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비문 중에서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어제 중고매장에서 산 책을 보다가 이 글이 나와서 반가웠다.
허왕실귀 선난후획 채옥자불탄곤구지준 탐주자불사여학지심
虛往實歸, 先難後獲, 亦猶采玉者不憚崑丘之峻, 探珠者不辭驪壑之深.
빈 채로 떠나 돌아올 때는 채워서 오고자 하고, 어려운 일을 먼저 한 뒤에 수확을 얻으려 하니,
옥을 캐는 사람이 곤륜산이 험준하다고 해서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사람이 흑룡이 사는 바다 속이 깊다고 해서 피하지 않는 것과 같다.
- 번역문은 최치원, <새벽에 홀로 깨어> 119쪽에서 인용.
진감선사탑비는 최치원의 '사산비명' 중 하나이다. 한창 들판으로 돌아다니던 시절 이 탑비를 탁본한 적이 있었다. 비문은 최치원이 짓고 직접 글씨까지 썼다. 종이 위에 드러나는 그의 글씨는 카랑카랑하면서도 유려하였다.
나는 그 때 탁봉을 두드리며 최치원의 붓끝을 만났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경내에 피었던 매화도 좋았고, 탁본을 마치고 먹었던 섬진강의 재첩국도 맛있었다.
진감 혜소는 소림사에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고, 범패의 대가가 되어 신라에 돌아왔다. 스님은 고난 끝에 옥과 여의주를 얻어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곤륜산과 여학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 너머에 있다는 옥과 여의주도 찾지 못하였다.
위의 구절을 따로 집자한 이미지가 어딘가 있을 텐데 찾지 못했다. '최치원'이란 글씨를 찍은 사진만 겨우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