지에 99%의 감동이 담겼다고 본다.)에 모두 담겨진다. 오래걸리지 않으나, 많은 시간 생각하게 하고, 어렵지 않으나, 막상 헤아리기에는 깊은... 왜 이렇게 짧은 소설이 전세계를 울렸는지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이책이 모리스파퐁의 재판을 소재로 쓰여지기는 했으나, 이 책이 말하는 커다란 주제는 반역자 처벌에 관한 부분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쓰여진 계기일 뿐이고, 어릿광대 병사와 니꼴이 보이는 숭고한 인간애가 이책의 진정한 미덕일 테다. 하지만, 책을 놓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릿속엔 왜 자꾸만 친일파 처벌같은 문제들만 맴도는 걸까?

얼마전 김훈의 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고려대 대학신문인 <고대신문>(주간 임홍빈 교수)의 학생기자들은 최근 이 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사실적으로 적시하는 내용을 포함한 `친일청산 특집'을 기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25일치로 기획됐던 이 특집 기사는 지금까지 3주째 표류해왔고, 현재는 `당분간' 연기된 상태다. 학생기자들은 “주간교수님이 기획안에 난색을 보이고 있고 또 취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기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취재의 벽'이란 이 문제에 대한 재단(고려중앙학원·이사장 김병관 전 동아일보회장)쪽의 입장을 받아낼 수 없고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간 교수는 기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판에 고려대 동문회(회장 구두회)는 지난 28일 정기총회에서 발표한 결의문에서 “인촌의 명예를 유린하는 행동은 무책임하고 불순한 의도”라고 규탄하고 “인촌을 친일인사로 매도한 당사자들은 이를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정기총회에는 300여명의 고려대 동문들이 모였다. 철벽과도 같은 현실이 학생기자들의 앞에 가로놓여있다. 그 어린 학생기자들의 모습은 늙은 기자의 지난 시절 모습처럼 보였다. 』아직도 이땅의 기득권들은 두손 가득히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친일파들을 철저히 숙청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너그러이 용서함으로써 얻어지는 인륜적 도덕성이나 숭고한 인간애 같은 가치보다, 그들을 살려둠으로써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겪어내야 하는 혼란과 왜곡된 인식의 틀들이 가져올 폐단들이 훨씬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살려둔다는 것은 다만 용서와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상처와 배신을 가꿔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소설속에 어릿광대보다도 이 소설속의 니꼴보다도 더 갸륵한 그대들이길. 진심으로 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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