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일 선생의 <이 땅에서 학문하기>를 읽다가 옮긴다.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서재에 들어와 짧게나마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유희에 가까운 성향을 지닌 책이라면 어느 정도 자기를 잊고 빠져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쟁점이 많은 문제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펴는 책은 그럴 수 없다. 어느 책이든 '빠지면서 읽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은 이해되지 않아 즐길 수 없는 책을 무조건 숭상하라고 하는 그릇된 지침이다. 그렇게 읽을 수 없는 책이라야 읽을 가치가 있다.

글읽기의 마땅한 방법은 '따지면서 읽기'이다. '빠지면서 읽기'와 '따지면서 읽기'는 자음 하나 차이밖에 없어 비슷하게 보이는 말이지만, 뜻하는 바는 반대이다. 책 속에 빠져 들어가 저자에게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단단히 차리면서 책의 내용에 관해서 저자와 대화하고 토론하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 것이 '따지면서 읽기'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잊지 않고 발견해야 책을 읽을 흥미가 생기고, 책이 이해되고,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그러나 '따지면서 일기'가 최상 형태의 독서는 아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쓰면서 읽기'에 이르러야 한다. '따지면서 읽기'를 다른 말로 일컬은 비판적 독서가 바람직하다고 하는 것은 부족한 소견이다. 비판을 하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비판을 하는 데 그치지 말고 대안을 글로 써야 한다. 그렇게 해야 글읽기에서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다. 마음속으로 쓰다가 실제로 쓰는 데 이르러야 글읽기가 끝나고 글쓰기가 시작된다. (26-27)

 

'쓰면서 읽기'를 하기 위해서는 책을 독파할 필요가 없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자기 글을 생각하다가 생각이 여물면 글읽기를 그만두고 글쓰기를 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글읽기를 존중하는 풍토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생각을 하면서 남의 글을 읽으면 오독을 하게 되고, 읽다가 만 책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 글을 자기가 쓰기 위한 자극제나 토론거리를 찾기 위해서 독서가 필요하다고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고 또한 계속 나와 다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읽기에는 완성이 없고 빈약한 출발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쓰면서 읽기'에서 글쓰기로 넘어가면 자기 글을 써서 그것대로 완성할 수 있다. 글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자리를 바꾸어, 인류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동참할 수 있다. (27)

 

얼마 전에 읽은 <스님의 공부법>애서 자현스님은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 반드시 끝까지 독파한다고 하던데, 마침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왔다. 스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는 글쓴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그런다고는 하겠지만, 내 생각에도 읽기 싫거나 힘든 책은 안 읽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다. 예컨대 이승만이나 박정희 찬양하는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도저히 읽기 힘든 책인 경우에, 나는 ‘이걸 쓴 사람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쓴 사람도 있는데 한 번 읽어주는 정도야 뭐 그리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스님의 공부법,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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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1-1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니까요. 노력해도 안되는 책이 있다니까요 ^^ 앞으로 일본철학자나 비평가가 쓴 서양철학,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 철학은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두 언어가 섞이고 새로운 언어을 창조하면서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돌궐 2016-01-14 23:01   좋아요 0 | URL
아마도 번역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철학이 언어로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그건 철학이 아니지 않나요? 언어를 통하지 않은 철학이란 불가능하니까요. 아무튼 저는 철학책이란 살면서 한 열 권 정도 읽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라... 굳이 남들이 읽는다고 찾아 읽지는 않습니다.ㅋ

cyrus 2016-01-1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자질구레한 것까지 따지면서 읽으면 안 되겠어요. ㅎㅎㅎ

돌궐 2016-01-16 22:41   좋아요 0 | URL
틀에 박힌 읽기 읽기를 위한 읽기 말고 나름의 방법으로 읽으면 되는 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