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1~18(완결) 세트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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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은 외갓집에서 잘 거니까, 엄마 아빤 그냥 가도 좋아 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여섯 살 난 조카는 그러나, 새벽3시쯤이 되자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 그 조카를 데리고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그 아이의 집으로 갈 때였다. 그런 시간은 아직 집을 찾아 들어가지 않은 취객과 아직 첫손님을 받지 못한 창부들이 골목에 뒤엉켜(우리 동네엔 그런 방석집이 좀 있다) 있게 마련이다. 어린 조카는 한 손을 내게 맡기고 다른 한 손엔 자기가 낮에 만든, 조도가 형편없게 낮아 바로 아래의 아스팔트에도 빛 한 줄기 내뿜지 못하는 그런 손전등을 들고 고개를 떨구고 걷고 있었다. 그러며 입으로는 계속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안 무서워. 안 무서워. 짜이모도(작은 이모, 곧 나다)있고, 손전등도 있고, 집도 다 와 가고, 나쁜 아저씨가 오면 발로 찰 거야. 안 무서워. 난 용감해.”

조카의 그 모습은 내게 “몬스터”에서의 한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버려진 창녀의 아들로 고아원에 맡겨졌던 아이. 엄마를 찾겠다고 도시를 자주 돌아다니곤 하는 그 아이에게, 요한은 한나의 모습을 하곤 이렇게 말한다. “네가 엄마를 찾는다고 너희 엄마도 널 찾을 것 같니. 넌 왜 버려졌어? 넌 네가 원해서 태어난 거야?” 그러곤 아이를 국경의 사창가로 보내며 여기 엄마가 있을 테니 찾아보라고 한다. “만약 엄마가 널 알아보지 못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지?”라며. 그 사창가를 걸어가는 동안 그 아이가 보는 것을 보며, 그 아이의 변하는 표정을 보며, 이 아이의 이 공포로 가득찬 머릿속을 잠시 내가 떠안을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의 이 무섭고 추악한 기억을 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었다. 그 기분이 내 조카에 이르러서는 몇 배나 증폭된 것은 물론이었다.

다행히 그 아이도, 우리 조카도 (내가 그 속을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놓여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런 판에 박힌 말은 낯간지럽지만 주변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엄마에게 버림받고 많은 주검을 목격한 기억을 ‘공유’한 남자 아이가 그 후에 고아원에서 모진 학대와 약육강식의 동물적 생존만을 강요받았다면, 그리고도 사랑은커녕 그 아이의 증오를 살인병기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들의 은근한 부추김과 살인에 대한 격려와 찬사만을 받았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 ‘우라사와 나오키’는 그 아이를 몬스터로 만들었다. 사람의 가장 취약한 점을 파고들어 죽음에, 혹은 살인에 이르게 하는 절대자의 위치에 선 교사(敎唆)자, 요한. 그리고 그 몬스터 요한을 응징하려는 사람으로, 그에게 새 생명을 준 (출세를 포기하고 의사의 도리를 다한) 인간적인 의사 닥터 덴마와, 요한과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나 그 기억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요한의 쌍둥이 여동생 한나를 지목했다. 그렇다고 이 만화가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적인 대립만을 보여주고 있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해 버리시면 안 된다. 당신은 이 만화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맛보실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당신은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서늘한 몬스터의 기운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의 그 서늘한 기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상처입은 한 영혼만을 아프게 기억하실 것이다. 행복한 요한이 될 수도 있었던 한 아이를.

덧붙임)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공포라는 것이 대부분 소리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별것 아니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분명히 나처럼 놀란 분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내 주변의 어떤 아줌마는 심지어 소릴 지르며 만화책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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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SE (2Disc)
정재은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엔터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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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드러내지 않는 내 앙칼스러움과 표독스러움을 적당히 부려놓을 친구를 가졌던가. 혹은 나에게 밤 늦게 찾아와, 좀 부탁해..하며 자신을 부려놓았던 친구가 있었던가. 차라리 스무 살엔 그런 것도 필요없이 우린 늘 바빴는데 서른이 넘고 보니까 누군가에게 나를 좀 부탁해 버리고 싶어지네.

