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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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을 때 처음에는 글자만 읽히다가, 다음에 문장이 읽히고, 이내 그 시의 본의를 깨달을 때가 있다.

 

한참 전에 서울 변두리 팔당호가 가까운 곳에서 살았었다. 호수가 가까우니 안개가 자주 꼈었다.

함민복 시 <안개>를 읽고 있자니 그 시절 새벽 안개를 뚫고 서울로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안개가 자욱한 추운 겨울날 새벽, 집을 나서면 아직 새순도 돋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안개꽃이 뒤덮여 있었다. 

희부연 안개 속에 설백색으로 덧칠된 나무숲을 지나는 시간이 꽤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안개는 그렇게 사물과 그 배경을 모두 지우고 내 몸 속 어딘가에 숨겨진 더듬이를 내밀게 한다.

더듬더듬, 시인처럼

나도 가끔 세상을 그렇게 더듬어 보고 싶다.

 

 

안개

안개는 풍경을 지우며
풍경을 그린다

안개는 건물을 지워
건물이 없던 시절을 그려놓는다

안개는 나무를 지워
무심히 지나쳐 보지 못하던 나무를 그려보게 한다

안개는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 소리를 나누어놓는다

안개는 사방 숨은 거미줄을 색출한다
부드러운 감옥 안개에 갇히면 보임의 세계에서 해방된다

시선의 밀어냄을 흡수로 맞서며
눈동자에 겸손 축여주는 안개의 벽

안개는 물의 침묵이다
안개는 침묵의 꽃이다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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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24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민북 시집을 사셨군요. 가만 보면 한국에서 글 써서(문학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은 10명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돌궐 2015-06-24 06:50   좋아요 0 | URL
네 곰곰 님 추천하신 함민복, 김신용, 문태준 시집 한 권씩 샀습니다. 김신용, 문태준 시집 다른 것도 있던데 그것도 나중에 사서 보려구요.
김신용 <환상통>은 자주 들춰보게 될 거 같아서 아예 비니루로 쌌습니다. 감사합니다.^^

돌궐 2015-06-24 06:59   좋아요 0 | URL
참, 책 표지 안쪽에 날짜 적고 `곰곰님 추천`이라고 썼답니다.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5 05:46   좋아요 0 | URL
어쿠. 감사합니다. 제 기준에 좋은 시집이라 추천이 쉽지는 않습니다. 누가 추천한 걸 사서 읽은 적 있는데 하도 후져서 욕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김신용이란 작가는 제가 눈여겨보는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