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사랑과 평화의 철학 살림지식총서 469
박문현 지음 / 살림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논어> 3종(김원중, 신창호, 이을호)을 갖추고 천천히 읽고 있다.

구구절절 무릎을 치는 곳도 있지만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도 있었다.

글이란 것은 그 흐름에 따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저자의 논지에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원래 그런 걸 찬성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따라서 이 사람과 다른 의견을 가진 또 다른 저자가 있으면 함께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마침 유가에 반대했던 묵자에 관심이 가길래 살림지식총서에 있는 짧은 개설서를 찾아 읽어 보았는데, 묵가 사상의 전반적인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묵가는 대단히 진보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권위적이고, 틀과 체계를 중시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에 묵자가 유가를 비판한 내용을 조금 옮겨본다.

 

묵자는 유가의 이념에는 나라를 망칠만한 네 가지 정책(四政)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첫째, 하늘과 귀신의 존재와 작용을 믿지 않는 것. 둘째, 장례를 후하게 하고 상기(喪期)를 오래 하는 것. 셋째,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음악을 즐기는 것. 넷째, 운명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묵자는 ‘사정’이 사회를 해롭게 하고 천하를 망치는 것이라 확신하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네 가지 병폐를 고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천지’ ‘명귀’ ‘절장’ ‘비악’ ‘비명’의 주장이 그것이다. ‘사정’을 포함해 묵자가 유가에 대해 비판하는 사상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유가의 비생산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이다. 묵자는 말하기를 “유자들은 예악을 번거롭게 꾸며 사람들을 음탕하고 어지럽게 하고, 오랜 상기 동안 거짓 슬퍼함으로써 부모를 속인다. 운명을 믿어 가난에 빠져 있으면서도 고상한 척하고, 잘난 체하고, 근본을 어기고 할 일은 버리고서 태만하게 편안히 지내며, 먹고 마시기를 탐하면서 일을 하는 것은 게으르다. 그래서 굶주림과 헐벗음에 빠지고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위험에 놓여 있으면서도 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묵자는 부잣집에 초상이 나기를 기다리며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유자들을 가리켜 “거지와 두더지, 숫양, 멧돼지와 같다”고 공격한다. 『묵자』의 다른 편에서는 묵자가 유자들을 이렇게까지 극렬하게 비판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유가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유자들은 말하기를 “군자는 반드시 옛 의복을 입고, 예스런 말을 써야만 인자(仁者)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묵자는 반문하기를 “이른바 옛 말, 옛 의복이라고 하는 것도 오늘날에 와서 옛것이 된 것이지, 처음에는 모두 새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옛 사람이 입었던 의복과 옛 사람이 사용했던 말은 모두가 새로운 것이었으니 옛 사람은 모두 군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의복은 반드시 군자의 의복이 아니요, 말 또한 군자의 말이 아니어야만 비로서 어진 사람이라는 것인가?”라고 한다.

유가는 예악을 중시해 당연히 복장이나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묵자는 하는 일을 중시해 형식주의를 배척한다. 따라서 군자가 되고 안 됨에 있어 복장이나 언어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뚜렷한 근거도 없는 유가의 형식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셋째, 유가의 ‘술이부작(述而不作)’에 대한 비판이다. 유자인 공맹자(公孟子)가 말하기를 “군자는 창작하지 않고 옛것을 계승할 뿐입니다”라고 하니 묵자가 이에 대해 “옛날의 훌륭한 것은 계승하고, 지금 필요하고 좋은 것은 창작해야 좋은 것이 더욱 많아진다”고 반박한다. 공자는 “옛 것을 배워 권하기는 하되 창작하지는 않으며, 옛 것을 믿고 좋아하니 속으로 나를 노팽(老彭)에 비기는 바이다”라고 했다. 이를 보면 공자는 전통을 고집한 보수주의자였음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 묵자는 『詩』와 『書』의 교육을 받은 인물로서 형식적인 예와 악을 반대할 뿐 『시』와 『서』에 대해서는 이것들을 자주 인용하고, “옛 성왕의 사적(事蹟)에 근본을 둔다”고 하여 옛 것을 숭상하면서도 현재 백성들의 이목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문제를 찾아내 개선하고, 마지막으로 실용화하려 한다. 이는 곧 ‘술이차작(述而且作)’이라 할 수 있다.
묵자는 유자들이 “군자는 옛 사람의 뒤를 쫓을 뿐 창작하지는 않는다(君子循而不作)”고 말한 데 대해, 활이나 배, 수레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모두 소인이라면, 그 발명자들의 뒤를 좇아 지금 그것들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소인이라며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넷째, 유가의 수동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발분하지 않으면 계도해 주지 않고 답답해하지 않으면 일러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묵자는 유가의 이러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즉, 공맹자가 묵자에게 “군자는 자기를 건사하고 기다리다가 물으면 말을 하고, 묻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종과 같은 것이니 두드리면 울리고, 두드리지 않으면 울리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임금이나 부모가 “좋은 일을 하면 칭찬하고, 허물이 있을 때는 잘못을 고치도록 직언하는 것이 어진 사람의 도리”라고 말한다. 묵자는 이러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가 임금이나 부모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묵자는 유가의 공리적인 면이 부족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유가가 도덕적인 예와 악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경험적인 지식은 경시하는 태도, 즉 이지적 태도의 결핍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또 유가는 이상을 설정해놓기는 했지만 그 이상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비교적 소홀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묵자는 이지적이고 진보적인 실용주의 원칙에 입각해 유가를 비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7-21)

 

가만히 앉아 남이 알아주길 기다리고만 있으니 유가들은 죄다 게을러 터졌단다.ㅋ

따지고 보면 그것도 맞는 말 같고... ㅎㅎ

 

왜 춘추전국시대에 유가와 묵가가 서로 경쟁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하는지 조금은 알 듯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5-02-09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논어를 제대로 파고난 뒤에 도가, 묵가 사상 순으로 진도를 나가야겠습니다. ^^

돌궐 2015-02-09 22:45   좋아요 0 | URL
저도 노장은 읽고 싶은데 묵자까지는 엄두가 안나요.^^;
뭐 죽기전에는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만 합니다. 읽어야죠.