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SE (2Disc)
정재은 감독, 배두나 외 출연 / 엔터원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드러내지 않는 내 앙칼스러움과 표독스러움을 적당히 부려놓을 친구를 가졌던가. 혹은 나에게 밤 늦게 찾아와, 좀 부탁해..하며 자신을 부려놓았던 친구가 있었던가. 차라리 스무 살엔 그런 것도 필요없이 우린 늘 바빴는데 서른이 넘고 보니까 누군가에게 나를 좀 부탁해 버리고 싶어지네.

서른이건 스물이건, 한 무리의 여자 속에는 어떤 형태로든 혜주며 지영이, 그리고 태희가 있게 마련인가 봐. 혜주와 지영이의 대립 그거, 보는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말지만, 실제로 태희나 쌍둥이의 입장이 되어 그들 사이에 껴 있다 보면 피곤해 미치지. 근데 만성이 되면 화해시키려는 노력도 안해. 저러다 삐치면 하나가 가 버리겠지...하고 지켜보는데, 절대 또 영영 헤어지지는 않네. 귀여운 것들 같으니라구. 사람은 자라고 늙어가도 관계는 여전하다는 게 때로는 우스워.

어제 '도형일기'까지 보고 나니까 새벽 3시가 넘었더라구. 그런 영화 있잖아. 보고 나면 할 말 굉장히 많아지는. 어제 내가 그랬는데, 동생은 같이 보다 거실에서 쓰러져 자 버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그래서 뭐..그냥 자 버렸어. 영화를 보면서 바로바로 나누는 대화 (혹은 엉엉 울거나, 크게 놀라는 행위-영화관에서 그러면 정말 꼴불견이지)야말로 영화 감상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영화관에도 잘 안 가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 편인데 어젠 정말 답답했더랬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는 맥주 한 캔 하며 주인공들의 외모와, 매력적인 음악과, 극중 인물의 성격에 대해-우리 친구들과 비교해 가며 수다를 떨고 싶었고, <둘의 밤>을 보면서는 저 여자애 저거 진짜 말 안 듣게 생겼다며 욕을 좀 하고 싶었고, <도형일기>를 보면서는, 나도 예전에 모음과 자음을 분해해서 나만 알아보게 일기를 썼던 적이 있었다는 것과, 역시나 보호소에 가게 될 것이 두려워 죽은 보모의 시체를 숨겨둔 창녀의 아이 얘기인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하고 싶었었지.

어우..2시도 안 됐는데 잠온다. 어제 영화 보느라 잠을 좀 설쳤더니..

아무튼 '도형일기'는 너무 괜찮았어. 작가의 의도는 보이나 주인공은 전혀 그런 걸 의식하지 않는,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잔혹하고 충격적이지만 주인공에겐 그냥 일상적인-아빠의 시신을 이불에 싸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기서 밥 먹고, 자고, 그러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가 난 좋더라. '담배처럼 해롭고', '내 마음을 마구 짓이겨 아프게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야.

아, 벌써 쓰레기차 지나간다. 예전에는 오전이나 낮 시간에 청소부 아저씨들이 리어카를 끌면서 딸랑딸랑 종을 흔들면 주부들이 나와서 쓰레기를 그 리어카에다 비웠었는데, 그 종이 언젠가부터 새마을노래로 바뀌더니...또, 언제부턴가 쓰레기차들은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다니더라구...저 분들이 밤을 닫고....아침을...여는 건가.....아..이제 자야지...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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