서른이건 스물이건, 한 무리의 여자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혜주며 지영이, 그리고 태희가 있게 마련인가 봐. 혜주와 지영이의 대립 그거, 보는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말지만, 실제로 태희나 쌍둥이의 입장이 되어 그들 사이에 껴 있다 보면 피곤해 미치지. 근데 만성이 되면 화해시키려는 노력도 안해. 저러다 삐치면 하나가 가 버리겠지...하고 지켜보는데, 절대 또 영영 헤어지지는 않네. 귀여운 것들 같으니라구. 사람은 자라고 늙어가도 관계는 여전하다는 게 때로는 우스워.

어제 '도형일기'까지 보고 나니까 새벽 3시가 넘었더라구. 그런 영화 있잖아. 보고 나면 할 말 굉장히 많아지는. 어제 내가 그랬는데, 동생은 같이 보다 거실에서 쓰러져 자 버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그래서 뭐..그냥 자 버렸어. 영화를 보면서 바로바로 나누는 대화 (혹은 엉엉 울거나, 크게 놀라는 행위-영화관에서 그러면 정말 꼴불견이지)야말로 영화 감상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영화관에도 잘 안 가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 편인데 어젠 정말 답답했더랬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는 맥주 한 캔 하며 주인공들의 외모와, 매력적인 음악과, 극중 인물의 성격에 대해-우리 친구들과 비교해 가며 수다를 떨고 싶었고, <둘의 밤>을 보면서는 저 여자애 저거 진짜 말 안 듣게 생겼다며 욕을 좀 하고 싶었고, <도형일기>를 보면서는, 나도 예전에 모음과 자음을 분해해서 나만 알아보게 일기를 썼던 적이 있었다는 것과, 역시나 보호소에 가게 될 것이 두려워 죽은 보모의 시체를 숨겨둔 창녀의 아이 얘기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하고 싶었었지.

어우..2시도 안 됐는데 잠온다. 어제 영화 보느라 잠을 좀 설쳤더니..

아무튼 '도형일기'는 너무 괜찮았어. 작가의 의도는 보이나 주인공은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는,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잔혹하고 충격적이지만 주인공에겐 그냥 일상적인-아빠의 시신을 이불에 싸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서 밥 먹고, 자고, 그러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가 난 좋더라. '담배처럼 해롭고', '내 마음을 마구 짓이겨 아프게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아, 벌써 쓰레기차 지나간다. 예전에는 오전이나 낮 시간에 청소부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면서 딸랑딸랑 종을 흔들면 주부들이 나와서 쓰레기를 그 리어카에다 비웠었는데, 그 종이 언젠가부터 새마을노래로 바뀌더니...또, 언제부턴가 쓰레기차들은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다니더라구...저 분들이 밤을 닫고....아침을...여는 건가.....아..이제 자야지...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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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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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의 어느 교양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느닷없이 오늘은 자기의 장래희망을 써서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하셨다. 학교와 학과에 따라 대충의 진로도 이미 정해진 마당에 웬 장래희망이냐, 우리가 국민학생이냐, 중학생이냐, 수업준비 못 해와서 저러는 거 아니냐는 비판적 목소리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겨운 수업보다 낫다며 좋아라 엎드려 글들을 쓰기 시작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를 꿈꾸고 있구나, 라는 것을.

나로 말하면, 소싯적에 각종 문예대회에서 상도 좀(정말 좀) 받았고, 늘 동서고금의 훌륭한 소설책을 달고(달기만 하고) 다녔으므로, 늘그막에 소설 한 자락을 쓴다는 것은 정말이지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으면서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누구에게 얘기하기가 부끄러웠는데, 평소 소설책 한 권 읽는 걸 보지 못했던 많은 아이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내 인생을 담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당당하게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장래희망에서 소설을 쓰겠다는 부분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나 하나로도 소설은 충분히 욕을 본 터인데 저렇게 개나소나 소설을 쓰고 싶어하다니, 정말 소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싶어졌던 것이다.

이해경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그 날의 그 수업시간 속에 들어와 앉은 기분이었다. 아니, 이렇게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소설을 쓰고 싶어한단 말인가. 이미 등단한 L과 주인공의 선생님 외에, 주인공인 그, 그의 그녀, 그의 아내, 그의 직장동료 M, 그의 아내가 가입한 인터넷 동호회의, 인생이 소설인지 소설이 인생인지 구분도 안 가게 기구한 삶들을 저마다 살고 있을 숱한 아줌마 습작생들. 정말이지 이 소설 안에는 대가와, 될성부른 소설가 지망생, 가망 없는 소설가 지망생, 그 외의 어중이떠중이까지 온갖 종류의 소설가가 다 등장하고 있다.

