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교수님의 말이 있다. 세세한 부분들은 잊었지만, 어쨌든 요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왜 반역자(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들을 살려두면 안되는가 하는 부분들이다. 경제론적인 측면에서도 반역자의 확실한 처단은 너무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아, 괜히 친일파 친일파 하는 게 아니었구나.' 보통사람들은 친일파 처벌의 문제를 단지 과거사청산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사회전체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속성들이 담겨져 있고, 우리는 그걸 떠안고 계속해서 바보같은 되풀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절한 정원'은 무척이나 가벼운(?) 소설이다. 적어도 그 외형적인 모습에서는 말이다.
큼직한 글씨에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 한시간이면 마지막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이 작은 소설에 얼마나 큰 감동이 담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의 감동은 일순간에 격정적으로 오고, 온몸을 타고 순환하다 이성의 정거장에 제 때 머문다. 그리고 그 마지막 생각이 머문 자리에서 우리는 돌아보게 된다. 짓눌리는 역사의 무게 앞에 저 여린 인간들의 처연한 삶은 얼마나 눈물겨운가?

이책의 감동은 마지막 몇페이지(개인적으로는 105페이지에 99%의 감동이 담겼다고 본다.)에 모두 담겨진다. 오래걸리지 않으나, 많은 시간 생각하게 하고, 어렵지 않으나, 막상 헤아리기에는 깊은... 왜 이렇게 짧은 소설이 전세계를 울렸는지 공감하게 된다. 물론 이책이 모리스파퐁의 재판을 소재로 쓰여지기는 했으나, 이 책이 말하는 커다란 주제는 반역자 처벌에 관한 부분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쓰여진 계기일 뿐이고, 어릿광대 병사와 니꼴이 보이는 숭고한 인간애가 이책의 진정한 미덕일 테다. 하지만, 책을 놓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릿속엔 왜 자꾸만 친일파 처벌같은 문제들만 맴도는 걸까?

얼마전 김훈의 칼럼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고려대 대학신문인 <고대신문>(주간 임홍빈 교수)의 학생기자들은 최근 이 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사실적으로 적시하는 내용을 포함한 `친일청산 특집'을 기획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25일치로 기획됐던 이 특집 기사는 지금까지 3주째 표류해왔고, 현재는 `당분간' 연기된 상태다. 학생기자들은 “주간교수님이 기획안에 난색을 보이고 있고 또 취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학생기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취재의 벽'이란 이 문제에 대한 재단(고려중앙학원·이사장 김병관 전 동아일보회장)쪽의 입장을 받아낼 수 없고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간 교수는 기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판에 고려대 동문회(회장 구두회)는 지난 28일 정기총회에서 발표한 결의문에서 “인촌의 명예를 유린하는 행동은 무책임하고 불순한 의도”라고 규탄하고 “인촌을 친일인사로 매도한 당사자들은 이를 취소하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정기총회에는 300여명의 고려대 동문들이 모였다. 철벽과도 같은 현실이 학생기자들의 앞에 가로놓여있다. 그 어린 학생기자들의 모습은 늙은 기자의 지난 시절 모습처럼 보였다. 』아직도 이땅의 기득권들은 두손 가득히 부여잡고 놓지 않으려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친일파들을 철저히 숙청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너그러이 용서함으로써 얻어지는 인륜적 도덕성이나 숭고한 인간애 같은 가치보다, 그들을 살려둠으로써 후대의 모든 사람들이 겪어내야 하는 혼란과 왜곡된 인식의 틀들이 가져올 폐단들이 훨씬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살려둔다는 것은 다만 용서와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상처와 배신을 가꿔가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소설속에 어릿광대보다도 이 소설속의 니꼴보다도 더 갸륵한 그대들이길. 진심으로 난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