그러자니 이야기는 길어지고, (그 소설가들의 길고 짧은 소설들로) 어수선하고,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기만 하다. 게다가 ‘그’는 얼마나 말이 많은지, 그의 말마따나 적당하게 건너뛰어도 나쁠 것은 전혀 없는 정황이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까지 무슨 단편소설에서나처럼 세부적으로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이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많은 분들이 거슬린다고 지적한 저 구어적 문체 때문인 듯하다. 그 구어적 문체야말로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그저 뒤에서 궁시렁대며 간당간당 살아가는 소시민인 ‘그’를 제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내가 재미있어 하던 그의 문체는 소설의 마지막에 접어들어, 그의 아픈 과거가 일깨워지면서 어느새 고의적으로 진지해진다. 하긴, 그 충격적인 경험의 기억은 그를 진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했겠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이어, 진지해진 그가 그렇게도 벼르던 첫 문장을 제 데이빗에, 그리고 내가 읽고 있는 이 책 위에 내지른다. 그 첫 문장은 좀 약하긴 하지만, 그가 애정을 가지고 써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녀와, 소설. 그의 어렵게 태어난 첫 문장에 무한의 격려를 보내며 책을 덮는 순간 아, 나도 문득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내일이면 싹 잊고 오로지 행복한 독자로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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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디트 - [할인행사]
카챠 폰 가르니에 감독, 카챠 리에만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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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 보일 매력적인 델마와 루이스가 한 쌍 더 등장해 “여자들의 마음에 내재한 유쾌한 탈주의 욕구를 채워”주고, 섹시하고 뻔뻔스러운 브래드 피트 같은 젊은이가 그 매력을 마음껏 과시하며 화면 전체를 비릿하지 않은 욕정으로 채워가는 영화가 있다면, 게다가 그 영화가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인 화면과 콘서트장의 터질 듯한 열기로 충만해 있고, 그 음악 역시 나와 코드가 딱 맞아 떨어지는 영화라면 그 영화는 누가 뭐라든 최고다. 맞다. 맞고, 그것이 내가 이 영화 [밴디트]의 DVD를 도어즈 유럽 라이브 앨범과 함께 처음으로 산 이유였다.

그런데 거기에, TV에서는 보지도 못한(보는 게 다 뭔가! 얼마나 정교하게 가위질을 했던지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한) 뇌쇄적인 정사씬까지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건 평소 얼마나 노골적이며 관능적인 정사씬이 있는가로 영화의 질을 평가하곤 하던 내가 그런 속물근성을 버리고 음악과, 화면과, 내용에 반해 TV로만 두 번을 본 이 영화를 DVD 타이틀로 소장할 첫 번째 영화로 선택하여 받은 부상(副賞)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부상은, 오! 황홀했다.

폭력전과범인 밴드의 보컬 루나, 사기전과범인 베이시스트 엔젤, 살인미수범인 키보디스트 마리와, 살인죄로 복역중인 드러머 엠마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밴드의 구성원이며, 네 종류의 블러드 타입이며, 여자 속에 감추어진 모든 숨죽인 본성이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탈옥을 감행하게 되지만 자신들의 탈옥이 다른 남자 탈옥수들에 가려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자 분통을 터뜨리며 방송국에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 인터뷰로 유명해진 이들의 상품성을 간파한 음반회사 사장은 교도소 시절 이들이 보낸 데모 테잎을 찾아 앨범을 출시하고, 곧 이들의 음악과 인터뷰 장면은 바로 하나의 뮤직비디오가 되어 전 레코드 매장에서 상영된다.

네 명의 배우가 실제 공연처럼 열정적으로 연기를 할 수 있고, 연기처럼 비주얼하게 실제 연주를 해낼 수 있으며, 그들의 본능과 열정을 아낌없이 토해내는 음악으로 모던 락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현란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서정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화면은 또 그 음악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희박하긴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던 희망을 가지고 끝을 향해 질주하던 이들에게 30대의 젊은 여성 감독 카챠 폰 가르니에는, 차를 몰고 절벽으로 뛰어드는 두 여주인공을 결국 죽이지 못해 섬광과 함께 사라지게 한 저 리들리 스콧처럼,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준다. 투항도 죽음도 결코 이들의 몫이 될 수는 없다. 먼저 죽어간 동료의 내민 손을 향해 나머지 셋은 손을 뻗지만 서로 손을 채 잡기도 전에 화면은 정지해 버린다.

이 손은, 옥상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포위망을 좁혀 오는 경찰들을 피해 스테이지 다이빙을 하는 이들을 받아, 도주의 길로 옮겨주는 숱한 관중의 손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다. 관중은, “밴디트”가 사회로 나오게 되는 처음부터 줄곧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나 이들을 감찰하고 보호해온 기관은 집요하게 이들을 관중으로부터 격리시켰다. 비로소 이들이 관중의 손에 몸을 맡기게 되었을 때, 이들은 죽은 동료에게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허무하고 비장하다고? 천만에! 허무함과 비장함를 느낄 사이도 없이 생의 터질 듯한 활기가 넘쳐흐르는 것이 이 영화다.

궁금해 하실 DVD 타이틀 구입과 함께 부상(副賞)으로 받게 되었다는 정사 씬은, 비를 맞으며 진흙탕을 뒹구는 다소 원초적이고 말초적이면서 아주 몸이 뒤틀리게 매혹적인 장면으로, 64배속 리와인드로 몇 번이고 다시 돌려 보며 주책스럽게도 따라 해보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p.s) 사운드트랙에서의 강추 트랙
10. Shadows
6. Another Sad Song
4. Crystal Cow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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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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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촌구석에 안온히 박혀 한 발짝 늦게, 앞선 사람들의 분투 혹은 간난한 세월을 읽으며 아, 내가 저 시대를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럼 정말 폼나게 한 인생 살았을 텐데...하고 있는 게으른 독서쟁이인 나는 그러나, 지금의 행태로 미루어 보건대 분명 어느 시대를 살았건 간에 비겁한 방관자, 좋게 말해줘 침묵하는 다수였을 것이다. <검은 꽃>의 시대였다면, 일포드호를 두고 저기 사람들은 죄다 노예로 팔려간다더라는 시기 섞인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혹은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나와 가족의 목숨 부지에만 급급해 창씨개명도 하고 부역에도 빠지지 않으며 숨죽여 사는 어리석고 힘없는 백성이었겠지.

동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세하게 알게 되는 주류역사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검은 꽃>은 현기영의 <쇠와 살> 같은 까끌까끌함과, 작가 자신의 이전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매력적인 인물들이 연출해내는 끈적끈적함이 잘 버무려진, 먹기 좋고 맛도 좋으며 되새길 것도 많은 소설이었다.

한 권에 담아내기엔 벅찬 이야기이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그래서 더욱 여운을 남기는 이 소설은, 다소 충격적인 당신의 과거사를 담배연기와 함께 심드렁하게 뱉어내시는 초탈한 할머니의 하룻밤 이야기 같기도 하다. 감정이입은 쉽지 않지만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더없이 적절한 건조한 말투와 이제는 성별조차도 모호한 중성의 목소리를 가진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성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감성의 영역으로 흡수되어 아픈 앙금을 남기듯 이 소설 또한 그랬다.

소설 <검은 꽃>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비정상적이다. 나라는 사라지고, 종교는 미쳤다. 성직자는 내림굿을 받아 박수가 되고, 도둑은 성직자인 양하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정신적 인간이던 사대부의 아녀자들은 육체적 노동 앞에 이름뿐인 정조(貞操)를 내던지고, 장돌뱅이였던 고아 소년은 지배국가의 탈영병 출신 요리사에게 강간을 당한다. 사라진 나라의 퇴역군인은 팔려간 나라의 한 귀퉁이에서 건국을 꿈꾸고, 용병이 된 고아 소년은 몇몇의 사람들과 미개척지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그들은 그렇게 비정상적인 삶을 살다 죽어갔고, 그렇게 죽어 세상에 다시 없을 <검은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검은 꽃>의 향기는 오래 갈 것이다.

p.s) 이종도의 모습에서 늙으신 아빠를 보았다. 나는 등장인물 중 그가 가장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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